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동안 숙제처럼 끌어안고 있던 제발트의 <이민자들>을 이제야 정리한다.   

<이민자들>은 아픈 역사의 한 시대를 살다 이름도 없이 파묻힌 어느 개별자들에 대한 회상이며 기록인 동시에 픽션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상당부분 녹아있는 듯한 소설은 네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은 대부분 유태인들이다. 헨리 셀윈 박사, 파울 베라이터, 암브로스 아델바이트, 막스 페르버가 그 주인공들이다. 독일의 슬픈 역사의 한 시대를 겪었던 소설 속 인물들은 기억의 상처를 안고 타국을 떠돌다 사라져버리거나, 느닷없이 자살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 고독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은 그들이 끝내 돌아가지 못했거나 돌아갈 수 없었던 과거의 그 장소들을 서술자가 오랜 시간 동안 찾아다니며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참을성 있게 이야기를 듣고 메모하고 그들의 일기와 사진첩들을 수집하고 정리한다.  

 

<이민자들>은 주인공들의 이력이 타인의 회상으로 진술되는 독특한 서술 형태로 쓰였다.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이타카를 품고 죽을 때까지 떠돌아야 하는 어느 개인들의 삶이, 돌아갈 곳 없는 그들의 삶 이면에 깊이 자리 잡은 심연이, 때로는 독백으로, 때로는 긴 대화로, 아프게 펼쳐지는 내면의 심리묘사와 슬프도록 아름답게 이어지는 자연의 묘사들로 환기된다. 그런가하면 소설 곳곳에 아무런 설명 없이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듯한 흑백사진들은 죽은 자들과 장소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언하며, 거기서 그들의 아픈 삶의 비명이 소리 없이 새어나온다.

<이민자들>에게 있어 ‘고통스런 기억은 불행이 되고 그 불행이 박아놓은 뿌리는 너무나 깊어 거듭 땅을 뚫고 나와 사악한 꽃을 피우고, 독기 품은 잎으로 머리 위에 천장을 만들고는 그들의 생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어둠으로 덮어버린다.’(P.240) 그렇게 지독한 과거의 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는 것’이라서 ‘풀잎을 세며’ 또는 ‘나비 잡는 사람을 기다리며’ 잊으려 애쓰지만 어느 순간 상처는 터지고 그 틈새에서 고통스런 비명이 새어나오곤 하는 것이다.

‘기억이란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P.183)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가, 한 시간이, 한 번의 맥박이 지나갈수록 모든 것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고, 아무런 특색도 없는 추상적인 것들로 변해’(p.73)가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혼의 고통은 한마디로 무한하여 고통의 극단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큰 고통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심연에서 저 심연으로 다시 떨어지는 것이다.’(P.214)

어쩌면 기억은 지독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허상인지도 모르고, 그런 허상들은 ‘날이 갈수록 모호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별스럽고 더 정밀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과거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고통이기도 했고, 구원이자 동시에 가차 없는 자기 파괴이기도 했다. ‘자연도 방치해두면 신음소리를 내며 점점 함몰’되듯, 그들의 삶도 그렇게 점차 함몰되어갔으니. 


