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 6.5 / 10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책이다. 본래 글에도 ‘재료빨‘이란 게 있어서 쉽게 접하기 힘든 분야를 소개하는 책,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영역을 개척하는 책 혹은 너무도 강렬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다루는 책은 그 서술이 약간 빈약하더라도 용서되기 마련이다(때로는 문체가 유려하지 않다는 사실이 내용의 진실성을 보증하기도 한다). 담고 있는 내용이 워낙 귀중하여 그것을 전달한다는 의의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기로는 뭘 만들어도 대개 맛있고 채소로는 뭘 만들어도 대개 맛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 책은 특이하지도 특별하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주제인 ‘연필 깎기‘를 재료로 놀랍도록 풍부한 결과를 선보인다. 세상에, 채소로 만든 돈까스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솔직히 내용의 깊이는 별로 없다. 그저 어떻게 하면 연필을 더 잘 깎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그 방법이 전부다. 영락없는 채소인 게다. 그런데 그 주제를 펼치는 방식이, 서술하는 문체가, 짐짓 진지한 그 태도가 채소에 ‘씹는 맛‘을 더해준다. 신기하고 또 재밌는 책이다. 나의 평가기준은 언제나 ‘타인에게 읽기를 권하겠는가‘를 자문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추천 여부는 책이 다루는 내용에 의해서 결정되었는데, 이번은 내용이 아닌 형식을 이유로 추천한다. 이 세상 모두가 연필 깎기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연필 깎이를 다루는 이 책이 너무나 유쾌하고 재미있어서 추천한다. 6점은 ‘권함‘ 영역의 기준점이고 거기에 반점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