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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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소프트한 표지이지만 저자는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이다. 경제학자의 시각으로 본 '운'에 대한 내용이 상당부분 있다는 것이다. 책의 전반부는 '운'이 개인의 성취와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것에 대한 서술이다. 아카데믹한 접근은 힘든 주제이다 보니 주로 사례를 들어 서술한다. 말콤 글레드웰 식의 서술이라 해야 할까? 말콤 글래드웰도 '운'을 소재로 글을 썼었다. 성공한 거부들의 성공요인을 모두 조사해보니 그들의 출신성분이나 노력 등의 요인보다 그들이 어떤 시대에 어느 산업분야에 종사했는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의 저자에게 미안하지만 '운'에 대한 일반적인(저널리즘적인) 접근은 말콤 글레드웰에 비해 명료함이나 몰입도가 좀 떨어졌다. 서로 전문분야가 다르다보니 어쩔 수 없지 싶고, 그렇지만 저자는 본업이 교수님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설명하듯 나름의 쉬운 말로 여러번 이런 저런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자신이 교수가 된 것도 교수채용의 기준이 높지 않았던 70년대 상황의 덕이고, 명석한 네팔인이 배움이 기회를 얻지 못해 일년에 고작 1500달러의 소득을 벌며 잡역부로 살아갈 때 당신이 선진국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받고 살아가는 것도 운이라는 것 말곤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인생이 주사위 던지듯 운으로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웬만한 사람은 다 열심히 살다 보니, 미세한 차이가 운으로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 책의 후반부는 이러한 저자의 인식을 바탕으로, 성공한 이의 부가 상당 부분 '운' 덕분이라면 경제학적으로 이 운을 어떻게 재분배 할 것인가?에 대한 다소 아카데믹한 접근이 전개된다. 만약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운을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내거나 기부해서 교육시설을 개선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운 좋게 좋은 교육을 누리게 되고, 더 큰 성장을 해나갈 수 있고, 경제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개인이 부를 누리는 것보다 더 큰 효용을 지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소비누진세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현재는 소비하는 주체의 소득이나 소비총액에 관계없이 일률적인 %의 부가세를 부과하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소비누진세는 연간 소비하는 총액에 비례하여 누진되는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일테니, 소비액에 누진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이 사회의 보다 많은 이가 운의 혜택을 누리도록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 이런 전문적인 전개나 경제학적 전개는 내가 기대하던 바와는 달라서 다소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엿본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웠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은 저자가 상당히 온화하고 겸손하며 따뜻한 성품을 지녔고 그런 이가 쓴 글을 읽는 재미가 이 책에 녹아있다는 것이다. 제목만 보고서는 지가 잘나서 성공한 줄 아는 하이클래스에 대한 독설일 줄 알았는데 그런 냉소는 전혀 없다. 저자는 어린시절에 입양되어 빠듯한 경제적 형편속에 나름 어렵게 성장하는데 알고보니 자신의 생모는 상류가문 출신으로 20세기 초반에 조종사로 일하는 신여성이었고, 불륜으로 저자를 낳고 입양 보낸 것이었다 한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닥으로 처박아 버리는 충격적인 사연일수도 있을 이야기인데 오히려 저자는 이런 이야기들까지 스스럼없이 '운'에 대해 설명하는 사례로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런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면모가 글의 행간에서 느껴져서 내 기대와는 다소 다른 책이었지만 그리 억울하거나 아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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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7-29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해왔어요. 인생은 확률이며 통계이고 운에 달렸다고. ㅎㅎㅎㅎ 이 책도 읽고 싶은데 영문으로 된 것을 찾아봐야겠어요.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드립니다>도 겨우 받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

2018-08-01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2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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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없다면 능력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 나폴레옹

선생님은 앞으로 이루어나갈 모든 성취의 유일한 주인공이자 과거에 이룬 모든 성공에 감사해야 하는 수혜자라고 스스로를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얼마나 많은 성취를 오롯이 선생님의 힘만으로 이루어냈는지 생각해보는 단계를 거치기 마련입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인생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을만한 것보다 대체로 더 좋은 것을 받았다는 인정과 함께 삶을 매듭지어야 합니다. ...야심찬 기업가로서 자신이 이룬 모든 것에 대해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한 인간으로서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깨닫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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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특강
이여영 지음 / 맛있는책방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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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지 않은 창업 조건에 맞는 점포는 결코 객관적으로 좋을 수 없다. 겉으로만 봐서는 이런 곳에서 장사할 수 있을까 싶은 곳들이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드물지만 괜찮은 곳이 있다. 내 경우 옥석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그 거리에서 방황하며 보낸 3년의 세월이었다. 그렇게 아깝기만 했던 그 시간이 내가 장사꾼으로 변모한 순간 가장 큰 힘이 돼주었다.

