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식사가 잘못됐습니다
이토 미쓰코 지음, 이현욱 옮김, 김아람 감수 / 더난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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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부모 먼저'라고 하는 생각이다. 육아를 하다보면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이 본의아니게 생겨난다. 그 바람대로 아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어린 시절을 상기해보면 알 수 있다.

 어디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가 부모의 바람대로 크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부모'의 바람이 대체로 '불가능'에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 불가능'을 말한다.

 눈이 내린다는 것은 분명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겠지만 두바이나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사람이 '눈이 내리는 것'을 보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 실제로 두바이 시내에서는 기록된 자연 강설량이 0이다. 즉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평생 단 한번의 눈도 본 적 없는 경우가 많다.


 '환경'이란 그런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말처럼 인간의 경험이 '지정학적 위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 개개인의 경험 또한 '가정환경'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이에게 '환경'은 '부모'가 된다. 즉 눈이 내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떤 지역에 있으면 '눈'이라는 것은 존재 여부를 가려 낼 수 조차 없는 개념이 되어 버린다.


 프랑스에서는 '나방'이 없다. 나방이 없는 이유는 프랑스어에서 '나비'와 '나방'을 따로 구분하는 명사가 없기 때문이다. 빠삐용은 날개가 부드럽게 퍼지는 곤충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낮에 활동하면 '낮의 나비', 밤에 활동하면 '밤의 나비'라고 구분하여 '나방'을 '밤의 나비'라고 부른다.


 정의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것들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일주일 용돈은 500원이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 때, 용돈이 1000원으로 인상됐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를 올라갔을 때, 친구들이 피씨방을 가는 것을 보았다. 농촌지역에서 살았던터라 당시 '피씨방'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생소했다. 친구들이 한창 다니기에, 거기는 금액이 얼마가 되느냐고 묻자, 한시간에 1000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 그 이야기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일주일에 1000원을 받았을 때, 문방구에서 간식과 딱지, 오락 한번 정도를 해도 충분히 돈이 있었다. 문방구에서 집어드는 간식은 대체로 50원에서 200원 정도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0원이라니...


 돌이켜 생각해보건데, 어린시절에는 '가정'의 환경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후 중학교를 가면서 '친구'들과 교류를 시작하며 주변의 상황에 점차 눈을 뜨게 된다. 환경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건 어린 시절에 가졌던 기본적인 삶의 패턴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워낙 내가 단 것을 좋아하다 보니, 아이의 식사가 많이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는 달달한 시리얼을 먹고 저녁에는 배달음식을 먹는 식습관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아이는 유독 '초콜렛'과 '사탕'을 좋아하는데 그 모습에서 '나'를 보게 됐다. 물론 좋은 점이란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겠다. 다만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를 볼 수 있게 됐다.


 몇 달 전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단순히 운동이 아니라 몇시에 취침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먹는지도 매일 꾸준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냥 생각없이 스쳐 지나온 많은 시간이 비수가 되어 꽂히는 듯하다. 정제된 음식과 단백질 식품을 찾으며 나를 관리하다보니 아이의 식단에서도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맛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차 나의 식단에 변화가 생겼다. 부모가 먹는 식단이 변화하자 역시 아이의 식단도 바뀔 수 밖에 없다. 식습관은 절대적으로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그 책임을 매번 통감하며 최근 '식단'과 '운동'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어떤 음식을 먹으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가장 먼저 '라면'과 같은 음식을 끊었더니 피부에 올라오던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함께 식사를 해오던 '아이'도 '내'가 가졌던 염증 만큼이나 나쁜 독소가 쌓여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든다. 철저하게 지킬 수는 없겠으나, 식단에 대한 의식을 놓고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확신이 생긴다. 


 최근 아이가 '비염'이 심해지면서 아침에 코피를 쏟는 경우가 많아졌다. 약국에 갔더니 '지르텍' 하나를 먹으라고 알려 주었다. 약사 선생님 말로는 큰 부작용이 있거나 내성이 생기거나 하진 않는다는데, 그래도 양약이 어린 아이 입으로 삼켜지는 것에 약간의 불안감이 생겼다.

