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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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에 읽고서 단순히 '재미있다'는 감상으로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재독하게 되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원래의 기억대로 재미는 엄청 있는데 동시에 아니 이게 이런 책이었나? 싶을 정도의 깊이와 슬픔 또한 읽혀져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마 20대 독자와 30대 독자의 차이이겠지. 20대에는 어린 소녀들의 꺄르르 학창시절 에피소드들에 더 눈길이 갔었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격변하는 시대 속에 저자와 친구들이 소녀에서 성인으로 성장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전체적인 인생상이 더 눈에 들어온다.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처럼 냉전시대에 우연히 한 학교에서 공부하였던 소녀들의 인생은 하나하나가 다 소설 같다. 공부를 잘했다거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거나, 좋은 외모를 타고 났다거나 하는 어린시절의 조건들이 인생이란 장기전 앞에서 별 의미가 없다는 것. 바르고 선하게 산다 하여도 불행은 언제든 닥쳐올 수 있고 위선과 자기기만으로 가득찬 삶이라도 오히려 본인은 더 속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차갑고 냉정할 수 있는 인생사의 진실을 요네하라 마리는 뜨거운 가슴과 필치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재독을 한다는 건 기본 이상으로 좋은 책이란 뜻이지만 특히나 더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재독. 제목으로 보면 언뜻 가벼운 소녀수필 같아 보이지만 나처럼 30대 이상 독자들이 읽으면 더 와닿을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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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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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비에트 학교 선생님들은 제자의 재능을 발견하면 과장될 정도로 법석을 피우는 버릇이 있다. 너무 좋아서 그 기쁨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동료와 반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음악 담당 이바노브나 선생님과 일리치 선생님은 특히 그런 경향이 강했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도 당장에 이 기쁨이 전염되어 그런 재능 있는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마음으로부터 행복해하곤 했다.

다른 이의 재능을 이렇게 사리사욕 없이 축복해주는 넓은 마음, 사람 좋은 성향은 러시아인 특유의 국민성이 아닐까 하고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나서다. 러시아어 통역으로 많은 망명 음악가와 무용가를 접했는데 그들은 내게 이런 얘기로 망향의 한을 풀어놓았다.

"서구로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 이것만큼은 러시아가 뛰어났다고 절실하게 느낀 게 있어요. 그건 재능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죠. 서구에선 재능이 자기 개인에 속하는 것이지만, 러시아에선 모든 이의 재산이랍니다. 그러니 이곳에선 재능 있는 자를 시기해서 어떻게 하면 끌어내릴까 안달이죠. 러시아에선 재능 있는 자는 무조건 사랑하고 보두가 받쳐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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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공부 - 16개 국어를 구사하는 통역사의 외국어 공부법
롬브 커토 지음, 신견식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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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

왜 언어를 배워야 하는가?
엉성하게 배워도 알아두면 좋을 만한 것이 언어밖에 없기 때문에 언어를 배워야 한다. ...오직 언어의 세계에서만이 아마추어가 가치를 발휘한다. 실수가 가득하다고 해도 좋은 의도의 문장은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 베네치아 기차역에서 어떤 기차를 타야 하느냐는 엉터리 이탈리아어 질문도 절대 쓸모없지 않다. 잘 모르고 입 다물고 있다가 밀라노가 아니라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일보다 훨씬 낫다.

씁쓸하지만 한 번은 언급되어야 하는 교훈이 있다. 날마다 그리고 한 주도 안 거르고 집중적인 노력을 해야만 언어 학습에 쏟은 시간이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 진지한 사람은 일반화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한 가지 주장은 여기서 적절해 보인다. 평균적인 언어 학습자는 일주일에 최소한 10-12시간의 학습이 필요하다. 만약 이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수 없거나 투자하기가 싫다면 언어 학습 계획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정답, 저마다 흥미나 관심이 있는 내용의 텍스트. 독일에는 이런 말이 있다. "흥미는 사랑보다 강하다." 그리고 흥미는 가장 무서운 적을 물리친다. 바로 지루함을 말이다.

