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강남역의 한 카페에 앉아 형법각론 기출문제를 풀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오후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걱정이 된다고, 찾으러 나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앉아 있는 카페는 강남대로변에 바로 접하고 있어서 온갖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들로 환했기에, 저녁 6시 30분이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야 나는 겨울철의 저녁 6시 30분은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린 즈음이라는 것을 되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동짓날이 될 때까지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시계를 보고 바깥을 보았다. 세상은 도시에선 상상도 하지 못한 수준으로 깜깜했다. 엄마는 어떻게 그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아빠를 향해 무작정 달린걸까? 


동짓날이 오자 작년의 동짓날이 떠올랐다. 세상이 너무 힘들었던 작년의 겨울날에 엄마는 말했다. 그래도 이제 해가 길어지니 다행 아니냐고. 겨우 하루 몇 분씩 길어지는 해를 의지로 삼을만큼 우리는 괴롭고 절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고비를 넘겼다 싶었는데 더 괴로운 동짓날이 있을 줄은 우리 가족 아무도 몰랐던 일이다. 


동지가 지나고도 몇 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저녁 6시 30분의 세상은 깜깜하기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를 생각하면 차오르는 슬픔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으로 추위를 꼽던 나는 엄마가 죽은 다음날부터 일부러 찬 바람을 맞고 다닌다. 추위 따위는 사람이 인생을 사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지막 전화를 받고 몇 시간 뒤 사고 소식을 전해들었던 강남역의 카페에 오늘 처음으로 다시 가봤다. 저녁 6시 30분, 밖을 보았다. 세상은 정말 환하고 밝고 안전해보였다. 내가 엄마의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받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어째서 나의 부모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당연하지 않은 일에 대한 의문이 약간의 분노와 함께 치밀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백발의 노인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에 의지해 다니는 시골의 노인들. 사고 전까지 나는 노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젊은 생을 산 것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하는, 젊은 시절에 비하면 못한 생의 일부분이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한다. 노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며 삶의 축복과 행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정작 나는 그리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애초에 괴로움이 커서 생에 대한 큰 의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산 것은 내가 죽으면 엄마가 슬퍼할 것이 싫어서였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세상에 없으니, 내가 없으면 남은 가족들이 져야 할 짐이 너무 커서 살아야 한다. 엄마가 그들을 사랑했으므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의미를 찾아 헤매고 생에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은 의미나 노력, 정의 같은 것들과는 전혀 관계없이 작동한다. 음주운전자에게 치여 죽고 암에 걸려 죽고 어딘가에서 떨어져서 죽는다. 죽음은 그 자체로 이 생에 의미가 없다는 걸 반증한다. 나는 그 헛됨을 떠올리며 내 부모의 죽음도 자연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볼 때, 아프리카에서는 하마에 물려 한 해에 3000명의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될 때면 곱씹는 방식으로. 그렇구나. 그런 것이구나. 그러니, 내 부모의 죽음도 큰 세상의 일로 보자면 그리 유별난 일이 아니구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의 덕인지 일상에서 바쁘게 일을 할 때면 슬픔이 가슴을 때리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머리에서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단 사실이 논리적인 문장처럼 떠오른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엄마가 떠오르고 마음이 아픈 때는 엄마가 살던 본가에 있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 혼자서 살던 서울 집을 방문할 때이다. 내가 누리던 자유와 사랑하던 혼자만의 고독이 사실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나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홀로 있을 때 깨닫는다. 내 반찬을 걱정하던 엄마, 지치면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라던 엄마, 나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고 니 잘못이 아니다 넌 정말 아까운 딸이다 위로해주던 엄마. 그런 엄마가 이젠 없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째서 내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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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1-16 0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레일라님....

책읽는나무 2023-01-16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째서 내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마음이 아프네요.
저도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편이라 늘 그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머님은 라일라님을 잘 지켜보고 계실겁니다.
굳건하시길...

다락방 2023-01-1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일라 님.
라일라 님의 이름을 한 번 부르고 갑니다.

