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 우주 속의 소녀 - 평등한 과학을 꿈꾸다
아일린 폴락 지음,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옮김 / 이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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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7 / 10

신간 소개를 훑다가 다음 문장에서 눈이 멈췄다. ˝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흔히 다른 여러 분야에도 재능이 있으며, 어떤 재능을 살려야 할지를 결정할 때 보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해주는 분야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평소 고민하던 것과 통하는 면이 있었다. 결국, 이 한 문장을 찾으려고 책을 펼쳐들었다(344쪽에 나오더라).
유난히 ‘인재가 없다‘고 불평하는 분야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자못 진지한 인식론적 질문을 품는다. ‘이 사람은 정말 모르는걸까? 왜 모를까?‘ 그런 소리가 나오는 분야는 뻔하다. 비전이 없거나 월급이 적거나 문화가 퇴행적이다.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고민은 깊어졌다. 이걸 어떻게 되받아쳐야 골탕먹일 수 있을까하는 삐딱한 고민이 한편, 어떻게 하면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건전한 고민이 또 한편. 그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똑똑한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로 그 분야를 기피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들이 원하는 바인) 똑똑하기 때문에 기피한다고.

이 책은 ‘왜 여성 과학자의 수는 적을까‘하는 진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예일대 물리학과를 졸업했지만 소설가로 전업한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가 1-2부(1부는 고등학교까지, 2부는 학부 과정), 과거의 은사와 친구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현재 과학계에 있는 여성들의 사례를 종합해서 소개하는 게 3부다.
이 책이 시종일관 묘사하는 것은 과학계에 존재하는 ‘여성에게 비우호적인 환경‘이다. 그러한 환경은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심리적인 차원의 부담을 지속적으로 가해서 결국 여성이 과학을 포기하게 만든다. 과학은 전형적으로 남성이 잘하는 영역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똑같은 (보통) 수준의 재능을 보이더라도 교사는 남학생에게 과학을 권유하고 여학생에게 인문학을 권유한다. 이러한 차이는 과학 수업의 성비에 영향을 끼친다. 수십 명의 정원 중에 단 몇 명만의 여학생이 수강하고(책의 원제는 the only woman in the room이다. (과학)교실의 유일한 여성이라는 뜻이고 저자는 실제로 고등학교 때 그랬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점점 과학에 자신감을 잃는다. 남성의 관점에서 쓰여진 교과서는 적응하기 힘들고, 질문하지 않는 남학생들 틈에서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것을 교정할 기회는 좀처럼 없다. 이 상태로 대학에 입학하면, 물론 갑자기 높아지는 난이도에 모든 학생이 고생하지만, 여성이 가장 쉽게 포기해버린다.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나는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과 우려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인재 타령하는 게 꼴보기 싫어서 대안논리를 개발하려고 펼쳐든 책이지만 오히려 내가 느낀 것이 더 많았다. 특히 저자가 대안으로 ‘격려‘를 제시한 것이 인상적이다. 나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보통은 ‘고생했다‘ ‘수고했다‘하고 만다. 그건 노고에 대한 인정이지 성과에 대한 인정은 아니니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이렇게 엄격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능력을 고양시키는 자극이 되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한대로 특정한 누군가를 계속 기죽이는 환경이라면, 사소한 격려가 그 사람의 진로를 뒤바꿀 정도로 중요하다면, 평등한 무시보다는 적절한 격려가 더 현명한 길이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
공학을 전공했지만 진로를 바꿔 정치학 대학원으로 진학한 동기가 있었다. 첫 학기에 그 친구는 수업을 정말로 하나도 따라오지 못했다. 보기에 안쓰러워서 개인적으로 도와줬지만 기본소양이 없는 상태에서 대학원 수업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미적분 과제를 해야하는데 사칙연산부터 설명하는 느낌이었다) 본인의 표현대로 ˝문과를 떠난지 10여년˝이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교수님은 종강 때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그래도 자네는 attitude가 좋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왔잖아˝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화가 났다.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면 수업 난이도를 조정하든가(수업을 못 따라온 사람은 그 친구 혼자가 아니었다. 물론 가장 심했지만) 따로 보충을 해주든가 아니면 혼자서 공부할 수 있게 책이라도 추천해줬어야 하지 않나. 수업에서는 배려가 전혀 없었으면서 다 끝난 다음에는 ‘그래도 너는 열심히 하는 태도가 좋았어‘라니, 누굴 놀리는 걸까. 너무 기가 찼던 나는 귀갓길에 그 친구를 넌지시 떠봤다. 아까 교수님이 한 말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런데 그 친구의 대답이 의외였다. ‘교수님 참 좋은 분‘이시란다. 얘는 배알이 없는걸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 그 친구에게 필요했던 건 마르크스가 누구고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너는 잘 하고 있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격려가 아니었을까. 비록 다른 전공이라서 정치학의 기초지식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려는 의지와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격려 말이다. 오히려, 내가 한 것처럼, 모른다고 이것저것 알려주려 들면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게 아닐까.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당장 수업을 따라가는 것보다 새로운 진로에 대한 정착이었던건 아닐까. 내 도움은 도움이 되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깊어진다. 읽으면 좋을 양서(7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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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7-07-16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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