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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는 아주 단순한 이유는 '오락성' 때문이다. 작품은 문학적 깊이나 실험보다는 몰입도와 서사 전개가 중심이다. 글은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다. 불필요한 수식이 없고 직관적이며 스토리라인도 직선적이다. 고로 문자가 넘어가지 않아서 다시 뒤로 돌아가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독서를 쭉쭉 뻗어가게 하는 힘은 '책태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극복하도록 만든다. 시각적 설명보다는 사건과 대화 위주의 전개가 많아 영상처럼 읽히는 느낌을 준다. 복잡한 메타포나 설명도 없다. 미스터리 장르의 전형적인 구상을 따르되 클리셰를 재료로 써도 질리지 않는 꽤 희한한 매력이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게이고'의 책을 다시 읽은 이유는 앞서 말한, '책태기' 때문이다. 글이 잘 안 읽히는 느낌이 들 때, '게이고'의 작품 두어개를 보고나면 말끔하게 치료가 된다. 이후 다시 '책벌레'처럼 글의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게이고의 '비정근'이라는 소설을 들고 침대에 뒹글거리며 책을 읽다가, 초등학교 2학년 우리 딸이 옆에서 보고 있는 책을 봤다. 아이는 '전천당'이라는 초등학생 소설을 보고 있었는데, 얼핏 글자 크기와 테스트의 양이 더 많아 보인다.
게이고의 책은 출판사 의도가 담겼는지 모르겠지만 책의 두께에 비해 책이 가볍고 종이질도 가볍다. 고로 벽돌책처럼 보이는 외관에 비해 페이지는 많지 않고 '탁, 탁' 책장을 넘겨 가는 재미도 있다.
'비정근'이라는 소설은 역시나 나의 최애 작가 '게이고'의 단편 모음이다. 총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벼운 분량, 빠른 속도감은 여전하다. 추리소설 작가를 꿈꾸던 비정규직 초등학교 교사의 내용이다. 정규 교사가 휴직하면서 그 자리를 채우는 기간제 교사의 이야기다.
단편 중심의 구성이라 장면 전환이 빠르고 배경이 '초등학교'라 '추리소설'에 맞지 않는 '풋풋함(?)'도 느껴진다. 여섯편을 진행할 때마다 '자신이 누구고 왜 초등학교에 근무하게 되는지, 짧은 소개를 하고 시작한다. 고로 사실상 어느 편을 먼저 펴서 보거나 상관 없는 책이다.
'비정근'은 게이고의 초기 문체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문장의 매우 짧고 간결하다. 복문보다는 단문 위주로 되어 있으며 역시나 대화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게이고의 작품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정서를 묘사하고 내면 묘사가 많아지는데 초기의 작품은 배경도 감정도 모두 생략되어 표면적이고 직설적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고로 게이고의 작품도 후기 작품을 보게 되면 생각만큼 가볍게 읽혀지지 않는 작품도 더러 있다. 다만 '비정근'은 그의 초기 작품답게 쉽고 간결하다. 그냥 가볍게 주말 오전에 뒹굴거리면서 봐도 괜찮다. 아이가 옆에서 인형놀이를 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도 몰입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 읽는 글들이 꽤 묵직한 글들이 많았는데 이럴 때 한번씩 힐링하게 하는 책이다. 꼭 나와 같은 다독가가 아니라 '가볍게 독서를 취미로 해볼까'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좋은 시작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