이름 없이 한 시대를 살다가 슬프게 사라져간 사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시 돌아온다. 때로는 ‘칠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얼음에서 빠져나와, 반들반들해진 한 줌의 뼛조각과 징이 박힌 신발 한 켤레로 빙퇴석 끝에 누워 있’(35쪽)기도 하고, 이렇듯 어느 개인들의 기억 속에 묻혀 있다가 회상으로 진술되는 삶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인간은 저마다 나름의 기억들을 안고 살아간다. 빛으로든 그림자로든 항상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맴도는 기억들, 우리는 그런 기억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기억은, 실체는 없으나 이미 일어난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마음대로 돌이킬 수도 없거니와 바꿀 수도 없는 우리네 삶의 그림자이다. 아름다운 기억일수록 세월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더욱 슬퍼진다. 그리고 때로 그 기억은 독립된 의지를 가지고 있기라도 하듯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고립시키고 고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그것이 존재의 이유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과거’라는 시간을 떠나온 ‘이민자들’일 수밖에 없으므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저마다의 잠재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날이 어둑해 지면 어김없이 그들이 와서 삶을 찾는다. 서늘한 바람이 가슴 한구석을 훑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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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느끼는 야릇한 기분이다. 읽어 내려가는 내내 불편했던 소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책을 읽으며 이토록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껏 나는 독서는 독자가 작가를, 또는 작품을 읽는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만큼은 그 생각을 여지없이 짓밟아 뭉개고 만다. 오만하고 뻔뻔한 저 자신감. 오히려 책이 나를 읽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꿔 말하면, 니체의 저 유명한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 라고 할 수 있겠다.  혼란스럽고 두렵다. 보이지 않는 예리한 눈에 의해 내가 해체되고 분석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책일까? 또는 어떤 문장일까? 읽기 힘든? 아니면 쉬운? 무료할 때 그저 의미 없이 휙 훑어볼 뿐인 그렇고 그런? 아니면 두고두고 곁에 두고 다시 펴서 읽어보고 싶은 책?

나는 과연 “빛나는 생기와 샘솟는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그토록 당당해서 아름다운 문장”을 가진, 그런 책일 수 있을까? 나도 감히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를 읽어 봐, 주저하지 말고…”라고?  

 

나는 무얼 쓰고 싶은 걸까. 그렇지, 소설을 쓰고 싶었지. 그런데 정말 소설을 쓰고 싶기는 한 걸까. 지적인 허영심은 아닌가. 어찌됐든 뭐라도 써야한다. “한 사람이 원하면 꿈에 불과하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면 현실이 된다.”는 말에 기대어. 그렇다고 내가 글을 쓰기를 모든 사람이 원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혼자서 최면을 걸겠다는 말이지.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야할 근거를 두고 싶으니까. 소설을 쓰고 싶다는 건, 그건 소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세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세계, 그 세계에서 살고 싶은 욕망. 난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나는 어떤 문장일까?

대체 나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 또는 번역될 수 있는 문장일까?

혹은 내 안에 잠재된 문장은 어떤 문장일까?

어떤 이가 말하기를, 보여 지는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건, 보는이의 각도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제가 있다면 보는 이에게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문장은 나의 부분을 넘어 전체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그것만이 살아있는 표현이며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인데 …  

 

한 동안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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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자로서 가야만 하는 고독한 길이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고 삶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글쓰기'라는 일. 비록 작가가 아니어도 운명처럼 짊어진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내기에 크게 도움이 될만한 글이다. 

  
우리는 고독한 이로 출발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실 선천적으로 고독하다. 만약 끈기 있게 노력하고 기술적으로 낙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간, 공간, 언어, 민족 정체성이라는 인공적인 경계선을 초월하는 문학이라는 신비로운 대체 세계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예술 활동은 개인의 고독으로부터 홀연히 나타나서 다채로워지며, 끝없이 매혹적이고, 언제나 진화한다. 

  

글쓰기는 가장 외로운 예술이다. 허구적이고 은유적인 대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세계에서 물러나는 행위는 아주 미묘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우리는 왜 읽는가? 은유의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작가이든 독자이든, 왜 어떤 사람들은 때로 현실 세계를 배제하면서까지 '대체 세계'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지배적 문화를 만들어낼까? 나는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이런 문제들에 대해 생각했지만, 최종적으로 보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최종적인 답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후기의 우울한 논문 <문명과 그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에서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은 분명 쓸모가 없다. 명백한 문화적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명은 그것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는 말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 답변은 충분할 것이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지만 예술이기 때문에 우리는 글쓰기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글쓰기는 무의식에서 원동력을 얻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가 '의식'하고 능숙해지도록 훈련할 수 있다. 분명 우리는 자신의 실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에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영감에 의해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실패의 기록', '영감!', '자기비판이라는 불가사의한 예술'에서 나는 특히 헨리 제임스,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를 통해 우리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이 고독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느꼈던 개별적인 작가들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심리학적/미학적 문제의 공통성을 제시했다. 'JCO와 나'에서는 모든 작가들이 느끼게 되는, 시간이 갈수록 특별하게 느끼게 되는 정체성의 무시무시한 혼란에 대해 얘기했다. 바로 우리는 글쓰는 자아들인 동시에 글쓰는 자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 조이스 캐롤 오츠, (<작가의 신념(Life, Craft, Art)>,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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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좋아하고 번역에 관심이 많아 깊이 고민하고 있는 요즘, 프로번역가들의 문학세계를 참고하고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경향신문의 지나간 기사를 옮겨 놓는다. 또한 이미 읽었지만 이들이 추천하는 책들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문학의 국경이 사라졌다. 고전 중심이던 세계문학이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그 최전선에는 제1독자이자 ‘프로’ 독자인 번역가들이 있다. 그들의 삶과 책읽기를 통해 다양하고 풍성한 문학의 세계를 답사하는 연재를 마련한다.