 식사와 수면을 잘 챙기고, 피부, 건강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굉장히 긍정적이고 유해진 기분이 든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건강에 대한 방향성이 확실히 잡혔다.


 병은 생기기 전에 관리해야 한다. 아이의 비염을 보고 먹는 것, 자는 것, 기타 생활 하는 것을 모두 점검하며 다양한 반성을 하게 된다.


 해당 책은 챕터로 나눠져 있어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내용이 간결하고 쉬워 집에 두고서 간간히 꺼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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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미워할 시간에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방법
윤서진 지음 / 스몰빅라이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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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육아'에 철학이 하나 있다. 바로 '희생하지 말자'다. '육아'를 넘어서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결코 '희생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 마음을 이렇게 먹는 이유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댓가 없는 희생'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희생'이 있어서는 안된다. 희생이란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며 '상대'에게 '득'을 주는 행위다. '상대'에게 '득'을 주는 것은 '옳은 일'이겠으나 '스스로'에게 '해'를 주는 것은 결코 '기본값'이 될 수 없다. 조금더 장기적인 시선에서 그것은 '유지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일에는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이어야하고 꾸준해야 한다. '희생'은 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하며 꾸준한 사랑'의 속성을 지켜내지 못한다.

 투자관련 책 중에 '저스트 킵 바잉'이라는 책이 있다. 인덱스 펀드에 장기투자를 권하는 책이다. 급등이나 천지개벽할 변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느리지만 꾸준하게 일어나는 '복리'의 중요성을 설명한 책이다.

 '금융투자'뿐만 아니라 '사랑' 혹은 '관계'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관계의 깊음은 시간을 따라 깊어진다. 고로 '시간'이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속성이고 그것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굉장히 이기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가장 완전해야 한다. 상대에게 지나치게 몰입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몰입해야 하며 '희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잘 챙겨야 한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누군가의 잔을 채우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잔부터 채우는 것이 먼저다. 스스로의 잔이 넘쳐, 흘러 넘치는 것으로 상대를 채우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해야하고, 기부를 많이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경제적 능력을 길러내야 한다. 모든 이치가 그렇다. 가르치는 행위만 몰입되어 스스로의 공부를 멀리하거나 기부를 하기위해 스스로 빈곤해지는 것만큼 어리석고 '지속불가능한 사랑'은 없다. 무엇이든 안으로 가득하고 밖으로 흘러넘쳐 풍만함이 충분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윤서진 작가'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타인의 변화와 성장으 돕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길러내고 돕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전반적으로 살펴 볼 때, 충분하게 자신을 성시킨다.


 예전 한 작가가 했던 말이 있다. 


'머리가 비워지면 많이 읽고, 생각이 많아지면 많이 쓴다'


 비워진 머리로는 많은 글을 쓸 수 없다. 많은 글을 읽고 많은 사색을 하여 스스로의 언어로 잘근 잘근 감정과 지식을 소화시킨 후에야 그것을 글로써 보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컨데 모든 우주의 매커니즘은 '인풋', '소화', '아웃풋'의 형태를 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필연적으로 어떤 동물이나 식물의 '배설'을 '섭취'할 수 밖에 없으며 우리가 '배설'한 어떤 것도 누군가의 '양분'이 되어 '섭취'된다. 이런 돌고 도는 우주의 이치는 '도가 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에르난 디아스' 작가의 '먼곳에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스웨덴 농장 감자에 떨어진 빗방울도 한 때는 호랑이 방광에 있었다.'

모든 것은 그렇게 스치고 돌고 도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즉 어떤 언어, 감정, 행동도 사실 외부의 무언가의 영향을 받은 산물이고, 그것이 나에게 '인풋'되면 잘 소화되어 다음 사람들에게 '배설'의 형태로 '전이'되는 것이다.


 즉 나는 관계에 있어서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 좋은 양분을 상대에게 잘 넘기기 위해서, '나'라는 필터는 깨끗하고 맑아야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사람의 유전자는 워낙 이기적이라 '댓가'를 바란다.