발음은 언어 학습에서 특히나 어려운 영역이며 언어 통달에 매우 중요한 기준점이다. 발음은 어휘와 문법 지식이 상당하지 않다면 별다른 값어치가 없을지라도 처음 입을 열 때는 지식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것은 외모와 비슷하다. 첫 선을 보일 때는 예쁜 외모가 정답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멍청하고 따분하고 심지어 못된 성격일지라도 어쨌거나 첫 싸움은 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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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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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름답다.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근접한 언어라지만 번역을 뚫고도 전해지는 이 아름다움을 보면 11년간 작가가 다듬고 다듬었다는게 과장은 아닌듯 하다.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하여 배열하고 정돈하였음이 느껴진다. 사실 서사에는 큰 줄거리가 없다. 한 한량 유부남이 온천장에 놀러갔다가 그 곳의 어린 게이샤를 만나는데 한량이 큰 열정 없이 심드렁한데 비해 게이샤는 뜨겁게 그를 쫓아다니고 사랑한다는... 그러다가 또 다른 어린 여자 또한 그 남자 한량에게 은근슬쩍 마음을 보인다는... 일본 만화에서 평범하고 별 볼것 없는 남자주인공을 미소녀가 얼굴 붉히며 좋아하는것에 대해 정말 현실성은 하나도 없지만 중2쯤 되는 아이들의 망상이려니 싶어 그러려므나 했었는데, 사실 이는 일본인들의 정서속에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진(?) 나름 유서가 깊은 판타지이자 망상이었음을 이 소설로서 확인하게 된다. 이 민족은 이런 허무맹랑한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예쁘게 예쁘게 포장하여 노벨문학상을 타 낸 민족인 것이다...! 이렇게 리뷰를 쓰니 무척 가벼워보이고 이 책도 좀 우스워보이지만 사실 책을 읽을 때는 덜덜덜 떨면서 읽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워? 하는 마음으로.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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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08-21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일라님이 그렇다심 반드시 읽겠어요!!
근데,,, 어떻게 지내세요???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제 페이퍼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는데,,, 레일라님은 페이퍼를 읽어도 모르겠군요. 늘 뭔가를 하시는 야무지고 똑똑한 분이시니 걱정은 안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안 가는 건 아니랍니다. 가끔 살짝 알려줘요~~~~!! 늙은이라 알려준 거 까먹기도 하지만~~~ㅠㅠ

2017-09-17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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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허약한 존재예요. 머리부터 뼈까지 완전히 와싹 뭉개져 있었대요. 곰은 훨씬 더 높은 벼랑에서 떨어져도 몸에 전혀 상처가 낫지 않는다는데.

하고 오늘 아침 고마코가 했던 말을 시마무라는 떠올렸다. 암벽에서 또 조난 사고가 있었다는 그 산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곰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털가죽이라면 인간의 관능은 틀림없이 아주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노을진 산을 바라보노라니, 감상적이 되어 시마무라는 사람의 살결이 그리워졌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복도가 삐걱거려 창피해요. 살며시 걸어도 금방 알아채겠죠. 부엌 옆을 지나면 고마짱, 또 동백실이야? 하고 웃어댄다니까요. 이렇게 신경 쓰일 줄은 몰랐어요.
-마음이 좁아 곤란하겠군.
-모두 이미 알고 있는걸요.
-그러면 안 되잖아.
-그래요. 나쁜 평이 일기라도 하면 좁은 마을에선 끝장이죠.

하고 말했으나 금방 얼굴을 들어 미소 지으며,

-아니, 괜찮아요. 우린 어딜 가도 일할 수 있으니까.

너무나 솔직하고 실감 어린 어조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에겐 몹시 뜻밖이었다.

-정말이에요. 어디서 벌건 다 마찬가지죠. 징징거릴 필요 없어요.

아무렇지 않은 말투이지만, 시마무라는 여자의 속 깊은 울림을 들었다.

- 그걸로 족해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건 오직 여자 뿐이니까.

하고 고마코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옷깃이 들춰져 있어 등에서 어깨로 흰 부채를 펼친 듯하다. 분을 짙게 바른 살결은 어쩐지 슬프게 도톰하여 모직천 같기도 하고 동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 요즘 세상에선 그렇지.

하고 중얼거리다 시마무라는 이 말이 너무나 공허하여 오싹해졌다.

그러나 고마코는 단순히,

-언제건 그래요.

그리고 얼굴을 들더니 힘없이 덧붙였다.

- 당신은 그걸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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