★그는…
1. 사랑한다, 작가를
2. 답사한다, 책속의 장소를
3. 체험한다, 주인공을 그리고 재창조한다
/이세욱.

베르나르 베르베르, 움베르토 에코, 미셸 투르니에,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안나 가발다 등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그는 번역서의 품질을 보증하는 한 증표가 되었다. 그것은 물론 원작의 높은 수준과 함께 외국어 문장들의 묘미가 한국어로 고스란히 살아나는 경지를 이른다. 1992년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시작으로 50여권의 책을 옮긴 그는 인터넷 팬카페가 두 개나 있을 정도로 인기 번역가이다. 그 이유는 번역에 대한 철저한 직업정신 때문이다.

“한 작가가 이뤄놓은 금자탑에 내 이름을 함께 올리려면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번역은 또 하나의 문학입니다.”

그의 작업과정은 독특하다. 먼저 원서를 읽은 뒤 거기에 나오는 장소를 답사하고 주인공의 행위와 감정을 체험한다. 가볼 곳, 만날 사람, 읽고 보고 들어야 할 책·영화·음악·그림의 목록을 만들어 모두 실행함으로써 작가가 창조한 세계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야 컴퓨터를 열어 자신이 경험한 그 세계를 한국어로 재창조한다.

이렇게 찾아간 장소는 베르베르의 ‘개미’들이 살고 있는 파리 퐁텐블로 숲에서부터 카트린 클레망의 ‘인도의 사랑’의 배경이 된 인도, 투르니에의 ‘황금구슬’에서 사하라 사막을 떠난 소년이 마르세유에서 파리로 향하는 여정 등 끝이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최근 2년 만에 번역을 끝낸 에코의 신작 소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2004년작)의 무대가 된 이탈리아 북부의 소읍 니차몬페라토(소설에서는 솔라라)라고 한다. 이 소설은 에코라는 한 작가를 구성한 온갖 요소를 재조합한 ‘기호학적 성장소설’이다.

“니차몬페라토는 에코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지요. 올해 초 그곳에서 몇 주를 보내면서 에코가 살던 집, 뛰어놀았던 공간, 산, 포도밭, 그리고 에코가 좋아했던 체실리아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가 이곳을 찾아갔을 때 관청 직원들은 에코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들에게 전화를 걸어 취재를 도왔다고 한다. 이씨가 에코 최고의 작품, 그리고 자신이 번역한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신비한 불꽃’은 평생 강단의 천재학자로 지냈던 에코가 만년에 베를르스코니 총리와 대립하면서 비판적 사회참여를 하게 된 뿌리인 어린 시절 레지스탕스 대원들과의 체험이 녹아있다.

이씨는 자신이 번역했던 작가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러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 번역”이다. 가장 각별한 베르베르는 천진난만하고 천재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 ‘프랑스 스릴러의 황제’라고 불리는 그랑제는 악을 형상화하고 악을 응징하는 냉철한 리얼리스트, 여성 작가인 가발다는 인생의 미세한 결을 포착하는 촉수를 가진 따뜻한 감수성의 소유자라고 평가한다. 또 모든 작품을 읽은 뒤에야 인터뷰 요청을 할 만큼 존경했던 투르니에는 도저한 철학적 깊이로 자신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과감한 성애 묘사로 화제를 뿌린 카트린 밀레는 번역가를 칭찬과 비난 사이에서 번민하게 했던 작가다.