 '주'와 '종'의 관계로 얽히며 '종속'적인 관계가 된다. 내가 투입한 시간과 사랑의 값으로 상대를 소유할 수 있다고 여기며 여기에 적절한 댓가가 없다면 그 댓가의 기대값을 치루지 못한 상대를 미워하게 된다.


 대부분의 폭력은 사실 '가족', '연인' 등 아는 사람사이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모르는 타인'보다 가까울수록 '미움'이라는 감정이 더 생길 수 있는 것은 비슷한 원리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모든 관계는 '상대'가 아니라 '상호'가 있을 때 발생한다. 즉 어떤 '상대'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를 더 생각하고 집중할 때 명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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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 더 이상 불안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키렌 슈나크 지음, 김진주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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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렌 슈나크 박사는 임상심리학자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다양한 인물들의 정신건강을 관리하면서 60만 이상의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기도 하다. 키렌 슈나크 박사의 '조언' 역시 결과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상식으로 머물던 정보에 다양한 논리와 근거를 둠으로써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설득력을 부여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키렌 슈나트 박사가 다시 한번 더 강조했던 정신 건강을 위한 기본 생활 수칙은 이렇다. 첫째, 수면. 수면은 역시 모두에게 중요하다. '삼당사락', '사당오락' 하며 목표와 성공을 위해 '잠' 줄이는 것을 '절대선'으로 여겨지는 우리 현대 사회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진다. 당연하겠지만 잠들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면 애초에 충전을 방에서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도 몹시 좋다. 떠오르는 상념을 '암산'으로 해결하기 보다 '일기장'이나 '노트'에 적어두고 다음날 해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구구단이야, 언제든 암산으로 답을 내어 놓을 수 있겠지만 자릿수가 두자리만 넘어가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이와 펜'이 필요하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그 복잡한 문제는 어차피 암산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일터, 애초에 종이와 노트에 적어두고 최적의 상태일 때 해결하는 것이 나은 듯 하다. 둘째는 식단. 인간이라고 우주에 통용되는 '물리법칙'이 피해 갈리는 없다. 물과 소금을 더하면 소금물이되고, 오른쪽으로 던진 공이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당연한 법칙을 인간만 예외로 두진 않는다. 우리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은 입으로 들어와 화학분해되고 다시 신체 곳곳을 구성하게 된다. 고로 무엇을 먹었는지가 무엇이 되는지는 어찌보면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처럼 당연한 '물리법칙'이자 '인과관계'다. 셋째, 운동. 쉽게 말하자면 '뇌'는 운동기관이다. 뇌는 '운동'을 위해 진화된 기관이며 특이 인간의 뇌가 비대해진 이유중 하나는 인간의 '지구력'과 관련되어 있다.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 중 가장 지구력이 강한 생명은 '인간'이다. 이 밖에 운동은 몸의 긴장을 풀게하고 수면의 질을 높이며 주의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넷째, 여가 여가 활동은 불안 장애를 겪을 때 증가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감소시킨다. 반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를 증가시킨다. 크게 대단할 것 없이 그저 일주일에 한번 스스로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다섯째, 관계 인간관계는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불안 문제를 겪는 사람들은 자신을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고립은 불안을 악화시킨다. 불안은 다시 교류를 줄어들게 한다. 즉 이러한 악순환으로 인해 점차 혼자가 되고 혼자가 되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게 된다. 여기 다섯가지는 딱히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무언가 '기가막힌 새로운 방법'을 이야기하기에 '정도'는 본래 '클래식'한 법이다. 개인적으로 뉴스를 보지 않은지 '몇년'은 지났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끊는다'라는 목적이 아니라 뉴스가 자극하는 불안이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그렇다. 행복과 불안은 '사실' 빈도와 관련있다. 만약 커다란 독사가 우글거리는 방에 가둬 놓고 '불안'을 없애는 요령을 열심히 실천한다면 과연 그것이 성공하겠는가. 역시 어렵다. 주변에 나를 불안으로 이끌어가는 요소를 줄이고 스스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배치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끊임없이 불안하고 있다면 내가 치우지 못한 불안의 요소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공포영화를 볼 때, 손에 땀을 쥐게 하다가 '그 공포감'을 없애는 방법을 찾는다면 당연히 '그 화면'을 끄는 방법이 최고다. 공포스러운 영상과 소리를 재생 시켜놓고 무섭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더 간단하고 쉬운 길을 벗어나는 길이다. 사실 아무리 위험하고 긴급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상태에 쳐해 있다고 하더라도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방에 들어가 문을닫고 눈을 감는다면 스스로를 해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세계에서 완전하게 차단된다. 그 빈공간에 다시금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불안을 끄집어 오는 능동적 수고스러움만 없앤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불안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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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가족 - 각자의 알고리즘에 갇힌 가족을 다시 연결하는 법
이은경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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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은 채, 탁구공을 ‘툭’ 던졌더니, 멀리 있는 컵 속으로 ‘쏙’ 들어간다. 아무렇게 던진 농구공이 깔끔하게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컨텐츠 영상이다. 이를 ‘트릭샷’이라고 부른단다. 수천 번 도전 중 성공 장면만 골라 편집하는 것이다. 영상 속 도전자는 너무 쉽게 도전을 해낸다.

