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지낸지 일주일이 지나가자 어서 다음 목적지인 이탈리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탈리아로 가서 하루에 3번 젤라또를 먹고 싶었다. 저녁으로는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푸짐하게 먹고 후식으로는 티라미수를 챙겨 먹고 싶었다. 크레마가 풍부한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싶었다. 스위스는 호텔의 간단한 조식 오믈렛마저도 간이 맞지 않았고 구글맵으로 평점이 좋은 음식점을 찾아보면 모두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케밥집이라거나 인도 음식점이라거나 이탈리아 음식점이라거나... 비싼 스위스 물가는 그에 맞는 경험을 한다면 충분히 치를 수 있다. 스위스에서만 먹을 수 있는 괜찮은 음식이라던지. 하지만 스위스에 그런 건 없다. 스위스로 이주한 외국인이 만든 자신의 나라 음식이 그나마 이 나라에선 먹을 만한 음식이란 사실이... 여행이 길어지자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마지막 스위스 목적지는 체르마트란 산골 동네였다. 정책적으로 동네에선 전기차만 탈 수 있기 때문에 외부인들은 기차가 정차하는 인근도시에 차를 주차하고 기차로 갈아탄 다음 체르마트로 들어가야 했다. 검색해보니 친환경 도시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동네에서 탈 수 있는 전기차라는 건 테슬라 같은 전기차라 아니라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전기차로 사이즈가 경차보다 더 작다. 사실 실제로 가 보니 워낙에 작은 골목길로 이루어진 동네라서 친환경이고 뭐고를 떠나서 일반 차량은 원래부터 다닐 수가 없는 곳이었다. 1세계 국가들이 자기들은 할 거 다해놓고 이제와서 사다리 걷어차기 하듯 친환경 어쩌구 하는 것에 반감이 있다보니 어차피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으면서 친환경 도시라고 자랑을 해야 했나?’ 싶었다. 그 와중에 동네 중심가에는 윤기나는 털의 말들이 끄는 마차가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21세기 식으로 친환경을 외치면서 동시에 동물권에 대해서는 19세기와 별 다를 바 없는 둔감한 모습에 한층 더 어쩌라구상태가 되었다.

 

이 동네도 만년설이 올라가 있는 뾰족한 산이 유명하고 겨울이 되면 스키 휴양지가 된다는데 또 날씨가 흐려 그 봉우리는 제대로 보지 못했고 간단히 동네 구경만 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호텔 정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느낌으로 파스텔 톤으로 인테리어를 해놨는데 아침을 먹으러 가서 깜짝 놀랐다. 식당이 온통 핑크빛이었다. 겨울이 되어 바깥이 모두 하얘지면 더 멋질 것 같았다. 그 호텔의 리셉션을 지키고 있던 직원은 매우 유쾌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탈리아 출신이라 했다. “내가 여기 일한지 2주 밖에 안되어서 산으로 올라가는 기차 시간표는 모르지만 동네에서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이 어딘지는 알아.” 알고 보니 이탈리아 국경과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이 동네에는 이탈리아에서 돈 벌러 온 노동자들이 꽤 많았다. 골목이 좁고 경사가 심한 곳이라 공사를 하기에 꽤 까다로운 곳이지만 매년 보수를 해서 새로운 관광객을 맞이해야 하니 여름인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많았는데, 그 곳에 있는 근로자 중 많은 수가 짙은 갈색 머리칼에 긴 속눈썹을 가진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산책을 하다 막다른 곳에 다다랐는데 그곳에서 시멘트 반죽을 하고 있던 한 이탈리아 청년이 다가와 손짓발짓으로 여긴 길이 없다고 알려 주었다. 국경이 맞닿아 있다고 해도 스위스 사람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이탈리아 사람은 전혀 하지 못한다. 나중에 식당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다가 트럭 뒷자리에 올라타 퇴근하는 현장 노동자들을 보여 시계를 확인했더니 정확히 64분이었다. 6시에 칼퇴근을 하고 페이도 좋을테니 1시간 거리의 외국으로 외노자가 되어 온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그 식당은 이탈리아인 사장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음식점이었는데 파스타 한 접시가 39프랑이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는다고 해도 여권을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기차에서 국경을 넘는다고 알려주는 것도 아니지만 엄마는 창밖의 풍경으로 우리가 이제는 다른 나라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 나라는 좀 못사나?” 나무 토막 하나도 줄지워 세워놓는 스위스와 달리 이탈리아는 철로 옆으로 잘라둔 나무 토막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수습하지 않고 벌려 놓은 공사 자재도 보였다. 뭐라고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나는 이탈리아에 온 것이 그냥 좋았다. “지금은 못 살지만 옛날에는 스위스보다 잘 살았을 걸?” 우리는 대도시로 가지 않고 중간에 있는 작은 휴양도시 stresa에 내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설산에서 겨우 한 시간 떨어졌을 뿐안데 이 곳의 산에는 만년설이 없고 멋진 암석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산이 되어 버렸다. 대신 푸르고 넓은, 작은 파도까지 치는 마치 바다 같은 호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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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6-2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맛난 음식과 와인을 즐기시면 됩니다 스위스는 원래 척박하고 가난했던 곳이라서 그런지 음식문화를 별게 없다는 말은 여러 번 들어왔습니다 ㅎㅎ 이탈리안 남자들의 신사적이만 매우 느끼한 예절은 덤으로 ㅎㅎ

LAYLA 2022-07-03 04:57   좋아요 1 | URL
이탈리아 역에 내리고 나서 남자 역무원에게 화장실이 어디냐 물었더니 ˝굿 모rrrr닝?˝ 그러고 그냥 쳐다보기만 하더군요. ㅋㅋㅋㅋㅋㅋ 아 여기는 이탈리아다. 바로 느낀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