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 내 안의 화를 다스리는 평정심의 철학
이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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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는 왜 올라오는 것일까.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아들러 철학'을 기반으로 '화'에 대해서 말한다.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의 실수로 물을 엎질러 옷이 젖게 된다면 화는 올라온다. 그렇다면 웨이터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화가 올라오는 것일까, 여기에 '아들러'는 답한다. 원인이 있어서 '화'가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화'가 올라왔기 때문에 원인을 끌어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들러의 관점은 전통적 관점과 다르다. 전통적 관점에서 원인은 항상 '화'보다 선행한다. 웨이터가 무를 엎질렀고, 옷이 젖는다. 불쾌한 감정이 솟아난다. 화가난다. 원인에서 결과로 점층적 방식으로 나아간다.

반면 아들러의 관점은 이렇다. 사실은 이미 화를 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그 사건을 화낼 이유로 가져 오는 것, 즉 '화가 났기 때문에' 원인을 거꾸로 찾아내는 것. 그것이 아들러의 관점이다.


이러한 사고를 아들러는 '목적론적 사고'라고 말한다.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은 원인보다 목적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나는 화를 내서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는 목적이 먼저 있고, 거기에 맞는 사건을 붙여 정당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같은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괜찮습니다'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같은 사건인데도 결과가 다른 이유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개인의 목적과 선택에 의해 '화'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들러 철학에서 '화'는 원인 때문에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목적' 때문에 선택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고로 '화'라는 것은 '사건 자체' 보다는 '스스로'에 결정과 선택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진우 작가의 '화내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에서는 '화'에 대한 다양한 철학을 끌어온다. 개중 세네카의 스토아 철학을 통해 화를 해부한다. 세네카는 화를 가장 무익하고 파괴적인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화는 상대를 겨냥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좀 먹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들러와 세네카는 모두 '화'가 외부 사건 때문이라는 '전통적 원인론'을 부정한다. 화는 결국 스스로의 통제와 선택의 영역이다. 외부의 사건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제거해 나갈 수 있다.

얼마 전 유명한 명언집을 보는데 이와 같은 글이 있었다.

'시간을 낭비하지마라, 인생은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화'를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네카'와 '아들러'에 따르면 그것은 통제가능한 영역에 있다.

화내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인생은 짧고 시간은 유한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화에 저당 잡히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투자다.

세네카의 말처럼 화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되려 일을 더 악화시키고 지연시킨다. 그러면 '화'에 의해 우리는 인생을 저당 잡힌다. 책의 표지가 말을 하듯,

'화를 내며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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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삼국지 기행 : 위나라, 촉나라 편 - 기행장군 양양이의 다시 보는 삼국지 이야기
기행장군 양양이(박창훈)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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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삼국지에 아주 심취했다.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하이텔'이니, '천리안'이니, 하던 때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았다. 동네 서점이나 도서관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정보가 많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궁금하면 바로 스마트폰으로 찾아 볼 수 있는 지금과 다르게 그때는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꽤 물리적인 행동을 취해야 했다. '실제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실제로 서점과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역사를 배경으로 했기에 분명 '사료'나 '실제 지역'이 있지 않을까. 다만 어린시절 다니던 도서관이나 서점에는 관련된 정보가 부족했다. 그렇게 호기심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흘렀다. 당시 궁금해 미칠 것만 같던 호기심은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사건'처럼 남아 완전히 잊혀지게 됐다.


운이 좋게 아날로그와 디지털 전환기를 적절한 나이에 맞았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린시절에 호기심을 성인이 되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마치 어린시절 '과자'가 성인이 되어 너무 달달한 불량식품처럼 느껴지듯 과거의 호기심은 관심 밖에 되었다.

'조자룡이 인물이 어쩌구, 저쩌구. 관우가 어쩌구 저쩌구.' 보다는 당장 차량 할부금, 세금, 주식, 돈. 뭐 이런 현실적인 고민이 생각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듯하다. 삶에 치여 살다보니 약간의 공상의 자리가 사라져간다. 그러다 우연히 다시 예전에 읽었던 책을 보게 되면 현실적인 고민과 꽤 거리가 멀던 호기심을 쫒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개중 대표적인 소설이 '삼국지'다.