2023-01-16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3-01-16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에 어머님이랑 스위스 갔던 글들 보면서 저는 우리 엄마도 조금 더 젊고 힘이 있었으면 이렇게 같이 해외여행도 다녔을텐데하면서 부러워했었는데요.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라일라님께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위로가 될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를 잃은 마음에는 어떤 말도 위로 안될거 같아서.... 그저 많이 슬퍼하시고 그리워하시라는 말밖에 못하겟네요.
 
물질적 삶 쏜살 문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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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고독을 울려 퍼지게 하고, 고득을 다른 어떤 것보다 좋아하게 한다. - P25

상상력은 그 어디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 P47

남자를 많이 사랑해야 한다. 많이, 많이. 남자를 사랑하려면 많이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나자를 감내할 수 없다. - P54

유토피아는 여자들이 창조한 집에 있다. 자신의 가족이 행복 자체가 아니라 그 행복의 추구에 관심을 갖게 하려 하는 여자들의 시도, 여자들이 안 하고는 못 배기는 그 시도에 있다. - P55

어머니는 세 번째 전쟁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듯, 아마도 어머니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세 번째 전쟁을 기다렸을 것이다. 어머니가 신문을 읽는 이유도 행간을 읽어 내서 전쟁이 다가오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 P62

여자는 어머니로 살고 아내로 사는 내내 자신만의 절망을 분비한다. 매일의절망 속에서 자신의 왕국을 잃게 되고, 평생 동안 그럴 것이다. 젊은 시절의 갈망, 힘, 사랑이 빠져 나갈 터다. 순전히 합법적으로 생겨난 상처, 스스로 받아들인 바로 그 상처를 통해 흘러 나간다. 여자는 순교자다. 자신이 가진 모든 재주를, 운동 실력을, 요리 실력을, 미덕을 발휘하는 일이 완전히 끝나면, 여자는 창밖으로 던져져야 할 존재가 된다. - P69

지난 십오 년 동안 책이 출간되면 곧바로 원고를 없앴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내가 저지른 죄를 지우기 위해, 내 눈에 그것이 덜 소중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그렇게 나의 자리로 잘 ‘넘어가기‘ 위해, 여자이면서 글을 쓰는 무례함을, 사십 년 전만 해도 그랬으니까, 그것을 경감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 P69

집 안에 물건이 쌓이는 가장 큰 이유는 세일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일종의 의식처럼 정기적으로 넘쳐흐르는 파리의 최대 세일, 파격 세일 때문이다. 정기 세일이 있거, 가을이면 여름 재고를 싸게 팔고, 겨울이 오면 가을 재고를 싸게 판다. 여자들은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마구 사들인다.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싸기 때문에 산다. 그리고 미친 듯이 사들인 그 물건을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 "저걸 왜 샀는지 모르겠어." 모르는 남자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났을 때와 비슷하다. - P70

우리는 언제쯤 우리의 절망이라는 그 숲에 넌더리가 날까? 그 시암 왕국은? 장작에 제일 처음 불을 붙이는 남자는? - P72

그는 늘 젊고 매력적이고 싶어 했고, 젊게 살고 싶어했다. 점심은 크로크무슈를 먹고, 저녁 식사는 레스토랑에서 하고, 여자들, 모든 여자를, 겨울엔 프랑스 여자들, 여름에는 젊은 영국 여자들을 원했다. - P105

오래전부터, 옛날부터, 수천 년 전부터 침묵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따라서 문학도 여자들의 것이다. - P116

프랑스에서 그랑드 블루(grande bleue)는 여성형이고 지중해를 가리키고, 남성형인 그랑 블루(grand bleu)는 대서양 바다를 가리킨다. - P140

자신이 겪은 일에서 가르침을 끌어내는 일은 나이가 들어서야 가능하다. 두고 보라. 감히 말하건데, 한 남자와 함께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필연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지는 않음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그런 사랑의 증거를 나는 그만큼 격렬하지 않은, 쉽게 떠올려 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 발견한다. 내가 가장 심하게 배신한 남자들, 나는 그들을 가장 사랑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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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쯤 어린 친구와 하는 순수한 취미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친구가 물었다. 


