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끼는 야릇한 기분이다. 읽어 내려가는 내내 불편했던 소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책을 읽으며 이토록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껏 나는 독서는 독자가 작가를, 또는 작품을 읽는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만큼은 그 생각을 여지없이 짓밟아 뭉개고 만다. 오만하고 뻔뻔한 저 자신감. 오히려 책이 나를 읽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꿔 말하면, 니체의 저 유명한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 라고 할 수 있겠다.  혼란스럽고 두렵다. 보이지 않는 예리한 눈에 의해 내가 해체되고 분석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책일까? 또는 어떤 문장일까? 읽기 힘든? 아니면 쉬운? 무료할 때 그저 의미 없이 휙 훑어볼 뿐인 그렇고 그런? 아니면 두고두고 곁에 두고 다시 펴서 읽어보고 싶은 책?

나는 과연 “빛나는 생기와 샘솟는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그토록 당당해서 아름다운 문장”을 가진, 그런 책일 수 있을까? 나도 감히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를 읽어 봐, 주저하지 말고…”라고?  

 

나는 무얼 쓰고 싶은 걸까. 그렇지, 소설을 쓰고 싶었지. 그런데 정말 소설을 쓰고 싶기는 한 걸까. 지적인 허영심은 아닌가. 어찌됐든 뭐라도 써야한다. “한 사람이 원하면 꿈에 불과하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면 현실이 된다.”는 말에 기대어. 그렇다고 내가 글을 쓰기를 모든 사람이 원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혼자서 최면을 걸겠다는 말이지.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야할 근거를 두고 싶으니까. 소설을 쓰고 싶다는 건, 그건 소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세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세계, 그 세계에서 살고 싶은 욕망. 난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나는 어떤 문장일까?

대체 나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 또는 번역될 수 있는 문장일까?

혹은 내 안에 잠재된 문장은 어떤 문장일까?

어떤 이가 말하기를, 보여 지는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건, 보는이의 각도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제가 있다면 보는 이에게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문장은 나의 부분을 넘어 전체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그것만이 살아있는 표현이며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인데 …  

 

한 동안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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