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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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는 짬짬이 시간을 쪼개서 읽었다.사실 그렇게 읽을 책은 아니다.가볍게 산책가듯이 이부분에서 책을 덮고 다음날 이어서 읽을때 머리속에서 ˝옛다,지난이야기˝하고 기억을 되살릴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이어읽으려고 앞부분을 복습하다가 `어?처음보는 대목인것같은데?`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그러니까 지난˝이야기˝가 없다는 얘기다.도대체가 줄거리가 없다.이것을 ˝소설˝이 아니라 ˝수기˝라고 부르고 싶은데 책속 주인공은 릴케가 아니라 ˝말테˝라는 작자다.고로 어쩔수 없이 소설이라고 받아들인다.기어이 ˝줄거리˝라고 우겨야 한다면 아마 ˝말테가 파리라는 큰도시로 가서 느낀 환멸감을 수기로 쓴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릴케는 책속에 ˝말테˝라는 인물을 만드는데 ˝말테˝는 종종 과거를 회상한다.근데 그 과거회상의 대목에서 자꾸 릴케와 겹친다는것이다.(9살까지 여자아이로 키워진 릴케와 `소피`라는 여자애로 분장하고 엄마와 장난치는 말테)무튼 이 ˝말테˝는 필력이 어마어마한데 예컨대 ˝빈 종이같은 기분으로 들어갔다˝던지 ˝벽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 확인 하듯이˝라던지 ˝환자가 녹색 가래를 피 어린 눈꺼풀 속에 뱉은 듯 보이는 그 지짐거리는 눈˝이라던지 등등.셀수도 없이 ˝으아니!이런 기똥찬 묘사를!˝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구절들을 사용했다.

말테는 파리에서 굉장한 실망감을 느낀것같다.보통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자들이 과거에 더 매달리기때문이다.근데 말테는 과거에 대해서도 썩 우호적이진 않다.그냥 단지 적어도 과거의 사람들은 인생자체에 ˝죽음˝이 자연스레 따라오는것을 안다는 부분을 언급할뿐이다.(지금의 사람들은 죽음이 질병에 붙어오는것이라 생각한다고 썼다.)그럼 과거도 그다지 별로고 현재도 그다지 별로고.대체 뭘 쓰려는 것인가?글쎄다,나는 릴케가 아니니 알 길이 없지만,모든게 다 변해버린것에 대한 씁쓸함(예나 지금이나 더 좋을게 없지만)을 기록해둔것같다.책중에 귀족이었던 여인의 아버지의 이야기에서,˝아버지는 어느 아파트에서 돌아가셨다.˝라는 한구절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귀족으로서 땅과 집을 소지했던 사람들이 모든것을 빼앗기고 도시의 아파트로 내몰려 살았다는 이야기에 겨우내 가까워져 맘속으로 그 변화를 느끼게된 대목이었다.또한 현재의 우리를 떠올리기도 했다.옛날엔 다들 자기의 집 한채씩은 갖고있었다.근데 지금은 다들 서울이나 서울인근에서 남의 집을 빌려쓴다.책속의 문장을 인용하자면˝아버지는 어느 월세방에서 돌아가셨다.˝가 되는것이다.말테는 이런 변화에 ˝공포˝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읽는 나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거기에 ˝슬픔˝을 더하면 될것같다.

책은 내내 피폐한 얼굴로 담담히 이야기를 담아주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려 오열을 하게된다.실제로 읽는 동안 주체할수없이 크게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덤:보편적으로 ˝어렵다˝라고 평가한 책임을 알고 샀다.어렵사리 책에 질질 끌려가면서 `알것같기도 한데...`하면서 괜히 아는척을 하다가 책속 구절에 뒷통수를 시원하게 얻어맞았다.그러니까 말테가 한때 독서에 빠져 모든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는 책을 제대로 읽을수가 없었다는것이다.그럼에도 한권씩 필사적으로 매달려 뭔가 비상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고한다.이 구절들을 읽으면서 온몸의 ˝양심의 가책˝이라는것들이 모공 하나하나에서 쉼없이 뿜어져나오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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