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의 이유가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스토리텔링이라는 부분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한 이유로 시나리오 작가가 아님에도 종종 시나리오 관련 서적을 읽기도 한다. 요즘엔 마침 신년 선물로 지인으로부터 그 분이 번역에 참여한 시나리오 관련 책을 선물 받아 뒤적여 보곤 하고 있다.

이야기, 스토리텔링, 플롯, 내러티브.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는 용어이지만,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그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독자/관객에게 잘 전달하느냐가 아닐까?

 

 

 

 

 

[세계일보] "왕이 죽고 슬픔에 빠진 왕비도 죽었다.""왕비가 죽었다…. 왕이 죽고 나서 슬픔에 빠졌기 때문이다."위 두 문장의 내용은 일견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왜 그럴까. 첫 번째 문장은 하나의 내러티브(서술)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두 번째 문장에는 "왜?"라는 의문이 끼어들었다.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흐르는 내러티브와 달리 플롯에는 독자를 긴장시키는 역동성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라고 물으며 귀를 곧추세울 때는 바로 상대가 플롯이 잘 짜인 이야기를 들려줄 때이다.'플롯 찾아읽기'(도서출판 강 펴냄)는 정신분석학과 구조주의 내러티브를 결합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플롯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저자 피터 브룩스는 이야기를 의미 있는 형식으로 배열하는 플롯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그는 기호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구조주의 이론을 활용해 플롯을 분석한다. 이상의 소설에는 '나'라는 문구가 수백 번 등장한다. 구조주의 틀로 이를 일일이 확인하다 보면 작가와 그의 화자가 얼마나 강박적으로 자아에 붙들려 있는지 알 수 있다.브룩스는 그림 형제의 '별별 털북숭이'가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이라는 금지된 욕망을 플롯을 통해 어떻게 적법한 욕망으로 전환시키는지도 보여준다. 이야기 구조를 해체해 각각의 내러티브가 진행되는 방향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궁극적으로 특정 유형의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적 논리를 제공한다.저자는 구조주의의 틀을 빌리면서도 그것의 지나친 형식성과는 거리를 둔다. 18세기에 새로운 사조로 낭만주의가 등장하면서 유행했던 선민, 구원, 재림 등과 같은 지나치게 구조화된 플롯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이 책은 등장인물과 독자의 욕망에 반응하는 역동적인 플롯과 그러한 플롯짜기에 방점을 찍는다. 스탕달의 '적과 흑', 프로이트의 '쾌락을 넘어서',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등 19세기 고전소설을 잘 설계된 플롯의 사례로 제시한다. 정신분석학을 통해 텍스트와 그 구조를 받아들이는 심리과정도 파헤친다.브룩스는 "우리가 프로이트를 지향한다면 그것은 저자나 내러티브 인물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함이 아니라, 텍스트 구조화 과정에 심리 구조화 과정을 포개놓음으로써 독서의 심리 작용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독서는 자신과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따라서 플롯은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고 독자와 상호작용하면서 재창조된다. 최종적인 의미는 저자가 제시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를 완전히 소화할 수 없는 독자들은 그것의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해도 문학이 매개하는 삶의 의미에 다다르지 못한다. 이 책은 텍스트를 의미 있게 읽어내는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플롯 찾아 읽기'를 제안하고 그 방법을 제시한다. 김은진·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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