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Mr. Know 세계문학 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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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을 보고 철자법 배우겠다는 생각은 당신도 안 하시겠지?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16)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21)

 

"참 병신 같은 친구도 다 있네." …… "……그걸 자르다니! 그런 병신은 지옥에나 가야지. 그것참 순진하고도 깜깜한 친굴세. 그건 장애물이 아니에요!" / …… / "……이 답답한 양반아. 그건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라는 걸 왜 모르셔?" / …… / "병신은 천국에 못 들어가요."(25)

 

"……내가 보기에는, 두목은 배고파 본 적도, 죽여 본 적도, 훔쳐 본 적도, 간음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 수 있겠어요? 당신 머리는 순진하고 살갗은 햇빛에 타보지 않았어요."(29)

 

"그렇게 기적 같은 순간이 오면 인생의 모든 것은 아침처럼 산뜻해 보이는 법, 대지는 부드럽고 구름에 그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어 갔다."(54)

 

"……여자란 건강에 해롭고 토라지기 잘하는 동물이랍니다. 누가, 사랑한다, 갖고 싶다고 하면 여자는 웃음을 터뜨립니다. 여자는 당신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당신이 여자에게 입맛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여자가 싫다고 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자란 가엾게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겁니다.……"(56)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62)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65-66)

 

"……강인했기 때문에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그를 나는 존경했다."(66)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77-78)

 

나는 죽어가는데도 화냥년들은 죽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뜨끈뜨끈하게 재미 보고, 사내들은 그런 것들을 끼고 주물럭거리는데 나는 그것들이 밟고 다닐 흙이 되고 있으니 이게 보통 속상한 일인가요!(93)

 

"무엇이 영원한 사업인가요?" / "그야 물론 여자지요!"(102)

 

"두목, 내 생각을 말씀드리겠는데, 부디 화는 내지 마시오. 당신 책을 한 무더기 쌓아 놓고 불이나 확 싸질러 버리쇼. 그러고 나면 누가 압니까. 당신이 바보를 면할지. ……"(110)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 ……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 …… "두목, 계산 같은 건 이제 그만 하쇼. 숫자놀이는 그만두고 저울은 부숴 버리고, 구멍가게는 문을 닫아 버리라고요. 당신 영혼은 구제와 파멸의 갈림길에 선 거요. ……"(118)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정네들의 잘못이에요. 우리는 최후의 심판 날에 우리가 한 짓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가 얼마 전에 서로 얘기했다시피 하느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들 몫의 스펀지를 준비하고 계시지요. 그러나 그 죄만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여자와 잘 수 있는데도 자지 않는 사내에게 화 있을진저! 남자와 잘 수 있는데도 안 자는 여자에게 화 있을진저!……"(125)

 

성서에서 '오늘 빛이 났도다'라고 했더라면 사람들의 가슴은 그렇게 뛰지는 않았으리라. 그랬더라면 기독교 사상은 성스러워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세계를 정복할 리도 없었으리라. 그랬더라면 기독교의 사상은 한갓 정상적인 물리적 현상으로밖에는 기술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의 상상력(즉 우리의 영혼)에 불을 붙이지도 않았으리라. 그러나 죽음의 겨울에서 태어난 빛은 아기가 되고 아기는 하느님이 되면서 20세기 동안 우리들의 영혼은 그 젖줄을 빨게 되었을 터였다.(134)

 

"……그래서 40일 동안 고기도 먹지 말고 포도주도 마시지 말고 금식하라고 하는 겁니다. 왜! 그래야 먹고 마시고 싶어 죽을 지경이 되지. 돼지 새끼들 같으니……속임수라는 속임수는 다 써 가면서 우리와 노름하거든요!"(135)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언젠가 기술자 하나가 가르쳐 줍디다) 물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쬐끄만 벌레가 우글거린답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 안 마시면 목이 마르지……. 두목, 확대경을 부숴 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정신이 번쩍 들고!"(136)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140-141)

 

