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출장)을 마무리하고 통장 잔고를 확인하기 전에 비싼 보석상으로 가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금액을 지출하였다. 통장 잔고는 카드승인이 거부되는 바람에 어차피 보석상에서 다시 확인해야 했는데 다행히 잔고는 넉넉했고 1회 승인한도를 넘은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몇 번이나 쪼개서 카드를 긁고 그러다 1일 한도까지 넘어버려서 또 다른카드까지 긁으며... 열심히 카드를 긁는 점원들에게 ˝나처럼 불쌍한 손님 본 적 있니?˝ 물었더니 꺄르르 웃는다. 정말 모든 것을 탈탈 털어내듯 계좌를 긁고 긁어 결제를 마쳤다.

내가 구매한 보석은 이 년 전에 여행을 마무리할즈음 한 공항 면세점에서 우연히 본 것인데 그 때엔 가격에 깜짝 놀라 뒤도 안 돌아보고 상점을 나섰다. 반년, 아껴쓰면 일 년도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않길래, 그래 남자도 몇 달 지나면 잊혀지는데 2년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보석이라면 사는 게 맞다 싶어서 과감히 질렀다. 혼수을 미리 한다고 생각했다. 그 보석에 어울리는 반지도 같이 사며 ˝이거 남자꺼도 나와요?˝ ˝주문하면 가능해요! 남자친구것도 사려구요?˝ ˝No lo tengo todavia... 아니 아직은 없어요.˝ 대답하며 혼자 웃겨서 키득거리고 웃었다. 사실 혼수를 미리 한다는 것은 절반의 자기합리화이고 나머지 절반의 진실이란 올지도 모를 미래에 희망이나 기대를 품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충실하고 싶다는 것. 남자는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 보석은 내내 내 옆에 있어줄 것이다. 

난 사실 티파니랑 까르띠에로 결혼반지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 결혼반지 디자인이 전 세계 보그와 바자에 전면으로 광고된다는 건 끔찍한 일인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같은 인간이 산,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한 명품 보석이란 것은 사실 비효율 비합리적 구매의 전형적 예인지도 모르겠다. 돈이 없어 보석을 팔아치워야 하는 순간에 저 보석이 과연 얼마의 값어치를 할지? 까르띠에 러브링이마 트리니티링 같은 `보편적인` 보석이 투자의 측면에선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나는 샤넬과 까르띠에에 돈을 쓰는 것은 정말 의미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삼십세 여성으로 자라버린 탓에 그냥 무명의 명품에 어마어마한 돈을 써버렸다. 무명의 명품이라니! 어쨌든 앞으로 저 보석을 팔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닥치지 않기만 한다면 뭔 상관이랴. 축난 잔고를 채우기 위해 다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다. 빈 잔고를 꼭 다 채우고 눈여겨 본 목걸이까지 사러 다시 오자고. 계좌정리를 하면 바뀐 잔고 앞자리수가 크게 다가오겠지만 어쨌든 오늘까진 무척 행복하였다. 소비의 즐거움은 짧고 확실하다는 명확한 성분표를 가지고 있는데 내 경험상 보석은 옷이나 가방보다는 확실히 더 긴 행복을 보장한다. 이 즐거움이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겠다. 


2015.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찾을 글이 있어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나의 비공개 일기.

저때 쓴 돈의 액수는 장사하며 잔고가 위험할때마다 생각났다.

내가 저 돈을 썼다니...

하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비싸고 관리하기 힘들어 밖에 하고 나간 적은 5번 미만.

하지만 나는 가끔 화장대 앞에서 혼자 저 팔찌와 반지를 껴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이미 저 보석값 만큼의 만족감은 충분히 누린 것 같다. 


잘 샀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7-03-29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50만원짜리 가방을 사지 못하고 절절 매고 있었는데, 역시 질러야겠어요. 불끈!

LAYLA 2017-03-30 01:19   좋아요 0 | URL
저도 196만원 짜리 사고 싶어서 쳐다보고만 있어요..이번에 돈 많이 벌어서 살거에요 진짜로..ㅠㅠ

2017-03-29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30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30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30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7-03-2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제 톨보이 스피커를 못사고 있었는데 용기를 얻었습니다. ㅋㅋ

LAYLA 2017-03-30 01:22   좋아요 0 | URL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17-03-30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1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