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려고 하지 마라 -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유혹적인 글쓰기
메러디스 매런 엮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생각의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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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바깥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쓸거리가 더 이상 없다면 나도 내 내면 세계에서 몇 가지를 짜내겠지만, 내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은 내 삶의 목표가 아니다.

사람들은 소설 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큰 키와 운동신경이 없으면 덩크슛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것은 알면서도, 뇌가 있고 노트북이 있는데 소설 그까짓 게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어? 라고 생각한다.

출판업계에서는 여성작가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여성소설이라는 좁은 범주에 넣어버린다. 아차 하는 사이 책에는 분홍색 커버가 둘러져버리고, 남성 독자들은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내 책을 꺼내 읽는 행동도 감히 시도조차 못하게 된다. 내가 왜 그런 식으로 남성독자들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그래서 워터 포 엘리펀트는 일부러 분류하기 애매하도록 신경을 좀 썼다. 아흔세 살의 할아버지가 화자인 소설이라면 범주화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글의 공통점은 글에, 문장에, 문단에 리듬이 있다는 점이다. 리듬이 없으면 책을 읽기가 힘들다. 그런 점에서 글은 음악과 매우 비슷하다. 책 속에는 저마다 고유의 리듬이 있어서 독자들을 이끌어준다. 사람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이 저절로 흘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문장이나 문단에 내재한 리듬은 그 글의 디엔에이와도 같다. 그런 리듬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에게는 오만 가지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글을 쓸 수 없는 약 20년간의 공백 기간이 있다.

시도했었다. 실패했었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더 잘 실패하라. -Samuel Beckett

위대한 작가들은 대개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고 힘들어한다. 시시한 작가들은 대개 자신감이 넘친다

지금 나는 나이 쉰이 다 되어 간다. 쓰고 싶은 건 뭐든지 쓸 수 있는 나이다. 이 사람 저 사람 감정을 보호하려 애쓰면서 이렇게 써도 되는지 아닌지 허락을 받으며 쓰고 싶지는 않다.

누구도 당신에게서 글쓰기를 앗아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누가 당신에게 글쓰기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능은 있으나 부질없이 인생을 허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심지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을 잃어도 끈질기게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재능도 있고 자기 관리도 잘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성실한 자기 관리는 재능은 무론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스스로를 그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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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2-1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 쓰는 게 제 삶의 목표인데 괜히 부끄러운~~~~!

2018-02-14 0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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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소설에서는 서사가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근사하고 멋진 문장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이걸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는 생각도 든다. 서사보다 주인공들의 정서와 상처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서사는 부수적인 것일 뿐이고,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우리 흔한 인간들의 상처와 말 못하는 마음들을 자신만의 나직한 단어들로 조용히 조용히 레이스처럼 뜨는 것이 아니었을지. 그리고 그 감정의 거미줄을 햇살에 비추어 반짝이는 아름다운 순간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지. 시인이 쓰는 소설도 있다. 시의 한 구절 같은 아름답고 깊은 문장들을 엮어서 소설을 쓰는 사람들. 그에 비하면 최은영의 문장은 평범하다. 오히려 과하게 아름다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듯 하다. 비유를 하자면 똑같은 크기의 조약돌을 하나하나 깔아 만든 길 같은 소설이다. 독자들이 그 길 위에 혼자 서서 거미줄의 반짝임을 느낄 수 있도록...그리고 결과물을 보자면 시인이 쓴 소설보다 최은영의 소설이 더 시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소설집이라 해야 할지 시집이라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직 젊은 작가이니만큼 다소간의 빈틈이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설이란 프레임을 이렇게 자신의 몸에 맞게 구부리고 비틀 줄 알는 작가에게 그런 빈틈은 큰 흠이 되지 않는다. 예민함과 상처의 나이를 지나고도 꾸준히 좋은 작품 발표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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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1-0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레일라 님은 참 글을 잘쓰셔!! ❤️👍

2018-01-02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8-01-1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e북으로 샀어요, 계속 레일라 님의 리뷰가 머리속에 맴돌아서요~~~.ㅎㅎㅎㅎ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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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모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이모에게서 연락이 오면 냉정하게 대했다. 그러자 머지않아 이모도 더이상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엄마가 이모를 부담스러워했다는 사실은 이모를 아프게 했지만 그만큼이나 엄마 역시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이십대 초반의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다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있지, 카로. 한지와 나는 매일 이야기를 나눠. 일하지 않는 시간이 겹치면 수도원 주위를 산책하고 밤에는 매점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아 나눠 마셔. 자정이 넘으면 수돗가 옆 나무 밑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한지는 나를 알아. 그리고 나는 한지가 코뿔소의 마음을 상상하듯, 한지의 마음을 상상해. 가끔씩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지의 집 발코니에 앉아 있기도 해.

