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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개봉'영화가 아니라 2011년에 '본' 영화를 중심으로 작성해 본 BEST 10 목록이다. 하지만 뽑아 놓고 보니 대부분이 2011년 개봉 영화가 되어버리고 말긴 했다. 뽑다보니 열 편이 채 되지 않는다. 무리하게 열 편을 채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 하여 굳이 열 편을 모두 채우진 않는다. <카페 느와르>는 정확히는 지난 해 12월 30일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두 번을 보면서 해를 넘겨 본 영화이기에 이번 목록에 포함시켰다. 그만큼 놓아버리기 아까운 영화이다. 홍상수 감독은 언제나처럼 멋진 영화를 가지고 왔다. 점점 빨라지는 그의 영화 작업이 반가운 것은 내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이런 멋진 영화 작가의 영화를 한 편이라도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이다.

이 목록은 순위에 관계 없이 작성하였으나 (가나다 순으로 썼다) 굳이 넘버 1을 뽑으라 한다면 올해 나의 최고의 한국 영화는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이다. 이런 멋진 독립영화가 내년에도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1. 고지전 / 장훈 감독















2. 달빛 길어올리기 / 임권택 감독















3. 만추 / 김태용 감독















4. 북촌방향 / 홍상수 감독















5. 카페 느와르 / 정성일 감독















6. 파수꾼 / 윤성현 감독















7. 혜화, 동 / 민용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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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부터 하면서 시작해야겠다. 헐리웃 영화를 보다 샌프란시스코 주변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일종의 센티멘털리즘에 빠져든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도 아닐진대 이 지역에서 몇 년간 살면서 추억을 쌓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정확히 S.F.는 아니었다. Bay Bridge를 사이에 두고 샌프란시스코 건너편에 위치한 오클랜드라는 동네였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와 달리 미국내에서 위험한 도시로 유명한 지역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2002년 즈음에 발표된 결과로 수년째 미국내 살인사건 발생률 1위를 지키고 있었다 (2007년 발표에서 오클랜드는 미국내 가장 위험한 도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즈음 오클랜드의 부자 동네 친구 샌프란시스코는 뉴욕과 미국내 집값 상위 1,2위를 다투고 있었으며, 2002년 오클랜드 A`s는 기적의 20연승을 기록했다.

잠시 더 이 지역에 대해서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부분을 얘기하자면, 대표적인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와 대표적인 위험한 도시 중 하나인 오클랜드가 다리 하나 사이로 함께 있음은 물론, 그 둘 옆엔 전통적인 명문 대학 도시 버클리가 위치하고 있고, 그 셋 사이 어딘가에 디즈니에 버금가는 꿈의 공장 픽사가 있다는 점이다.

 

다시 2002년으로 돌아가자. 그 해 A`s의 기적 같은 연승행진에 온 동네는 열광했었다. L.A.로 이사를 해 살던 몇 년 동안도 내 관심은 다저스나 에인절스, 혹은 레이커스가 아니라 A`s와 Raiders였다. 이쯤되니 바로 그 A`s를, 좀 더 정확히는 A`s의 단장인 빌리 빈을 내세운 영화가 나온다 했을 때 내가 흥분하지 않을 도리란 애초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며 어떤 냉정한 입장을 지킨다는 것 역시 불가능한 것이다. 20연승이 이루어지는 순간 열광하는 콜리세움의 관중들을 보며 친구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던 나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브래드 피트다.

 

글쎄, 처음 그가 등장했을 땐 그가 이정도로 성장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수많은 잘생긴 배우들 중 하나, 로버트 레드포드와 유난히 닮아보이는 그냥 잘생기기만 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여기까지 성장했다. 개인적으론 그가 <트로이>와 같은 영화에서 보다는 <오션스 일레븐>이나 이번 <머니볼>과 같은 영화에서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머니볼>은 내가 본 야구(소재)영화 중 최고이다. 어려움을 헤쳐내고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극적인 우승을 달성하며 경기장에서 껴안고 환호하고 눈물을 흘리며 끝나는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다. 마지막 두 씬. 낙담하고 있는 빌리 빈에게 무거운 몸 때문에 한번도 2루까지 갈 생각을 안하다 처음 2루로 가려고 질주하던 도중 넘어지는 타자. 하지만 곧 자신이 홈런을 친 것임을 알고 주변의 환호를 받으며 기쁘게 베이스를 도는 그 타자의 비디오를 보는 씬. 그리고 이어지는 차 안에서 딸의 녹음된 노래를 들으며 운전하는 빌리 빈. 그리고 그의 눈으로 카메라가 들어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언젠가 A's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는 날이 오기를.

