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랩소디
애덤 셸 지음, 문영혜 옮김 / 문예중앙 / 2010년 10월
품절


"러브스토리와 로맨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러브 스토리에서는 사랑을 이루기까지의 장애가 본질적으로 주인공의 내부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강한 자존심 따위가 사랑에 장애가될 수 있다. 연인들은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불화를 겪고, 주변 인물들은 오만한 주인공들이 불가피한 상황을 자초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어리석음과 우스꽝스러움을 놀리며 재미있어 한다. 따라서 러브 스토리는 코미디가 되기 쉽다.
하지만 로맨스에서는 주인공들의 사랑에는 문제가 없다. 멘초냐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 본 순간부터 자신의 심장이 큐피드의 화살에 맞았거나 사랑의 천둥소리에 전율했음을 알고 있다. 러브 스토리의 갈등이 자존심 문제처럼 여닌들이 자초한 것인 데 반해, 로맨스의 갈등은 가족과 사회가 연인들에게 지운 가혹한 굴레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로맨스는 비극이 되기 쉽다. 주인공들이 자신의 허영심을 뉘우치는 상황은 희극적일 때가 많지만, 사회와 가족에 관한 뿌리 깊은 편견, 분노, 법, 전통 따위에 맞서는 이은 그와 달리 비극적인 시련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75쪽

로맨스의 연인들은 마지막에 사랑을 이루기 위해 가족과 사회의 억압에 대항하고 이를 타개해나가야 한다. 따라서 가조고가 사회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는 시간과 장소가 중요하다. -75쪽

루이지는 그로부터 12년 동안 수도원에서 지내며 나이 든 시칠리아 출신 수사한테 주방 일을 배웠다. 늘 분노에 차 있던 늙은 수사는 어린 도제에게 남다른 인색함과 얼마간의 파렴치한을 심어주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요리사들 사이에 이심전심으로 퍼져 있는 교리인 '콘치나레 콘 콜레라(분노를 섞어 요리하기)'를 주입시켰다.
-107쪽

"하지만 굿 파드레...." 마리는 선뜻 말을 잇지 못했지만 실은 신부님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누구에게라도 얘기하고 싶었다. "제 생각이, 제 마음이...."
마리가 계속 머뭇거리자 고맙게도 굿 파드레가 끼어들었다. "마리야, 마음이란 요망한 것이다. 이 나무 저 나무로 뛰어다니는 원숭이나 다름없어. 가두려 할수록 더 빨리 달아나니까. 중요한 것은 네가 하는 행동, 친절한 말 한마디, 부지런한 손이다. 걱정 마라. 하느님께서는 네가 어머니를 잘 모시고 땅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뻐하신다."-224쪽

"잘 들어라, 마리" 다행히 굿 파드레가 마리의 머뭇거림을 받아주었다. "네가 고백하려는 그 죄가 바로 네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어떤 정욕이나 탐욕도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없어. 욕망은 생의 에너지이자 신이 내리신 성스러운 불이란다. 그런데 너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는구나. 벌은 꿀을 탐하고 뿌리는 물을 갈망하지. 정욕이 없다면 어떻게 양 두마리가 결합해 양 떼를 이루겠느냐. 음란한 수탉이 없다면 어떻게 닭장이 달걀과 병아리로 가득 차겠느냐. 알겠니, 마리? 우리 몸의 에너지는 신의 은총을 받아 솟아나는 거야. 그러니까 인간이 할 일은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적절한 곳에 쓰는 거다."
"적절한 곳에요?" 마리가 벅찬 마음을 가누며 물었다.
굿 파드레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농부가 흙에 꺾꽂이할 가지를 심거나 씨앗을 뿌리면 그 흙에서 마을 사람들을 먹일 열매가 열리지. 흙이 이렇게 쓰이면 말 그대로 생명이 주는 흙이다. 하지만 흙이 발이나 치맛자락에 끌려 집 안으로 들어오면 그 흙을 먼지라 부른다. 우리 마음속의 에너지도 마찬가지야. 중요한 건-227쪽

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그 욕망을 어디에 쓰느냐 하는 거란다. 마음이 에너지로 가득 찼다고 해서 먼저 의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거지. 마리, 나는 네 영혼이 선량하고 고결하다는 것을 알아. 그러니까 네 욕망이 적절한 곳을 향할 거라 믿는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믿기 힘들겠지만, 네 욕망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 네 욕정 안에 성령이 계시다, 마리야."-227쪽

무한히 관대한 굿 파드레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아이들 장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베르톨리의 할머니는 그냥 두고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손자의 장난기에 점점 더 화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코시모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노여움에 올리브가 저절로 절여지지 싶었다. 마침내 풍채 좋고 기운찬 할머니는 고령에도 고양이처럼 민첩한 동작으로 아이 귀를 낚아채 비틀었다. 아이가 우는 소리를 내자 할머니가 손자를 큰 소리로 야단쳤다. "내가 못살아! 도대체 하느님께서 왜 너같이 쓸모없고 천방지축인 아이를 만드셨는지 모르겠다" 나란히 서서 올리브를 털던 굿 파드레가 일손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우리에게 조건 없이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시려는 게지요"-270쪽

'이 포도주는 특별해. 지금껏 맛본 어떤 포도주보다 훌륭해.' 포도주가 관절을 마디마디 풀어주고 신기하게도 몸을 말랑말랑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군중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자신이 마치 부드러운 숄에 감싸인 채 어머니의 풍만한 젖가슴에 안겨 있는 것 같았다. '정말 희한한 포도주야. 꿀처럼 달고 버터처럼 진하잖아.'-318쪽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보고 울었지만 그 다음에는 자기 안에 묻어둔 보이지 않는 사연들 때문에 울었다. 사람들은 죽은 부모와 조부모 때문에 울었고 슬픈 일을 당한 아이들과 친구들 혹은 다른 누구 때문에 울었다. 인생이란 울 일을, 죽음과 슬픔과 상실을 끊임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에 울었다. 울지 않으면 제 정신으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울음 자체의 성스러움과 카타르시스 때문에 울었다. 인생이란 잔인하고 어처구니없는 것이기에, 인생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도둑을 맞았기에 울었다. -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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