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4
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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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다..
평점에 0.5가 없다.
사실 3.5를 주고 싶은데 별점이 안 넘어간다.
(폰이라서 그런가?)

간만에 읽을 책을 고르고 골라 포크너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를 한가득 품고 페이지를 넘겼지만,도통 몰입이 안된다.
읽으면서 힘들다 느꼈던 부분은

1)간혹 조사가 사라져 버린 번역이라던가
2)주어가 모호하게 흘려져 버리는 포크너의 작법이라던가
3)과거와 현재와 앞으로의 일들을 함께 서술하는 시공간 타파의 작법이라던가...

무튼 줄거리라는게 도통 어떻게 진행되는것이며 그래서 주인공은 어떻게 된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것이며 하는것들이 모호하다 못해 지글거리는 거리위에서 땡볕에 내리쮀이며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아지랑이인지 내 눈두덩이에 맺히는 땀방울인지 알수없는 그런 찝찝하고 기분나쁜 감정들이 소용돌이 쳤다.
분명 내가 죽어 누워있을때 라는 책은 흥미진진하고 공감(?)하며 몰입해서 봤는데.왜 곰은 읽기가 이렇게나 힘든것인가?
독후감정이고 뭐고 단순 ˝읽는다˝라는 행위에 몰입하는것만으로 이미 진이 다 빠져버리고 남은거라곤 ˝곰은 중반부에 죽는데,결국 말하려는건 곰이 아니잖아.˝라는 생각 뿐이다.
결국 나중에 다시 읽어야 한다.
소설은 남북전쟁후를 배경으로 썼다는데,읽고나면 그게 소설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백인 흑인사이의 모순도 모호하고 전쟁의 냄새도 없고,다만 숲과 사냥과 곰과 개의 이야기만 남았다.그리고 주인공의 가족사(여기서부터 안그래도 없는 줄거리가 더 흐릿하게 사라져버린다),그리고 개간되는 숲...
그러니까 어떤 부분을 남북전쟁과 연결시켜야하는지...멘붕...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도 쟁여놓고있는데 곰을 읽고 난뒤라 괜히 두려움이 앞선다.

-끝(feat:이해를 못해도 쓰기 힘들고 이해를 해도 쓰기 힘들고...걍 글을 쓰는게 힘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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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0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반쪽자리 별점을 주는 기능이 없어요. ^^

corcovado 2016-05-10 01:17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ㅠㅠ
 
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장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2
헨리 제임스 지음, 이승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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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헨리 제임스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서 굉장한 흡인력을 이끌어 냈다.민음사를 사려다 번역이 어쩌구저쩌구 댓글을 보고 지레겁먹고 열린책들을 샀는데 나중에 보니 표지는 시공사가 제일 강렬했다.책 겉핥기는 이쯤하고 내용을 얘기해 보련다.

