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매일 철학이 필요하다 - 니체, 노자, 데카르트의 생각법이 오늘 내 고민에 답이 되는 순간
피터 홀린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부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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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읽는 뉴스, 대화, SNS, 속한 집단, 태어난 나라, 자란 가정 환경.

이런 것을 생각해 봤을 때, '현실'이라는 것은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창조적 환경'에 가깝다.

말이 어렵다. 조금더 쉽게 풀어보자.

2000년 전 플라톤은 동굴에 갇힌 죄수의 비유를 들어 지식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음은 그의 저서 '국가'의 일부다.

'사람들이 지하 동굴 처럼 생긴 곳에 갇혀 있다고 해보자. 이 동굴 입구는 길고 동굴 전체의 너비만큼 빛을 향해 열려 있다. 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다리와 목이 결박돼 있어서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정면만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 그들의 뒷편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고 장작불 앞에서 사람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다고 해보자.

동굴 속 죄수들은 벽에 생기는 그림자만 볼 수 있으며 그것이 곧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인형극 하는 사람들과 불, 바깥 세상의 존재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들이 아는 세계는 곧 '그림자뿐'이다.

플라톤은 여기 죄수 중 하나가 동굴을 탈출하여 '태양', '나무', '풀' 을 보게 됐을 때, 그전까지 현실로 알건 세계에 대하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 그리고 다시 동굴로 들어가 갇혀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지 물었다.

만약 실제 세계를 본 죄수가 동굴 속 죄수에게 다른 현실을 말해 준다손 쳐도 그들이 믿을리 만무하다.

여기서 얻게 되는 포인트는 이것이다.

'우리도 동굴속 죄수처럼 얼마든 나만의 현실에 갇혀 있을 수 있다'

이 대목을 보면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 세계관 속에 인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가상세계라는 인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객관적 진실'을 담고 있느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정말 그림자가 아닌 실제 '현실'이 맞는지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했던 나를 둘러 싸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려보자,

자신이 읽는 뉴스, 대화, SNS, 속한 집단, 태어난 나라, 자란 가정 환경.

태어난 국가와 장소에 따라 우리는 결코 다른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 지극히 주관적 세상만을 경험한다.

인구 1억 2천만의 '에티오피아'는 대한민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많으며 고로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생활 수준을 볼 때 결코 '대한민국'이 표준이 될 수는 없다.

'에티오피아'에서 도시 거주 중산층 시민의 월 소득은 10~20만원 수준으로 직장인 한달 커피값 수준이다.

이들은 전기가 없는 지역이 다수이고, 상하수도가 없는 지역도 다수다. 다만 우리의 경우, 주변 지인에 비해 소득이나 자산 차이를 비교하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거나 때로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태어난 곳에 따라 '뉴스'와 , '대화' 내용은 달라진다. 또한 그 영향은 SNS에서 어떤 컨턴츠를 선택하느냐에 영향을 끼치고 '알고리즘'의 필터버블에 따라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에 대한 '확증 편향'적 사고를 가지게 된다.

즉, 우리가 믿는 세계만이 유일한 세계라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연 그런 세계일까.


가만히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떤 이들의 세계에는 '예술', 어떤 이들의 세계에는 '돈', '어떤 이들의 세계에는 '관계'가 그 세계의 중심이다.

모두가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 즉, 그림자만 바라 볼 뿐이고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결코 공감하지 못할지 모른다.

아이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살면서 '쌍둥이'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본 기억이 없다. 학교 다닐 때, 쌍둥이가 있었는지도 어쨌는지도 모른다. 다만 쌍둥이가 태어나고보니, 집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쌍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간판'이 보였다.

이런 것을 '빈도착각' 혹은 바더 마인호프 현상이라고 한다.

이는 '빨간차 이론'이라고도 부르는데, 어떤 대상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대상이 이전보다 훨씬 자주 눈에 띄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이다.

가령 특정 브랜드의 자동차를 샀다고 쳐보자. 그러면 이상하게 그 다음날부터 해당 브랜드의 차가 도로에서 자주 목격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점차 확증편향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지난 8월, 근력 운동을 시작하고 추천 영상과 피드에서 몇번을 멈춰 읽거나 영상을 시청한 횟수가 많아졌는지, 현재 인스타그램 추천 피드에 '책'과 '운동' 두가지 피드만 계속해서 나온다.

8월 이전, 내 피드에서 전혀 올라오지 않던 '운동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꾸준하게 올라오며 나의 삶이 조금더 확장된 느낌이다.