...쉰다섯 명까지 불어났던 봉사자들이 삼 주 만에 열다섯 명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늘 시끌벅적했던 거실은 황량해졌고, 아이들이 뜨개질을 하던 바닥에는 뜨개바늘과 털실만 굴러다녔다. 몇몇 애들은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차를 마시다가 훌쩍대기도 했다. 그 눈물에는 떠난 이들에 대한 감미로운 애정이 담겨 있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생활을 함께했다는 행복. 그 지속될 수도, 반복될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함께 존재했다는 행복. 그 눈물은 고독이 없었던 시간에 대한 애도였다.

그녀 나이 서른하나.그녀 또래의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무엇 하나 바꿔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녀가 온몸을 던져도 실금 하나 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닞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그녀의 이십대를 통해 깨쳤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별 가망이 없으리라고 의사는 조심스레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이 무녀졌을 말이었지만 말자는 오히려 편안했다. 더이상의 수술도 항암치료도 싫었다. 무엇을 위해 생을 연장해야 하는지 이유도 알 수 없었고 어떤 미련도 없었다. 차라리 잘됐지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살아 있다는 것도 두렵다는 점에서는 죽음과 진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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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혼술에서 중독까지, 결핍과 갈망을 품은 술의 맨얼굴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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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사회생활은 알코올 중독자가 걸어가는 길에 표지판처럼 우뚝 서서, 너는 아무 문제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그들은 직장에서 능력을 바루히하고 승진을 하고 돈을 벌며 마감을 칼같이 지킨다. 도대체 누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말인가!

나이 들면서 나는 기억이란 미생물과 같은 작은 생명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정착할 곳이 없으면, 기억에 붙여둘 적절한 레이블이 없으면 그것은 어두운 구석에 가라앉아 조용히 지내다가 난데없는 순간에 불현듯이, 혹은 꿈속 같은 곳에서 불쑥 튀어나와 사람을 괴롭힌다.

AA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격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술은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려면 겪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경험을 박탈한다. 간편한 변신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 술을 마시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날마다 반복한다면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진흙탕처럼 혼탁해지고 만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삶을 구역화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이중인생 심지어 삼중, 사중 인생까지도 영위하는 것은 하나의 삶을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하나의 삶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선명한 이해에 기반을 둬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술은 진정한 감정과 진정한 공포와 진정한 의문을 마비시킨다. 정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빼앗아간다.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움켜쥐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자신을 괴로운 상태로 몰아넣는다.

집에 오면 곧장 맥주를 들이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쌓여가는 술병은 스타이런이 말했듯이 일종의 동맹군처럼 느껴졌다. ... 그 무렵 나는 끊임없이 마셔대는 맥주와 와인이 내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것은 나에 대한 뼈저린 의식을 막아주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감당하며 사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게 해주었다.

알코올 중독자인 루이즈는 20대 내내 획기적 전환을 찾아 헤맸노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획기적 전환이란 어느 날 불현듯이 찾아와서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는 일대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물론 그녀는 약물과 알코올을 사용해서 그런 인생에 도달하려고 했지만 그 밖에 다른 방법도 여럿 시도했다. 루이즈에게 그런 계기는 주로 다른 아파트나 다른 직장, 그리고 다른 도시였다. 한 곳에서 일이 어그러 지면 그녀는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 ...다시 학교에 입학해서 학위나 자격증을 따고, 직업을 바꾸는 식으로. 자기인생의 외부를 구부리면 인생의 내부도 함께 구부러질 것을 기대하는 행동들.

이런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말하자마자 그냥 상투적인 표현으로 여겨지지만, 그 순간까지도 나는 성장이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며, 어른이란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서적인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서적 수준이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성숙이 외부에서 불쑥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지냈다. 마치 성숙이라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일 것처럼. ...술을 끊으면 우리는 이제 기다리지 않게 된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서 내가 해야 할 성장의 노역을 대신해줄 거라는 끈질기고도 인간적인 소망을 버리게 된다. 술을 끊은 건 아마도 내가 그때까지 내린 결정 가운데 진실로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는 최초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성장의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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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12-1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일라님, 잘 지내시죠?
혹시 몰라서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transient-guest 2017-12-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나왔을 때 영문판 사놓고 어디엔게 들어가 있는 듯...ㅎ
 
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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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선배들이 주인이 작위를 받았느냐 아니냐, 혹은 유서깊은 가문 출신이냐 아니냐에 관심을 가졌다면 우리는 주인의 도덕적 지위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내 말은 소위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신사를 섬기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이 그 전 세대의 눈에는 유별나게 보일 정도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아무리 지체 높은 귀족 출신이라도 클럽이나 골프장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허비하는 신사보다는, 이를테면 출신은 미천했으나 대영제국의 장래 안위에 크나큰 공헌을 했던 조지 케터리지 씨 같은 신사를 섬기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사명으로 인식되었다.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고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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