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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랩소디
애덤 셸 지음, 문영혜 옮김 / 문예중앙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이탈리아 음식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토마토이지만 사실 대륙으로 건너온 후 '악마의 풀'이라는 오명으로 백여년간 괄시받다 16세기가 되어서야 이탈리아 요리문화 속으로 스며들어갔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한 세기 동안이나 공고했던 혐오가 무너져 내린 것일까? 이 책은 발랄하고 사랑스럽게 '로맨스'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토마토 농부였던 유대인 청년과 올리브를 절이던 가톨릭교도 아가씨의 사랑이 토마토를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러브스토리와 로맨스의 차이점에 대해서 예리하게 짚으며 이 책의 정체성이 러브스토리가 아닌 로맨스에 있음을 밝힌다.
"러브스토리와 로맨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러브 스토리에서는 사랑을 이루기까지의 장애가 본질적으로 주인공의 내부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강한 자존심 따위가 사랑에 장애가될 수 있다. 연인들은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불화를 겪고, 주변 인물들은 오만한 주인공들이 불가피한 상황을 자초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어리석음과 우스꽝스러움을 놀리며 재미있어 한다. 따라서 러브 스토리는 코미디가 되기 쉽다.
하지만 로맨스에서는 주인공들의 사랑에는 문제가 없다. 멘초냐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 본 순간부터 자신의 심장이 큐피드의 화살에 맞았거나 사랑의 천둥소리에 전율했음을 알고 있다. 러브 스토리의 갈등이 자존심 문제처럼 여닌들이 자초한 것인 데 반해, 로맨스의 갈등은 가족과 사회가 연인들에게 지운 가혹한 굴레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로맨스는 비극이 되기 쉽다. 주인공들이 자신의 허영심을 뉘우치는 상황은 희극적일 때가 많지만, 사회와 가족에 관한 뿌리 깊은 편견, 분노, 법, 전통 따위에 맞서는 이은 그와 달리 비극적인 시련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로맨스의 연인들은 마지막에 사랑을 이루기 위해 가족과 사회의 억압에 대항하고 이를 타개해나가야 한다. 따라서 가족과 사회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는 시간과 장소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토마토가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지, 애틋한 두 연인이 어떠한 고난을 겪고 사랑을 얻게 되는지 하나의 응축된 스토리라인으로 끌고 나가지 않고 둘레둘레 당대 이탈리아의 이런 저런 인물들에게 하나하나 눈길을 주며 천천히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토마토나 로맨스와 전혀 상관없이 그저 '공주님'으로 불리고 싶을 뿐인 토스카나 대공의 게이 아들 이나 어릴 적 거위에게 오줌을 갈기다 불알 한 쪽을 뜯어먹힌 동네 술집 주인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찌 사는지 희극이자 동시에 비극인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리며 웃고 울다보니 어이쿠 로맨스가 이루어지고 말았네 어이쿠 토마토에 맛들이고 말았네!하는 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 전통이나 편견을 그려내는 작가의 능숙한 솜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로맨스라고 단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는다.사랑을 깨달은 순간 사랑하는 이는 떠나가고, 하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또 다른 소중한 이는 죽음을 맞이한다. 완벽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아서 때때로 눈물 흘리며 살아갈수 밖에 없는 인생의 모습이 로맨스와 함께 엮어져 그려지는데 슈퍼모델 엄마에 화려한 커리어에 고소한 올리브 밭에서 노동까지 하다니 정말 모든 걸 다 가졌군!! 이라고 생각했던 작가가 진짜. 작가임이 바로 이 희극과 비극을 버무리는 지점에서 느껴진다. 아 정말 그는 하나 하나 모든 걸 다 '느끼며''살고'있었던 것이다.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것이 삶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친듯 웃기지도 미친듯 슬프지도 않은- 그 사이 어느지점에서 살아내는 것이 삶임이 글을 통해 느껴진다. '가진'자는 쓰지 못할 진정한 생의 이야기를 그는 썼다.
그는 그의 표현처럼 '온 몸에 올리브유가 세차게 흐르는듯한' 작가이다. 이 탐스럽고 눈부신 이야기를 만들어낸 재능은 분명 붉은 빛보다 황금빛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릴 적 문고판으로 읽던 셰익스피어를 떠올리게 하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와 이탈리아식 이름들에 추억에 잠겼지만 긴 페이지를 다 읽어내니 좋은 작가를 발견했다는 뿌듯함이 더 크다. 작가가 쏟은 애정과 열정과 노력 그 무엇 하나 탱탱하게 영글은 토마토와 올리브에 비교해 아깝지 않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