잘 놀고 잘 먹어본 사람을 구해다 쓸 형편이 못 된다면, 누구든 데려다 잘 놀게 하고 먹게 하는 수밖에 없다. 좋은 술과 안주, 서비스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그것들을 내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연히도 점포 두 개를 모두 창업 비수기라는 1.2 월에 열었다. 어차피 장사가 안될 바에야 그 시기에 시행착오를 다 마무리 하자는 계산이었다. 날씨가 풀리고 완벽한 상태를 갖추고 본격적으로 고객을 맞자는 계산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한두 달 고생을 하고 나면 점포가 안정을 찾았다. 보통 거창하게 개점하고 나서 오픈발이라는 걸 누리다가 3개월이 지나면 손님이 빠지는 것과 정반대였다. 그 무렵 고객은 물밀듯 밀려들어 왔고, 대개 상품이나 서비스에도 만족했다.

건물주의 갑 행세를 매듭지으려면 방법이 없다. 워낙 장사를 잘해서, 그가 세입자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서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난 이 말을 변형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을 잘라보지 않고서는 경영관리를 논하지 말라.

초보 창업자들에게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이 인력 관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럴 만도 하다. 난생처음으로 누군가를 이끌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원들은 놀랄 만큼 사장의 경험 부족과 당혹감을 잘 알아챈다. 그들에게 매달리면서 관리를 제대로 하기란 힘들다. 하지만 가게를 하면서 당신이 매달려야 할 유일한 대상은 고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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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울증이지만 그건 단지 화학적 작용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건 "나는 흉악하지만 그건 단지 화학적 작용일 뿐이야."나 "나는 이지적이지만 그건 단지 화학적 장용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단지 화학적 장용의 문제다. 우울증을 단지 화학적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화학 작용에 '단지'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태양은 밝게 빛나며 그것도 단지 화학적 작용일 뿐이다. 바위가 단단한 것도, 바다가 짠 것도.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는 항상 그 덧없음을 느끼는 반면 우울한 감정에 빠져 있을 때는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기분은 변하는 것이라고, 오늘의 기분은 내일이면 달라지리라 믿는다고 해도 슬픔에 빠져들 듯 행복감에는 푹 빠져들지 못한다. 


눈부신 미남인데다 유명하고 재능도 뛰어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도 20대 후반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으며 매우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했었노라고 토로했다. "허영심이 내 목숨을 구했지요. 사람들이 내가 성공할 수 없었다느니, 성공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다느니 하면서 비웃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자살할 수 없었어요."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은 결점 투성이기 때문에 완벽주의자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자신에 대한 존중감은 낮아지지만 대개 자존심까지 잃지는 않는다. 자존심은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울증과의 싸움에 도움이 된다. 우울증이 깊어져서 사랑조차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질 때에도 허영심과 의무감이 우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나는 과거라는 것을, 시간의 경과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힘들다. 내 집에는 과거를 너무 생생히 연상시킨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읽지 못하는 책들과 듣지 못하는 음반들과 볼 수 없는 사진들이 가득하다. 어쩌다 대학 친구들을 만나면 그 시절이 너무 행복했었기 때문에 그때 얘기를 너무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빛나는 청년 시절은 나를 초조하게 한다. 나는 항상 과거의 즐거움이라는 벽에 부딪히는데, 내겐 과거의 즐거움이 과거의 고통보다 더 견디기가 어렵다. ... 나는 과거의 즐거움의 파편들에게 제발 기억을 되살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 지나치게 무섭고 끔찍했던 체험들 못지않게 지나치게 즐거웠던 체험들도 우울증을 낳을 수 있다.'기쁨후스트레스'라는 것도 있다. 최악의 우울증은 과거를 이상화하거나 한탄하며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이룬 업적은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동기들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포로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우리는 자신의 원동력의 작은 부분만을(타인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더 작은 부분만을)알 수 있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증이나 2주간의 불장난의 휴유증으로 오는 우울증이나 특별히 다를 게 없다. 후자보다는 전자의 경우에 보이는 극단적인 반응들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하겠지만 임상적인 체험은 거의 동일하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고통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밀로 간직한 채 보이지 않는 휠체어를 타고, 보이지 않는 깁스를 하고 힙겹게 살아간다. 