도입부가 굉장히 독특했다.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인공간에서 시작된다.무서운이야기를 하는 모임이다.(추측하건대)그중에 누군가가 ˝만약 아이가 이야기중에 나사를 조이는 역할을 한다면 아이 두명을 등장시키는 것은 어떠한가˝하는 (원문은 아니고...)얘기를 한다.그러면서 누군가가 자기에게 정말로 소름끼치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 이야기를 해줄것인데 원고가 자신의 방 서랍에 있어 하인을 시켜 가져오게할것이라며 모인사람들의 구미를 당긴다.그리고 며칠을 떡밥만 던져주다가 원고를 받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이 도입부가 없었더라면 [나사의 회전]이라는 이 모호하고 의미심장한 제목과 전혀 상관이 없었을수도 있었을것이다.아마 [아이들의 유령]같은 제목이 더 나을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튼 이 도입부의 존재가 혹자에겐 단순 스토리의 전달인것인지 아니면 공포장르에서의 아이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의 전달인지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이런 기억에도 안남는 도입부가 단순 제목의 형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것이라면 사실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스토리가 단순한가?
아니다.
혹자는 여전히 유령이란 실제로 나타났던것인지 확실하지 않다.가정교사의 히스테릭한 반응과 묘사를 듣고 그로스 부인(보모)이 옛날 하인과 전임 가정교사 같다는 얘기를 했음에도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그로스부인이 부정함으로써 현가정교사의 정신이상을 똑바로 마주보는 용기가 없음에 억지로 인정한것인지 알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단순하지 않은 행위에선 ˝혹시?...˝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플로라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죽은 제셀양을 마주쳤던 호수가에서 발견되는 부분이거나...마일스가 밤에 방에서 나와 저택을 마주보고 서서 탑(?)위를 쳐다보던 모습이라거나(전에 가정교사는 탑위에 서있던 죽은 피터퀸트의 모습을 봤었다)..이러한 아이들의 명확하고 암시적인 행위가 ˝아,아이들도 봤구나.˝하는 생각을 80%까지 끌어올려줬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본 유령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순수?악?나쁜것?현실?자유?
사실 혹자는 아직 이부분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굳이 느낌을 서술해보라고 한다면 기성세대(단순상징적의미)가 생각하는 ˝살아감에 있어서 애들을 나쁜물을 들게 만드는 것들˝과 비슷한 그런 무엇이 되겠다.뭐, 다들 그런적이 있지 않나?부모님이 어느날 그대한테˝그 아이와는 놀지말거라˝하는 그런 상황.대충 그런 느낌쓰가 비집고 들어왔다.그래서 여기서 가정교사는 부모(혹은 컨트롤광적인 인간),그로스부인은 융화적으로 살기에 노력하며 ˝모두 일리 있노라˝라고 하는 부모의 친구,아이들은 아이들,가정교사와 아이들이 볼수있는 유령은 ˝나쁜아이들˝이라고 적용해본다.화면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그래서 가정교사가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너 봤지?봤잖아?!˝라고 했을때 아이들은 그 집착과 옭아매이는 기분을 떨쳐내지못하고 더불어 괜히 휩싸여 오는 죄책감 비슷한 미안한 감정때문에 파멸되는것이다.

아이들의 자유와 의지를 속박하는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을 강제로 주입하려는 준비단계라고 생각된다.그것이 형성되었을때 아이는 더이상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텅빈 껍데기가 된다.그리고 그뒤의 행위들은 단순 똑같은 것들을 찍어내는 노가다가 되고 만다.그것이 사회의 비극이라 생각된다.이야기의 끝에서 마일스의 영혼이 타락되고 가정교사가 잡고 있는것이 더이상 아이의 실체가 아니라는 구절이 나온다.(원문아님)이렇게 의지를 박탈 당한다.

Ps:도입부에 이야기꾼의 후기가 궁금한데,친절하지 않은 헨리 제임스씨는 ˝도입부는 잊으시오˝라는 듯이 짐짓 모른척 끝내버렸다...

떨떠름

그럼 나도 떨떠름하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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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1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고딕소설은 결말을 떨떠름하게 끝내는 게 많았어요. 아마도 더 이상 이야기 쓸 게 없어서 고민한 작가들은 이런 결말을 썼을 거예요.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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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아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을것이다.
˝기˝라고 불리면서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며 살아가게 되는것과 기억을 잃지 않은채 어딘가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것은 사실상 크게 차이가 없을것이라 생각되기때문이다.
기억을 잃는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수없다.하지만 은연중에 성격은 변하지 않을것이라는 일종의 믿음같은것이 있다.하여 누군가를 기억하는일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것보다 그의 분위기나 표정이나 말을 기억하는것으로 대신한다.
허나 내가 이름을 중요시않는다 하여 다른사람들도 똑같다고 말할수 없다.인간관계속에서 이름은 나의 모든 성질의 간판이 된다.그에게는 여러개의 간판이 있었던걸로 기억한다.어느나라 사람인지도 모른다.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한테서 그냥 ˝남미사람인것 같다˝라는 말을 전해들을뿐이다.하물며 여권도 위조된것이다.
그는 그 자신이 안개속에 가려진 그림자에 불과하다는것을 느꼈을것같다.흐릿하고 모호하며 불완전하다.(아아...기억을 안고사는 사람들마저 불완전한데 말이다)나는 그가 기억을 찾으려하는 행동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알수없다.자신에게서 빠져나간 그 덩어리에 대한 애착인지,무심히 잊고사는것에대한 경멸인지,˝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갈망인지...그는 마치 금화를 발견한 탐욕스러운자 처럼 자신의 그림자,심지어 티끌에도 전율하고 감격스러워했다.이것을 본질에 대한 추구라고 이해해도 될까?인간들이 오랜세월동안 탐구하고 추구하던 인간의 본질,삶의 의미,생명의 근원...그 모든 추상적이고 뒤틀리고 덧없는 것들.고상하고 성스럽고 학위적인 진리라는것들.그리고 이제는 노쇠하고 뒤쳐지고 경멸을 받는것들.그것이 ˝기˝가 찾던 것일까?

