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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에서 좋은 책이 한 권 또 나왔다. 다만, 두께가 압박이다. 그에 따라 가격도 만만찮다.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말똥말똥 바라보고만 있다.

 

 

 

 

 

 

 

 

 

 

 

어느덧 흘러간 이름이 돼 버린,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1918~1990)를 왜 되새기는가. 이 물음에 최근 900쪽 가까운 분량의 < 알튀세르 효과 > (그린비)를 엮어낸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45·사진)는 지난 7일 연구실에서 일화 한 토막을 꺼냈다."삼성 이건희 회장의 재판이 진행되는 때였어요. 지하철에서 어떤 노인이 '우리 회장님이 얼마나 나라를 위하셨는데 감히 구속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서민들이 왜 이 회장을 걱정하는지, 흔히 '계급을 배반한다'고 불리는 메커니즘의 작동에 대해 알튀세르가 하나의 대답을 줍니다."이렇듯 알튀세르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력이 있다"는 것이 2년6개월간 출간 작업을 해 온 진 교수의 믿음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결국 마르크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실패를 되풀이할 수는 없죠. 알튀세르는 처음부터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적 복귀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김정한·서관모 등 국내학자 10명과 알튀세르의 주요 제자인 피에르 마슈레 프랑스 릴 3대학 명예교수 등 해외 연구자 9명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왜 현실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변질됐는지, 자본주의 국민국가 내부에서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지배구조가 날로 강고화되는지를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설명한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관념이나 사상, 허위의식을 지칭하지 않는다. 물질이며, 장치다. 예를 들면 종교적 믿음도 '무릎 꿇고 기도하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이 상징하듯 매주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장치가 가족과 학교 같은 것들이다.이 이데올로기는 지배구조에 반항하지 않는 유순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즉 '종속적 주체의 재생산'이다. 진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내셔널리즘의 형태로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민족의식, 국가의 같은 정당한 구성원이라는 국민의식이 이건희 회장과 서민들을 계급으로 나누기보다 동일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나아가 '모든 개인은 독립적 주체이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더욱 구조를 강고화한다. 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종합하면 결국 이주노동자는 우리 국민이 아니고, 비정규직은 게을러서 그런 것이니 이들을 자본가에 맞서는 연대의 대상이라기보다 '적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죠." 그러나 알튀세르는 개개인을 '독립적 주체'로 보는 것을 거부했다. 진 교수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일대일의 사적인 계약 관계로 여겨지면서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은폐되는 것을 알튀세르는 '법 이데올로기'라며 비판했다"고 말했다.무엇보다 알튀세르의 문제의식은 에티엔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등 오늘날 가장 뜨겁게 인용되는 현대 철학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진 교수가 "현대 사상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라도 알튀세르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관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을 '매체'라고 말했다. 보수 매체들은 종합편성채널로 확장되고 대안매체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규제의 대상에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알튀세르의 말은 하나의 함의를 던진다. "알튀세르는 매체가 항상 양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배의 도구가 되지만 저항과 변혁의 거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어떤 지배계급이나 집단도 매체를 독점하거나 자기 뜻대로 전유하긴 어렵습니다. 만드는 순간 저항의 여지를 끌어들인다는 것이죠."<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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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의 이유가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스토리텔링이라는 부분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한 이유로 시나리오 작가가 아님에도 종종 시나리오 관련 서적을 읽기도 한다. 요즘엔 마침 신년 선물로 지인으로부터 그 분이 번역에 참여한 시나리오 관련 책을 선물 받아 뒤적여 보곤 하고 있다.

이야기, 스토리텔링, 플롯, 내러티브.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는 용어이지만,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그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독자/관객에게 잘 전달하느냐가 아닐까?

 

 

 

 

 

