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4월
구판절판


오늘도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를 향한 절대적 갈망,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는 나의 가장 '유치한'부분, 그리고 가장 사춘기적인 부분을 대변한다. 별로 지적이지 않고, 큰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하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내 젊은 시절의 남자'이며, 금발이고 약간 촌스럽다(손과 네모난 손톱들). 그러나 나의 쾌락을 한층 증폭시켜주기 때문에 이런 지성의 부재에 대해 더이상 불평하고 싶지 않다. -24쪽

나의 모든 생은 남자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 그 자체였다.-89쪽

오직 나 혼자만이 내 인생을 밝힐 수 있다, 비평가들이 아니라.

...
그에게 여러 명의 애인이 있다는 느낌과 의심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게다가 그와의 관계중에 걸린다면 에이즈라도 상관없다. 어쨌든 지금 내게 다른 남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임약도 복용하지 않는다. -94쪽

나는 지적이고 '탄탄한' 남자와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나가겠다는(?)' 꿈을 완전히 포기했다. 글과 아이들 외에 나는 아무것도 만들 능력이 없다. 애무와 욕망, 꿈, 환상 말고는 내게 아무것도 가져다줄 것 없는, 잠시 내 곁에 머물러 있는 남자가 내가 가진 유일한 현실이다. 그것도 그가 시간이 허락하는 경우에만.

내가 한 남자를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268쪽

사랑과 역사가 일치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소련이 (혁명적으로)변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상상하고 바라는 일은 너무 아름답다. 나는 러시아 남자, 초록 눈의 금발 외에는 새로운 사랑을 바라지 않는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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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1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4월
품절


그런데 집 안을 정리하면 왜 사고방식이며 삶의 방식, 인생이 달라질까? 그것은 정리를 통해 '과거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정리를 통해 인생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그만두어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8쪽

시험 전날 '정리하고 싶다'는 충동은 정리에 흥미가 있는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현상이다. 시험 전날 말고도 다급한 상황에 처하면 정리가 하고 싶다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너무 정리가 하고 싶은 경우, 그것은 방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데, 눈앞이 어수선해서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결과적으로 공부와 정리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이다. -31쪽

애당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정리를 할까? 결국 방이든 물건이든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리는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물건을 버릴지, 남길지를 구분할 때도 '물건을 갖고 있어서 행복한가', 즉 '갖고 있어서 마음이 설레는가'를 기준으로 구분해야 한다.

마음이 설레지 않는 옷을 입고 행복할까? 설레지 않는 책들을 쌓아둔다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절대 착용하지 않을 장신구를 갖고 있는 것으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마음이 설레는 물건으로만 채워진 자신의 공간과 생활을 상상해 보자. 그것이 바로 자신이 누리고 싶은 이상적인 생활이 아닐까? 마음이 설레는 물건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과감히 버리자. 그 순간부터 당신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58쪽

물건에는 물체로서의 가치 외에 '기능', '정보', '감정'이라는 세가지 가치가 있다. 여기에 '희소성'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서 버리기의 난이도가 정해진다. 즉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직 쓸수 있기 때문이거나(기능적 가치), 유용하기 때문이거나(정보 가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감정적 가치). 또 물건을 손에 넣기 어려웠거나 그것을 대체하기가 어려우면 더욱 버리기 어렵다(희소가치).

따라서 물건을 남길지 혹은 버릴지를 판단할 때는, 처음에 난이도가 낮은 물건부터 시작해서 정리에 대한 판단력을 단계적으로 높여 나가야 한다. -64쪽

이렇게 크게 분류하여 쌓아둔 책들을 한 권씩 손에 들어 만져보고 남길지 버릴지를 판단한다. 물론 기준은 만졌을 때 '설레는가' 하는 것이다. 선택을 위해서는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므로 작업 중에 절대 내용은 들여다보지 마라. 책을 읽게 되면 설렘이 아닌, 필요성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116쪽

정리의 마법 효과 중 하나는 자신의 판단에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정리 과정에서 물건을 하나하나 만져 보며 설레는지, 어떤지 자문자답해 남길지 버릴지를 판단하는 것을 수백, 수천 번 반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판단력이 키워지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 내가 그랬다. 그랬던 나를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정리'다.-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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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2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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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 우리 시대 여성 멘토 15인이 젊은 날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
김미경 외 지음 / 글담출판 / 2011년 11월
절판