삼국지를 읽으며 어린 시절에 '실제 장소'를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리고 비슷한 방송이 나오면 찾아 볼 것 같은데 공중파 방송에서는 시원하게 그 부분을 해결해주지 않기도 했다. 그런다 지금은 시대가 좋아지다보니 비슷한 호기심을 가졌던 이들이 중국 여행을 통해 실제 장소를 답사하고 영상을 공유해준다.


몇년 전까지는 '아프리카'에 관련된 영상을 주로 찾아보곤 했다. 아주 오랜기간 '아프리카'는 약간은 '꿈'의 대륙 같은 느낌이었다. '저 곳에 꼭 방문해보고 싶다.' 그런 이유로 아프리카에 관한 유튜브를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중국'이다. 어떤 팝스타가 잠시 머물고 갔다는 자리, 연예인이 식사를 했던 식당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여포'의 발자국이나, 조자룡의 손길이 닿아 움푹 들어간 흔적은 너무 가슴 떨릴만큼 찾아보고 싶다.

비슷한 컨텐츠를 운영하는 '기행장군 양양이'라는 채널이 있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채널이다. 다만 '방구석 삼국지 기행'이라는 책을 보면서 채널을 검색해 들어갔다. 책 만큼이나 매력있는 채널을 보면서 '아, 이 채널은 정주행을 해야겠구나' 했다.

'방구석 삼국지 기행'은 여러 사진을 포함한 흥미있는 삼국지 기행문이다. 읽어가면서 다시금 예전에 삼국지를 좋아하던 감성이 되살아났다. 책을 읽다가 몇번을 스마트폰으로 넘어와 인터넷으로 영상을 보았다.

이런 채널과 책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참 세상 좋아졌다, 생각하게 된다.

이번 주말에는 '비슷한 영상과 글'을 한참 찾아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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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섬세하고 독특하고 완벽주의자인 당신을 위한 문장들 - 심리학자의 아포리즘 큐레이션
황준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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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성공'이 아니라 '성취'에 초점을 맞두는 일이다. 성공과 성취는 둘 다 일을 마쳤을 때, '해냈다'라는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여기서 '해냈다'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결과를 보여냈다'와 '행동을 취해냈다'로 사용 가능하다. 세상에는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가령 42.195km를 완주하는 일은 '성취'에 가깝다. 이 일을 해냈을 때, '드디어 일을 해냈다'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반면 42.195km를 1등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성공'에 가깝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행동'과 무관한 '외부적 요인'으로 달성 여부가 결정된다.

외부적 요인이 '결과'를 결정하는 일은 자칫 '과정의 무의미함'을 전한다. '과정의 무의미함'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한다. 고로 이는 '성공'과 '성취' 두 '이룸'에 모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세속적 '달성'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삶'의 전반을 바라보는 태도를 말하고자 한다.

주말에는 입을 셔츠를 잘 다려 놓는 편이다. 잘 다려진 셔츠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매일 하나씩 꺼내 입는다. 평소 '패션'에 아주 무감각한 편이라 상하의는 모두 똑같은 옷 밖에 없다. 고로 개성 없는 옷들이 옷걸이에 항상 걸려 있는데 물론 '다림질'이 어떤 옷은 잘 되어 있고, 어떤 옷은 조금 구김이 가 있기도 한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남들과 다른 의미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와중, 가장 구김이 많은 옷을 꺼냈다. 물론 모두 반듯하게 다려져 있는 편이지만 가장 덜 다려진 옷을 꺼내 입었다. 일단 가장 구김이 강한 옷을 하나씩 꺼내 입다보면 나중에는 가장 잘 다려진 옷을 입게 되겠지,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를 깨달았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미래'를 위해 나는 항상 '최악'을 선택하고 있구나,하는 깨달음 말이다. 어쨌건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 중에 가장 최악의 옷을 꺼내어 입는다. 아마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의 '최악'을 골라내는 행위가 '옷 선택'에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음식을 고를 때, 누군가에게 칭찬의 말을 건낼 때,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아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항상 '최악'을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얻은 깨달음이란 이렇다.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선택이라도 관점이 다를 수 있으며 이 관점의 차이는 '사소한 결정'부터 꽤 '큰 결정'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 뒤로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는 쪽으로 바꾸었다. 언제나 최선의 선택만 한다. 이런 선택의 방식은 객관적 상황에 주간적 판단을 이롭게 만든다. 구김의 정도는 다 다를 수 있으나,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언제나 최선의 결과물을 지니고 다닌다. 비록 시간의 흐름상으로 그것이 '최선'은 아닐 수 있으나 그래도 언제나 최선을 고른다는 원칙이다.