[세계일보] "왕이 죽고 슬픔에 빠진 왕비도 죽었다.""왕비가 죽었다…. 왕이 죽고 나서 슬픔에 빠졌기 때문이다."위 두 문장의 내용은 일견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왜 그럴까. 첫 번째 문장은 하나의 내러티브(서술)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두 번째 문장에는 "왜?"라는 의문이 끼어들었다.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흐르는 내러티브와 달리 플롯에는 독자를 긴장시키는 역동성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라고 물으며 귀를 곧추세울 때는 바로 상대가 플롯이 잘 짜인 이야기를 들려줄 때이다.'플롯 찾아읽기'(도서출판 강 펴냄)는 정신분석학과 구조주의 내러티브를 결합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플롯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저자 피터 브룩스는 이야기를 의미 있는 형식으로 배열하는 플롯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그는 기호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구조주의 이론을 활용해 플롯을 분석한다. 이상의 소설에는 '나'라는 문구가 수백 번 등장한다. 구조주의 틀로 이를 일일이 확인하다 보면 작가와 그의 화자가 얼마나 강박적으로 자아에 붙들려 있는지 알 수 있다.브룩스는 그림 형제의 '별별 털북숭이'가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이라는 금지된 욕망을 플롯을 통해 어떻게 적법한 욕망으로 전환시키는지도 보여준다. 이야기 구조를 해체해 각각의 내러티브가 진행되는 방향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궁극적으로 특정 유형의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적 논리를 제공한다.저자는 구조주의의 틀을 빌리면서도 그것의 지나친 형식성과는 거리를 둔다. 18세기에 새로운 사조로 낭만주의가 등장하면서 유행했던 선민, 구원, 재림 등과 같은 지나치게 구조화된 플롯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이 책은 등장인물과 독자의 욕망에 반응하는 역동적인 플롯과 그러한 플롯짜기에 방점을 찍는다. 스탕달의 '적과 흑', 프로이트의 '쾌락을 넘어서',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등 19세기 고전소설을 잘 설계된 플롯의 사례로 제시한다. 정신분석학을 통해 텍스트와 그 구조를 받아들이는 심리과정도 파헤친다.브룩스는 "우리가 프로이트를 지향한다면 그것은 저자나 내러티브 인물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함이 아니라, 텍스트 구조화 과정에 심리 구조화 과정을 포개놓음으로써 독서의 심리 작용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독서는 자신과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따라서 플롯은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고 독자와 상호작용하면서 재창조된다. 최종적인 의미는 저자가 제시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를 완전히 소화할 수 없는 독자들은 그것의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해도 문학이 매개하는 삶의 의미에 다다르지 못한다. 이 책은 텍스트를 의미 있게 읽어내는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플롯 찾아 읽기'를 제안하고 그 방법을 제시한다. 김은진·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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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일단 끌렸다. 디지털 시대라는 흐름 속에서 너나 나나 조금씩 종이책에서 멀어지는 시대. 종이잡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머지않아 종이책도 절멸할지 모른다는 예견도 들리곤 한다. 이런 시대 속에서 '종이'책이 결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어떤 책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리보기를 통해 조금 읽어보니 제법 괜찮은 내용인 것 같아 일단 리뷰 몇 개를 옮겨놓는다. 오늘 장바구니에 몇 권의 책이 담겨있는데 왠지 오늘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고야 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종이책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종이신문 시대도 종말을 맞았다고 말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실제 대다수 젊은 세대는 인터넷,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의 기기를 통해 각종 정보를 습득하고 소통한다. 그 결과 출판산업과 신문산업은 어려움에 처해 있고, 저마다 온라인북과 인터넷신문 발행 등의 신사업으로 활로를 개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스스로를 '책 바보'라고 소개하는 저자는 종이책 읽기를 권한다. 자식들을 위해 방 한 칸을 도서관으로 차린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려서부터 책과 가까이 지냈던 그는 가난하던 시절에도 통장의 돈을 다 털어 고서적을 사들였을 만큼 독서광이다. 이 책은 종이책 읽기의 매력과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들려주는 그 나름의 대답이다. 

