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 - 분노와 콤플렉스를 리더십으로 승화시킨 정조
김용관 지음 / 오늘의책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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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나간 제목과 마케팅 그리고 기획의도로 망스멜 풍기는 이 책을 구해보겠다는 일념으로 글을 쓴다. 내가 공짜로 책 받은 서평단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 이렇게 묻히기엔 아까운 책이라서 그렇다. (신간에 서평단 도서인데 세일즈 포인트 90이 뭔가..눙무리 ㅠㅠ)  

제일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이 책은 경영서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CEO가 정조에게 경영을 묻는다고 그러고 분노와 콤플렉스를 리더십으로 승화시켰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말하는 표지랑 딴판으로 책 내용은 정조가 정말 외롭고 힘든 군주였다고 말하고 있다. 모다?/ 상세한 책 내용은 차치하고 그의 죽음 하나만 보자. 종기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죽음을 맞은 정조, 그의 마지막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우린 정조의 죽음에 심환지와 이시수의 잘못을 지적하는 소리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들은 정조의 병에 대해 걱정만 했지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은 것이 역력하다. 정조를 간절하게 살리려고 하는 신하들은 주위에 한 명도 없었다. 정조의 죽음은 2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분명 논란거리다. 정조는 자신의 병을 스스로 치료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몰래 약 바구니를 옆에 두고 달여먹었다.  -301p

 
   

동의보감을 3회독하고 혼자 약을 챙겨먹는 왕이라니 애잔함에 가슴이 아팠다. 요즘 CEO들도 바쁘고 경제가 힘들어 외롭다고 그러긴 하더라만 약 하나 제대로 챙겨주는 신하없이 쓸쓸하게 죽어간 왕을 보며 그의 리더십을 배우고 싶을까?  

저자나 출판사가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던 것은 시대를 앞서 개혁을 '시도'했던 정조의 선견지명 측면이라고 사료되는데 그의 시도는 안타깝게도 그저 시도로서 그치고 만다. 이에 대해서는 저자도 인정하고 있다.  

   
 

 한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뛰어난 인물도 필요하지만 그 나라를 지탱하는 지식인들이나 민중들이 어느 정도 깨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정조가 죽고 오랫동안 조선은 잠자는 나라로 머물렀다. 아니 오히려 정조의 꿈이 사라진 조선은 부패한 관리와 탐욕으로 뭉친 권문세가의 나라일 뿐이었다. 그런 것을 알기에 정조는 그 시대를 바꾸려고 몸부림쳤다. 그의 분노는 시대에 대한 서운함과 울분이기도 했다.  -317p

 
   

 그러니까 이 책은, 어떻게든 훌륭한 군주가 되고 싶었던, 그래서 많이 노력했던, 그러나 결국 결과론적으론 실패한 한 군주의 이야기이다. 자기계발서 돈 주고 사서 읽는 독자가 원하는게 과연 이것일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경영서로 마케팅 하는 건지 그 의도가 자뭇 궁금해진다. 거친 비유로 치자면 이건 노무현 전 대통령 끌어다가 그에게 경영을 묻자는 건데 사람들이 그에게서 보는건 CEO의 리더십이 아니지 않은가. 그가 제시한 '가치'에 의미를 둘 때 그의 실패가 '성공'으로서 읽힐 수 있는건데 그건 자기계발서라는 틀 안에선 결코 가능하지 않은 독해법이다.  

정조가 조선을 다스리던 시기는 조선 내에서도 서서히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잡으며 그에 따른 병폐가 나타나던 시기이다. 돈을 가진자가 도로 주변 땅을 사들여 땅값을 부채질하고 상권역시 가진자들에 의해 독점화되어 중소상인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쏟아진다. 정조는 이 폐단을 바로잡으로 노력하지만 이미 권력이 넘어간 상황에서 그의 시도는 번번히 좌초되고 만다. 한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신하가 왕의 말을 듣지 않는 시대에 대해 배우긴 하였으나 도대체 어떻게 신하가 왕의 명을 거역할 수 있는건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아주 잘 알겠다. 너무 잘 알게 되어서 읽으며 속이 터질것 같았던 구절이 여럿이었다. 임금이 행차하려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마를 막아서고 전염병이 돌면 몸이 아프다고 입궐을 안하는데 한 반년쯤 그렇게 일은 안하고 녹봉만 받아간다. 맘에 들지 않는 명에 내려오면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외치며 겉으론 절절매는 시늉을 하지만 어쨌든 절대로 임금이 하라고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쭉빵을 날리고 싶은 감정을 솟아나게 한다는 점에서 요즘 국회의원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인간들이었다.  