영어에서는 '밝은 면을 보라' 혹은 '반이 채워진 물컵'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의 뇌는 긍정과 부정을 구분하지 않는다. '백곰을 떠올리지 마시오'라는 명령어를 듣자마자 모두가 '백곰'을 떠올리듯, 언제나 '나쁜 면'을 보고자 하는 습관은 계속해서 그것을 부각시킨다.

'황준선 작가'의 '당신을 위한 문장들에서 4장으로 나눠진 '여러 문장'을 소개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모두 '결과'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과정'에 놓여 있다. 우리는 '과정'의 끝에 '결과'가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과정'이라는 전체에 '결과'는 잠깐 보여지는 흔적일 뿐이다. 예를들어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진다고 할 때, 떨어진 것을 결과지만 떨어졌다는 사실마저 더 큰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결과는 움직이는 영상 중 한 프레임, 한 컷에 불과하지만 과정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영상 전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마구 꿈틀대는 과정으 중간에서 짧게 스치는 '결과'를 보며 일희일비하고 살아간다. 삶을 더 크게 보기 위해서는 사실 '구성 전반'을 볼 수 있어야하고 스스로의 정답이 언제는 정답이 아니었지만 다시 정답이 되고, 그것이 다시 정답이 아니지만 다시 또 정답이 됨을 아는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사진은 멈춰 있어 완전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역동적이다. 완전함이 되려고 하지 말고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을 바라보는 좋은 태도가 아닐까 싶다. 고로 나를 좌절하는 어떤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있다고 해도 '좋은 문장' 하나 꺼내 읽으며 '그래, 그렇게 머물다가 곧 흘러가거라'하는 큰 마음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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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와이프 스토리콜렉터 123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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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주 매력적인 소설을 하나 읽고 있는데, '디 아더 와이프'다. 이 소설은 앞으로 며칠 나눠 읽을 생각이다. 읽을 때마다 여러차례 리뷰를 작성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일과를 마치면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물을 하나 골려 보려고 했는데, 이런 책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이면 충분히 여가 시간을 보낼 만하다.

먼저 말을 하자면 도서는 '협찬'이다. 협찬 받은 제품이라고 무조건 '재밌다'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책은 '협찬'과 무관하게 매우 마음에 쏙 들다.

취향저격!

이런 류의 소설이라면 앞으로 계속 같은 류의 소설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마이클 로보텀'의 소설은 '굿 걸 배드 걸'을 원서로 가지고 있다. 아직 읽지는 못했는데 이 소설이 만족스러워 다음에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디 아더 와이프'는 도입부터 매우 흥미롭다. 어느날 응급실에서 '아버지'가 쓰려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놀라운 점은 아버지 곁에 있는 '아내'라고 있는 여성의 존재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주인공의 '어머니'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어머니가 아니다.

아주 전형적으로 밋밋한 삶을 살던 아버지에게 또 다른 가정이 있다는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다. 현재 소설의 초반부를 읽고 있다. '알고 있던 아버지'와 '전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 사이에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도입부다.

책은 시리즈물이라고 하던데, '시리즈'인 줄 모르고 읽었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애초에 읽으면서 '시리즈물'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소설은 전개가 빠르고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관련 시리즈물을 모두 찾아 읽어 볼 생각이다.

