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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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를 통해 하루키에 대해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면서도 소설에 관해서라면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 이렇게 많이 팔리는지, 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지, '문운'이란 말 외에 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라고까지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 처음으로 하루키의 소설이 멋지고 빼어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의 수많은 책 중 이 책이 좋은 이유를 꼽자면


1. 단편이라서 산뜻하고 그 특유의 할랑한 문체가 더 잘 살아난다. 장편을 이런 문체로 진행하면 독자입장에선 지루할 때도 있고 길을 잃은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이게 뭔 말이야? 이런 느낌) 단편에는 아주 잘 어울린다.


2. 이상한 성적 내용 없음. 밤에 갑자기 다 벗은 여자 나오는 꿈을 꾼다던지 하는 내용.


3. 비교적 젊은 시절(?)에 쓴 글이라 감수성이 말랑말랑하게 살아 있다. 동화 같은 단편들인데 개인적으론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법 시절은 더 젊고 감수성이 부드러울 시절이지만 작가로서의 기량 역시 초보이던 시절이라. 어느 정도 글을 쓰고 난 다음 낸 이 단편집이 더 좋다고 느껴진다. 감수성과 기량이 적절한 밸런스를 이루고 있는 느낌.


4. 주제의식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다. 소설이 어떤 메시지를 너무 직구로 던진다는게 좋은 말은 아닌데 대중적인 독자를 염두에 둔다면 어느정도는 쉽게 던져줘야 하는 측면이 있고, 그런 면을 감안하면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책이다. 


이런 이유들로 이 책을 하루키의 소설 중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었고 그냥 좋아하는게 아니라 두고두고 읽어야겠단 생각까지 했다.


지금까지 읽은 모든 하루키의 소설에 대해 큰 인상이 없고 심지어 무슨 책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단 걸 생각하면 무척 획기적인 일.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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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0-07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단말입니까!! 저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본 건 단 하나 [해변의 카프카]인데 뭔 얘기인지도 모르겠으면서 혐오감만 느낀 소설이라 저도 그의 명성을 운이라고, 아니면 트랜드인가 뭐 이랬는데 에세이는 너무 좋아했어요. 저도 이 책을 읽어봐야 겠어요. 레일라 님이 좋다고 한 책 안 좋은 것 없었으니까 믿읽(나도 함 만들어 봤어요. 믿고 읽는 ㅎㅎ)겠습니당. ^^

2020-10-18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