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품위 -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지켜야 할 삶의 태도
최서영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경우에는 내면적 성숙과 외면적 성숙의 발달 단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제3자로써 굉장히 당혹스럽다. 가령 외형적으로 성숙해 보이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다. 겉으로 보여지는 무게가 내면의 무게를 대변할 것 같은 착시를 비웃듯 철없음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비치는 어른의 어린 철학에, 더 깊은 서사를 찾아 본 적도 있다. 그러다 결국 그것이 외면이 주는 착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이듦의 외형은 신뢰를 준다. 그것이 어쩌면 신이 주는 일종의 축복일지 모른다. 이성이 외모에 끌리듯 일정 수준까지 성숙해 보이는 외형은 상당한 이점이 된다. 그 성숙한 외형에 이끌려 속는 경우가 더러 있다.


 외형이 비추는 성장의 속도에 내면은 쫒아가고 있는가.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나의 삶은 재미없다고 볼 수 있다.


술, 담배, 도박, 게임.. 


 이런 류에 그닥 흥미가 없다. 조용한 걸 좋아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적다. 사람 사이의 갈등도 없다. 이성 문제도 단조로운 편이다. 성직자를 하면 참 어울리겠다는 말도 듣는다. 


 그것이 어떤 나이에는 '컴플렉스'다.


어린 시절, 가벼운 욕도 하지 않고 살았다. 남자들 사이에서 가벼운 욕 정도는 하고 살아야 그 무리에서 무시도 당하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데, 그 핸디캡을 갖고 청소년기를 지나온 것이 대견할 정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올바름에 아무 철학이 없다는 점이다. 살다보니 그저 그렇게 됐다랄까.


 쉽게 말해, 여차 하다보니 타이밍을 놓쳤고, 타이밍을 놓쳐 지내다보니 주변에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곤 했다.


 20대 초반, 친구들과 술집을 다닐 수 있을 즈음, '군대'와 '유학'을 선택했다. 군대에서는 '담배'를 배우지 않았고 '유학'하면서는 '담배'가 비싸서 피우지 못했다.


 '유학' 후에는 '바'와 '클럽'을 동시 운영하는 곳에서 '글라시에'라는 파트타임을 했다. '글라시에'는 쉽게 말해 유리잔을 세척기에 돌리고 마른 헝겁으로 잔을 닦아내는 직업이다. 클럽 내의 빈병을 수거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빈 술을 채워 놓는 직업이다. 놀기 좋을 그 환경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달에 맥주 한 캔도 마시지 않았다.

 클럽에서 일을 하다보면 정리를 할 때 즈음, 눈 풀린 백인 여성들이 다가 올 때가 종종 있다. 실컷 놀다가 바텐더나 기타 직원들과 연락처를 주고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일이 끝나고 나면, 무얼하냐 묻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일이 끝나면 아파트 청소하러 가야 돼'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혹시 게이야?'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닥 원칙도, 철학도 없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고리타분하게 삶을 살았다. 그 까닭에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당당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일과를 마치면 책이나 읽고 영화를 보는 게 좋았다. 그렇다고 모범적인 삶을 살던 인간도 아니었다. 그냥 밍숭맹숭하고 시시하고 선택을 하고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 밍숭밍숭 재미없음이 무능처럼 보여진다.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잘 노는 친구'는 부러움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환경'을 잘 어울리지 못하면 '루저'처럼 느껴지곤 했다. 빨리 이 시기가 지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은 드디어 이루어졌다. 시간은 나를 태우고 마흔에 내려 놓았다. 


 나는 그대로인데 제법 성향에 맞는 나이에 도달한 것 같다. 20대라면 '심심한 놈'처럼 보여질 성향이 40대에 내려 놓으니 제법 그럴싸 한 옷을 챙겨 입은 느낌이다.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영혼을 갈아섞일 만큼 깊이 있는 우정이라던지, 관계가 중요하진 않다. 대부분의 관계는 가족 단위로 끊어지고, 나머지 관계는 표면적이고 격식적으로 바뀐다.


 아이 '참관 수업'에 다녀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지켜보는 부모 대부분은 나의 또래이다. 그들이 점잔빼는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00 아버님!', '안녕하세요, 00 어머님!' 하신다.


 그들과 비슷한 시기를 겪어 1인으로써 '점잖을 뺄 만한 아이'는 한 반에 '한 두명'도 되지 않는다. 상당수가 비속어를 일상처럼 사용하고 부모님의 속을 적당히 썩이며 자랐다. 나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러다 '어른'이라는 옷을 입으면 꽤 성숙한 외형을 갖추고 격식을 차리게 된다. 어리숙한 어떤 모습을 숨기고 어른인 척 인사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얼마만큼 자신의 옷을 입고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 지금의 나이에서 나는 앞과 뒤가 비슷해졌다. 어떤 이들은 겉으로 그러면서 속으로 고달픈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가짜 품위 속에서 진짜의 특징이라면 그 나이에 얼마나 편안한가다.


 튀어 나오는 비속어를 겨우 참아낸다거나 모자란 지식을 숨기려 노력을 하고 있다거나... 대부분의 어른은 사실 내면에 있는 아이를 숨겨, 앞으로는 성숙하고 뒤로는 어리숙한 단계로 나아간다.


 일부는 직업에 적당한 '직업윤리나 책임'을 가지고 있고, 괜찮은 경제관념을 통해 스스로의 소비와 수입을 관리한다.

 예전 잘 알고 지내는 이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중년 남성은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굉장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에게 적당한 동경을 갖고 있다가 우연히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느껴진 인상은 처참했다. 험담을 너무 쉽게 한다거나, 약속을 너무 쉽게 잊어 버린다거나, 중고등학생들 입에서 나올 법한 저급한 비속어가 너무 가볍게 나왔다.


 '저 나이가 됐을 때, 나도 저렇게 보이려나...'

그런 생각이 막 머리를 스치고 갔다. 요즘 '영포티'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된단다. '영포티'는 젊은이를 따라하는 '중년'을 이야기 한다. 이것이 40대를 놀릴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하던데.. 가만보면 그것은 40대의 문제는 아니다. 40대가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놀리는 동안, 과연 그들은 10대, 20대 같은지 묻고 싶다.

 열심히 학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자신의 스펙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도 되지 않으며 타인에게 묻은 겨를 탓하는가.


 군군신신부부자자


논어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각자 자신에게 맞는 '롤'을 수행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10대는 10대처럼, 20대는 20대처럼, 30대는 30대처럼...

 모든 인간은 점차 '어른'이 되어가기 때문에 어떤 나이에 상관없이 나아가는 방향은 같다. 결국 어른이 가져야 할 품위는 그 나이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까지 천천히 쌓아가는 듯하다.

 결국 돌고 돌아 2000년 전 공자의 가르침이 맞을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어른은 어른답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