혹은 그 날이 오지 못하더라도 Just enjoy th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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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일기>를 생각하다 문득 김태균 감독의 <크로싱> 떠올랐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 국경을 넘은 아버지와 그를 만나기 위해 죽은 어머니를 묻고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아들. <크로싱>은 북한 주민의 힘든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이 왜 탈북을 감행하는지를 얘기하고, 우리가 남한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며 누리는 것이 철책 너머의 그들에겐 목숨을 걸어야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온 탈북자들을 기다리는 현실은 결코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바로 그것을 얘기하고자 <크로싱>이 아버지와 아들의 감동적인 재회와 함께 해피엔딩으로 빠져나간 자리에서 <무산일기>가 입을 연다. 이제 막 죽음의 사선을 넘은 그들의 앞에 있는 것은 '125'로 시작하는 낙인과 같은 번호와 남한 사회의 냉랭한 시선 뿐이라고 <무산일기>는 싸늘하지만 쓸쓸한 어조로 말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남한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여 살고 있는 경철은 곤경에 처하자 승철에게 자신의 집에 있는 돈을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한다. 늘 정직하게 살고자 노력하던 승철은 친구를 배신하고 돈을 챙겨 버스에서 몸을 낮춰 그를 피해 달아난다. 이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은 승철의 얼굴 정면을 시원스럽게 마주하지 못한다. 이 후반부 동안 승철은 대부분 옆모습이거나 뒷모습이다. 그나마 정면을 보일 때 조차도 다소 멀리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언뜻 보이거나, 창문이 그와 관객을 가로막아 그의 맨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처럼 그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관객은 다소 답답한 심정으로 그의 표정을 짐작할 뿐이다. 이것은 늘 맞기만하던 승철이 갑작스럽게 분노하여 자신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하는 남자를 돌로 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결코 가까이 다가가 승철의 표정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승철이 그에게 맞을 때에는 밝은 장소에서 가까이 다가가 그의 표정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정작 그가 때리는 입장이 되자 그를 어두운 다리 아래로 몰아놓고선 마치 이순간의 그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멀찌감치 훌쩍 물러나버린다. 교회에서 승철이 자신의 신분과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역시 카메라는 결코 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컷을 나누지도 않은채 묵묵히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본다. 이렇게 감독은 어느 순간에 마주치면 승철의 얼굴을 보지 않을 것을 선택한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감독은 선택을 하고 결단을 해야 하는 시점에 끊임없이 다다른다. 혹자는 감독의 일은 선택이라고까지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할 것인지 말것인지 선택을 해야하는 것을 시작으로, 카메라를 이쪽에 세울 것인지 저쪽에 세울 것인지, 씬을 여기서 시작할 것인지 좀 더 나중에 시작할 것인지, 인물을 이쪽에 세울지 저쪽에 세울지, 촬영을 이곳에서 할 것인지 저곳에서 할 것인지 등 영화를 찍어나가면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밀고 나아가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과 계속해서 맞닥뜨린다. 그리고, 관객은 그 선택과 결단의 끝에 감독이 완성한 영화를 마주하며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더 중요하게는 감독이 어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허우 샤오시엔에게는 '세상에 대한 예의'이고, <서편제>에서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먼 길을 떠나는 송화에게 길잡이 아이 하나를 붙여 보내며, 만일 그녀를 혼자 보낸다면 "그건 이미 사람 사는 땅이 아니"라고 말하는 임권택의 믿음이다. 첫 장편을 들고 나온 박정범 감독의 시선, 혹은 그가 어떠한 선택과 결단을 통해 영화를 만들어 갔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신인 감독을 바라보며 관객이 그의 더 큰 발전을 위해 한번쯤 가져 볼 필요가 있는 태도일 것이다. 

