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 제3판 나남신서 410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푸코에 따르면 근대 이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인다. (One had the right to kill those who represented a kind of biological danger to others.)”(154) 실제로 어느 당이 집권을 하건 우리는 모두 아동연쇄성폭행살인범의 행적에 공포를 느끼며 그의 얼굴을 까고 사형을 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국가가 먼저 나서서 반역자를 효수하고 그의 목을 광장에 내걺으로써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는 방식이 아니다. 권력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타고 흐르면서 은밀하게 작동한다. 버스와 강의실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국가가 그들을 억압하지 않았다. 국가는, 권력은 자신들의 건강과 안전에 불안을 느끼고 그에 대한 심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편승하여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북돋우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적절한 행정적 조치를 취할 뿐이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건강과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지식과 생활방식을 습득해가고(이를테면, 담배와 암발병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식, 음식물의 칼로리에 대한 지식, 늦은 밤 귀가길의 안전수칙 등) 그러한 앎을 고취하는 여러 장치들(의학담론, 언론의 보도, 남성으로서 지켜야 할 매너,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명목으로 시행되는 정책 등)이 생겨난다. 과거의 “‘죽게 ‘하든가’ 살게 ‘내버려두는’ 낡은 권리가 살게 ‘하거나’ 죽음 속으로 ‘몰아내는’ 권력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154) 국가가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이제 권력은 직접 나서서 누군가를 죽이는 방식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행사된다. 생명을 증진시키는 것이 권력 행사의 관건이 된 시대에 권력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그것이 통치의 영역으로 삼는 곳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은 “생명의 관리가 정치권력의 책무로 대두된 사회에 대해 최초로 경악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의 하나였다.”(155) 『자살론』의 저자인 뒤르켐으로부터 시작된 사회학은 이러한 통치의 위기에 대한 뒤치다꺼리로 기능해왔던 것이다. 또한 집권 초기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촛불 집회의 동력은 미국산 쇠고기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있었다.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공포는 권력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권력 행사의 좋은 방편이 되기도 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이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로 색칠되거나 그 유족들이 구속되어 있는 현실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제 사람들은 권력에 대해 자신들의 생명을 보장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되었고, 권력은 그런 사람들을 거두어 살게 하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마치 상식인 것처럼 되어버린 복지에 대한 갈급한 목소리들을 보라. 그리고 그에 화답하는 여야를 막론한 복지 컨센서스를. 지금의 사회는 국가와 사회의 보살핌이 없이는 개인이 홀로 살아남기가 너무나 어려워졌다. 내버려두면 헐벗고 굶주려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개인은 국가와 기업과 다른 개인들에게 끊임없이 복지와 나눔과 도움과 너그러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고 권력은 이들을 거둠으로써 혹은 거두지 않고 내버려둠으로써 행사된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국가의 기능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개인의 영역을 보장해달라고 했던 민주화의 외침이 어느새 아이의 하교길과 애인의 귀가길을 염려하면서 CCTV와 경찰력을 강화시켜달라는 자발적인 요청으로 변모하였다. 권력은 스스로 먼저 나서서 자신의 정당성을 강압적으로 주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사람이 생명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속에 떨고 있을 때 권력이 등장해주기를 바라는 요청은 소리없이 높아지게 된다. “이제부터 권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마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온통 에워싸는 것이 될 것이다.”(156) 생명, 안전 그리고 그에 대한 공포로 온통 포박되어 있는 우리가 획득해야 할 자유는 과연 무엇인가? 공포로부터의 자유인가, 생명과 안전으로부터의 자유인가? 우리는 이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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