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에겐 포즈와 실체를 구별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전시장에 태연히 남성 소변기를 들여놓고는 그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역시 전시장에서 누드 모델과 마주 보고 앉아 태연히 체스를 두었던 작가 뒤샹만큼은 ‘진짜’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뒤샹은 전 역사를 통틀어 아티스트로서 가장 유머러스하고 동시에 가장 품격 있는 포즈를 취했는데 그 포즈를 일관성 있게 평생 동안 유지했다는 점에서 진짜였던 것 같다. 나는 무엇보다 모나리자 얼굴에 수염을 그려넣음으로써 르네상스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작에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보냈던 뒤샹의 그 쿨한 표정이 좋다.
그는 숨쉬는 일을 작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는 평상시의 생각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며 살았다. "삶은 그리는게 아니고 그냥 사는 것"이라고 했던 뒤샹은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E때에도 일절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매일 체스만 두었다. 오죽하면 그의 아내가 그가 잠든 사이에 아교로 체스판을 붙여버렸을까? 그는 작품이든 명성이든 혹은 사랑이든 가정이든 무엇에도 얽매이는 법이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붙잡고 싶어 아등바등거리는 것들에 대해 그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존재의 품격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144쪽
마초와 메트로 섹슈얼 사이에는 아주 사소한 차이밖에 없다. 겉으로는 달라보여도 결국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꽃무늬 셔츠를 입고도 마음속으로는 "여자란 언제나 남자 몸 아래 깔려 헐떡이는 동물이다"라고 생각하는 스물여덟 살 청년이 있는가 하면, 흰 양말 위에 스포츠 샌들을 신고도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자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쉰네 살 아저씨도 있다. 말하자면 사람마다 개별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