그는 종이책의 매력 중 하나는 인간의 감각을 다양하게 자극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책 읽은 후 찾아오는 쾌락, 스르륵 넘어가는 종잇장의 소리, 향긋한 종이냄새, 책장을 넘길 때 느끼는 손맛의 짜릿함을 동시에 주는 매체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또 한 권을 온전하게 다 읽은 사람은 온전히 그 책의 주인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 책을 읽을 때, 책 읽는 사람은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서가 가져다주는 가장 특별한 혜택이라는 말도 덧붙인다.그는 독서 중의 독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라며, 4만권이 넘는 자신의 책을 밀라노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폰티지아의 다음의 말을 곁들인다."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독서하라."또 네로, 진시황, 히틀러 등 책을 불태운 자들이 독재자였음을 상기시키고, 이들이 책을 불사른 것은 인간의 상상력, 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빼앗고 없애기 위해서였음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독서습관으로 소리내어 읽기, 천천히 읽거나 빨리 읽기,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 신간 읽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기, 읽기 싫으면 덮기 등을 소개한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바보 중의 바보지만 좋다고 인정해주는 바보가 있다면 바로 '책바보'일 것이다. 한자로 '간서치'라고 부르는 이 책바보로 꼽히는 이가 김무곤 동국대 교수다. 마음에 드는 책을 보면 통장 잔고를 모두 쏟아부으며, 기차에서 책을 읽는 게 좋아 책 읽자고 기차를 타기도 하는 그런 이다.이 간서치가 책에 대한 책인 <종이책 읽기를 권함>을 냈다. 책이란 무엇이며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책바보의 진솔하고 생생한 책 사랑이 읽기만 해도 절로 웃음짓게 만드는 즐겁고 유쾌한 책이다.김 교수는 어떻게 '책바보'가 되었을까? 그를 '공부쟁이'로 만든 것은 아버지였다. 도입부에 나오는 그의 아버지 이야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무얼 하든 "대단하네!"라고 자녀를 칭찬해주던 아버지는 그 세대 엄한 아버지들과는 분명 달랐던 모양이다. 김 교수가 중학생이었던 어느날 집에 돌아오니 세 살던 사람들이 나간 건너채에 책이 가득 도착해 있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이사왔나 했더니 뜻밖에도 그 책들은 모두 아버지가 다섯 자녀를 위해 사온 것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서점에 가서 "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은 다 배달해달라"고 통째로 주문했던 것이다. 집이 도서관이니 그가 책벌레가 된 것은 당연했다.이후 평생 책에 빠져 살아온 지은이는 그가 깨달은 '책읽기'론을 이 책으로 정리했다. 독서에 대한 부담과 편견을 떨치고 그저 즐기는 독서, 그게 그가 말하는 진정한 책읽기다. 그래서 최고의 책읽기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읽기'라고 역설한다. 그 예로 드는 것이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 나오는 딸깍발이 양반이다. 샌님이 살림은 제쳐두고 책만 읽다가 가족 등쌀에 집밖으로 나가 떼돈을 번 비결이 바로 '독서' 말고 무엇이며, 박지원이 설정한 '독서인'의 의미가 무엇이었겠느냐 생각해보라고 주장한다.'종이책'을 '느리게' 읽어야 한다는 것도 그가 강조하는 주문사항이다. 왜 종이책이어야 할까. 모든 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세상에 종이책 읽기는 읽는이 스스로 독서의 의도와 속도, 그만두는 행위를 통제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고통을 넘어설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주기에 책 읽기는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책은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늘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된다. "출발지는 달라도 그들은 모두 바다로 간다. 책 읽는 자들은 책이라는 배를 갈아타면서 스스로의 바다에 이른다."책에는 그의 독서론, 그리고 책과 서점, 책벌레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에 대한 책'답게 다양한 교양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의 목록도 풍성하게 이어진다. 그가 즐겁게 고백하는 책을 향한 바보 같은 사랑의 매력은 아마도 책에도 인용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구절이 가장 잘 대변해줄 듯하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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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이다. 이 이름은, 정확히 그녀의 소설은 내가 언제나 관심을 가지게 되는 대상이다. 특히,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 방>과 같은 소설들은 20대 초반의 나를 꽤 강하게 흔들어 대던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다소 편한 후방의 부대(공군사관학교)에서 군 생활을 할 수 있던 덕에 나에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제법 있었다. 입대하고 어느 정도 계급이 올라가 다소 눈치를 덜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가 되자 난 업무를 위해 사관생도들이 주로 생활하는 구역을 지나게 될 때면 도서관에 들르곤 했다. 이 도서관에서는 나와 같은 일반 사병들에게도 책을 대여해 주었기에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를 수 있었고, 바로 이 시기에 난 그 도서관에 있는 신경숙이라는 이름이 저자로 들어간 책은 모조리 읽었다.

그러던게 언제부터인가 조금은 의식적으로 그녀의 소설을 다소 멀리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난 그녀의 근작들인 <리진>이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소설들을 읽지 않았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어딘지 먹먹해지는게 그간 그녀의 소설을 멀리하려 한 이유일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그녀의 신작 단편 소설집 소식을 접하니 눈이 안 갈 수가 없다. 과연 난 이번에도 이 책에 손을 뻗지 않고 지나갈까?  

소설가 신경숙씨(48)의 소설집 < 모르는 여인들 > (문학동네)은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간 인터넷서점 예약판매만으로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아직 나오지 않은 책에 대한 관심은 장편소설 < 엄마를 부탁해 > 가 31개국에 수출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한 신씨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읽고 손보면서 내 방, 내 책상으로 완전히 돌아온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곁에 놓였으면 합니다."소설집 < 모르는 여인들 > 에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6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단편소설 7편이 묶였다. 