우리의 눈은 포식자의 그것을 닮아 전방 주시에 유리하다. 다시말해 우리는 고개를 돌리면 우리가 등지고 있는 세상을 볼 수 있을 지언정, 다시 반대쪽 세계를 등져야 하는 필연을 가지고 있다.

어떤 세계를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반대 세계가 가려진다. 즉 우리의 세계는 언제나 완전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현실'이라는 객관적 세계 속에 '나의 현실'이라는 주관적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시야각을 넓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엄밀하게 말하면 '이성'이다. 칸트는 이처럼 우리의 세계를 결정짓는 '이성'이라는 것에 오류가 있는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순수이성비판'을 쓰기도 했다.

그 이성을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 이성, 혹은 철학적 사고'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이성은 도구이고, 철학은 그 도구를 의심하고 점검하는 행위다. 다시말해서 '철학'이란 꽤 먼 우리와 다른 영역의 학문인듯 보이지만 삶에 매우 밀접한 것이며 그것을 갈고 닭을 수 있도록 괜찮은 철학서 한권씩 보는 것도 좋은 습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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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 인생 절반을 지나며 깨달은 인생 문장 65
오평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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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기 형편이 없어 '악평'을 달게 되고, 어떤 책은 감명이 깊어 '추천' 꼬리를 다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면 '당췌 무슨 생각으로 그런 평'을 했는지 모르겠다.

고로 책을 평가하는 일은 시간과 시기를 기만한 일이지 않은가 싶다. 모든 것은 그 시기가 있고 그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시기에 읽었느냐에 따라 '해석'은 천지로 달라진다.

'책은 죽어있는 시계'와 같아서 언제고 한 번은 정확하게 맞는다. 고로 '책'의 완성은 '작가'에 있지 않고, '독자'에 있으며 '독자'의 감정 상태와 시기, 그 밖에 잠시 스치고 지났던 모든 기억과 나이가 복합적으로 적용된다.

'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나름 책을 좋아하다보니 그런 커넥션이 생긴다. 이게 꽤 기분이 괜찮은 편인데 서로 안부를 물은 적은 없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오평선 작가님'과는 맞팔로우 관계다. 그러다보니 심심찮게 활동 내역을 보게 된다.

이처럼 직접적이지 않은 커넥션이지만 은근히 '혼자만의 유대감'을 가진다. 며칠 전에는 아이와 느낌좋은카페(?)를 방문했는데 '오평선 작가님'의 책이 놓여져 있었다.

작가 님의 책은 대체로 그런 분위기에 함께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화초 옆에 놓여 있는 책을 들고 '아빠, 아시는 분이네?'했다. 그러고 다시 곰곰하게 생각해보니, 일면식도 없고 간단한 인사도 나눠보지 못했다.

이야기가 한참 돌았는데, 어쨌건 그런 작가 님들의 책은 일단 먼저 눈이 간다. 오랫만에 '밀리의서재'의 '베스트 순위'에 익숙한 이름이 있길래, 내려 읽었다.

어쩐지 참 술술하고 읽힌다.

기교없이 담백하게 툭툭 내뱉는 문장마다 공감이 갔다. 몇해 전, 라디오스타에서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라는 노래에 대해 가수 '윤종신' 님이 평가했던 내용이 기억에 난다.

서른이 아니라 '마흔 즈음'에 들으면 훨씬 더 공감이 간단다. 그게 불현듯 기억이 난 시기는 말 그대로 '내일 모레' 마흔이 되기 때문일까.

20대에서 30대로 넘어 갈 때,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30에서 40으로 넘어 갈 때는 뭔가 묘하다.

서른이 될 때만하더라도 '성숙'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이었지만, 마흔으로 넘어가니 이제 꺾고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물론 훨씬 나이가 많은 분들이 보기에 우습겠지만 80이라는 평균 수명에서 꺾고 넘어가는 기분이라 그런 듯 하다.

마흔이면 사회적으로 '그런 사람'이 되는 편이다.

20대면 아직 뭘하는 사람인지 정해지지 않은 시기고, 서른이면 한창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편이겠지만 '마흔'이면 대체로 그사람의 정체성은 '그런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씁쓸함 때문에 이 글이 공감이 됐을까... 한참을 읽다가 절반쯤 읽고 난 뒤에 아이를 불렀다.

아이들은 아빠의 책을 대신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목감기가 심하게 와서 눈이 너무 피로하다. 고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그 시간을 제법 좋아한다.

소파에 앉아 아이의 무릎에 담요를 깔아주고 아이 하나를 '포옥' 안고, 책읽어주는 아이의 무릎에 목을 베고 누워 눈을 감는다.