자유는 '자기 이유'의 줄임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자기 이유가 분명한 삶이 자유로운 삶입니다. 나의 이유가 분명한 선택이라면, 그것은 책임질 수 있는 선택, 그 자신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길고 긴 인생을 엮어가는 과정에서 성공 여부는 마지막에 결산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과 자유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할 때 옵니다.
-심상정-11쪽

스물다섯 살의 그 봄, 너는 식당으로 향하던 걸음을 그대로 돌려 덕수궁으로 옮겼다. 더 어렸을 적엔 어린 것이 변명이 될 수 있었지만, 스물다섯이나 먹은 어른이 되어서도 보고 싶은 때 꽃을 볼 수 없다면, 그러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며 세상의 핑계를 댄다면, 그건 올바른 성인의 삶이 아니란 걸 깨달았거든. 무엇보다 자신의 상처도 돌볼 줄 모르면서 세상과 거래하는 법부터 습득한 네 자신이 부끄러웠어.
- 오소희 -31쪽

그 당시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었어요. 누구나 가난했으니까 쉽게 절망하지 않았죠. 없이 살아도 사람 사이에 기품이 있고 선한 기운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반면 그런 정신이 사라져서 안타까워요.
- 윤석남-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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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잇태리
박찬일 지음 / 난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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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서운 건 경찰도 헌병도 아니다. 나는 그걸 우연히 목격했다. 어느 변두리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었는데, 카페 주인이 갑자기 사색이 되어 얼어붙었다. 나도 얼른 뒤를 돌아보았는데 갈색 제복의 어떤 사내들이 기관총을 들고 들어닥치는 중이었다. 그 카페 주인이 살인 사건에라도 연루된 게 틀림없어 보였던 건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기관총으로 무장한 제복들은 세무서 직원이었고, 카페 주인의 탈세와 관련된 모종의 습격이었다.

나는 한국도 세무서원을 기관총으로 무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한 번이라도 텔레비전에서 세무서원이 상습 고액 체납자를 찾아가는 양심 뭔가 하는 프로그램을 봤으면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세무서원들이 양복 정장을 입고 으리으리한 체납자 집을 물어물어 찾아간다. 그러고는 겨우 "선생님게서는 탈세를 하시고 상습 체납 하셨습니다. 언제까지 납수하시겠습니까. 물론 할부도 가능합니다."하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 광경을 보고 어떻게 분개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1쪽

그냥 기관총을 들이대고 "야 인마! 당장 세금 낼래, 아니면 배에다 총알구멍을 내줄까."하면 속 시원히 해결될 거라고 믿는 시민들이 대다수이지 않겠는가. -2쪽

이탈리아 남자들은 마치 모두 카사노바가 되지 않으면 남자 구실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게 내 눈에는 좀 강박처럼 보인다. 카사노바의 후예답게 굴어, 이런 자기최면을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받는 사람들 같다. 콘돔만 해도 그렇다. 이탈리아의 콘돔 공장은 꽤 이문이 짭짤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거기엔 순전히 사람들이 무조건 사이즈가 큰 콘돔을 찾기 때문이라는 설, 또 하나는 쓰지도 않으면서 자꾸 동네 상점에서 콘돔을 사들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전자는 크기 콤플렉스이고, 후자는 횟수 콤플렉스일 것이다.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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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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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근대의 노동하는 동물은 노동을 통해 인류의 익명적 삶의 과정 속에 용해되어버릴 만큼 자신의 개성이나 자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노동사회는 개별화를 통해 성과사회, 활동사회로 변모했다. 후기근대의 노동하는 동물은 거의 찢어질 정도로 팽팽하게 자아로 무장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수동성과는 정말 거리가 먼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고 유적과정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간다면 적어도 동물 특유의 느긋함이라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후기근대의 노동하는 동물은 정확히 말해서 전혀 동물적이지 않다. 그는 과도하게 활동적이고 신경과민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40쪽

오늘날 성과주체가 앓는 우울증 등의 질환은 이렇게 내면화된 타자와의 갈등관계 또는 양가적 관계를 전제하지 않는다. 우울증에는 아예 타자의 차원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소진burn out은 자주 우울증으로 귀결되거니와 이때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으로는 오히려 과도한 긴장과 과부하로 파괴적 특성까지 나타내는 과잉 자기 관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탈진과 우울 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탈진해버린다. 그는 자긴에게서 걸어 나와 바깥에 머물며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맡길 줄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 속으로 이를 악물 따름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남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속이 텅 비어버린 공허한 자아뿐이다. 주체는 점점 더 빨리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마모되어간다.-94쪽

우울증이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후기근대적 인간의 좌절감에 대한 병리학적 표현이다. -111쪽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따라서 타자의 부정성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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