그러나 그중 최고로 꼽는 작가는 역시 움베르토 에코이다. 누구나 아는 에펠탑을 묘사하기 위해 에펠탑을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면서 며칠 밤을 세우는 에코는 “유럽의 지성사를 어깨에 짊어지고 뚜벅뚜벅 걸어가 자신의 목적지에 이르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이씨는 현재 에코의 소설 5편(‘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신비한 불꽃’)의 현장을 답사하고 그의 문학세계를 다룬 책 ‘에코문학기행’을 준비하고 있다. 에코는 2010년 생애 마지막이 될 또 한 권의 소설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그때는 작가와 상의하면서 번역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번역은 생계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씨는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서울대 불어교육과 80학번인 그는 고교 불어교사를 했으나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된 후 번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번역을 즐기려고 돈은 다른 데서 벌었다. 프랑스 유학(96~98년) 시절만 빼고는 2003년까지 입시학원 강사이자 과학·국악프로그램 방송작가로 일했다. 불어·일어·영어·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과 함께 나이를 먹은 뒤에는 라틴어를 공부해 중세 서양고전을 번역할 계획이다.

‘프로’ 독자인 그에게 문학작품을 재미있게 읽는 법을 물었다.

“자기랑 가장 잘 맞는, 그러면서도 평생을 따라갈 만한 위대함을 지닌 작가를 찾아 인생의 동반자로 삼으십시오. 그와 함께 늙어가면서 그를 중심으로 문학과 우주를 재편하는 게 좋겠지요. 문학만큼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이세욱이 추천하는 책
■에코의 ‘푸코의 진자’(이윤기 옮김·열린책들)

어마어마한 야심을 갖고 서구의 카발라(유대교 신비주의), 연금술, 신비주의를 관통하는 위대한 허구를 간파하고 통렬히 비판한 소설. 파시스트의 선전선동에 휘말리는 우리 정신구조의 취약함을 반성하게 만든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는 이 책의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에코의 ‘거의 같은 것을 말하기-번역의 경험’(Dire quasi la stessa cosa-Esperienze di traduzione)

번역가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번역이론서. 번역가이고 번역된 작가이고 번역이론가이고 기호학자인 에코만큼 번역이야기를 잘할 사람은 없다. 번역 현장에서 부딪치는 풍부한 사례는 소설만큼 생생하며 문학번역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알 수 있다.
 


★“독자 억압보다 격려하는 책이 좋아” /유혜자

  책은 물리적으로 볼 때 종이에 잉크를 찍어놓은 것일 뿐이지요. 책의 가치는 독자가 저자와 감응할 때 만들어지는 무형의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를 억압하기보다는 격려하는 책을 좋아합니다.”

독일문학 번역가 유혜자씨(48)는 책에 대해 특별한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독서라는 힘든 과정에 대해 보상을 주는 책, 독자를 사회적 규범에서 풀어주고 자유롭게 해주는 책”의 힘을 믿는다. 그가 작업 초기에 성인물을 주로 번역하다가 청소년 및 아동문학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도 그것이다. 지난 1986년 첫 번역서를 내놓은 이후 20년 넘게 200여종의 책을 번역해온 그는 98년 독일어권 에이전시 ‘창’을 설립해 1000여권의 책을 국내에 소개했는데 그가 수입을 중개한 책의 대부분이 청소년, 아동물이다.

“처음 번역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책과 국내에서 통할만한 책이 일치하는 경우는 한 20%에 불과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80%로 역전될 만큼 국내와 해외의 차이가 적어졌어요.”

그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내놓으면서 번역가로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스위스 취리히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이후 현지 친구들이 보내주는 책을 하나둘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이 책의 경우 원고를 완성한 뒤 출판사를 찾던 중 이미 판권을 계약한 열린책들과 연결됐다. 그후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등 쥐스킨트의 책을 몇 권 더 번역했다.