'참 낙원이 따로 없다'

읽어주는 아이, 듣는 아이, 그리고 아빠.

아이에게만 좋은 시간은 분명 아니다. 아이가 오평선 작가 님의 책 절반을 번갈아 가며 읽어 주었다. 아이에게도 분명 좋은 글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최근에 이상하게 '오평선 작가님'의 책이 눈에 띈다. 또 일상을 살다가 익숙한 작가 님의 이름이 있으면 이참에 인사나 한 번씩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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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필로소피 Q&A - 오늘의 지혜를 위한 철학 문답 365
라이언 홀리데이.스티븐 핸슬먼 지음, 이경희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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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한살 더 성숙해지는 스스로에게, 상대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

2026년, 한국나이로 40줄을 압두고 있다. 한번도 실감을 해보지 못하다가 새해가 며칠 남은 지금에서야 조금 실감난다. 우연히 그리고 다행히 30대를 마무리 짓는 2025년 끝물에 괜찮은 습관을 갖게 됐다. 먹는 것, 자는 것, 운동하는 것을 기록하는 습관이다. 매일 꾸준하게 기록한다.

무엇을 먹고 있는지, 얼마나 잤는지, 어떤 운동을 했는지,

이런 것들을 기록하고 보니, 기록없이 살던 이전 생이 '선사시대'의 모습같다. 애당초 '선시시대' 역시 '기록 없는 시대'라는 의미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기록을 하고나니, 수면 부족 혹은 수면불규칙이 보이고, 식단에 영양 불균형도 보인다. 물론 얼마나 운동량이 적은지도 알 수 있었다.

고로 2026년 40대의 '나'는, 2025년 30대의 '나'에게 꽤 괜찮은 선물을 넘겨 받고 시작하는 셈이다.

이것이 기록이 주는 '힘'이다. 몇번 쓰다가 놔두길 반복하던 일기도 시간이 지나서 발견하면 참 소중한 기록이요. 사진을 매일 찍지 못하고, 영상 녹화도 매일 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쩌다 한번하는 그 기록마저 매우 소중한 인생의 한 컷 이 된다.


'라이언 홀리데이' 의 '데일리 필로소피'는 '그 기록을 돕는다.

'라이온 홀리데이는 '스토아 철학 해설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음'을 미리 정리해두고 매일 묻는다.

살다보면 '물음'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아홉살 아이가 묻기를 '달이 자꾸 저를 따라와요.'했다. 왜 그런지 물었는데 알고 있는 수준에서 충분히 대답하진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사실 '질문'이 사라졌기에 답이 필요 없는 경우를 경험한다.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은 무엇이 있나요?'

'나는 특히 어떤 욕구 때문에 자제력을 잃게 되나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되나요?'

이런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 본 적 있나. 혹은 답을 찾으려 스스로를 돌아봤던 적은? 아마 많지는 않다. 아무도 묻지 않았기에 궁금해보지 않았던 것들...

어떤 질문은 스스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답'보다 '질문'이 더 귀중하다. GPT, 지식인에게서도 값싼 답은 언제든 찾아 낼 수 있다.


년도는 상관 없다. 2026년 1월 1일에 첫 답을 쓰고, 책상 어딘가에서 방치하다가 2030년 언제쯤 1월 2일 답을 써도 괜찮다. 어쨌건 언제든 그 고민을 살면서 해보는 게 중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데일리 필로소피'는 년도는 상관없이 월과 일만 기록되어 있다. 이런 류의 Q&Q 책은 몇권 제가 가지고 있다.

이런 책의 경우, 앞서 쓴 글과 뒷에 쓴 글이 3~4년 정도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건 인생을 통틀어 한 권에 철학을 정리하는 셈이니, 굳이 1년 동안 꾸준하게 해야한다는 강박도 필요는 없다.

5년 전,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한 페이지에 20대와 30대의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재미난 경험도 하게 된다.

대략 3년 전에 혼자 주저리주저리 했던 유튜브 영상이 하나 있다. 그 영상에서 스스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간혹 '유튜브'에서 '알람'이 떠서 보면, 어떤 사람들이 영상에 댓글을 달곤 했다.

재미있는 경험이다. 여기서 2025년을 살고 있는데, 2023년의 내가 불특정 다수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상이든 글이든, 기록한다는 것은 참 놀라운 경험이다. 선사시대를 지나 드디어 '역사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니...

