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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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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영희를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의 누구 말 마따나 리영희는 알지도 못하고 진중권과 홍세화를 통해 의식화된 21세기의 대학생이 바로 나이다. 그의 글은 쪽글 하나 읽어본 적 없으면서 그의 팔순을 기념하는 책부터 읽는다는 것이 웃기긴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숨겨진 의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리영희를 모르는 이 시대의 누군가에게 그의 정신을 일러주는 것. 이렇게 그를 모르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 영구해지기 전에 정신차리라고 볼때기를 때려주는 역할 말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보니 요즘 세대 지식인과 다른 리영희만의 특징은 그는 외로운 시대를 외롭게 살았다는 점이다. 할 말 하는 댓가로 키보드워리어들과 전투를 치뤄내고 무식한 대중들과 맞짱을 떠야 하는 요즘 지식인들과 달리 그는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겨룰 상대도 없던 적막의 시대를 살았다. 요즘 지식인들이 '디-워는 돈내고 봐주는게 한국인의 도리'라고 우기는 개념없는 애들 상대해주기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였던 리영희보단 덜 외롭지 않을까. 먹고 살기는 커녕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고 반공 이데올로기는 두꺼운 장막처럼 이 사회를 뒤덮고 있었다. 그 숨막히던 시대에 리영희는 배운자의 사명으로 끝없이 공부하고 탐구하는데 그 외로움은 외로움의 경지를 넘어 숭고하다는 감상마저 자아낸다.  

책은 전쟁, 사회과학, 영어공부, 책 읽기, 청년세대 등 다양한 소주제를 리영희와 연결지어 다루고 있다. 한 저자가 한 주제를 맡아 글을 쓰고 있으니 그 다양함이 장점이요 글의 분위기와 농도가 제 각각인 것은 나름의 단점이라 말 할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무척 감탄하며 읽었던 글은 역시 김동춘 교수의 글이었고 한윤형씨의 글 또한 무척 좋았다. 김현진씨의 글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리영희선생님의 인터뷰가 담긴 글이니 좋을 수 밖에 없었다. 다 고르고 골라 선정된 필진일 테니 리영희를 알지도 못했던 일개 무식한 대학생인 내가 글을 품평한다는 것이 웃기긴 하다만 오길영 교수가 쓴 '영어라는 우상'이라는 글에 대해서는 뭥미?심정이 되었음을 리뷰에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오길영 교수는 온 국민이 영어에 목을 매는 현 한국세태에 대해 '언어를 정보 전달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격하시켜 혹은 생계를 버는 수단으로 격하시켜 창조적 사유와 분리하는 문제를 가져온다.'(113p)고 비판하며 '500단어 영어'를 이야기한다. 요즘 젊은애들이 외국나가고 영어학원에서 목매는 영어회화란게 결국 500단어 가지고 하는 대화란 말이다. 그 500단어 가지고 무슨 깊이 있는 대화가 되겠냐, 그런 발음 굴리기나 하니 미국대학가서 따라가지 못하고 중도탈락하는 것이다-라는 것이 그의 요지이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인데 내가 그걸 무슨 학문처럼 파고들었단 자괴감에 슬펐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영어가 단순히 최강대국의 언어라는 위치를 넘어 전세계공용어로 자리잡은 현실에서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하는 대상은 네이티브 스피커인 경우보다 영어를 제 2외국어로 삼고 있는 사람인 경우가 더 많다. 독일인을 만나도 케냐인을 만나도 중국인을 만나도 영어로 대화하는 세상이다. 미국으로 석박사 따러가는게 아닌 이상 제일 중요한건 제2외국어로 소통하는 상황에서 기본 500단어로 어떻게 자신의 의사를 효율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내느냐가 영어회화의 핵심인데(고급단어써서 유식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은 이해한다만 토플에 나오는 고급단어도 일상회화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이걸 가지고서 문제라고 하니 나로선 전혀 공감하지 못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500단어 회화로는 비판적 사고력의 부족을 커버할 수 없고 그래서 발음만 현란한 한국애들이 안되는 거라 이야기 하는데 그렇게 애초에 알맹이가 없는 애는 500단어 회화가 아니가 22000단어 회화로도 커버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는 또 지젝의 강연을 들었던 예를 들며, '그의 발음은 알아듣기 힘들었고 표현도 어색했지만 그의 당당했던 태도는 좌중을 압도했다' 말하는데 그건 지젝이니까 그런거고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쏙쏙 이해되게 갖다 바쳐야 하는 일반 한국인들로서는 발음도 무척 중요한 부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나 비지니스 영역에서 유려한 말솜씨의 중요성을 무엇에 빗댈수 있으랴? 리영희는 마지막에 가서야 이 영어교육론과 연결된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왜 배우는가? 어떻게 영어를 배우고 누구를 위하여 영어를 쓰는가? 리영희에게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진실을 추구하려는 지식인으로서 글을 쓰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세계를 조망하는 창을 더 많이 확보한다는 뜻이다. 