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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평점 :
점수 : 8 / 10
이상한 일이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인 나는 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물론 호기심에 살짝 찔러보거나 교양 수준에서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관심 없는 분야는 깊게 파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최근 나는 은연중에 법조계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책을 계속 탐독해왔다. <불멸의 신성가족>, <개인주의자 선언>과 <판사유감>, 판사 출신 추리소설가인 도진기의 작품들, 이번에 읽은 <검사내전>까지. 왜 그런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법조계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도 아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일전에 로스쿨 준비한다고 법썩을 떨던 지인을 보고 의아해했던 정도? 그는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었으므로 응당 그 선택을 응원해주어야 했지만, 삐딱했던 나는 ‘그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인생을 거느냐‘하는 식으로 말해버렸다. 그래, 글을 쓰다보니까 그 때문인가 싶다. 미안함이 남았나보다.
그러나 일련의 책들을 읽고 나서 내가 느낀 점은 역시나 법조계가 그다지 좋은 직업이 아닌 것 같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법조인의 일은 대단히 지적이고 고귀한 업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판사유감>이나 <검사내전>에서 묘사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가장 비열하고 추한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 남을 등쳐먹은 사기꾼, 약자를 겁박하는 폭력배, 상습적인 도박중독자들과 계속 마주하는 직업이다. 그게 아니라면 억울하다고 악다구니 쓰는 피해자거나. 그러다보면 점점 남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는 애초에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채 사람을 대하게 된단다. 슬픈 직업이다. 그 지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세간의 평가에 혹해서 쉽게 선택할 만한 진로가 아닌 듯하다. 미안한 마음 때문에 알아본건데 어째 더 미안한 결론이 나와버렸다.
앞에서 다소 우울한 이야기를 했지만 <검사내전>은 정말로 괜찮은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다 들어있다. 경험에 기반한 사실적인 묘사, 풍부하되 과시적이지 않는 교양, 냉소적이면서 솔직한 표현, 상대를 가리지 않는 신랄한 비판, 예상되는 반론을 미리 쳐내버리는 치밀함까지. 특히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강조한 대목과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주장한 대목에서는 그 패기에 감탄했다. 본래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과 남의 집안 일에는 목소리를 높이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그걸 해낸거다. 목차 구성도 알차다. 1,2장에서는 직접 처리했던 사건을 통해서 인간세상 이야기를 풀어내고, 3장에서는 검찰 조직에 대해서, 4장에서는 한국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에세이집은 대개 별 이유 없이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글을 같은 장으로 묶곤 하는데, 이 책은 보다 체계적인 구성이라 눈에 띄었다.
검찰이라는 생소하고도 매력적인 주제를 다룬데다가 구성, 내용, 표현이 모두 빠짐없이 수준급이다. 게다가 문체가 딱 내 취향이다. 함께 읽어봤으면 책(8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