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이지만 그건 단지 화학적 작용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건 "나는 흉악하지만 그건 단지 화학적 작용일 뿐이야."나 "나는 이지적이지만 그건 단지 화학적 장용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단지 화학적 장용의 문제다. 우울증을 단지 화학적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화학 작용에 '단지'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태양은 밝게 빛나며 그것도 단지 화학적 작용일 뿐이다. 바위가 단단한 것도, 바다가 짠 것도.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는 항상 그 덧없음을 느끼는 반면 우울한 감정에 빠져 있을 때는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기분은 변하는 것이라고, 오늘의 기분은 내일이면 달라지리라 믿는다고 해도 슬픔에 빠져들 듯 행복감에는 푹 빠져들지 못한다. 


눈부신 미남인데다 유명하고 재능도 뛰어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도 20대 후반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으며 매우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했었노라고 토로했다. "허영심이 내 목숨을 구했지요. 사람들이 내가 성공할 수 없었다느니, 성공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다느니 하면서 비웃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자살할 수 없었어요."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은 결점 투성이기 때문에 완벽주의자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자신에 대한 존중감은 낮아지지만 대개 자존심까지 잃지는 않는다. 자존심은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울증과의 싸움에 도움이 된다. 우울증이 깊어져서 사랑조차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질 때에도 허영심과 의무감이 우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나는 과거라는 것을, 시간의 경과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힘들다. 내 집에는 과거를 너무 생생히 연상시킨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읽지 못하는 책들과 듣지 못하는 음반들과 볼 수 없는 사진들이 가득하다. 어쩌다 대학 친구들을 만나면 그 시절이 너무 행복했었기 때문에 그때 얘기를 너무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빛나는 청년 시절은 나를 초조하게 한다. 나는 항상 과거의 즐거움이라는 벽에 부딪히는데, 내겐 과거의 즐거움이 과거의 고통보다 더 견디기가 어렵다. ... 나는 과거의 즐거움의 파편들에게 제발 기억을 되살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 지나치게 무섭고 끔찍했던 체험들 못지않게 지나치게 즐거웠던 체험들도 우울증을 낳을 수 있다.'기쁨후스트레스'라는 것도 있다. 최악의 우울증은 과거를 이상화하거나 한탄하며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이룬 업적은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동기들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포로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우리는 자신의 원동력의 작은 부분만을(타인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더 작은 부분만을)알 수 있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증이나 2주간의 불장난의 휴유증으로 오는 우울증이나 특별히 다를 게 없다. 후자보다는 전자의 경우에 보이는 극단적인 반응들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하겠지만 임상적인 체험은 거의 동일하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고통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밀로 간직한 채 보이지 않는 휠체어를 타고, 보이지 않는 깁스를 하고 힙겹게 살아간다. 


여성들이 자신의 기준보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우울증을 학화시킨ㄷ면 남성들은 자신의 기준보다 용감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우울증을 악화시킨다.대개 폭력을 휘두르는 건 겁에 질렸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 일부는 우울증의 증세이다. 


노인 우울증은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우리 사회가 노년 자체를 우울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노인은 필연적으로 불행하다는 생각 때문에 노인의 불행을 보살피지 않게 되며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말년을 불필요한 극심한 정서적 고통 속에서 산다. 


