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이다. 이 이름은, 정확히 그녀의 소설은 내가 언제나 관심을 가지게 되는 대상이다. 특히,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 방>과 같은 소설들은 20대 초반의 나를 꽤 강하게 흔들어 대던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다소 편한 후방의 부대(공군사관학교)에서 군 생활을 할 수 있던 덕에 나에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제법 있었다. 입대하고 어느 정도 계급이 올라가 다소 눈치를 덜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가 되자 난 업무를 위해 사관생도들이 주로 생활하는 구역을 지나게 될 때면 도서관에 들르곤 했다. 이 도서관에서는 나와 같은 일반 사병들에게도 책을 대여해 주었기에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를 수 있었고, 바로 이 시기에 난 그 도서관에 있는 신경숙이라는 이름이 저자로 들어간 책은 모조리 읽었다.
그러던게 언제부터인가 조금은 의식적으로 그녀의 소설을 다소 멀리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난 그녀의 근작들인 <리진>이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소설들을 읽지 않았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어딘지 먹먹해지는게 그간 그녀의 소설을 멀리하려 한 이유일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그녀의 신작 단편 소설집 소식을 접하니 눈이 안 갈 수가 없다. 과연 난 이번에도 이 책에 손을 뻗지 않고 지나갈까?
소설가 신경숙씨(48)의 소설집 < 모르는 여인들 > (문학동네)은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간 인터넷서점 예약판매만으로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아직 나오지 않은 책에 대한 관심은 장편소설 < 엄마를 부탁해 > 가 31개국에 수출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한 신씨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읽고 손보면서 내 방, 내 책상으로 완전히 돌아온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곁에 놓였으면 합니다."소설집 < 모르는 여인들 > 에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6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단편소설 7편이 묶였다.
소설집 < 모르는 여인들 > 을 선보인 신경숙씨는 22일 인터뷰에서 "내 작품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세상의 추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수록된 단편소설의 인물은 < 엄마를 부탁해 > 의 '엄마'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오는 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눈물겹게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집약되면서 '엄마'가 탄생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잖아요. 어느 순간, 표면에 돌출된 사람들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듯이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들이 없으면 아무도 빛이 나지 않을 거예요."신씨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들 속엔 익명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성화(聖畵)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 말처럼 소설에는 문득 만나게 되는, 숭고한 장면들이 있다.단편 '어두워진 후에'에 나오는 남자는 살인마에게 엄마, 할머니, 형을 잃은 데다 자신이 피의자로 의심받기조차 한다. 괴로움에 무일푼으로 떠돌던 남자는 한 산사의 매표원인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돈이 없으니 그냥 들여보내달라는 말에도 '그러세요', 배가 고프니 밥을 사달라는 말에도 '그러세요', 갈 곳이 없으니 재워달라는 말에도 '그러세요' 한다. 한밤중에 깬 남자는 자신에게 방을 내준 여자와 두 동생이 병든 엄마를 중심으로 엉켜 잠든 모습을 본다. 이 장면이 말하자면 '성화'다.그런 숭고한 모습은 단편 '성문앞 보리수'에서 오랜만에 독일에서 만난 두 친구가 좁은 호텔방에 누워 오래전에 함께 부르던 유행가를 다시 불러보는 장면이라든지, 표제작 '모르는 여인들'에서 직장에 다니는 주부와 파출부가 공책에 메모를 하다가 점점 서로를 위로하는 편지로 발전하는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작가는 "그런 대목을 위해 나머지 부분을 쓴 것"이라고 말한다.수록된 단편들 속에서 신발의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것도 평범한 이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신발은 일상적인 물건이면서도 한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잖아요. 신발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비롯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단편 '세상 끝의 신발'에서 한국전쟁 때 열여섯 살이던 아버지와 열다섯 살이던 낙천이 아저씨는 함께 인민군에 끌려간다. 한의사였던 조부의 약초 심부름꾼이던 중대장은 두 소년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는데, 다리를 다친 낙천이 아저씨는 신발이 해져 자꾸 넘어지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성한 신발을 벗어준다."신발 이야기를 해야겠다"('세상 끝의 신발')로 시작한 이 소설집은 공교롭게도 "남편의 메마른 발가락들을 펴서 하나하나 닦아주었다"('모르는 여인들')로 끝난다.< 엄마를 부탁해 > 에서 치매에 걸려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계절이 겨울로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 거리를 헤매는 모습으로 그렸던 대목과 아련히 겹쳐진다.이런 보잘 것 없고 소외된 존재들에게 주목함으로써 작가가 바라는 것은 이 세계의 균형이었다."우리가 현대인이 되는 동안 상실해버린 인간적인 체온과 연민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비밀스럽게 하나씩 낳아서 세상에 섞어놓은 것은, 이 별스럽지도 않은 사람들의 인생이 한쪽으로 치우친 이 세계의 한 끝을 끌어올려 균형을 이루어주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신씨는 그러면서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누추하다고 밀쳐버렸던 것들에서 새로운 에너지 같은 걸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