소설집 < 모르는 여인들 > 을 선보인 신경숙씨는 22일 인터뷰에서 "내 작품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세상의 추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수록된 단편소설의 인물은 < 엄마를 부탁해 > 의 '엄마'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오는 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눈물겹게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집약되면서 '엄마'가 탄생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잖아요. 어느 순간, 표면에 돌출된 사람들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듯이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들이 없으면 아무도 빛이 나지 않을 거예요."신씨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들 속엔 익명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성화(聖畵)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 말처럼 소설에는 문득 만나게 되는, 숭고한 장면들이 있다.단편 '어두워진 후에'에 나오는 남자는 살인마에게 엄마, 할머니, 형을 잃은 데다 자신이 피의자로 의심받기조차 한다. 괴로움에 무일푼으로 떠돌던 남자는 한 산사의 매표원인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돈이 없으니 그냥 들여보내달라는 말에도 '그러세요', 배가 고프니 밥을 사달라는 말에도 '그러세요', 갈 곳이 없으니 재워달라는 말에도 '그러세요' 한다. 한밤중에 깬 남자는 자신에게 방을 내준 여자와 두 동생이 병든 엄마를 중심으로 엉켜 잠든 모습을 본다. 이 장면이 말하자면 '성화'다.그런 숭고한 모습은 단편 '성문앞 보리수'에서 오랜만에 독일에서 만난 두 친구가 좁은 호텔방에 누워 오래전에 함께 부르던 유행가를 다시 불러보는 장면이라든지, 표제작 '모르는 여인들'에서 직장에 다니는 주부와 파출부가 공책에 메모를 하다가 점점 서로를 위로하는 편지로 발전하는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작가는 "그런 대목을 위해 나머지 부분을 쓴 것"이라고 말한다.수록된 단편들 속에서 신발의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것도 평범한 이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신발은 일상적인 물건이면서도 한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잖아요. 신발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비롯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단편 '세상 끝의 신발'에서 한국전쟁 때 열여섯 살이던 아버지와 열다섯 살이던 낙천이 아저씨는 함께 인민군에 끌려간다. 한의사였던 조부의 약초 심부름꾼이던 중대장은 두 소년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는데, 다리를 다친 낙천이 아저씨는 신발이 해져 자꾸 넘어지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성한 신발을 벗어준다."신발 이야기를 해야겠다"('세상 끝의 신발')로 시작한 이 소설집은 공교롭게도 "남편의 메마른 발가락들을 펴서 하나하나 닦아주었다"('모르는 여인들')로 끝난다.< 엄마를 부탁해 > 에서 치매에 걸려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계절이 겨울로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 거리를 헤매는 모습으로 그렸던 대목과 아련히 겹쳐진다.이런 보잘 것 없고 소외된 존재들에게 주목함으로써 작가가 바라는 것은 이 세계의 균형이었다."우리가 현대인이 되는 동안 상실해버린 인간적인 체온과 연민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비밀스럽게 하나씩 낳아서 세상에 섞어놓은 것은, 이 별스럽지도 않은 사람들의 인생이 한쪽으로 치우친 이 세계의 한 끝을 끌어올려 균형을 이루어주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신씨는 그러면서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누추하다고 밀쳐버렸던 것들에서 새로운 에너지 같은 걸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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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기자의 글을 좋아한다. 글이 따뜻하기도 하고 깊이도 느껴진다. 그녀의 인터뷰는 꽤 좋다. 이걸로 책까지 냈었다.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단순한 흥미거리 위주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인터뷰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종종 놀라운 발견을 이끌어낸다. 

그녀가 그림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 어떤 글일지 궁금하다. 서평을 뒤졌는데 못찾아서 일단 출판사 제공의 책 소개를 옮겨놓는다. 

  

 

 

물끄러미,
그림 앞에서, 그 너머를 들여다보며
그림 뒤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겹쳐보며
감정의 수많은 결을 하나하나 쓰다듬어 감지하는,
김혜리 이미지 에세이