여성들이 자신의 기준보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우울증을 학화시킨ㄷ면 남성들은 자신의 기준보다 용감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우울증을 악화시킨다.대개 폭력을 휘두르는 건 겁에 질렸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 일부는 우울증의 증세이다. 


노인 우울증은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우리 사회가 노년 자체를 우울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노인은 필연적으로 불행하다는 생각 때문에 노인의 불행을 보살피지 않게 되며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말년을 불필요한 극심한 정서적 고통 속에서 산다. 


아프리카켸 미국인들이 겪는 우울증에는 그들만의 고난이 있다. "우울증 자체는 인종차별이 없다. ...그러다 다시 인종문제가 부각되는 거야. 온 세상이 똘똘 뭉쳐 나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만 같지. 나는 덩치 크고 튼튼한 백인이고 아무도 내게 동정 같은 걸 품지 않아. 만일 자네가(백인남성) 전철 안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다가와서 왜 그러는지 묻겠지. 하지만 내가 전철 안에서 갑자기 운다면 모두들 마약에 취했다고 여길거야. 사람들이 나에게서 진정한 나와는 동떨어진 인상을 받고 그에 따른 반응을 보이면 난 항상 마음에 충격을 받지. 내가 인식하는 나와 세상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내가 다른 것, 자신에 대한 내면적인 시각과 내 인생의 외적 환경들이 일치하지 않는 건 항상 충격이야. 난 몇 시간씩 거울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해. '넌 괜찮게 생겼고 깔끔하고 옷차림도 단정하고 정중하고 친절해. 그런데 사람들은 왜 너를 좋아하지 않지? 왜 너를 짓밟고 모욕을 주려고 할까?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흑인이기 때문에 남다른 외적인 고난들을 겪지만 인종 문제가 내 정신까지 좀먹는다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알다시피 흑인이 아니더라도 나로 산다는 건 힘든 일이지! 하지만 그건 확실히 가치 있는 일이지. 난 정상적일 때는 나로 산다는 것이 정말로 기뻐. 자네도 자네로 사는 게 힘들거야. 흑인이 아닌데도. 하지만 인종문제는 항상 나를 들쑤시고 내 안의 분노를 일깨우지."


합법적인 항우울제는 부작용을 먼저 보이고 점차 약효를 나타내는 데 반해 중독성 물질은 대개 약효를 먼저 보이고 점차 부작용을 나타낸다. 


알코올은 약의 흡수를 촉진시키며 이런 빠른 흡수는 약의 부작용을 높인다. 


코카인에 취한 상태에서는 기억력이 약해져서 과거가 미래에 투영될 수 없다. 코카인에 제공하는 화학적인 행복감은 외부적 상황과 무관하다.


자살은 일시적인 문제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으로 쓰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자아성찰도 자살에 이를 수 있으며 특히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런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성공한 사업가들의 자살률도 높기 때문에 성공을 이루게 하는 자질들이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과학자, 작곡가, 고위층 사업가들은 일반인에 비해 자살 가능성이 다섯 배나 높으며 작가, 특히 시인들의 자살률은 그보다도 높다. 


