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의 품격 - 마법 같은 유혹과 위로, 25가지 술과 영화 이야기
임범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4월
구판절판


단지 타락해서 인간이 술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알코올은 가난하고 문맹인 이들을 문학과 심포니 콘서트가 열리는 곳으로 데려갑니다.
-올더스 헉슬리 <모크샤>-4쪽

영화의 무대인 카리브 해에선 지금 럼 전쟁이 진행 중이다. 럼의 대표적 상표 바카디와 미국이 그 한편에 있고, 반대편엔 쿠바와 프랑스가 있다. 파쿤도 바카디가 19세기 중반 쿠바에 세운 바카디사는 럼의 품질을 한 단계 상승시키면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한 세기 지나 카스트로의 좌파 정권이 들어서서 모든 시설을 국유화하자 바카디사는 푸에르토리코로 회사를 옮겨 럼을 생산하면서 카스트로 정부를 와해시키려는 CIA의 공작을 열렬히 지원했다. 심지어 쿠바의 정유시설을 폭격하기 위해 회사가 직접 폭격기를 사기도 했다고 한다.
그 사이 쿠바 정부는 '하바나 클럽'이라는 기존의 럼 브랜드를 국유화하고 프랑스의 한 주류회사와 합작 생산해 매출이 급증했다. 그러자 바카디사는 미국으로 망명해 있던, 하바나 클럽 상표의 원래 소유자로부터 사용권을 매입했고, 이르 인해 하바나 클럽 상표의 사용권을 둘러싼 쟁송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는 쿠바산 하바나 클럽이, 미국 안에서는 바카디사가 만드는 푸에르토리코산 하바나 클럽이 팔리고 있다.-17쪽

테킬라는 위험하다. 모든 술이 많이 마시면 안 좋고 더 안 좋으면 사고 치게도 만들지만, 데킬라가 주는 취기는 꼬장이나 객기와 조금 달리 뭔가를 능동적으로 하고 싶게 만든다. 누군가가 그랬다. 창조에 수반되는게 기쁨이고, 쾌락은 소비할 때 생기며, 이 둘이 섞인게 관능이라고.-31쪽

<알코올과 예술가>라는 책에 따르면 랭보가 파리에서 압생트를 처음 맛본 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압생트가 주는 취기야말로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책의 저자 라크루아는 그 표현을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19세기 들어 부르주아지가 귀족을 대체한 뒤, 예술가들은 부르주아지들과 어울려 시류에 영합하며 돈벌이를 하거나 아니면 가난 속에 고립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이런 상징적 지위실추의 상황에 직면해 보들레르 이하 일군의 예술가들은 일부러 자기 외모나 행동을 차별화했고, 술에 취해 사는 건 그 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랭보는 압생트를 외모로 차별성을 알리는 한 방식인 '옷'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술, 혹은 술에 취해 사는 건 그 당시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는 뜻일 거다. 그렇다면 예술이 가장 많은 도발과 실험을 일삼던 그 시대에 압생트는 예술가의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자존심이었다는 말이 된다. 금기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53쪽

"그들은 네가 두려운 게 아니야. 네가 풍기는 냄새가 두려운 거야"
"우리 머리가 좀 긴 게 그렇게 두려운가?"
"아니, 그들이 네게서 맡는 건 자유의 냄새라고"
"자유가 뭐가 문젠데? 제일 소중한 것 아냐?"
"그럼, 제일 소중한 것이지. 하지만 자유에 대해 말하는 것과 자유 속에 있는 건 완전히 다른 거라고. 시장에서 노동력을 사고팔면서 자유로울 수 있기란 정말 힘들단 말이야. ...그들은 개인의 자유에 대해 수없이 얘기할 거야. 하지만 정말 자유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두려워진다고"
-이지라이더-95쪽

일본 스카치 위스키의 아버지 '다케쓰루 마사타카' 1894-1979
사케를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위스키에 눈독을 들여 스물다섯 살인 1918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 화학과로 유학을 갔다. 학과 공부보다 위스키 양조 과정을 더 배우고 싶어했던 그는, 동양인을 백안시하는 당시 그곳의 풍토를 무릅쓰고 양조장 롱먼 디스틸러리의 문을 두드렸다.

...자신과 같은 글래스고 대학에 다니는 후배 여학생의 집에 하숙을 하게 된다. 거기서 후배 여학생의 언니인 리타와 사랑에 빠져 26살인 1920년에 결혼을 한다. ...다케쓰루를 막 만났을 때, 리타는 자기 약혼자를 1차 세계대전에서 잃은 직후였다. 다케쓰루보다 한 살 적었던 리타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랭크셔 교외에서 다케쓰루와의 결혼식을 감행했다. 하객은 리타의 연동생과 그 친구뿐이었고, 식이 끝난 뒤의 만참에 참석한 손님도 다케쓰루가 다니던 대학의 교수 한 명뿐이었다. 나중에 딸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된 리타의 어머니는 결혼을 취소하라고 요구했고, 다케쓰루의 집안도 마찬가지여서 결혼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집안 어른이 스코틀랜드까지 찾아오기도 했다.-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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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10-12-0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맘에 드네요.

LAYLA 2010-12-01 20:37   좋아요 0 | URL
제목만큼 내용도 멋진 책입니다. 저자의 정성과 노고가 느껴져서 참 좋았어요. 술도 얼마나 마시고 싶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