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5
메리 웨브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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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통받을 때 시간이 대체 무엇이겠나? 아무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사랑에 굶주린 신랑의 귀에 서둘러 돌아갈 시간을 알리는 야경꾼의 목소리가 들어올까? 새벽녘에 세상을 뜰 이는 어차피 보지도 못할 해가 몇 시에 뜨는지 관심이 있을까? 우리 가련한 존재들이 우리가 처한 상황의 강력한 힘에 맞서 버틸 때, 평온함 혹은 평온함으로 여기는 것을 얻으려 고군분투할 때, 투어장에 꼼짝없이 갇힌 짐승처럼 망연자실해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을 잊는다. 그래서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바깥세상에서는 무수한 일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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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김애란 외 지음 / 프란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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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며칠 전 나는 화면 속 로버트의 얼굴을 보고 작게 동요했다.

‘저 남자, 날 감상하고 있어‘란 자각이 들어서였다. 동시에 ‘오랜만이다‘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눈동자에 담긴 호감과 호기심 그리고 성적 긴장을 마주하는 것은. 그런데 그게 전혀 느끼하거나 부담스럽지 ㅇ낳았다. 오히려 로버트는 욕망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편에 속했다. 처음 나는 ‘내가 너무 외로워서 그런가?‘ 스스로를 의심했다. 현수와 헤어진 뒤 누군가와 정신적으로도 또 육체적으로도 진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이 인간적인 호감인지 성적 주체가 되는 기쁨인지 성적 대상이 되는 설렘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그 모든게 섞인 총체적인 무엇일지 몰랐다. 감정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 P24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 그걸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갑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 P38

"언어도 마찬가지야. 사용할 당시에만 맞는 말이고 결국은 변하게 돼 있어. 맞았던 답이 틀려지는거지. 명심해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음악뿐이야."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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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언어를 만나다 - 당신의 시선을 조금 바꿔줄 스페인어 이야기
그라나다 지음 / 북스토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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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는 중간 이름에 dolores(고통), angustias(고뇌)를 넣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이름에 넣을 수 있는지 물었다. 성경에 나오는 시련, 고통도 인간에게 필요한 과정이기에 이러한 단어도 이름에 넣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P151

남태평양에는 섬나라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곳인 키리바시 공화국의 키리티마티 섬과 쿡 제도(뉴질랜드령)는 매우 가깝고 시각이 같아 겉보기에는 잘 통할 것 같다. 그런데 시차가 24시간으로 실은 날짜가 전혀 다르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모른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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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와 시대착오
전하영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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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관장이 물었다.
"요새는 작가들도 다 박사더라. 심사 가면 다 박사야."
관장은 힘 빠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작가들이 범생이라서 그런가. 스테이트먼트는 그럴듯한데 정작 작업은 재미가 없네."
네네. 정말 그래요. 미루는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으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무도 그 폐해를 모르지 않지만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작가들의 학력 인플레 혀상에 대해 미루도 할말이 없진 않았다. 범생이라서 박사를 따는 게 아니구요, 고령화사회라서요. 작가들이 너무 오래 사는 것 같아요. 20세기에는 마흔 정도만 돼도 죽고 그랬는데 이제는 마흔이 넘고 나서도 먹고 살아야 할 날이 구만리잖아요.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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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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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우리 영감 걷어차서 밖으로 내쫓아버릴까 싶어."

여장부도 중년이었다.

"그래도, 허세쟁이 술고래이긴 하지만 그 사람은 말이지, 인간은 저마다 외로운 존재라는 걸 알아. 그걸 모르는 사람이라면 난 같이 살 수가 없거든." - P25

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고 만다. 고독이 느껴지지 않는 뒷모습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 P26

비가 오고 있었다.

"비가 오면 인스턴트 라면이 잘 팔린대요."

택시 운전사가 말했다.

"어째서일까요."

"나도 사니까요."

"아, 홀아비세요?"

"여자 있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아무것도 못 하거든. 내가 집에 갈 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기다려요. 뭘 사러 갈 때도 있지만 비가 오면 절대로 안 나가거든요. 인스턴트 라면을 사가는 수밖에."

"사귄지 얼마 안 됐구나."

"벌써 육 년짼데."

"어디가 아파요?"

"아무 데도 안 아파요."

"일해요?"

"안 해요."

"그럼 하루 종일 뭐 해요?"

"아~무것도 안 해요. 결혼하고 싶은데 싫다네. 손님, 어떻게 생각해요. 연상이에요."

"괜찮잖아요."

"그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상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서른이라고 말했으니까. 그 정도로 보였거든."

"육 년 동안 같이 살았댔죠? 그럼 나이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잖아요."

"그개, 요전에 몰래 결혼하려고 알아봤더니 열여덟 살 속였더라고요." - P70

"우와, 열여덟 살이나."

"결혼하기 싫다는 건 나이를 들키기 때문이 아닐까요. 손님, 어떻게 생각해요?" - P70

지난번에 친구의 아들이 그 친구를 데려왔다. 스물한 살 젊은이들이었다. 나도 자식을 곧바로 낳았다면 이만큼 컷을까 하며, 지저분한 것 같기도 하고 청결한 것 같기도 한 젊음을 올려다봤다. 나는 그들에게 밥을 먹였고 술을 권했고 그들은 다 큰 남자인 척하며 담배를 물었다. - P102

"돌아가신 지 몇 년 됐어요?"

"사십 년. 사십 년 동안 단 하루도 지로 씨를 잊은 적이 없어. 그렇잖아, 진절머리가 나서 떠올리기도 싫은 남자였다면 어땠을 것 같아? 떠올려도 싫은 일 뿐이잖아. 난 떠올려도 싫은 일은 아무것도 없어. 재혼하자는 말을 다른 남자한테서 몇 번이나 들었지. 하지만 대화를 나누거나 얼굴을 보면 금방 아아, 싫다, 싫어, 지로 씨가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드는 걸."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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