주변에 혹은 스스로에게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책 한권'이 아니라 수년 뒤에 삶의 역사를 선물하는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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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기분으로 오늘을 살지 마라 -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신경 끄기의 기술
와다 히데키 지음, 전선영 옮김 / 달콤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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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 요법'이란 일본의 정신과 의사, '모리타 마사타케'가 1910년대에 확립한 심리 치료 기법이다. 불안과 강박, 우울을 없애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행동을 바로 잡는데 초점을 둔다.

가령 이렇다.

화가난다 -> 내버려둔다 -> 차분해진다

속상하다 -> 내버려둔다 -> 차분해진다

밉다 -> 내버려둔다 -> 차분해진다

이 치료요법의 핵심 개념은 '감정'이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불안아니 초조, 강박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 이런 감정들은 수십만 년간 인간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생존하여 후대에 넘겨 주었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해 살아 남은 감정이다.

즉, 문제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을 제거하려는 집착에 있다.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은 그대로 두고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단순히 마음챙김과 조금 다른 것은 이 뒤에 '행위'를 중심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타 요법에서는 기분이 좋아진 뒤에 행동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행동을 먼저 하면 기분은 따라오도록 두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불안이 가라앉으면 해야지'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상태로 하면 망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보통 행동을 중단한다. 다만 모리타 요법식의 대응은 이렇다.

'그냥 불안한 채로 한다.'

'잘하든 못하든, 정해진 행동을 수행한다.'

예를들면 이렇다. 만약 우울한 감정이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면 청소를 해야지'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감정대로 두고, 일단 쓰레기 3개만 버리는 최소 단위의 행동을 강제로 실행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감정'은 '날씨'와 비슷하다. 우리는 비가 내린다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단은 최소한 찜찜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고 일을 처리한다. 그러다보면 날씨는 어느 순간 갠다.

날씨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날씨'를 포함한 상태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로 감정은 평가하지 않는다. 감정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도 하지 않는다. 감정과 상관없이 행위는 지속해야 한다.

혹여 누군가가 화를 내고 있다면 '화내지 마세요!'라고 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화를 '내거나 말거나' 행동을 지속하는 것이 옳다. 내리는 비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없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면 되고, 내리는 비를 탓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내리는 비'에 큰소리로 대응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아 비가 내리는 구나'하고 그대로 두면 그만이다.

나를 다스리는 방법으로는 그렇다. 또한 태도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는 또한 누군가의 날씨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눈군가가 큰소리로 화를 내고 있다면 나는 '비가 내리는 상황'에 있는 바와 같다. 여기에 어둡고 꿉꿉한 그 감정의 상황에 처하면 이론적으로는 간단하지면 실제로 대처하기에는 굉장히 난감해진다.


이제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날씨다.'

즉 내가 짓는 표정, 말투, 숨의 형태가 상대에게는 '임의적으로 주어지는 날씨'와 같을지 모른다. 그 말인 즉슨, 남들도 나를 참아주고 있다는 인식을 언제나 하고 있어야 한다.

웃지 않으면 굉장히 기분 안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본의와 다르게 언제나 타인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인지를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나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 좋다.

'와다 히데키'의 '어제의 기분으로 오늘을 살지마라'에는 '감정'을 다루는 좋은 글이 적혀 있다. 어떻게 상대를 대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대해야 하는가. 또한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기분'과 '감정'이라는 것은 '날씨'와 같아서, 좋은 날이 있으면 안 좋은 날이 있고, 안좋은 날이 있으면 좋은 날이 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닌지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몫은 그 날씨 아래에서 어떻게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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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 우주 불평등 시대를 항해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긴박한 질문들
최은정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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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지구 궤도로 발사된 인공위성의 숫자가 대략 2만 2000개 정도다. 개중 미국이 61%, 러시아가 17%, 유럽이 7%, 중국이 6%, 일본이 1.2%, 한국이 0.2%다. 거의 대부분의 인공위성은 10개국 이하의 선진국에서 발사된 위성들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모두의 것'이라는 담론이 과연 현실적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미국이라고 이미 말은 했지만 미국의 위성 중에는 이미 80%가 민간에서 발사한 위성이다. 그 중에서도 스페이스X가 보유한 위성의 수가 6000기 이상으로 이미 전 세계 인공위성 중 대략 30%를 차지하고 있다.

따지고보면 불평등은 이미 시작됐다. 단순히 생각해 봤을 때, '민간기업'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막대한 자본을 투자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대부분 사적 자산에 속해진다.