우울증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견뎌 내는 고난에 자신만 무너졌다는 생각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우울증이 환자 자신의 통제력 밖에 있는 내적인 화학 작용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에는 사회적인 이해 관계가 들어 있다. ...항우울제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항우울제는 의식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메커니즘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은 기사가 모는 자가용을 타는 것처럼 호사스러운 일이다. 교통 신호며 경찰이며 악천후며 교통법규며 우회로 같은 성가신 문제들은 기사에게 맡기고 뒷좌석에 편안하게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중산층에 찾아온 우울증은 상대적으로 발견하기 쉽다. 이들은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다가 갑자기 저조한 기분에 빠지는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유 없이 일이 싫어지고,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도 잃고, 이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에게 찾아온 우울증은 즉시 눈에 띄기가 어렵다. 이들의 인생은 늘 비참하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신 질환의 용어들을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므로 그들의 우울증은 대개 인지적인 형태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중산층의 경우처럼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신은 실패자라는 분명한 인식을 하지 못한다. 그들의 우울증은 주로 불면증, 피로감, 타인과의 교류 불능 등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 


연방항공관리국에서는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민간 항공기의 조종을 금하고 있으며 따라서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조종사는 은퇴해야 한다. 


진화심리학의 선돌자 랜돌프 네스의 말을 들어보자 "쉰 명에서 일흔 명 정도가 무리를 이루어 살기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종이 수십억 명씩 모여 살다 보니 모두가 힘든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전통 사회가 갖고 있지 않았던 무수한 고난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에 대한 대처 전략을 배울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그것들에 적응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반 데 베르크는 현대인의 생활양식에는 정보에 입각한 선택이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직업의 비가시성에 대해 말하면서 직업이 다양화되면서 그것들은 우리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가능성들의 집합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우울증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진실을 보는 눈이 더 날카롭다."고 말했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진화적인 우위에 있지는 않다. 가벼운 우울증을 지닌 사람들은 정상인들에 비해 자신과 세계와 미래를 정확하게 본다. 그들에겐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고 실패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환상이 결여되어 있다. 사실 실존주의는 우울처럼 진실하다. 인생은 헛되다. 우리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육체적인 개체성으로 인한 고립은 피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이루든 우리는 결국 죽게 된다. 


우울증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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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수학무기 -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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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급 부상한 키워드 '빅데이터'.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생산되는 데이터의 양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지만 20세기까지는 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술적으로나 기획적으로 미숙한 단계였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본격적으로, 특히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형기업의 영리활동추구 툴로서 빅데이터가 사용되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빅데이터 자체를 활용하는게 아니라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각종 수학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경영 구석구석에 활용하는 것이다. 특정 고객이 매출을 낼 고객인가 아닌가를 확률적으로 예측하여 고객맞춤형 광고를 내보내고, 직원이 어느시간에 근무하는것이 제일 비용절감에 효과적인지 계산하여 근무시간표를 컴퓨터로 자동생성한다. 고객센터로 걸려오는 고객의 전화는 순식간에 데이터를 수집하여 별로 돈이 될 것 같지 않으면 후순위로 돌리고 부촌에서 걸려오는 전화부터 먼저 상담원이 응대한다.