- 어떻게 회사 다니면서 이거까지 해?


- 그건 어쩌면 회사를 다니니까 그런건지도 몰라. 회사를 다니면 어떻게든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헤매게 되거든. 춤을 추든지, 그림을 그리던지, 동호회를 하던지... 그런거지.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린다. 아침 일찍 인력 시장에 나가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받으면 일당 14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본인이 택한 삶의 방식인데 마음이 괴로운 것도 일절 없고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나의 세대와는 또 다른 그 방식이 나는 좋다고 생각하고 부럽기도 하다. 우리세대는 부모들과 달리 쿨하다 생각했지만 세대의 특성으로서 '아등바등함'은 이 세대는 이렇고 저 세대는 저렇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는게 아니라 매년 조금씩 옅어지는 식으로 차이가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세대는 지금의 20대와 비교하자면 더 짙게 아등바등거리며 살고 있고 그게 인에 박혀서 여유롭게 사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많다. 


맡은 업무의 돈 단위가 커져서 이상한 소리를 잘도 한다. 


- 돈 들어올데 있어?


- @@땅 매각하잖아.


- 70억? 그건 조금이잖아. 


내 소유의 70억이 있다면 요즘 5% 금리로 따지면 세금 40%를 제하고도 다달이 1750만원이 이자로 들어오는데...나는 이자만 받아먹고 사는 삶을 꿈꾼다. 이자만 나뭇잎을 갉아먹는 송충이처럼 뜯어먹고 살다가, 죽기전에 병원비라던지 큰 일로 뭉텅이로 몇 번 크게 원금을 헐어쓰고 죽을 때쯤 딱 잔고가 아슬아슬하게 0에 수렴하는 인생. 정말 멋진 인생일 것이라 생각한다.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야망들 중 돈에 관한 야망이 가장 무색무취하단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지는 야망이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야망을 가져도 좀 예쁜 걸로 가지고 싶어서.


올해 봄에는 처음으로 봄이 오는 것이 반갑지 않았는데 가을이 되어보니 가을이 되는 것이 슬프지도 않았다. 너무나 신기해서 나는 버스를 타면 차창밖으로 붉게 물든 단풍을 마치 단풍을 처음 본 따뜻한 나라의 관광객처럼 유심히 보고 보고 또 보았다. 어떻게 겨울이 닥쳐오는데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걸까? 겨울이 오고나서 보니 더 놀라웠다. 나는 달력에서 동지를 확인하고 그래, 저날까지만 참고 견디자. 그러면 어떻게든 또 봄과 여름이 오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내가 죽어도 계절은 가고 봄이 오고 가을이 오는 것이라면 내가 선택할 것은 죽느냐 아니냐 정도라는 것. 그 심플한 것을 받아들이는데 거의 40년에 가까운 생이 소요된 것일까. 그렇다면, 괴로운 40년 뒤에 받아들일 수 있는 40년을 가진다는건 남는 장사일까 손해보는 장사일까.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라 노화의 조짐을 여러모로 느끼는데 어제는 모임에서 지인이 찍어준 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단순히 지쳐보인다거나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걸 넘어서 분위기의 측면에서 내 얼굴에 흰 머리가 하나도 없는 새카만 머리가 무척 어색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고 당장 피부과 예약을 했다. 나는 내 노화의 원인을 무척 정확하게 알고 있다. 마음고생. 아무리 밤을 새고 물 대신 커피를 마시고 밥 대신 케이크를 먹는 내 생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해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그런 것들 따위 마음의 고통이 가져오는 노화와는 비교할 수 없답니다. 마음이 주는 고통은 얼굴을 시들게 할 때도 그냥 시들게 하는게 아니라 찌그러뜨려서 기분 나쁘게 늙게 만든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어린 친구가 또 물었다. 

어떻게 일을 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계속 더 나아질 수 있냐고.


글쎄,


나는 그 친구보다 더 살아온 10년의 세월의 힘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할먀미 같이 보이기 때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 현실이 너무 힘드니까, 여기서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어서 그런가봐. 