"안 가? 왜 안 가? 가고 싶지 않다는 거야?" / "함께 가주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안 갈래요." / "왜 안 가? 너는 자유인이야. 아닌가?" / "아니에요." / "너는 자유가 싫으니?" / "싫어요." / 나는 믿을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사실이었지요. / "아니, 너는 자유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냐!" / "그래요. 싫어요, 싫어요, 자유가 싫어요!" / ……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175)

 

"오라, 인간이란 짐승이로구나. 여보쇼, 두목, 책은 책대로 놔둬요. 창피하지도 않소? 인간은 짐승이오. 짐승은 책 같은 걸 읽지 않소."(177)

 

나는 인간의 고통에 따뜻하게 그리고 가까이 밀착해 있는 이들을 존경했다. ……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은 팔자소관이라고 주장하면서 겁쟁이로 사태를 바로잡아 보려고 했던 터였다.(188)

 

계절의 어김없는 리듬, 무상한 생명의 윤회, 태양 아래서 차례로 변하는 지구의 네 가지 얼굴, 생자필멸(生者必滅), 이 모든 사실이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조여 왔다. 해오라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경고였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195)

 

저 원대한 희망(결혼)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며 빛을 발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늙은 세이렌은 매력을 깡그리 상실한 것이었다. …… 부인에겐 진지하면서도 존경을 받는 범부(凡婦), 착하고 현숙한 아내 이상의 열망은 더 이상 없었다. 더 이상 화장도 하지 않았고 맵시를 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부인은 있는 그대로, 결혼하고 싶어 하는 가련한 여자의 모습만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었다.(241)

 

"…… 나는 당신의 소위 그 '신비'를 살아 버리느라고 쓸 시간을 못 냈지요.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떄로는 산투리를 살아 버렸어요. 그러니 내게 펜대 운전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러니 이런 일들이 펜대 운전사들에게 떨어진 거지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248)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259)

 

"……하느님이 있다고 해봐야, 때가 되어 내가 그 앞에 서야 한다고 해도 하나도 겁나지 않아요. 당신에게 어떻게 알아듣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내 보기엔, 그게 별로 중요할 것 같지가 않다 이거예요. 하느님이 미쳤다고 지렁이 앞에 앉아 지렁이가 한 짓을 꼬치꼬치 캔답니까? 그리고 그 지렁이가 이웃에 있는 암지렁이를 꾀어 먹고 금요일에 고기 한 입 먹었다고 화를 내며 질책할 것 같소? 염병할! 당신 마음대로 해요. ……"(268)

 

"……하느님도 재미를 봅니다. 나처럼 죽이고, 부정한 짓을 하고, 사랑하고, 일하고, 나처럼 불가능한 일 하기를 좋아합니다. 하느님도 먹고 싶을 때 먹고 여자를 고릅니다. 물 찬 제비 같은 여자가 지나가는 걸 보면 당신 가슴도 뛸 겁니다. …… 하지만 두목, 몇 번 말했지만 다시 말하건대, 하느님이나 악마는 하나고, 똑같은 거예요."(268)

 

한 줌의 흙이로구나. 배고파 할 줄도 알고, 욱시도 하고, 키스도 하는 한 줌의 흙, 한 덩어리 흙이면서도 사람을 울리던 것. 지금은…… 우리를 이 땅에 데려다 놓은 악마는 어느 놈이고, 이 땅에서 데려가는 악마는 또 어느 놈인고?(300)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善)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305-306)

 

'……천당의 일곱 품계도 이 땅의 일곱 품계도 하느님을 품기에 넉넉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가슴은 하느님을 품기에 넉넉하지. 그러니 알렉시스야, 조심하거라. 내 너를 축복해서 말하거니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못쓰느니라!'(316)

 

