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 스피노자 철학 읽기
이수영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붓다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왜 고통스러운가? 집착하기 때문이다. 집착은 어떻게 버릴 수 있는가? 모든 것이 공임을 깨달으면 된다".

스피노자의 대답은 다르다. 그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코나투스, 즉 실존을 욕망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따라서 기쁨은 실존의 더 커진 긍정, 슬픔은 실존의 더 작아진 긍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존의 더 커진 긍정, 기쁨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가? 스피노자는 우리가 "이성적"이 될 때 가능하다고 답한다. 그에게 있어 이성적이라 함은 원인을 분명히 안다는 말이다.
스피노자는 만물의 원인이 "신"임을 인정하면서도, 종교없이 신의 본성을 따라서 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신의 본성이 내재된 신의 양태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친절한 이 책이 스피노자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저자는 들뢰즈를 통해 스피노자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는데, 나에게는 아직 들뢰즈도 무리다. 에티카를 읽다가 포기했다면, 이 책이라도 먼저 읽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담론과 진실 미셸 푸코 미공개 선집 2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동녘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레시아라는 단어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본다. 푸코는 이 단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기 보단,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을 풍부하게 인용하며 여러 함의들을 도출해낸다. 그러나 푸코는 파레시아가 우리 시대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방법과 규범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자연스레 방법과 규범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것이 푸코의 강의전략 아니었을까? 파레시아는 누군가가 강요해서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주체의 자유로운 실천이기 때문이다.
푸코는 자신에게 철학자라는 딱지가 붙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덕후'라는 딱지를 붙여본다. 그의 진득한 덕질은 항상 새로운 사유 가능성,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법에 반대한다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4
파울 파이어아벤트 지음, 정병훈 옮김 / 그린비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철학에 있어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못지 않게 중요한 책이다.
저자 파이어벤트는 '과학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규범에 도전한다. 파이어벤트에 따르면 과학의 발전은 합리적인 논증과 경험적 발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의 퇴행과 비합리성이 유지될 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는 과학이 아나키즘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과학발전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우리는 무언가를 '발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어떤 측정도구를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고 답한다.
합리성에 관한 이런 비판은 특히 두부류에게 이득을 준다. 하나는 포스트모던주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인들이다.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객관성과 합리성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공생관계다.
저자의 과학방법론 비판에 쉽게 동의되지는 않는다. 나는 과학에 있어서 여전히 자연주의적 방법론을 옹호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한번쯤 자연주의를 재고하며 깊은 사색에 빠지는 보는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이 책은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죄'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아렌트가 단지 그것만을 말하려고 했을까? 내가 보기에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그 물음이란, '아이히만이 이토록 사유 불능한 인간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그 힌트는 '언어규칙'에 있다. 나치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인 제거', '대량학살' 등의 노골적 용어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치스의 계획은 '이주정책', '최종 해결책'이란 용어로 은폐되었다. 이런 언어규칙이 사고를 마비시켰다. 순화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행위에 대한 정당함과 타당성이 사고에 각인된다. 진실을 외면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아렌트는 이를 고발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깡의 인간학 - <세미나 7> 강해: 윤리 그 자체인 인간 존재에 관하여
백상현 지음 / 위고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깡의 글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이론의 기반인 프로이트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철학사적인 보편주의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라깡이 어려운 이유는 너무 독특해서일 것이다.
라깡이 말하는 정신분석의 목표는 공백이다.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충동(욕망)이 아닌, 환자(주체)가 만들어낸 충동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억압을 횡단해야 한다. 즉 억압이 아닌 위반을 통해 환자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과정이야 말로 공백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깡의 정신분석은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그의 사상은 낯설고, 심지어 위험해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느끼는건 그만큼 억압받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