저자는 수학을 전공한 엘리트로 테뉴어 트랙을 밟다가 헤지펀드 회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커리어를 전환한다. 어릴적부터 심심하면 인수분해를 하는 식으로 '수'자체에 매료된 삶을 살았지만 실물경제에서 '수'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고 싶었다 한다. 연봉을 3배로 올린 것도 커리어 전환의 한 이유였을테다. 그렇게 그녀는 헤지펀드사의 '퀀트'로서 시장의 비효율성이 존재하는 곳을 보물찾기하듯 찾아, 그 비효율성이 사라질 때까지(=시장이 균형상태가 될 때까지) 이윤을 내는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2008년 세계경제위기가 닥치자 그녀는 금융계가 얼마나 폐쇄적으로 그리고 비합리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깨닫게 되고 그 후 몇 번의 이직과 커리어 전환을 거치며 미국 사회에서 빅데이터가 불평등의 재생산 기제로서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하버드 박사 출신인 그녀가 아주아주 친절하게 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빅데이터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무결점'한 것도 아니고 '공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에 나오는 상세한 사례들이 이해를 도와주기 때문에 완독을 강력히 권하며 리뷰작성을 위해 간단히 요약을 해 보자면 1. 빅데이터 자체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데이터를 돌려 의미있는 결과를 뽑아내려면 '알고리즘'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알고리즘'을 짜는 것은 결국 인간으로 이 과정에 인간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들어가게 된다. 2. 돈이 없고 가난한 이들의 운명은 빅데이터에 따라 갈리게 된다. 가령 예를 들어 대학입학이나 구직과정에서 하위계급출신자들의 지원서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따라 합격/불합격이 나뉘게 된다. 이것에 '공정'하다는 인식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게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제로 공정한지는 뒤에서 논의) 반면 상위계급은 빅데이터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인맥을 통해 대인면접 기회를 가지게 된다. 아이비리그의 경우 면접을 통해 합격자를 걸러내고 상류계급은 구인시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젊은이를 인터뷰하여 채용한다. 즉 이력서에 철자법 실수가 있다거나 음주운전 같은 경범죄 기록이 있다고 해도 관대하게 용서받고 넘어갈 기회가 있다. 3. 현재 미국에서 활용되는 많은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난한 동네에 사는 청년은 자신의 집 우편번호 때문에 채무를 상환할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판별되어 필요한 대출을 받지 못한다. 적시에 받았더라면 큰 문제 없이 넘어갔을 신용문제가 대출거부로 인해 커지고, 실직같은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가난한 동네 출신에게 대출을 거부하는건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수학학자로서 '대리 데이터'의 사용에 반대를 표한다. 즉, 실제로 그 청년의 지불능력을 따지지 않고 그 청년이 사는 동네의 빈곤율을 따지는 건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손쉽고 간단하고 '저렴'하게 신용도를 평가하는 것인데 이건 청년 개인의 신용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수치를 가져다 붙이는 것이므로 수학적으로 봤을 때 전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효율성을 위해 불평등을 재생산 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리적인 문제해결 방식인가?하는 의문. 


이외에 이 책을 읽다 보면 미국의 자본주의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우리가 그런 대기업을 상대하며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식으로 순순히 우리의 데이터를 넘겨주는 것이 얼마나 멍청하고 아둔한 짓인지 깨닫게 된다. 사실 데이터를 넘겨주는 것이 우리의 의지가 아닌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다. 대기업의 기술력은 우리가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클릭 한 번이나 전화 한 통으로 수십 수백건의 정보를 빼내어 가기 때문이다. 리뷰의 제목을 '21세기 프롤레타리아들의 필독서'라고 적은 이유는 실제로 빅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아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는지 작은 단서라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는 이제 인터넷 여론까지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매크로 돌려서 가짜 댓글을 만들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법망을 뚫고 교묘하게 우리의 투표율을 움직이고 지지후보를 푸쉬하는 것이다. 저자는 회계에 '감사'가 있듯이 빅데이터 알고리즘에도 '감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회계감사를 돌려봐야 16억 내고 삼성 물려받는 이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알고리즘 감사도 크게 의미가 있을지 회의가 되긴 한다만은...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고 느낀 점이라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중국이 데이터 생산에 있어서 양으로 압도적이기는 하지만 중국정부의 통제가 있는 한 미국을 누르고 초강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거꾸로 중국이 국가의 통제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을 누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따르자면 빅데이터는 미국 하층계급의 삶을 짜낼대로 짜내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합법'이기 때문에 별다르게 제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반면 중국의 경우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도 인민들에게 밥을 떠먹여줘야 하는 입장이기에 무조건 자본가들이 하층계급을 착취하는 걸 놔두고 볼 수 없다. 또한 중국정부는 스스로 인민의 모든 데이터를 긁어모으는 '주체'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야 인민의 삶을 감시하겠지만 거시적 국가 발전의 측면에서 특히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이 이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미국의 사기업보다야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지 않겠는가?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증명할 것이고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20세기 초반 참혹했던 석탄광산처럼 빅데이터 무기들 역시 한 시대의 것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길 기대하지만 글쎄. 석탄광산에서 죽은 시체는 인간의 눈에 보였지만 빅데이터로 파괴당한 이들의 삶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빅데이터 무기가 사라지는 건 쉽지 않을 듯 하다. 미국이 자랑하는 시장원리가 지금의 오류를 바로잡고 제정신 차리는 것이 빠를지 중국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십억인민 모두 중산층 되어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게 빠를지 우리 세대는 그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변하는 걸 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지만 일단 중요한 건 밥 먹고 내 목숨 부지하는 일이니 이 책을 읽자. 읽고 이 세상에 도처한 위험에 이런 것도 있다는 걸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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