독일어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국내에서 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스위스로 건너갈 당시 독일어를 전혀 몰랐으나 어학연수를 시작하자마자 ‘폭포처럼’ 독일어가 밀려왔다. 석 달 만에 현지에서 간호사로 취업했고 여섯 달 만에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했다. “내게는 한국어가 단지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였다면 독일어는 모든 감정을 미학적, 분석적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였다”고 소감을 털어놓는다. 처음에는 독문학을 전공할 계획이었으나 “문학은 나를 위한 학문이니까 국가를 위해 경제학을 하자”고 결심하고 진로를 바꿨다. 그러나 결국 독일의 대중 텍스트를 한국 대중에게 전달하는 번역가란 형태로 문학에 복귀했다.

“초창기 번역한 작품 가운데는 ‘호프만의 허기’(레몬드 빈도)란 소설이 묻힌 게 제일 안타까워요. 유대인 외교관의 딸이 육체적 질병,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채 21세기 목전에서 좌절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었어요.”

‘유대인 이야기는 안된다’는 국내 출판계의 징크스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독일 문학과 한국 문학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마루에 문제가 생긴 것은 밟았을 때 찌걱대는 소리를 통해 알 수 있는데 독일 문학이 이런 곳을 밟아주는 문학이라면 한국 문학은 이를 꺼리는 문학”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대인과 게르만족의 증오의 역사는 독일 문학의 배경으로 깔려 있는 반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은 그 주제를 다루는 일부 소설에만 들어있다는 것이다.

유씨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또 다른 책은 국내 ‘1318문고’의 시작인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미리암 프레슬러)이다. 작가의 훌륭함만을 대변하기보다는 독자에게 ‘영양식’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에서 청소년 대상의 책을 발굴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독일출판사 측 제안에 따라 에이전시를 시작하게 됐다.

자신의 고향인 대전의 아파트에서 주부로서 남편과 남매를 뒷바라지하면서 번역과 에이전시 운영을 겸하는 그는 오전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꼭 필요한 집안일을 하는 4~5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일하는 ‘워크홀릭’이다. 그 덕분에 독일의 유수한 출판사인 외팅거·파트모스·벨츠 등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다. 청소년·아동물 전문가로서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전집 출판이다. “전집을 사는 건 독자로서, 소비자로서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유혜자가 추천하는 책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내가 생각하는 독자에 대한 존경심을 담고 있는 책이다. 작가는 자신이 얼마든지 할 수 있음에도 완제품을 만들지 않고,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독자에게 사색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런 절제가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우며 독자로서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관습에 도전 실험작 천착 /정영문

“작가가 겸업하기에는 번역가가 아마 가장 좋은 직업일 겁니다.”

소설가 정영문씨(43)는 1990년대 중반부터 소설 쓰기와 번역을 시작해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끌어왔다. 첫 소설집 ‘겨우 존재하는 인간’(1997년)부터 최근 낸 소설집 ‘목신의 어떤 오후’까지 10권의 소설을 낸 그는 50여권의 번역서도 냈다. 존 파울즈의 ‘에보니 타워’,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어윈 쇼의 ‘젊은 사자들’, 아모스 오즈의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 리처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의 지적처럼 여러 작가들이 겸업을 했다.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가 그랬고 김수영 시인도 번역을 생계로 삼았다. 최근 소설가 김연수·배수아씨도 종종 번역가로 이름을 올린다.

정씨는 소설가로서 독특한 입지를 갖고 있다. 서사 위주의 소설 관습에 도전하는 그의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상상, 특유의 조롱과 냉소 등으로 개성을 뽐낸다. 대중성과 거리를 두면서도 새로운 문학을 꿈꾸는 문학도들에게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책을 팔 생각이 전혀 없는 그에게 번역은 창작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터전이다. 동시에 두 가지 작업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의 소설 작품은 굳이 국적을 따질 필요가 없고, 번역을 의식한 듯 문장의 잉여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번역한 책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존 파울스의 ‘에보니 타워’에 실린 2~3개 단편을 꼽는다. 파울스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인데 “모호한 것들에 대해 미묘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문장들이 대단히 좋았고, 번역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요즘은 같은 작가의 ‘마구스’(‘마법사’라는 뜻)란 3권짜리 장편을 연말에 끝낼 요량으로 번역 중이다. 이성적이고 답답한 영국과 자연이 살아있고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그리스를 대비시킨 이 소설은 단편만큼 훌륭하지는 않다고 한다.