그건 사실이다. 일을 할 땐 회색의 마음으로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땐 황금의 마음으로 하니까. 회색이 힘들어서 위안을 얻으려 황금처럼 일하고 그러고 나면 황금의 광휘가 남아서 그런지 다시 회색으로 돌아가도 숨을 쉬며 회색의 시간을 넘길 수 있다. 마음이 괴로운만큼 도망치기 위해 더 열심히 황금의 마음으로 임하니 결과물도 좋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올해는 막바지이고 나는 무엇도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열심히 살았던 한 해 였고

내 스스로 충만함을 느낀, 내 야망의 실현과 진보도 있었던 한 해 였다. 

다만 아직 70억이 없을 뿐이다. 


지인들과 모여 온갖 이야기를 하던 중 술에 취해 말했다.


-내 계획은 말이야. 


난 분명히 내 계획이라 말했다.

이건 꿈 같은 게 아니니까.


-지금 하는 일,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면 이탈리아로 갈거야. 거기서 집을 빌릴거야. 그리고 한 반년, 일 년 살건데, 집을 2-3명은 살 수 있는 집으로 빌려서 그 동안 누구든 나를 찾아올 수 있게 만들거야.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친구들은 당연히 놀러오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이건 꿈이 아니야.


나는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의 얼굴이 이미 머리속에 다 있다.

내가 삶이 괴로웠다고 하면 아무말 없이 들어줄 친구들이.

우리는 이탈리아의 빈티지 조명이 만들어내는 주홍빛 불빛 속에서 

베란다로 들어오는 포근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그 나라의 풍요로운 땅이 뱉어낸 농산물로 만든 무언가를 먹으며

와인을 따라 마시겠지

그리고 기분이 좋으면 탁, 즉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젤라또를 사먹으러 휘청이며 걸어나갈거야.


자정이라도 상관없어.


그렇게

괴로웠던 시간이 만든 단물의 계획은 너무도 달콤해서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이미 반쯤은 이루어진 듯 만족스럽다.

고통이 길었던 만큼 단맛의 농축도 깊었겠지. 

나는 그 곳에서,

아 이런 생활도 무료하군. 멍하니 있다가 그렇게 내뱉는,

그런 사치스러운 권태를 백분 누리고 말거야.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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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보고싶어요. 이탈리아에서 집을 빌려 살면서 친구를 초대하고 같이 노닐고 그러다가 어느날 아 이런 생활도 무료하군 하는거요. ㅎㅎ LAYLA님 꿈이 진짜 제 꿈이랑 너무 비슷해서 잠시 어 이거 내가 쓴건가? 했다는..... 언젠가 꿈은 이루어지겠죠????

LAYLA 2022-12-03 00:11   좋아요 0 | URL
무척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일들도 어차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 생각하면 쉽게 느껴지더라구요. 바람돌이님의 계획도 이루어지시길 바래요!^^

라로 2022-12-0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레일라님의 이탈리아 집에 놀러 가는 친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70억이면 얼마지? 달러로 계산하고 있는 저!! 기준이 바뀌어서 나름 안 좋은 머리가 더 정신이 없습니다요.ㅠㅠ 어쨌든 정말로 이루어 지길 바랍니다!!

LAYLA 2022-12-03 00:13   좋아요 0 | URL
라로님 언제나 환영입니다. 혹시나 해든이도 같이 온다면 아침식사를 하며 해든이 뒷통수 한 번 쓰다듬어보고 싶어요. 해든이는 이제 무조건 자기를 귀여워하는 알지 못하는 이모를 귀찮아 할 나이일거 같긴 하지만요 ㅎㅎㅎ 70억은 500만 달러쯤 되려나요? 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12-0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저도 이탈리아 집에 저두 놀러가고 싶어요!! 하며 🤚 손 들 뻔요^^;;;
저는 오늘 지인을 만나 지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때문에 조금 심란했었는데, 라일라님 글을 읽으며 또 지인의 얘기를 떠올렸네요.
˝우리가 100 살까지 산다고 쳐요. 노후에 한 달에 300 만 원의 생활비를 쓴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해봤더니 총 7억이 넘게 들어요. 그 외 잡비를 좀 더 계산해 보니...@%.*.~^%˝
안드로메다로 잠깐 다녀 온 나의 정신 세계였지만 조금 충격이었다는....ㅋㅋㅋ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노후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나는 뭐하나? 싶기도 하구요^^;;;