감독은 탈북자의 생활을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세워 고정시켜 놓고 멀리서 빳빳이 서서 훓어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서 함께 서서 바라보는 길을 선택한다. 단단히 발을 디디지 못한 카메라는 핸드 헬드로 계속해서 불안하게 조금씩 흔들리며 승철과 그의 주변을 바라보고, 이 속에서 관객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탈북자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아간다. 승철을 비롯한 탈북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남한으로 탈출하였으나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남한 사회와 섞이지도 그 속에 뿌리 내리지도 못한 채 차도 위에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버스를 피하며 하루하루 불안하게 흔들리며 살아갈 따름이다. 카메라는 그러한 이들을 묵묵히 바라본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마치 누군가의 시선처럼 느껴지고 그것은 곧 관객의 시선으로 돌아온다. 감독은 핸드 헬드의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을 승철에게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 앉힘으로써 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 줄 것을 부탁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이들을 대부분의 경우 방관하고 있다. 이것이 아주 냉정하게 바라본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카메라는 승철을 비추지만 정작 거기서 관객이 생각해야 할 것은 관객 자신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남한의 냉정한 시선 속에서 승철은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몇 번에 걸쳐 대들듯이 질문을 한다. 그는 잘못을 한게 없다. 아니, 그가 생각하기에 그 자신은 전혀 잘못을 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가 짝사랑하는 여인은, 그가 목숨을 걸고 철책을 넘어 찾아온 지극한 짝사랑의 대상인 남한은 그가 무엇을 잘못한건지 모르는게 바로 잘못이라고 차갑게 말한다. 반면 백구는 승철에게 잘못했다며 타박하지 않는다. 맥도날드 앞에서 햄버거를 나눠먹으며 정을 쌓은 개와 사람은 서로에게 어쩌면 유일한 친구이자 분신과도 같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우정도 결국 끝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때 변하는 것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노래방에서 맥주가 떨어지자 승철은 가게 앞 편의점으로 맥주를 가지러 간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그를 따라오다 차에 치어 죽은 것으로 보이는 백구를 발견한다. 승철은 순간 놀라고 그의 손에 들려진 비닐봉지의 한쪽 끝을 맥없이 툭하고 놓친다. 승철은 백구를 한참 서서 바라본다. 만일 승철이 여기서 죽은 백구를 끌어 안고 슬픔에 흐느낀다면 아직 그에겐 '무산 출신의 정직한 승철'로 남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감독은 승철이 백구를 버려둔 채 그냥 지나치도록 하는 쪽을 선택한다. 한참을 서서 백구를 바라보던 승철은 마치 결심이라도 한듯 백구를 지나쳐 노래방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백구는 차가운 도로 위에 그대로 누워있다. 승철은 툭하고 떨어진 비닐봉지의 한쪽 끝과 함께 지금까지 그가 간직하던 '무산 출신 승철'의 마음을 그 길 위에 버리고 간다. 그는 간신히 잡은 남한 사회로의 편입의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자 지금까지의 그를 버리고 그가 배신한 친구 경철의 모습을, 그리고 동시에 남한 사회를 닮아가는 것이다. 이제 승철은 다시는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뒷모습 위로 감독은 이 사람을 여기까지 몰아간 것이 과연 누구인지 묻는다.

우리 사회엔 탈북자들 외에도 인권 사각지대에 위치한 수많은 빈곤계층이 존재한다. <무산일기>는 단순히 탈북자의 얘기라기 보다는 인권 사각지대의 소외계층에 관한 얘기로 받아들이는게 더 맞을 듯 하다. "탈북자가 등장하지만, 탈북자들만을 다루는 이야기는 아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승철의 삶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봐줬으면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혹독한지,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길 바란다." 인터뷰에서 밝힌 감독 자신의 말처럼 그는 탈북자의 생활을 정직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다음 작품에서도  박정범 감독이 그의 정직한 시선만은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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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은 어쩌면 서울을 찍고 싶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괴테의 이야기를, 도스토에프스키의 이야기를 2008년의 한국에, 한국의 서울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2008년의 서울의, 21세기 지금 현재 우리 서울의 공기와 시간을 붙들어 담고자 하였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쇼트들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쇼트들은 이후에도 종종 삽입되어 보여진다. 마치 물 위를 부유하듯이 카메라는 서울의 이곳 저곳을 흐르며 무심한 듯, 혹은 뭔가를 아쉬워하는 듯한 느낌으로 서울을 바라본다. 서울을 향한 애도, 혹은 연민. 청계천을 따라 흐르던 카메라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이어지던 트래킹 쇼트가 교회에 이르러 문득 끝나는 순간, 청계천은 거기서 죽은 것이다.