현실에서도 성공이 그리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부, 사업, 다이어트... 그러나 현실은 실패와 지루함으로 가득차 있다. 트리샷 뒤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다. 컵에 들어가지 못한 탁구공을 쭈구려앉아 줍고, 빗나간 농구공을 몇 번이나 허리굽혀 가지고 와야한다. ‘30초’짜리 트릭샷 하나를 찍기 위해 도전자는 수 시간, 수 일간 도전을 반복한다.


완성으로 향하는 최적의 재료는 ‘시간’이다. 편집으로 시간을 걷어낸 결과물이 매력적인 이유는 시간의 특성이 지루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밴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인생은 시간으로 이뤄져 있다. 그것을 걷어내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싶다. 식사를 준비하는 일, 짧은 대화를 주고 받는 일처럼 일상 대부분은 지루한 빈공간이다. 그것을 견뎌내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9살짜리 아이를 기르는 입장에서 ‘학습’은 매번 다른 의미다. 단순 교과과목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식사예절, 대화매너,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 그런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고깃집에서는 고기 냄새가 배고 카페에서는 커피 냄새가 밴다. 무언가에 시간을 함께 하면 그것은 몸에 밴다. ‘배울 학’의 ‘배우다’는 ‘냄새가 배다’의 ‘배다’와 어원을 함께한다. 김치가 익거나 과일이 익는 것처럼 ‘익히다’ 또한 ‘익다’와 어원을 함께한다. 몸에 배고 익히는 것이 학습이다. 배고 익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시간’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


‘이은경 작가’의 ‘도파민 가족’은 시간이라는 재료를 걷어낸 결과가 어떻게 우리를 중독으로 이끄는지를 설명한다. 아이를 기르는 아빠로서 ‘이은경 작가’의 글과 영상은 언제나 도움을 주는 길잡이가 되준다. 오늘날 어느 가족도 피할 수 없는 도파민의 유혹 앞에서, 이 책은 어떻게 우리가 ‘시간’이라는 삶의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지 말한다. 지루함을 견디는 힘, 실패를 인정하는 힘, 그 속에서 진짜 배움과 성장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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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의 우주가 닿을 수 있을까? (개정판)
서윤 / 더스트스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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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가 되어 깨어났다.

벌레가 되어 깨달았다. 정말 괴물이 된 것은 그가 아니라 그를 외면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사람은 누구나 한순간에 '타자'가 된다. 타인을 완전한 타인으로 분류하고 서로의 우주가 점차 닫힌다.

서윤 작가의 '나의 우주가 닿을 수 있을까'는 잠자처럼 어느날 갑자기 완전한 타인으로 깨어나는 경험을 통해 소외와 낯섦을 이야기 한다.