-끝(무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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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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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문명 속에 잊혀가는 ‘야성’의 힘을 처절하게 되살린 자연주의 문학의 진수.”
책의 표지에 쓰여있는 문구다,우선 자연주의 문학이라는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나는 다시 한번 홍보 문구에 화가 났다.
“야성의 부름”이란 제목도 내용과 비교하면 썩 맞물리지 않는다.나는 야성->본성이라고 이해를 했는데 내 이해가 잘못되었거나 제목이 잘못했거나 둘 중 하나다.
소설의 주인공은 ‘벅’이라는 ‘도시개’이다.어찌어찌 되어 알래스카에 팔려가 썰매 끄는 개로 살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야성의 본능을 깨우치고 결국에는 대단한 동물이 되었다는 성장 스토리를 썼다.
본성을 깨우치고 그것에 온전히 몰입 하는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말하자면 나는 자연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복종심을 갖고 있다.흙을 밟고 노동을 하고 자연의 냄새를 맡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헌데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밖에 살지 못한 자는 도시의 모든 것에 길 들여져있다.뭐라도 하고 싶은데 할수 있는게 무엇인지 모른단 말이다.(물론 사람마다 다르다.)그럴 경우 자연 속에 툭 던져 지면 보통은 갈피를 못 잡는다.그게 자연이 아니라 자연 인근이라 하더라도 얼마간은 꽤나 애 좀 먹는데...
우리의 벅은 다르다.
알래스카에서는 썰매를 한번 끌더니 곧잘 한다.그렇게 한동안 지나더니 무리에서 대장도 해먹는다.이쯤이면 나 같은 독자는 아마 자괴감에 빠질것이다.”아아...나는 왜 안되지..”하지만 벅의 전설은 이제 시작이다.알라스카지역 썰매꾼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한 명견이 되었다.몸무게 60키로,말하자면 늑대보다 더 건장한 개가 되었다.아무도 당해낼자가 없다.번개 같은 속도와 무시무시한 힘,거기에 타고난 지력과 빠른 판단력까지.거의 영물이나 다름 없이 묘사가 된다.그래서 숲속에 거주하는 부족을 물리치고 야생 늑대들을 혼쭐 내고 늑대 무리의 대장이 된다.
읽다 보니 “야성의 부름”인지 “벅의 승진”인지 헛갈리기 시작한다.게다가 더 참을수 없는 부분은 작가가 “야성”이라는 존재를 “벅의 먼치킨 캐릭터”설정에 소모시켜버렸다는것이다.야성-”부족이나 야생 늑대”은 벅이라는 “도시에 태어나 자라서 지력을 갖추고 태초에 야성을 지녔지만 나중에 깨어난”개에게 지배를 당한다.말인 즉슨 “고도의 문명을 이룬 A나라가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B나라를 때려눕혀 순종 하게끔 한 뒤 문명을 전파하였다”라는 이야기와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필자의 분노를 너그러이 봐주길바란다.)
무튼 야성의 부름은 나에게 끔찍한 기분을 안겨주었다.하여 함께 수록되있는 단편:불을 지피다가 훨씬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잭 런던의 다른 작품은 접해 본적이 없어 어떤 작가인지 알지는 못하나 적어도 야성의 부름에서 잭 런던은 자신이 꿈꾸는,환상하는 어떠한 존재를 벅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룬게 아닐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말하자면 잭 런던은 슈퍼히어로를 창조하듯이 벅을 만들어냈다는것이다.

