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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점수 : 4.5 / 10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책이 언급(인용)한 다른 책을 따라서 읽는 것이다. 특히 한 책이 여러군데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 책이 워낙 유명해서 대중적으로 읽혔거나 아니면 이후에 작가가 될 잠재력 있는 사람들에게 짙은 인상은 남겼다는 것이니까. 어느 쪽이든지 다음에 읽을 책으로 점찍어 두기에 무리가 없다. 대개 이렇게 고른 책은 실패하는 일도 적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여러 책에서 너무 많이 만나서 이젠 이름마저 익숙해진 책이었다. 그래서 언젠간 읽어야지 하고 벼르고 있다가 마침내 펼쳐든 것이다. 그런데 책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기본적으로 일기 형식이라서 특정한 주제 없이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그저 짤막하게 소개하고 평하고 있을 뿐이다. 독자가 보기에는 산만하다. 또 내용은 당시(1980년대 후반) 발표된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해 평론가로서 첨언한 것이 대부분이다. 당시 작품도 잘 모르고 문학 이론에도 어두운 나로서는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세태나 인생에 대한 내용도 일부 있고 거기에서는 제법 울림 있는 글귀를 만날 수 있었지만 그게 다다. 온종일 시달리고선 자기 전에 예쁜 별을 보았다고 ‘오늘은 정말 최고의 날이야‘라고 말할 수 있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그 시대의 풍조, 특히 80년과 87년 민주화 운동에 대한 공감 그리고 그 세대의 정서에 내가 해당되지 않아서인듯 하다. 저자는 종종 ‘4.19세대인 나로서는 80년 세대의 작가들이 불가해하다‘고 표현한다. 아마도 민주화 운동을 겪은 세대의 정서가 당대의 문학작품에 반영되고,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관찰자의 시각에서 그것을 명징하게 드러내준 것 같다. 물론 나로서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추측일 뿐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인 것은 알겠으나 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읽었을 때 좋았던 책을 칭찬하고 널리 알리자는 내 평가 시스템에는 단연 불리하다. 권하지 않음 영역의 최고점(4점)을 주되 아쉬움이 남아서 반점을 더했다.
혹은 이러한 아쉬움이 그 내용이 아니라 일기라는 형식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왕성하게 활동하던 저자에 대한 전반적인 숭앙이 유고작에 투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앞에 출간된 공식적인 에세이·평론집(말들의 풍경, 두꺼운 삶과 얇은 삶, 책읽기의 괴로움 등)을 다시 시도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