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참 편리하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라도 상관없고 무릎 나온 추리닝 차림이라도 괜찮다.
햇볕이 부담스럽다면 모자 하나 눌러 쓰면 그뿐.
작정 없이 들길을 걸었다.
때로는 아카시아가 흘리는 향기에 젖어서, 때로는 목덜미가 뜨거워질 때까지 그늘 없는 흙길을 터벅터벅, 또 때로는 열기에 피어오르는 외양간 거름냄새에 코를 막다가도 싱그런 바람이 코끝에 스치면 '보리밭 사잇길로……' 콧노래 흘리며,
멀리 보이는 길을 가늠하며 숲길을 걷다가 더는 갈 수 없는 길임을 알고서야 가던 길 되돌아오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지금 걷는 이 행위가 인생과 꼭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 인생이 뭐, 별건가. 죄다 해석하기 나름인 것을.
멀리서 바라본 풍경은 한가롭다 못해 나른하기까지 하다.
그 삶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가 힘들고 고달플 수도 있겠으나
사람살이란 기껏해야 한 치의 차이일 뿐이라 여기면
다소 불만족스럽다 해도 적응하는 데 큰 지장은 없을 터이다.
지금은 비록 흐린 물에서 먹이를 찾아야 하는 외로운 날개 짓이 서럽다 해도……
새파란 앵두 알, 머지않아 구슬처럼 붉어지면, 그땐
아름드리 정자나무 짙푸른 그늘 아래 정든이들 불러모아 잔치라도 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