결론:그다지 권장하지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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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1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번역본의 제목이 많아요. 아동용 번역본 제목이 `황야가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이라서 뭔가 재미있는 걸 기대하고 읽으면 실망하는 독자들이 많을 겁니다. ^^
 
말테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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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는 짬짬이 시간을 쪼개서 읽었다.사실 그렇게 읽을 책은 아니다.가볍게 산책가듯이 이부분에서 책을 덮고 다음날 이어서 읽을때 머리속에서 ˝옛다,지난이야기˝하고 기억을 되살릴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이어읽으려고 앞부분을 복습하다가 `어?처음보는 대목인것같은데?`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그러니까 지난˝이야기˝가 없다는 얘기다.도대체가 줄거리가 없다.이것을 ˝소설˝이 아니라 ˝수기˝라고 부르고 싶은데 책속 주인공은 릴케가 아니라 ˝말테˝라는 작자다.고로 어쩔수 없이 소설이라고 받아들인다.기어이 ˝줄거리˝라고 우겨야 한다면 아마 ˝말테가 파리라는 큰도시로 가서 느낀 환멸감을 수기로 쓴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릴케는 책속에 ˝말테˝라는 인물을 만드는데 ˝말테˝는 종종 과거를 회상한다.근데 그 과거회상의 대목에서 자꾸 릴케와 겹친다는것이다.(9살까지 여자아이로 키워진 릴케와 `소피`라는 여자애로 분장하고 엄마와 장난치는 말테)무튼 이 ˝말테˝는 필력이 어마어마한데 예컨대 ˝빈 종이같은 기분으로 들어갔다˝던지 ˝벽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 확인 하듯이˝라던지 ˝환자가 녹색 가래를 피 어린 눈꺼풀 속에 뱉은 듯 보이는 그 지짐거리는 눈˝이라던지 등등.셀수도 없이 ˝으아니!이런 기똥찬 묘사를!˝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구절들을 사용했다.

말테는 파리에서 굉장한 실망감을 느낀것같다.보통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자들이 과거에 더 매달리기때문이다.근데 말테는 과거에 대해서도 썩 우호적이진 않다.그냥 단지 적어도 과거의 사람들은 인생자체에 ˝죽음˝이 자연스레 따라오는것을 안다는 부분을 언급할뿐이다.(지금의 사람들은 죽음이 질병에 붙어오는것이라 생각한다고 썼다.)그럼 과거도 그다지 별로고 현재도 그다지 별로고.대체 뭘 쓰려는 것인가?글쎄다,나는 릴케가 아니니 알 길이 없지만,모든게 다 변해버린것에 대한 씁쓸함(예나 지금이나 더 좋을게 없지만)을 기록해둔것같다.책중에 귀족이었던 여인의 아버지의 이야기에서,˝아버지는 어느 아파트에서 돌아가셨다.˝라는 한구절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귀족으로서 땅과 집을 소지했던 사람들이 모든것을 빼앗기고 도시의 아파트로 내몰려 살았다는 이야기에 겨우내 가까워져 맘속으로 그 변화를 느끼게된 대목이었다.또한 현재의 우리를 떠올리기도 했다.옛날엔 다들 자기의 집 한채씩은 갖고있었다.근데 지금은 다들 서울이나 서울인근에서 남의 집을 빌려쓴다.책속의 문장을 인용하자면˝아버지는 어느 월세방에서 돌아가셨다.˝가 되는것이다.말테는 이런 변화에 ˝공포˝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읽는 나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거기에 ˝슬픔˝을 더하면 될것같다.

책은 내내 피폐한 얼굴로 담담히 이야기를 담아주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려 오열을 하게된다.실제로 읽는 동안 주체할수없이 크게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덤:보편적으로 ˝어렵다˝라고 평가한 책임을 알고 샀다.어렵사리 책에 질질 끌려가면서 `알것같기도 한데...`하면서 괜히 아는척을 하다가 책속 구절에 뒷통수를 시원하게 얻어맞았다.그러니까 말테가 한때 독서에 빠져 모든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는 책을 제대로 읽을수가 없었다는것이다.그럼에도 한권씩 필사적으로 매달려 뭔가 비상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고한다.이 구절들을 읽으면서 온몸의 ˝양심의 가책˝이라는것들이 모공 하나하나에서 쉼없이 뿜어져나오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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