영수가 죽은 후, 영수의 집 문에 등이 걸린다. 죽은 영수가 누워있고 어머니가 그를 부여잡고 서럽게 통곡한다. 사각의 프레임. 그리고 그 안에 양쪽으로 조금씩 닫힌 방문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프레임 안으로 카메라는 둘을 바라본다. 프레임 안의 프레임. 그리고, 그 둘 뒤로 작은 창문이 또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그 작은 프레임 안으로 보이는 서울 타워. 죽음의 시간을 바라보는 프레임 안에서 우리는 서울 타워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극장전>에서 동수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아무데나 있는' 서울 타워.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그냥 '서울.' 영수의 죽음. 혹은 서울의 죽음. 정성일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죽음을 미루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영수의 죽음을 미루는 시간. 하지만, 어쩌면 서울의 죽음을 미루는 시간. 영화의 첫 쇼트. 아기를 임신한 어린 소녀는 죽기 위해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고 보도자료에 밝혀져 있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영수가 죽고 이제 영화가 끝난게 아닌가하고 느껴지는 순간 소녀는 다시 등장한다. 소녀는 친구와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오른다. 이제 어떡할거야? 낳아야지. 그래서 어떡할건데? 길러야지. 낳아서 어떡할건데? 살아야지. 친구의 물음에 소녀는 고개를 들고 떳떳이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뱃속의 아이에게 인사한다. 해피 버스데이. 정성일은 어쩌면 지금 서울의 죽음을 목도하면서도 동시에 차마 손을 놓지 못하고 서울이 계속 살아나아가 주길 원하는지도 모른다. 혹은, 소녀가 남산에 오르기 전 소녀를 임신 시킨 것이 분명한 소년을 찾아가 그를 때리려다 말고 문득 한번 껴안고서 떠나갈 때, 서울은 거기서 죽은 것이다. 그리고, 남산을 올라가며 정성일은 서울이 거기서, 그러니까 어디서나 보이는 그곳에서 서울이 곧 태어날 아기와 함께 다시 새로 태어나 주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지금 이명박의 시대에, 혹은 오세훈의 서울에서 개봉한 것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밤중에 별을 잃고 선화여인숙 앞에 맥 없이 앉아 있는 저 동방박사 세 사람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일 없이 소녀와 함께 해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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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16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영화 봤는데요, 관람객이 너무 없어 정말 한산하더라구요. 정치 시스템 (이명박시대, 오세훈등)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에 미치지 않는 것 같아요.

허스키 2011-11-16 12:22   좋아요 0 | URL
영화는 어떠셨나요? 저에겐 작년의 영화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영화였습니다.
 

먼저 밝혀두어야 할 것 몇 가지.

나는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중요한 영화들을 많이 놓쳤다. <엉클 분미>도 <경계도시 2>도 보지 못하였다. 혹은, <계몽영화>도 <예언자>도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놓친 그 영화들이야 말로 BEST 10이라는 목록 아래 어울리는 영화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적는 올해 개봉작 중 BEST 10은 올해의 나를 향한 부끄러운 반성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 목록은 지극히 사적인 목록이다. 즉, 이 목록은 올해 내게 '개인적'으로 기억되는 영화의 목록이지, '객관적'으로 바라본 올해 개봉한 '좋은 영화'의 목록은 아닌 것이다. 아니, 내가 '좋은 영화'의 목록을 거론할 처지나 되던가.


1. 카페 느와르 / 정성일 

2. 옥희의 영화 / 홍상수 

3. 하하하 / 홍상수 

4. 허트 로커 / 캐서린 비글로우 

5. 클래스 / 로랑 캉테 

6. 시 / 이창동 

7. 시라노; 연애조작단 / 김현석 

8. 부당거래 / 류승완 

9. 인 디 에어 / 제이슨 라이트먼 

10. 아저씨 / 이정범 

...................... 

'영화노트' 카테고리를 추가하며 예전에 써 둔 글을 옮기고 있다. 2010 Best라. 어느새 시간이 슬슬 2011 Best 10을 골라볼 때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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