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에서 좋은 책이 한 권 또 나왔다. 다만, 두께가 압박이다. 그에 따라 가격도 만만찮다.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말똥말똥 바라보고만 있다.

 

 

 

 

 

 

 

 

 

 

 

어느덧 흘러간 이름이 돼 버린,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1918~1990)를 왜 되새기는가. 이 물음에 최근 900쪽 가까운 분량의 < 알튀세르 효과 > (그린비)를 엮어낸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45·사진)는 지난 7일 연구실에서 일화 한 토막을 꺼냈다."삼성 이건희 회장의 재판이 진행되는 때였어요. 지하철에서 어떤 노인이 '우리 회장님이 얼마나 나라를 위하셨는데 감히 구속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서민들이 왜 이 회장을 걱정하는지, 흔히 '계급을 배반한다'고 불리는 메커니즘의 작동에 대해 알튀세르가 하나의 대답을 줍니다."이렇듯 알튀세르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력이 있다"는 것이 2년6개월간 출간 작업을 해 온 진 교수의 믿음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결국 마르크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실패를 되풀이할 수는 없죠. 알튀세르는 처음부터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적 복귀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김정한·서관모 등 국내학자 10명과 알튀세르의 주요 제자인 피에르 마슈레 프랑스 릴 3대학 명예교수 등 해외 연구자 9명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왜 현실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변질됐는지, 자본주의 국민국가 내부에서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지배구조가 날로 강고화되는지를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설명한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관념이나 사상, 허위의식을 지칭하지 않는다. 물질이며, 장치다. 예를 들면 종교적 믿음도 '무릎 꿇고 기도하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이 상징하듯 매주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장치가 가족과 학교 같은 것들이다.이 이데올로기는 지배구조에 반항하지 않는 유순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즉 '종속적 주체의 재생산'이다. 진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내셔널리즘의 형태로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민족의식, 국가의 같은 정당한 구성원이라는 국민의식이 이건희 회장과 서민들을 계급으로 나누기보다 동일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나아가 '모든 개인은 독립적 주체이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더욱 구조를 강고화한다. 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종합하면 결국 이주노동자는 우리 국민이 아니고, 비정규직은 게을러서 그런 것이니 이들을 자본가에 맞서는 연대의 대상이라기보다 '적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죠." 그러나 알튀세르는 개개인을 '독립적 주체'로 보는 것을 거부했다. 진 교수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일대일의 사적인 계약 관계로 여겨지면서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은폐되는 것을 알튀세르는 '법 이데올로기'라며 비판했다"고 말했다.무엇보다 알튀세르의 문제의식은 에티엔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등 오늘날 가장 뜨겁게 인용되는 현대 철학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진 교수가 "현대 사상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라도 알튀세르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관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을 '매체'라고 말했다. 보수 매체들은 종합편성채널로 확장되고 대안매체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규제의 대상에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알튀세르의 말은 하나의 함의를 던진다. "알튀세르는 매체가 항상 양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배의 도구가 되지만 저항과 변혁의 거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어떤 지배계급이나 집단도 매체를 독점하거나 자기 뜻대로 전유하긴 어렵습니다. 만드는 순간 저항의 여지를 끌어들인다는 것이죠."<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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