“내 안에 고인 물을 조용히 흔들었던,
때로 신경을 마비시키거나 불붙였던 그림들을
마음 속 화랑의 허랑한 빈 벽에 하나씩 걸었다.
한데 모아놓으면,
그들은 어쩌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내 ‘상상의 미술관’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림과의 인터-뷰
김혜리는 말을 건다. 사람에게, 사물에게. 말을 건네기 전, 그녀는 대상을 세심하게 바라본다. 관찰하고 질문하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이면, 예컨대 대상의 그림자 너머까지 시선을 던진다. 그러고는 대상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인터-뷰의 장엔 언제나 독자를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 어렵사리 자신을 내보이며 진심으로 대상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녀는 항상 독자가 나란히 걸을 수 있도록 어깨 옆을 내준다. 김혜리와 동행하면, 그림 한 점을 둘러싼 이야기를 공감각적으로 감지해내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감정의 결을 하나하나 쓰다듬은 손길로 빚어낸 듯 유려하기 짝이 없는 그녀만의 감성과 문장에는 특출함이 있다. 그림 앞에서, 그림 뒤에서 우리가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알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김혜리의 문장을 통하면 흐릿하나마 피와 살을 얻게 된다. 그림에게 묻고 싶었던 것들이, 실마리의 서두를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우리는 정의할 수 없던 감정의 실체라는 해답을 찾게 된다. 김혜리의 독백과 방백이 점점이 흩어진 그림 앞의 고백은, 점묘화처럼 그렇게 뒤늦게, 조용히,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먼 고장과 이국 도시의 크고 작은 미술관들은 내가 주민인지 나그네인지 결코 묻지 않았다. 정문에 들어서서 표나 기부금을 내고 라커룸에 배낭을 맡기고 나면, 나는 인생의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고 가볍게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수첩 한 권을 쥐고 한나절을 그림이 걸린 방에서 방으로 소요했고, 생수 한 병으로 끼니를 족히 대신하며 남중했던 태양이 서쪽 창으로 서서히 저무는 광경을 전시실 벤치에 앉아 충만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_서문 中

“근본적으로 오늘날 한 인간이 본업과 취미를 따로 둘 만큼 풍부하게 살기란 불가능하다고 믿어온 내게 그림 보기의 즐거움은 귀족놀이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끝내 내가 등록된 주소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알기에 더 달콤한 도피였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터다. 아,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게 사치를 열망하는가! 희고 중립적인 벽, 더위도 추위도 의식할 수 없는 적정 온도와 습도, 적당한 고요와 속삭임. 많은 현대 아티스트들이 갤러리라는 방습, 방취된 인공의 제도로부터 뛰쳐나오고자 몸부림쳐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평범한 한 관광객에게 미술관의 회랑은 평생 내게 달라붙어온 모든 조건?불온하게도 시대와 국적까지?을 잠시 잊게 하는 희귀한, 그래서 매혹적인 무중력 공간이었다. 그림 한 점 한 점이 독립된 장소였고 국가였다.”_서문 中

마음속 빈 벽에 그림을 걸어 완성한 상상의 미술관
여기 마흔 점의 그림, 마흔 편의 이야기가 있다. 그림과 이야기, 그 사이의 그림자를 오가는 이 묶음에는 경계가 없다. 지은이는 그 자신이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 즉 소설과 그림 속 세계와 현실을 가르는 벽이 훨씬 부드럽고 투명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간 양 그림이란 2차원을 통과하며 주섬주섬 이야기의 파편들을 저장한다. 그러곤 집에 돌아와 미술관에, 갤러리에 두고 온 그림들을 상상의 미술관으로 소환해 한 점씩 걸어보고, 이야기의 파편을 하나하나 조각한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면,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화가가 몇 번의 붓질로 축약한 수천의 상념이 가진 의미에 목말라 한다.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거칠게, 매끈하게, 때로는 희부옇고 흐릿한 붓질로 세운 삶과 죽음의 세계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겹친다. 상상하는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김혜리는 인터-뷰의 당연한 준비과정을 우리 대신 기꺼이 해준다. 한 점의 그림이 가진 이야기 조각들을 더듬어 찾아온다. 그러곤 화가의 취향, 배경, 생각, 의미, 드라마, 빛과 색 사이를 고르며 마치 거미처럼 가느다란 씨줄과 날줄을 몇 가닥 뽑아내 마음의 풍경을 직조해낸다.
얼굴 없는 니케 상부터 인물의 감정과 피로가 팔뚝 아래 핏줄처럼 선명하게 비치는 루치안 프로이트의 그림까지 김혜리가 주목하는 그림엔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공허한 틈이 많이 엿보인다. 그녀는 풍경화건 인물화건 그 안에서 어떤 ‘마인드스케이프’ 즉 심상을 한 움큼 잡아내, 책 밖으로 손을 펼치며 공감을 구하는 눈빛을 보내온다. 그 눈빛은 어쩐지 슬퍼 보여, 읽는 이로 하여금 책 속으로 들어가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림 앞과 뒤를 오가게 만든다. 김혜리가 흩트려놓은 단어들을 주섬주섬 그러모아 그림 같은 산문을 함께 완성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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