요즘 그는 번역가로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출판사의 의뢰가 아니라 자신이 번역하고 싶은 소설가 50여명의 리스트를 만들어 먼저 제안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신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다양한 소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영어권의 실험적인 현대작가를 살펴보고 있다”며 ‘미국의 송어낚시’로 유명한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 카프카의 전통을 잇는 여성 작가 에이미 헴펠 등을 예로 들었다. 그가 자주 보는 잡지 ‘뉴요커’나 미국의 유명한 실험작 출판사인 델키 아카이브의 소설비평잡지 ‘컨템포러리 픽션 리뷰’ 등에 소개된 작가의 원서를 구해서 보고 있다. 작가의 명망이나 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에 얽매이는 해외문학 소개 관행을 자신의 방식인 ‘비주류’와 ‘비인습’으로 바꿔보고 싶어서다. 관심을 보이는 출판사들이 좀 있어서 조만간 그들의 소설을 읽게 될 거라는 전언이다.

동시에 그는 원어민 번역가와 함께 자신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다. 신간 ‘목신의 어떤 오후’에 수록된 단편 ‘브라운 부인’을 번역했는데 이 작품으로 번역지원 신청을 해보고, 안되더라도 해외의 문학잡지에 투고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직접 번역한 소감을 묻자 “논리적인 문장을 쓰는 편이어서 번역하기 쉽다”고 답한다.

“해외에 번역 소개되는 작품이 국내에서의 명망이나 평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외국 문단이나 독자들이 이해하고 좋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단행본을 내는 것도 좋지만 ‘플레이보이’ ‘하퍼스’ ‘바자’ 등의 잡지에 상당한 수준의 소설이 실리고, 그걸 평론가나 편집자가 눈여겨보는 구조도 이해하고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정영문이 추천하는 책
■사무엘 베케트의 ‘몰로이’

처음 읽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늘, 단연,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김현의 번역으로, 영어본으로 다섯 번쯤 읽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혼자 웃게 만드는 책이 많지는 않았는데 이 책은 그렇다. 주인공 몰로이가 뭔가를 찾아 길을 떠나는 형식인데 나중에는 뭘 찾는지, 뭘 이야기하는지 모르게 된다. 줄거리와 기승전결이 있는 교과서적인 소설이 아닌 소설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소설의 구성 원칙을 반문하고 조롱한다. 이 작품에 비하면 베케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상당히 미숙한 편이다.
  



★즐겁게 읽을 당신을 위해…그녀, 해리포터를 재미없게 읽었다 /최인자

  문학평론가 최인자 씨(42)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번역가로 유명해졌다. 그는 원서가 나올 때마다 출판사와 수많은 독자들의 성화를 받으면서 원서 한 권당 국내에서 네 권 분량으로 나오는 책을 석달 안에 번역해내는 ‘초능력’을 발휘해왔다.

“긴장, 초긴장의 연속이지요. 보통 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 최소 한 달은 걸리는데 ‘해리 포터’는 두 배의 속도로 번역을 해야 했으니까요. 거기다가 독자들의 관심은 또 어떻고요.”

그가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맡은 것은 2000년 나온 4권(번역서 2권)을 1~3권의 번역자인 김혜원씨와 공동 작업하면서부터였다. 이후 5권부터 7권까지는 혼자 번역을 했다. “4권을 번역하기 위해 1~3권을 읽을 때는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4권부터는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시간을 다투는 작업이었던 데다 시리즈의 특성상 앞에서 잠깐 나왔던 인물이나 장소, 물건의 이름을 통일하기 위해 일일이 찾아보는 수고를 해야 했다. 롤링의 영어 역시 쉬운 듯하지만 말장난이 많아 번역이 까다로웠다.

“지난해 완결편인 7권을 번역하면서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하게 됐어요. ‘해리 포터’는 그저 아이들이 좋아하는 판타지가 아니라 영생에 대한 갈구라든가 오이디푸스 신화처럼 서구문화의 다양하고 심오한 상징들이 녹아있는 소설입니다.”

