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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내 인생 - 이 시대 최고 명사 30人과 함께 하는 한 끼 식사
신정선 지음 / 예담 / 2011년 12월
평점 :
잘나가는 신문사 기자가 우리나라에서 잘나간다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에 얽힌 음식 이야기를 듣고, 쓰고, 엮어 책으로 만들어 내었다. 한 사람의 인터뷰이가 하나의 음식을 이야기한다. 신경숙이 엄마의 사랑으로 기억하는 푸릇한 깻잎장아찌, 승효상이 어린 아내에게 만들어 준 멸치 우린 물로 끓여낸 김치죽, 배한성을 철들게 만들었던 눈물어린 인절미까지. 주간지나 월간지 특집 한 꼭지로도 손색없을 그럴듯한 이야기 수십개 주르르 나열되어 있으니 독자 입장에선 진수성찬 앞두고 침 넘어가듯 어서 이 호화롭게 차려진 글들을 어서 읽고 싶어 속이 탄다.
저자의 필력이 좋고, 요리로 치자면 '원재료'라고 할 법한 인터뷰이들의 인생이 워낙 드라마틱하기에 책은 기대만큼 만족스러웠다. 싱크대 공장 직원에서 신라호텔 총주방장이 된 서상호씨 이야기나 무기중개상으로 번 돈으로 최고급 한정식집을 차린 조태권씨의 이야기 등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 인생을 간접적으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인생의 음식'으로 꼽는 것이 어리고 힘들때 가족과 함께 먹은 음식인지라, 오래 산 이들의 옛추억을 독자로서 공유할 수 있단 점도 좋았다.
읽는 내내 잘썼네 잘썼네, 감탄했지만 별이 하나 모자란건 너무 윤기 자르르하게 '잘'썼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토대로 저자가 다시 쓴 글이다 보니 너무 빤질빤질 다듬어져 이것이 진정 인터뷰이의 인생인지, 만들어진 소설인지 애매한 지점이 생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서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질문과 답으로 분절되는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말하듯 풀어쓴 것은 독자에게 가깝고 편안하게 인터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주욱 말해주는 것처럼 쓰기는 했으나, 그 안에는 나의 질문과 느낌과 헤아림이 녹아 있음을 밝혀둔다. 서른 명과 나눈 문답을 내 머릿속에서 반죽해, 이야기라는 국수로 뽑아내고, 문장과 표현이라는 육수를 부은 셈이다.
기획의도를 감안한다고 해도 인터뷰이의 목소리로 '밤이 되면 모든 소리가 자취를 감춘 고요의 캔버스에 물소리, 바람소리만 고였다가 나가지요' 라던가 '여름밤이면 까만 밤바다를 지나 희디흰 배로 물결을 밀고 오는 고등어 떼의 꿈을 꿉니다. 녀석의 향기로운 전율을 맞이하러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야겠네요.'식의 곱디 고운 문장이 튀어나오면 내가 읽는 것이 진솔한 있는 그대로의 인터뷰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또 하나의 '가상 인터뷰이'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유명인의 삶을 음식이란 소재로 진솔하게 그려내겠다는 이 책의 컨셉과 저자의 수려한 글발이 만들어낸 약간의 부조화랄까.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서른 명이나 되는 유명인을 만나다 보니 깊이 있는 이야기로 더 들어가지 못한 부분이다. 훌륭한 인터뷰이에다가 저자의 글솜씨도 좋으니 독자로선 더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언제나 이야기가 좀 시작되고 더 궁금해질라 하는 차에 똑 끊겨버리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이고, 추천하고 싶은 책임은 분명하다. 2012년에 읽은 교양서들이 다 괜찮아서 우리나라 출판계 수준이 상향평준화 되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기사만 쓰기엔 아까운 글솜씨이다. 저자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