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몇 줄을 이해하기 위해 두텁고 지루한 책을 다 읽어야 할 때도 있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단 한 문장이라도 내 의식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다면 그 책의 존재가치를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책이라도 그만의 존재의미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책들의 운명도 여느 존재의 운명과 마찬가지다. 몇 세기를 걸쳐 주목을 받으며 장수하는 책들이 있는가하면, 사는 동안 온갖 고난을 당한 책들도 있고,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죽어버린 책들도 있으며, 반짝 빛을 내며 타버린 책들도 있다. 하지만 누가 알까. 태어나자마자 소멸해버린 그 책 속에 평생을 찾아 헤매도 찾지 못한 보물이 들어있었을지……
해마다 되풀이 되는 연말의 감정에 휘둘리며 방황하다 기어이 딛고 선 발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유난히 춥고 아프다. 겨울은 아직 초입인데, 이 남루하고 헐벗은 마음에 따뜻이 지펴줄 불씨는 어디에 있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책들은 유성과 같다. 각각의 책들에는 단 한순간, 마치 불사조처럼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르는 단 한순간, 모든 책장이 불타오르는 한순간이 있다. 그 한순간을 위하여, 비록 곧 재로 변할지라도, 우리는 책들을 그 후로도 영원토록 사랑하는 것이다. 씁쓸한 체념을 느끼며 우리는 가끔 깊은 밤에 나무로 된 묵주의 구슬처럼 그 돌같이 죽어버린 메시지를 전하는 멸종된 책장 사이를 방황한다.”
오늘도 이렇게 부르노 슐츠의 말에서 '책'을 '사람'으로 바꿔 되뇌며 행간 사이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표현 너머의 표현을, 말해지지 않은 말을, 침묵에 감춰진 의미를 엿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침묵의 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 후에야 ‘바벨’은 침묵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깨달았다. 음악을 들을 때 그는 더 이상 음표를 듣지 않고 그 사이의 침묵을 들었다. 책을 읽을 때 오로지 쉼표와 세미콜론, 마침표와 뒷문장의 대문자 사이의 여백에 집중했다. 방 안에서 침묵이 모이는 곳도 발견했다. 커튼 주름이 접힌 곳, 움푹 파인 은식기. 사람들이 그에게 말할 때 그는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을 들었다. 어떤 침묵의 경우는 그 의미를 해독하게 되었다. 단서는 없고 직관만 있는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비슷했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선택된 직업에서 다작을 하지 않았다고 아무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는 매일 침묵의 완전한 서사시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당신의 아이가 하느님이 존재하느냐고 묻거나 사랑하는 여인이 당신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침묵을 지키기란 어려웠다. 처음에 바벨은 ‘예’와 ‘아니오’라는 두 단어만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단어만 말하더라도 침묵에 담긴 그 미묘한 유창함을 잃어버리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그를 체포하고 빈 여백뿐인 그의 원고를 모조리 불태운 후에도 그는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이 머리를 한 대 치거나 군홧발로 사타구니를 걷어차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침내 총살대가 눈앞에 다가오자 작가 바벨은 자신이 실수했을 가능성을 감지했다. 총들이 그의 가슴을 겨냥할 때 침묵의 풍요로움이 실은 말하지 않은 빈곤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침묵이 무한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총에서 총탄이 터져 나올 때 그의 몸은 온통 진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일부는 통렬히 웃었다. 늘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침묵에는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중에서>
가슴이 서늘하다. 어떤 식으로도 말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침묵. 그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겠다. 이 겨울 동안은.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 눈 덮인 산을 건너온 바람이 전하는 소리를 이해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