최씨는 스나이프가 죽을 때 작업실에 앉아서 엉엉 울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연세대 영문과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인 199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하일지론이 당선돼 평론가로 등단했다. 미국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공부했던 그는 시평과 해설을 주로 발표했다. 번역가로 일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한 김종해 문학세계 사장이 기획위원이란 직함을 덜컥 안겼고, 그래서 토니 모리슨의 ‘재즈’란 작품을 추천했는데 마땅한 번역가가 없어 직접 나섰다. 운 좋게도 바로 다음해인 93년에 모리슨이 노벨문학상을 탔다. 그후 V.S.네이폴의 ‘세계 속의 길’, 주제 사라마구의 ‘수도사의 비망록’ 등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소설을 비롯,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페라의 유령’ 등 고전을 잇따라 번역했다.

“나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 번역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돌아보니 번역한 책이 100권은 되더라고요. 이제는 번역가라고 해야겠지요.”

최근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잘 알려진 소설 ‘지혜의 일곱기둥’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 작품을 놓고 아랍의 역사를 자신이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는 서구 지식인의 위선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맹비난했으나, 최씨는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영국편을 들어 터키와 싸우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 아랍인들을 선동하는 주인공이자 작가 로렌스가 스스로의 행동을 관조하고 반성하는 복합적 사고를 하는데 이것이 매우 뛰어나게 문학적으로 승화돼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가 번역한 앨빈 커넌의 ‘문학의 죽음’ 역시 90년대 이후 문단을 강타한 문학의 위기 담론과 관련, 매우 자주 인용되는 책이다. 최씨는 문학 독자층 확보를 위해 최근 시도되는 뉴웨이브 문학 혹은 중간문학과 관련해 계간 ‘문학의 문학’ 여름호에 오랜만에 평론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는 ‘장르문학들이 벌써부터 문단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으며 기존 문학계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더 강하게 도발하고 더 격렬하게 폭발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다. 여기에는 상상력뿐 아니라 작은 플롯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학성이 높으면 안 팔린다고 쉬운 소설을 지향하는 건 문제가 있지요. 영문과 학생들도 안 읽는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보더라도 1922년 처음 출간된 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여전히 팔리고 있다는 게 엄청난 대중성의 입증이잖아요. 어설프게 순수문학과 장르 문학을 합치는 시도가 두 마리 닭의 배를 모두 가르는 억울한 시도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최인자가 추천하는 책
■카자르의 사전(밀로라드 파비치 지음·신현철 옮김·중앙M&B)

슬로바키아의 시인이 쓴 역사소설. 내가 읽었던 가장 신비롭고도 역동적이며 특이한 책이다. 놀랄 만큼 훌륭하다. 카자르란 민족이 어떻게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인데 어느 종교로 개종한 뒤 정체성을 잃어버려 멸망했다는 가정을 해놓고 그 과정을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로 나눠 노란책, 초록책, 빨간책으로 써내려갔다. 각 장은 사전식으로 집필돼 있어 전체를 퍼즐 맞추기 하듯이 읽어야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남성판, 여성판이 있고 두 가지 책은 단 두 문장만이 다르지만 여성판은 한없는 우주를 한바퀴 돌아 깨달음에 도달하는 경지라면 남성판은 이를 놓친 채 아무 깨달음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판됐다.
  

   

 

* 카자르의 사전은 난해하여 처음엔 읽다가 접어두었던 책이다. 하지만 그 다음 읽고 또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은 아주 독특하고 놀라운 인상을 받았었다. 지금도 가끔 인용하는 내가 아끼는 책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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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프다. 마무리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을 때의 불안감 속에서는 시계의 촛침 소리가 특히 더 크게 들린다. 그 소리가 불안을 더욱 가중함은 물론이다. 일종의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주문을 외운다. '몰두해야 한다, 몰두해야 한다, 몰두...'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알라딘에서 책들을 뒤적이고 있다. 내가 도피할 수 있는 책들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이건, '중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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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은 아름다운 노래
에릭 오르세나 지음, 정혜용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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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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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장으로의 초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박혜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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