아프리카켸 미국인들이 겪는 우울증에는 그들만의 고난이 있다. "우울증 자체는 인종차별이 없다. ...그러다 다시 인종문제가 부각되는 거야. 온 세상이 똘똘 뭉쳐 나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만 같지. 나는 덩치 크고 튼튼한 백인이고 아무도 내게 동정 같은 걸 품지 않아. 만일 자네가(백인남성) 전철 안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다가와서 왜 그러는지 묻겠지. 하지만 내가 전철 안에서 갑자기 운다면 모두들 마약에 취했다고 여길거야. 사람들이 나에게서 진정한 나와는 동떨어진 인상을 받고 그에 따른 반응을 보이면 난 항상 마음에 충격을 받지. 내가 인식하는 나와 세상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내가 다른 것, 자신에 대한 내면적인 시각과 내 인생의 외적 환경들이 일치하지 않는 건 항상 충격이야. 난 몇 시간씩 거울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해. '넌 괜찮게 생겼고 깔끔하고 옷차림도 단정하고 정중하고 친절해. 그런데 사람들은 왜 너를 좋아하지 않지? 왜 너를 짓밟고 모욕을 주려고 할까?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흑인이기 때문에 남다른 외적인 고난들을 겪지만 인종 문제가 내 정신까지 좀먹는다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알다시피 흑인이 아니더라도 나로 산다는 건 힘든 일이지! 하지만 그건 확실히 가치 있는 일이지. 난 정상적일 때는 나로 산다는 것이 정말로 기뻐. 자네도 자네로 사는 게 힘들거야. 흑인이 아닌데도. 하지만 인종문제는 항상 나를 들쑤시고 내 안의 분노를 일깨우지."


합법적인 항우울제는 부작용을 먼저 보이고 점차 약효를 나타내는 데 반해 중독성 물질은 대개 약효를 먼저 보이고 점차 부작용을 나타낸다. 


알코올은 약의 흡수를 촉진시키며 이런 빠른 흡수는 약의 부작용을 높인다. 


코카인에 취한 상태에서는 기억력이 약해져서 과거가 미래에 투영될 수 없다. 코카인에 제공하는 화학적인 행복감은 외부적 상황과 무관하다.


자살은 일시적인 문제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으로 쓰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자아성찰도 자살에 이를 수 있으며 특히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런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성공한 사업가들의 자살률도 높기 때문에 성공을 이루게 하는 자질들이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과학자, 작곡가, 고위층 사업가들은 일반인에 비해 자살 가능성이 다섯 배나 높으며 작가, 특히 시인들의 자살률은 그보다도 높다. 


우울증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견뎌 내는 고난에 자신만 무너졌다는 생각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우울증이 환자 자신의 통제력 밖에 있는 내적인 화학 작용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에는 사회적인 이해 관계가 들어 있다. ...항우울제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항우울제는 의식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메커니즘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은 기사가 모는 자가용을 타는 것처럼 호사스러운 일이다. 교통 신호며 경찰이며 악천후며 교통법규며 우회로 같은 성가신 문제들은 기사에게 맡기고 뒷좌석에 편안하게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중산층에 찾아온 우울증은 상대적으로 발견하기 쉽다. 이들은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다가 갑자기 저조한 기분에 빠지는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유 없이 일이 싫어지고,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도 잃고, 이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에게 찾아온 우울증은 즉시 눈에 띄기가 어렵다. 이들의 인생은 늘 비참하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신 질환의 용어들을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므로 그들의 우울증은 대개 인지적인 형태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중산층의 경우처럼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신은 실패자라는 분명한 인식을 하지 못한다. 그들의 우울증은 주로 불면증, 피로감, 타인과의 교류 불능 등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 


연방항공관리국에서는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민간 항공기의 조종을 금하고 있으며 따라서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조종사는 은퇴해야 한다. 


진화심리학의 선돌자 랜돌프 네스의 말을 들어보자 "쉰 명에서 일흔 명 정도가 무리를 이루어 살기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종이 수십억 명씩 모여 살다 보니 모두가 힘든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전통 사회가 갖고 있지 않았던 무수한 고난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에 대한 대처 전략을 배울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그것들에 적응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반 데 베르크는 현대인의 생활양식에는 정보에 입각한 선택이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직업의 비가시성에 대해 말하면서 직업이 다양화되면서 그것들은 우리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가능성들의 집합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우울증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진실을 보는 눈이 더 날카롭다."고 말했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진화적인 우위에 있지는 않다. 가벼운 우울증을 지닌 사람들은 정상인들에 비해 자신과 세계와 미래를 정확하게 본다. 그들에겐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고 실패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환상이 결여되어 있다. 사실 실존주의는 우울처럼 진실하다. 인생은 헛되다. 우리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육체적인 개체성으로 인한 고립은 피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이루든 우리는 결국 죽게 된다. 


우울증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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