도서는 초반부를 읽고 있다. 고로 아직 내용의 전개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사건이 단순히 '숨겨진 또다른 아내'라는 사실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반드시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여러 비밀이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분명한 반전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첫 도입만 보고 전체 완성도가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 책이야 말로 중후반까지의 소설의 완성도가 예상이 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속도감 덕분에 잠시도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초반부에 불과하지만, 아마 '이 작가의 글이라면 믿고 읽자'라는 확신이 더 굳어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지금도 빨리 리뷰를 마치고 도서의 뒷부분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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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존 엘리지 지음, 이영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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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스라엘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공습에 뉴스가 나왔었다. 요즘은 꽤 조용해진 것 처럼 보이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사일이 오고 가는 영상들이 뉴스와 SNS를 통해 쉴 새 없이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전쟁을 실시간을 목격했고 꽤 현대적인 도시가 폭격을 당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얼마전 파키스탄과 인도의 갈등도 그렇다. 갑자기 어느 순간 벌어진 비극 같은 이 사건은 대체로 백 년 전, 제국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작한다.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모여 앉아 나눠 가졌다. 민족, 종교, 언어, 생활권은 고려되지 않았다. 기준은 역시나 유럽인들의 이해에 의해 결정됐다. 아프리카의 국경선이 자로 잰 듯 깔끔하게 그어져 있는 이유다.

이 단순한 선 긋기는 아프리카 대륙을 수 세기 동안 고통스럽게 했다. 하나의 민족이 여러 나라로 찢어졌고 본래 적대적이었던 부족들은 아무 맥락없이 한 국경 안에 묶여 한 국가가 되었다.

'존 엘리지의 47개의 역사로 본 세계사'는 국경선이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도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한다. 경계라는 것이 굉장히 모호하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굳이 경계를 지을 필요가 고대 국가에 있었을까, 그런 가벼운 의문부터 시작하여 작가는 경계 하나 하나를 시간과 공간을 옮겨가며 설명한다.

예전 한반도와 중국에 관련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고대 중국의 제국은 왜 한반도의 작은 나라들을 점령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을 풀어가는 책이었다. 해당 책에 의하면 우리가 '상나라, 하나라, 한, 진, 위, 촉, 오' 하는 대부분의 중국 국가들의 크기가 생각보다 부풀려져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한나라'가 그렇다. '한나라'하면 중국 전역에 거린 거대한 영토처럼 보인다. 다만 사실 현대 표시되는 지도에 비해 실제 한나라의 영토는 훨씬 작았다. 실제 한나라 시대에는 도로망이나 군현 설치, 조세체계가 닿는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고로 직속령으로 통치하는 범위는 매우 좁았다. 결국 '한나라 국경'이라고 지금 지도에 표시되는 선은 후대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고대 국가의 경계는 오늘날 처럼 확정적이지 않았다. 경계란 언제나 권력자가 그려낸 상상속의 질서인 셈이다.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바로 이 '상상의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현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이 경계는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업이 확장되고 축소된다. 바다에서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두고 분쟁이 벌어지고 하늘에서는 영공이 새로운 갈등의 무대가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국경의 개념은 점차 변형된다. 심지어 인간은 이제 우주에까지 경계를 긋기 시작한다.

세계지도를 펴보면 대체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국경선이 그어진 지도가 보인다. 다만 애초에 '국경선'이라는 것은 자연상 존재할 수 없다. 유럽과 아시아 또한 두 대륙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완전하게 이어진 하나 대륙이다. 우리의 인식 방식을 투영하는 이런 국경선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책을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책은 인류가 '종교, 민족, 역사'를 가지고 만들어 놓은 국경선이라는 흔적에 대해 다양한 시선으로 알려준다. 책은 각각을 독립된 꼭지로 다룬 책이라 중간 중간 끊어 읽기도 좋고 시간을 내어 읽을 필요도 없는 부담감이 적은 책이다.

문체가 가볍고 사례중심이라 짧게 짧게 집중력을 발휘하고 읽어도 충분하다. 단숨에 통독하지 않고 하루 한두 꼭지씩 가볍게 읽기 좋은 역사, 인문학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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