깊은 감상으로 들어가 보자면-일제강점으로 인해 역사가 단절되며 조선사와 한국근현대사의 연결지점은 모호하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봐야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종으로 끝나고 이승만으로 다시 시작하는 역사의 흐름에서 우리는 현재 우리에게 닥친 여러가지 문제의 근원으로 조선까지 거슬러 되짚어보지는 않는다. 사회문제의 근원으로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이 박정희식 독재개발경험인데 그 시대가 미친 부정적 잔재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동시에 이 책을 읽으며 역사란 것이 고작 그렇게 몇 십년 전의 일으로 쉽게 좌지우지 되는 것은 아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몇 백년 전부터 축적되고 있었고 어느 지도자도 그걸 제대로 잡지 못했다. 다만 누구는 문제를 좀 덜 악화시켰고 누구는 가속도까지 붙여서 급격히 악화시켰고 그 차이가 있는게 아닐까 싶은 감상이다.

근대화의 경로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 국가주도의 근대화 둘째, 부르주아 주도의 근대화 셋째, 민중에 의한 근대화. 우리나라를 살펴보자면, 국가주도의 경우 세도정치와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부르주아 주도의 경우 일제침략으로 산업발전에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못하며 실현되지 못했고(농업이 산업화되고 난 다음 공업 산업화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일본의 정책에 식량생산기지의 역할을 맡게되며 기형적으로 농업의 산업화 단계 이후로 나아가지 못함) 민중 주도의 경우 보수적 유교 사상으로 인해 현실화되지 못했다. 이 책과 연관지어서 볼 부분은 국가주도의 근대화 부분이다. 내가 공부를 할 땐 고종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만 공부를 했고 상업자본가의 등장도 고종시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미 정조시대에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발달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처절하게 노력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도. 당시의 사회문제는 지금도 9시 뉴스를 켜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지금의 문제들에 대해 박정희 탓만 할 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 점에선 하나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다 준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점을 조선 중기라고 확장시켜서 보면  자본주의가 발전한 이래 수백년간그 폐단에 대해서는 조선과 한국은 한번도 그렇다 할 해결책을 가져본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박정희 혼자 잘못이라고 몰아붙일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조가 개혁을 시도했고 고종이 개혁을 시도했고 또 어느 대통령이 개혁을 시도했지만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란 한번도 존재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그 불쌍한 나라의 역사를 본다. 혁명이 한 번도 존재하지 못했던 나라에서 어떻게든 개혁을 해보고자 노력했던 자의 삶이 어찌 아니 불쌍할 수 있으랴 싶은 서글픈 감상에 다시 또 가슴이 아프다.  

그러니. 이런 의미에서 독자 가슴을 아프게 하는 책이 어떻게 경영서로 분류되어 해당 독자들을 유혹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인문서로 나왔더라면 훨씬 더 나았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참 아까운 책이다.  

 

비문.오타들 

20p-영조가 콤플렉스를 숨기고 있는 동안 그의 열등감이 결국 사도세자란 비극이 잉태된 것이다. 

89p- 마치 연암 박지원의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라!'는 멋진 산문이 떠올랐다. 

220p-종조 죽음 이후 정조의 모든 개혁정책들이 다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정조를 도와 개혁정치를 폈던 남인들이 모두 서학의 뿌리라고 살아남은 자들은 효수당하고 죽은 자는 역적으로 관직이 모두 거둬졌다. 

235p-그러나 <정조실록>은 영남 유생들의 이런 기개 의도적으로 축소하여 실었다.(문맥상 기개이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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