우주는 모두가 개발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폭력적입니다. 쉽게 말해서, '사자와 새끼 강아지와 함께 있는 우리 속에서 주어지는 먹이는 모두 공공의 것입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과연 그것은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일단 21세기가 되면서 '기술'의 격차는 국가별로 압도적으로 커진다. 우리는 심심찮게 우주 과학에 대한 뉴스나 '나로호 발사'와 같은 사건을 보게 된다. 다만 추진체에 '태극기'나 '일장기', '성조기', '오성기'가 붙어 있는 모습에는 크게 거부감이 없지만 '네팔'이나,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가가 붙어 있는 모습은 굉장히 생소할 것이다. 우리 인식에서도 이미 '격차'를 인정하고 '상식'이라고 받아들이는 모습이기에 그렇다.


위성을 쏠 수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격차가 천지차이로 벌어진다. 위성을 소유한 기업과 그 서비스를 구매해야만 하는 이용자의 격차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초기 '스마트폰 시장'이 열렸을 때, 플랫폼 산업을 끝내 따라잡지 못해서 그렇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극심하게 만들었다. 현재 유럽은 미국의 플랫폼에서 소비자로만 역할을 한다.

운영체제나, 앱 생태계, 데이터 흐름도 스스로 설계하지 못한 채, 규제와 윤리로만 시장에 개입한다. 뒤쳐진 쪽에서 거의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전략이다.

기술적으로 뒤쳐지게 되면 기본적으로 외화반출과 독점시장의 횡포를 막기 위해, 시장 내에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기본적으로 '규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20세기 초에 조선이 선택한 방식과 비슷하다. 이는 극단적인 쇄국정책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일시적인 조치일 수는 있으나 점차 외부 세계와 단절되고 고립되는 결과를 만든다.

우주에서의 격차도 마찬가지다. 우주에 대한 생태계를 설계하고 소유하는 막강한 기업들은 더 많은 데이터를 갖게 될 것이고 그 데이터와 기술을 가지고 세계의 다양한 소비국의 문을 두드리러 다닐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특정 국가나 계약자에게만 서비스가 독점 제공되는 '식민지화' 문제도 가진다.

우주는 실제로 데이터의 보고다. 정지궤도위성의 경우에는 수십년 간 지구의 기후를 감시하고 예측 모델을 훈련했다. 저궤도위성의 경우에는 하루에도 수천번씩 전세계 주요 도시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촬영한다. 위성항법시스템은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위치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는 국가를 초월한다.

당연히 이때 수집된 데이트는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군사정찰위성은 당연히 비공개이고 상업용 위성의 경우에도 일부에게만 판매된다. 시장을 독점하면 그것은 언제나 무기화 될 수 있따.


예전에 스타링크 위성망이 특정 지정된 국가에만 인터넷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제공하는 일은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볼 수 있었다.

현재 스타링크는 500~600km대 핵심 저궤도에서 신호를 쏘고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주파수를 등록하고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쏜 쪽이 매우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후발 기업일 수록 '간섭 회피'를 위한 설계가 필요하고 출력 제한을 위한 기술과 복잡한 협상을 추가적으로 해야 한다. 위성은 언제든 올릴 수 있겠으나 후발주자일 수록 운영 난이도와 비용이 급상승한다.

다시말해서 이미 기술력이 좋은 쪽에서 선점을 했기 때문에 후발주자들은 더 좋은 기술력을 가지고 우주개발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애당초 모순이 발생한다. 다시말해서 우주 개발은 최대한 먼저 보낼수록 저비용, 저난이도의 게임이 되는 셈이다.

발사체의 핵심인 엔진과 터보펌프 기술, 초고온 합금 재료와 제조 기술은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 2025년 기준 독립적으로 발사체를 보유한 국가는 11개의 국가정도다.

고로 우주는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인가,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전 세계 국가의 약 95%는 독자적으로 위성을 쏴 올릴 능력이 없다. 이는 남극과도 비슷하다. 남극이 법적으로 소유국이 없는 대륙이지만 그것은 말뿐이다.

남극 연구자 세 명 중 한 사람은 미국인이다. 겨울이 되면 상주인구 1000명중 절반이 미국인이 된다. 연중 가동되는 대형 기지도 미국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연중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활주로,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대형 수송기, 쇄빙선까지 한 나라가 모두 갖춘 경우는 미국 말고는 없다.

고로 만약에 프랑스 연구자가 남극에서 실험을 하려면 미국 비행기를 타고, 미국 기지를 거치고 미국의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다양한 데이터는 '다른 국가'의 정책이나 보험 도시 계획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군사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주는 모두의 것이라는 이상에 속아 공정함을 기대하기 보다는, 가능한 빨리 진입하여 선점하지 않으면 영구적 종속 비용을 지불하는 위치에 남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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