언젠가 비슷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바닥에 놓여진 숫자 9를 보며 '구'라고 말한다.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그 숫자를 바라보며 '육'이라고 말한다.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완전한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타인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

나에게 보이는 '숫자 구'는 변하지 않는 진실이고 상대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믿는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는 우리네 사고 방식을 비판하는 짧은 그림이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 동쪽을 바라보는 사람과 서쪽을 바라보는 사람이 같은 세상을 본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고 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가 무너질세라. 고개를 고정하고 꿈쩍하지 않는다. 그렇게 두 개로 나눠진 세계는 좀처럼 연결될 생각이 없다.

잠자와 같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섦으로 태어난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의 온도를 체감한다. 그 세계가 나를 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진짜 자신'을 인식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잠자'는 벌레가 되어버린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벌레가 된 자신의 몸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며 문을 닫아버린 가족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수필은 '먼 약국 이야기'로 먼저 시작한다.

'내가 그때 용기 있는 말과 행동을 했다면 상대방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어린 시절 작은 에피소드 하나를 깨너 놓는다.

작가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엄마의 약국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 동네에는 입구에서 가까운 약국과 먼 약국이 있었는데, 가까운 약국의 주인은 불친절한 아저씨였고 먼 약국의 주인은 친절 했단다.

어느 날 먼 약국의 젊은 주인이 '왜 가까운 곳을 두고 먼 곳까지 왔는지 묻는 질문'에 작가는 '친절해서요'라고 답하지 못했다. 약국 주인은 '구순구개열' 즉 언청이었다. 어쩌면 어린 초등학생이 멀리까지 온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했던 주인은 어쩌면 자신이 가진 장애를 어렴풋 떠올렸을 지 모르겠다.

그때, '친절해서요'라고 답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그런 경험 꽤 잦은 편이다. '뭐라고 꼭 말해줘야지'하고 삼키고 몇 번을 시뮬레이션해보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히자 못하는 경험 말이다.

애석하게도 몇번의 시뮬레이션은 스스로를 착각하게 만든다. 어쩌먼 그러한 말을 꼭 한 것처럼.

그리고 자신과 상대의 관계에 대한 생각치 못한 결과를 맞이 했을 때, 서로가 완전히 다른 우주를 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대부분 사람은 '착각'과 '망각'을 통해 스스로의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타인'의 잘못에는 '상처'로 받아들여 오래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가끔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릴 때가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 싶은 부모님의 모습이 그때는 상처로 다가 온 적이 있다.

분명 나의 기억 속에서는 무서운 어머니께서 혼내시는 기억이 있는데, 그 앞의 상황에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이런 기억이 차곡 차곡 쌓이고 왜곡되면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멀어지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잘해준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는데, 못해준 기억만 남는 그런 연애, 관계, 우정도 마찬가지다. 뒤늦게 후회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겠다.

작가의 이야기에 '하지마!'라는 외침에 반하는 '해도돼!'라는 외침에 관한 글도 있다. 생각해보면 '도대체 왜 그러니!'하고 말을 뱉어놓고 정말 왜 그랬는지를 떠올리는 여유가 스스로에게 없던 적도 있다.

하지마!,의 반대인 '해도돼!'는 그저 반대의 말이지만 그 말을 강하게 뱉는 것은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사람은 각자 자신이 읽고 싶은대로, 보고 싶은대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 글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항상 아이가 잠들고나면 후회할 만한 일을 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여러 관계에서 짓고 있는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온 인류가 함께 고민해도 역사적으로 풀리지 않는 것이 '마음'에 관한 방법론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집 아이들은 저녁 8시가 되면 자도록 이야기 한다. 실제로 8시에 자는 적은 많지 않다. 아이가 커가면서 더욱 그렇다.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친구와 이야기하며 자신의 루틴의 남다르다는 사실도 깨닫는 듯하다.

어제 저녁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닫고 '그냥 좀 자'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잠에 들어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읽어가며 내 앞에 놓여진 9를 보고 6이라고 읽는 아이를 나무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이 9던, 6이던 사실 뭐가 중요하겠나...

그것이 6으로도 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조그만 틈만 열어둬도 사실 우주가 완전히 닫혀 미세하게 남아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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