내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316-317)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이 날 어쩔 수 있다는 것잉? 죽이기밖에 더 하겠소? 그래요, 죽여요. 상관 않을 테니까. 나는 분풀이도 실컷 했고 하고 싶은 말도 실컷 했고 춤출 시간도 있었으니…….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요!" / 조르바의 춤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을 이해했다. 나는 조르바의 인내와 그 날램, 긍지에 찬 모습에 감탄했다. 그의 기민하고 맹렬한 스템은 모래 위에다 인간의 신들린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329)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330)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양국 맛이지. 멀건 양국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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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 제3판 나남신서 410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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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에 따르면 근대 이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인다. (One had the right to kill those who represented a kind of biological danger to others.)”(154) 실제로 어느 당이 집권을 하건 우리는 모두 아동연쇄성폭행살인범의 행적에 공포를 느끼며 그의 얼굴을 까고 사형을 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국가가 먼저 나서서 반역자를 효수하고 그의 목을 광장에 내걺으로써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는 방식이 아니다. 권력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타고 흐르면서 은밀하게 작동한다. 버스와 강의실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국가가 그들을 억압하지 않았다. 국가는, 권력은 자신들의 건강과 안전에 불안을 느끼고 그에 대한 심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편승하여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북돋우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적절한 행정적 조치를 취할 뿐이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건강과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지식과 생활방식을 습득해가고(이를테면, 담배와 암발병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식, 음식물의 칼로리에 대한 지식, 늦은 밤 귀가길의 안전수칙 등) 그러한 앎을 고취하는 여러 장치들(의학담론, 언론의 보도, 남성으로서 지켜야 할 매너,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명목으로 시행되는 정책 등)이 생겨난다. 과거의 “‘죽게 ‘하든가’ 살게 ‘내버려두는’ 낡은 권리가 살게 ‘하거나’ 죽음 속으로 ‘몰아내는’ 권력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154) 국가가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이제 권력은 직접 나서서 누군가를 죽이는 방식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행사된다. 생명을 증진시키는 것이 권력 행사의 관건이 된 시대에 권력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그것이 통치의 영역으로 삼는 곳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은 “생명의 관리가 정치권력의 책무로 대두된 사회에 대해 최초로 경악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의 하나였다.”(155) 『자살론』의 저자인 뒤르켐으로부터 시작된 사회학은 이러한 통치의 위기에 대한 뒤치다꺼리로 기능해왔던 것이다. 또한 집권 초기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촛불 집회의 동력은 미국산 쇠고기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있었다.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공포는 권력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권력 행사의 좋은 방편이 되기도 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이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로 색칠되거나 그 유족들이 구속되어 있는 현실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제 사람들은 권력에 대해 자신들의 생명을 보장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되었고, 권력은 그런 사람들을 거두어 살게 하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마치 상식인 것처럼 되어버린 복지에 대한 갈급한 목소리들을 보라. 그리고 그에 화답하는 여야를 막론한 복지 컨센서스를. 지금의 사회는 국가와 사회의 보살핌이 없이는 개인이 홀로 살아남기가 너무나 어려워졌다. 내버려두면 헐벗고 굶주려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개인은 국가와 기업과 다른 개인들에게 끊임없이 복지와 나눔과 도움과 너그러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고 권력은 이들을 거둠으로써 혹은 거두지 않고 내버려둠으로써 행사된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국가의 기능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개인의 영역을 보장해달라고 했던 민주화의 외침이 어느새 아이의 하교길과 애인의 귀가길을 염려하면서 CCTV와 경찰력을 강화시켜달라는 자발적인 요청으로 변모하였다. 권력은 스스로 먼저 나서서 자신의 정당성을 강압적으로 주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사람이 생명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속에 떨고 있을 때 권력이 등장해주기를 바라는 요청은 소리없이 높아지게 된다. “이제부터 권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마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온통 에워싸는 것이 될 것이다.”(156) 생명, 안전 그리고 그에 대한 공포로 온통 포박되어 있는 우리가 획득해야 할 자유는 과연 무엇인가? 공포로부터의 자유인가, 생명과 안전으로부터의 자유인가? 우리는 이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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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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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김이 빠지는 작품이었다.  