리영희가 누구보다 날카롭게 당대의 문제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를 향해 열린 외국어의 창을 많이 확보했고 그 창을 통해 무엇을 봐야 할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24p) 말은 참 근사하다만 초반부에 영어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격하시킨다 분개하더니 뒤에 와선 리영희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잘 사용했다 칭송하니 좀 뭥미?싶었다. 결국 어떤 목적은 숭고하고 어떤 목적은 천박하다는 것인가. 물론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는 알겠다. 고전을 원서로 읽어라, 더 많은 단어를 배우고(개념을 배우고) 사고의 지평을 넓혀라 그런 이야기겠지.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에 나쁜 뜻이 있었으리라곤 생각치 않는다. 그런데 요즘 현실에선 에덴의 동쪽을 원서로 읽는 것은 사치인 사람들이 많다. 비지니스 영어회화 100개 외워서 면세점 취업해야 하는 아가씨들이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런 삶의 문제.현실의 문제가 결코 격하될 수 없는 부분이란 것이 나의 생각이기에 영어가 수단으로 사용될 때에도 급이 있다는 식의 오길영 교수의 글은 불편했다. 영어로 인한 사대주의, 식민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영어가 필요한 사람만 배우면 된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의 영어 열풍이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 과도한 사회적 수준의 낭비를 가져오고 있는 것에 나 역시 분명히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배울 사람만 배우면 된다'는 논리는 무척 위험하다고 본다. 에덴의 동쪽을 원서로 읽을 시간적 여유가 되며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교수. 기자 등등)만 영어를 배우겠다는 소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영어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위키피디아 사전 한번 들춰보려고 해도 영어는 필요하다. 그래. 내가 불편했던건 이런 이야기들이다. 리영희 선생이 영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아는바가 없다. 이 책은 리영희 선생이 쓴 책이 아니니까.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오교수의 인용에 리영희 선생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리영희 선생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펼친것 아닌지 하는 찝찝함이 남았다.  

이 기나긴 불평글을 다 읽고 내려오신 분이라면 분명히 아시겠지만 이 책은 마지막 챕터의 인터뷰 약간을 제외하고는 리영희의 목소리나 글이 직접적으로 담겨있지 않다. 그에게 사상적으로 은혜를 입었다는 이들이 그를 떠올리며 쓴 글이 묶여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 같이 그와의 시대적 갭이 무척 큰 대학생이나 젊은 사람은 그를 본격적으로 읽기 이전에 우리 이전 세대에 그가 가졌던 의미가 무엇인가 잠시 배우고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간접적으로나마 리영희의 생애나 경력이 토막토막 언급되기에 그에 대한 기본지식도 제공해준다. 나는 이제 리영희의 진짜 글을 읽어보려고 한다. 마지막 챕터의 인터뷰가 주는 감동이 너무 커서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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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6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YLA 2010-03-16 22:47   좋아요 0 | URL
이런 좋은 댓글은 공개로 달아주시지... :)
발음의 중요성은 외국에 나가기 전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본토 땅 한번 못 밟아본 저로선 발음에 쏟을 시간을 문법이나 독해에 쏟는게 훨씬 효율적이었고 어차피 스무살 넘어서 회화해봐야 소용없다는 시니컬한 소리도 들었지요. 그런데 나가서 아프리카 애들이나 싱가포르애들 영어 알아듣느라 고생하며 발음이나 악센트도 의사소통의 한 부분이며 결코 격하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이에 발음 공부하는게 참 스스로 답답하지만 ㅋㅋㅋㅋㅋ 뭐 이 부분도 이 부분이지만 제일 본질적인 부분은 21세기 사회에서 앞으로 영어없이 할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는 제 생각이겠지요. 영어를 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접하는 정보의 양에서 너무 큰 차이가 생겨버리니까요. 그런데 영어를 쓸 일 없는 사람은 배우지 말자-라고 해버리면. 영어를 공부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기분이랄까요. 그런 소리가 정말로 일상생활에 영어가 필요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압력에 의해 영어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배우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면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영어로 배운 지식으로 먹고살고 영어를 발판삼아 잘 나가는 사람들이 해버리면 좀 당황스럽습니다. 나는 영어로 창조적 사유를 할 수 있는데, 그거 하지도 않을거면서 기초회화에 돈 쏟지 말아라-처럼 오만하게 들리기도 하거든요.
뭐 이건 제 좁은 생각들이구요 님의 댓글, 오 교수의 주장 모두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저도 교환학생 나가서 영어로 고생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진보쪽 지식인들도 다 영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고 있고...다정한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