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거꾸로 읽는 책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점수 : 7 / 10

‘미립이 나다‘라는 표현이 있다. 하나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궁구하면 그 경험이 켜켜이 쌓여서 마침내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다. 비슷한 표현으로 ‘신물이 나다‘와 ‘이력이 나다‘가 있는데, 전자는 부정적인 늬앙스를(지긋지긋하다와 종종 함께 쓰인다) 후자는 중립적인 늬앙스에(반자동적인 습관이나 버릇) 가깝다. 그에 반해, 통달하다와 유사한 의미의 긍정적인 표현이 바로 미립이다.
경제학에 ‘미립난‘ 유시민의 저력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서로 다른 주제를 포괄하는 많은 교과서가 각 주제를 파편적으로 설명한다. 앞 장의 내용은 다음 장 서론에 접속사 구실로만 등장하고 애덤 스미스를 배웠다는 사실이 마르크스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지 못한다. 이러한 공부는 저자(혹은 교수)가 정리해주는 각 사상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암기하는 것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시민은 ‘부자의 경제학‘과 ‘빈민의 경제학‘이라는 유형화로 경제사상을 통합적으로 분류하는 한편, 각 사상가의 개별적 특성과 논리를 설명하고, 또한 개별 사상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해석한다. 미립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통달과 섭렵이 아니고서는 그려내기 힘든 조감도(鳥瞰圖)다. 조감도는 하늘을 나는 새(鳥)가 아래를 굽어다보는(瞰) 모습(圖)이다. 현실 경제의 부정의와 경제학의 모순을 고민하던 경제학도는 끝없는 노력과 공부 끝에 경제사상의 계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새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선물받았기 때문에 읽었고(나는 요즘 책 선물과 그로 인한 독서노동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선물이 아니었다면 영영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생각은 책을 읽은 후에도 변함이 없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대학에서 수강한 ‘경제사상사‘ 강의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나는 반쯤 아는 내용을 또 읽은 셈이다. 물론 그 사실이 이 책을 폄하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으며 시간 순서를 따져보면 이 책의 존재(와 흥행)가 후대에 편성된 강의의 구성과 내용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이므로 오히려 이 책이 가진 탁월함의 방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제사상사 분야에서 이미 전형이 되어버린 서술이 아닌가 싶다. 인류의 역사에서 불의 사용은 경이로운 사건이지만 현대인에게 불의 사용은 일상적이다. 역사적 가치가 두드러지나 거기서 그치는 것 같다. 읽으면 좋을 양서(7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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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7-11-19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도 한 때는 대학원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