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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이리 재미날 줄이야 - 아프리카 종단여행 260일
안정훈 지음 / 에이블북 / 2023년 10월
평점 :
운전병이었다. 운전병은 하루 두 번의 배차를 받는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이렇게 배차를 받으면 운행시간은 길게는 1시간, 짧게는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두돈반이라고 불리는 트럭을 적재소에 대놓고 보통의 운전병은 담배를 피우러 자리하거나 낮잠을 잔다.
운이 좋고도 내가 배치받은 차량은 '신병훈련소'에서 자대로 가는 병사를 데려다 주는 일이었다. 오후에 차량 배차가 있더라도 '병사'를 운송하는 운전병의 특혜란 '졸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다. 그렇다. 쌀이나 과자를 싣는 운전병과 다르게 '사람'을 싣는 운전병은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당시 배차 받은 대대에서 혼자 쉴 수 있는 '휴게소'를 마련해 주셨다. 이전 담당 운전병은 그곳에서 TV를 보거나 탁구를 칠 수 있었다고 들었으나, 내가 갔을 때는 이미 TV와 탁구대는 사라져 있었다. 최소 15평은 되는 휴게실에는 벽 가득 책이 꽂혀 있었다. 자리에는 소파가 하나 있었다. 가끔 나를 대신하여 배차 받은 운전병들은 그 곳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꽂혀 있는 낡은 책을 '스윽'하고 쓸어가다가, 몇 권의 책에서 멈춰서 꺼내 읽었다.
당시 책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시원한 계곡이 산을 끼고 흐르고 있었다. '졸졸졸' 하는 소리와 새소리가 절로 마음을 정화 시켰다. 그곳에서 '차량'을 전방으로 배치하고 책을 읽었다.
군생활 2년 중 1년은 이등병과 일병이라 거의 책을 읽지 못했으나, 상병이 되면서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생기면서 독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에 책을 읽으면 수첩에 기록하고 점수를 써놓거나 한줄평을 써놓기도 했는데 당시 1년 간 읽은 책은 100권 정도 됐다. 리스트는 이렇다.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
'유수연 강사'의 '23살의 선택, 맨땅에 헤딩하기'
'허경영'의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당시는 이 인물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편었다.)
'박현욱 작가의 '아내가 결혼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
'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공지영'의 '사랑후에 오는 것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
'박윤서 작가'의 '창판협기'
대략 이런 것들이 기억난다. 당시 페이지를 넘길 때 나의 모습과 배경 시간, 감정이 동시에 기억나는 걸 보니, 책이라는 것이 참 신비하다. 오죽 책만 보고 살다보니, 당시 타부대 대대장 님께서 일부러 부대까지 찾아왔다.
당시 위병소에서 앉아 근부하고 있었는데 그 창가로 다가오셔서 만원짜리 몇 장을 '툭'하고 던져 주셨다.
'볼 때마다 책 읽고 있더라고, 책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전역하면 책사서 읽어라'
지금 생각해보면 스쳐 지나가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전역날 일부러 찾아와 돈까지 던지고 간 그 모습이 너무 대단해 보인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
아마 그 대대장의 나이는 지금 나보다 훨씬 어렸을 텐데 말이다. 어쨌건 당시 읽었떤 책 중 인상 깊은 책이 '한 아이 엄마'가 아들 둘을 데리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쓴 책이었다.
살면서 아프리카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역사를 쌓고 왔을까'
완전히 이질적인 삶에 매력을 느꼈다. 그때 이후로 나의 꿈이 '아프리카'에 가는 것이 됐다.
아프리카는 나에게 그런 곳이다.
단순히 돈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단순히 시간만 많아도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둘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뿐만 아니라, 그곳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같은 돈이면 충분히 유럽에서 편하고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으며 그럴싸한 사진을 SNS에 올릴 수도 있다.
'여행을 위한 여행자'가 아니라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이 과연 '아프리카'를 여행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꼭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아프리카'를 가는 것이다.
그냥 하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몇 개월 갈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그런 방향이 아니다. '그곳'을 갈 수 있는 충분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그것이다.
그 뒤로 나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유튜버는 구독을 하고, 기행문도 '아프리카 기행문'은 꼭 사서 본다.
언제쯤 나도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