인간의 꽃이라는 아이들로 새로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결말이라면 비전향장기수라는 소재를 선택해야 했을까 싶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의 반복에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면, 그 아름다움이 최 원장의 믿음과 아이들의 사랑에서 찾아지는 것은 다소 쉬운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편으론 인생의 참 아름다움은 사람 간의 믿음과 사랑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전향을 거부하고 있는 장기수들에게 이념이란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탱해주고 있는 유일한 것이었을텐데, 이것이 다른 새로운 인간다움으로 옮아가는 과정을 보여줌에 있어서 설득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각종 고난과 실패와 어려움 속에서도 그저 살아나가는 것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점에서는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이 보다 극적이었다.  

"윤 선생, 윤 선생이 꿈꾸는 민족통일은 헛꿈이에요. 공산주의 좋아하는 남쪽 사람들 별로 없으니까요. 지조 지키는 것도 좋지만 현실을 직시하셔야지. 어지간하면 전향하도록 해요. 니나 나나 어차피 한바탕 살다 가는 인생인데."(165-166) 

내 생각에 인간다움이란 바로 이 현실주의를 어떻게 넘는가에 달려 있는 듯하다. 주어진대로 움직이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일지라도 이 투쟁, 바로 이 실존적인 투쟁을 존중해주는 것이야말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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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사회과학 -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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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꽉 찬 답답함이었다. 해소될 것 같지 않은 현실의 답답함에 더하여, 나와 우리의 문제를 남이 대신 써주었다는 열등감까지 더해진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의 문제제기는 도발적이고 강렬했으며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우석훈의 책은 언제나 기대를 밑돌았다. 그가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어떤 둘레 안에 들어있는 것이 전부인 것 같았고 예측 가능했다. 그의 다작을 의심하게 되었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 생명력 있는 사회과학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꿈이면서 동시에 감히 선점할 수 없는 제목이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이라는 이 담담한 진지함을 우석훈이 과연 어떻게 감당할지 기대했고, 결국 나는 이 제목이 성급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라는 표지의 부제는 그가 생각하는 사회과학의 모양새를 직관적으로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직관의 세기는 책 전체의 내용보다 강렬한 것이었다. 열세 장으로 이루어진 책의 본문은 실망스러웠다. 대중적 독자층을 고려하여 내용의 깊이보다는 평이함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대립되는 두 관점 및 방법론의 대립점을 첨예하게 제시하고 고민의 지점을 던져주는 것도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그가 혹시 자신의 활발한 활동이 사회적으로 역동적이고 유용한 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물론 그는 아직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나,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갈지, 그 독자들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석훈의 충실한 팬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의 출세작을 감명깊게 읽었던 나는 그가 보다 진지하게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석훈의 장점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노트에 무엇인가를 쓰면서 습작했던 대학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이 되어 어떤 삶을 살지는 모르겠지만, 습작을 하던 그 순간만큼은 독재에 대한 증오도 없었고, 삶의 걱정도 없이, 그야말로 상상력만이 춤추던 시간이었다."(227) 

아마도 그는 저때의 행복한 기억으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수강생들과 그 습작의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진실했다면 그는 굳이 사회과학 책을 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 자체로 이미 사회과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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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학의 탄생
미셸 푸꼬 지음 / 인간사랑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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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번역은 너무하다. 이전에도 번역 때문에 몇 번을 읽다가 포기하곤 했는데 이번에 오기로 읽었다. 원전이 가진 중요성에 비해 번역은 형편없다. 이 번역본만으로 공부를 하고 글을 쓴 선배 독자들에게 경의를 느낌과 동시에 큰 의심이 든다. 국내에 소개된 푸코는 주로 후기 권력론 중심이며 초기 고고학 시기의 사상은 비교적 소홀하게 다뤄지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는 이 책의 번역 상태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개정판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니 당분간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역자 서문과 후기 그리고 각주에서 장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배짱에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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