LAYLA 2022-12-03 00:20   좋아요 1 | URL
그래서 국민연금 납부는 꼬박꼬박 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그나마 좋은 시대 타고나서 이젠 이탈리아 물가가 한국보다 싸기도 해서요. 100살까지 살면 생활비도 문제이지만 그때까지 추억할 좋은 기억들도 많아야 할 거 같아요.
 

<폭풍의 언덕>을 읽다보면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저 황야의 목사관에서 자란 어린 소녀가 어떻게 스스로를 유폐하고 오직 글쓰기에 매달렸는지, 아무런 명성도 위로도 없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했는지, 소리 없이 퇴장하는 배우처럼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작가는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쓴다. 아무리 음침하고 어두운 이야기라고 해도 그 안에는 작가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정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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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1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다음 읽을 책이 폭풍의 언덕인데 이 글 머리속에 잘 넣어두고 염두에 두면서 읽을래요. 에밀리 브론테가 쓰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던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었을지 찾고 싶어서요.

LAYLA 2022-12-03 00:21   좋아요 0 | URL
저도요!^^ 지금까지 읽는 게 괴로워서 저런 생각은 못해봤는데...그 고통스러울 정도의 격정 속에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 잘 봐야겠어요.
 
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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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아시다시피 마음의 병을 앓는 중환자여서 이곳에 머물 때는 근처의 여관을 겸한 요릿집으로 날마다 소주를 마시러 출근하고, 사흘에 한 번은 우리 옷을 내다 판 돈을 들고 도쿄 쪽으로 출장을 갑니다. 하지만 괴로운 건 이런 일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제 생명이 이런 일상생활 속에서 마치 파초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고 썩어 가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절로 썩어 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예감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 P79

6년 전 어느 날 제 가슴에 아스라이 무지개가 걸렸고 그건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무지개 빛깔은 점점 또렷해져 저는 지금껏 한 번도 그걸 놓친 적이 없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간 맑은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는 이윽고 덧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가슴에 걸린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 P80

기다림. 아아, 인간의 생활에는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미워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 건 인간 생활에서 겨우 1퍼센트를 차지할 뿐인 감정이고 나머지 99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 들리기를 이제나저제나 가슴 저미는 그리움으로 기다리다, 텅 빈 공허감. 아아, 인간의 생활이란 얼마나 비참한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겠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이 현실. 그리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헛되이 뭔가를 기다려요. 너무 비참해요. 태어나길 잘했다고, 아아, 목숨을, 인간을, 세상을 기꺼워 해보고 싶습니다. - P95

나 역시 이렇게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을 읽는 자신을 아니꼽게 여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름대로 깊은 흥미를 느낀다. 이 책의 내용은 경제학에 관한 것이지만, 경제학으로만 읽는다면 참으로 시시하다. 너무나 단순하고 뻔한 사실뿐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경제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겐 너무 따분하다. 인간이란 원래 쩨쩨하며 영원히 쩨쩨하다는 전제가 없으면 도무지 성립되지 않는 학문으로, 쩨쩨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분배의 문제건 뭐건 아예 흥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다른 면에서 묘한 흥분을 느낀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낡은 사상을 모조리 파괴해 나가는 저돌적인 용기이다. 아무리 도덕을 거스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유부녀의 모습마저 떠올리게 된다. - P107

파괴 사상. 파괴는 슬프고 애처롭고 아름답다. 파괴하고 다시 짓고 완성하려는 꿈. 일단 파괴하면 완성할 그 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렇다 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파괴해야만 한다. 혁명을 일으켜야만 한다. 로자는 마르크시즘에 일편단심 슬픈 사랑을 했다. - P107

행복감이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슬픔의 극한을 지나 아스라이 신기한 불빛을 보는 기분.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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