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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뼈 시리게 아팠던 기억에서 아직…
나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눈이 쌓였던, 이제는 녹아 질펀해진 뜨락에 
연두빛이 돌고 목련의 봉우리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게 확연한데…  
그러나…
베란다에 좀 더 머물고 있는 햇살의 길이만큼 두꺼워진 시간의 층에 갇힌 나는 
차라리,

봄이 오는 게 두렵다. 

스물아홉에 끝나리라 여겼던 한 생生이 
그 후로도 수 년 동안 여전히…
남루한 문장처럼 빛바래고,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다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소설처럼 미완에 머물러 있다.
쓸쓸함에서 또 다른 쓸쓸함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절망하며 바라보았던
그 겨울새가 지금쯤 어느 바다를 건너고 있을지…
새가 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오늘을 살아야지
살아서 미완의 소설에 기어이 마침표를 찍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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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프랑스에, 인류에 헌정했다.

인류는 나에게 자신의 고통을 주었고 그 대가로 나는 한 권의 책을 주었다.

우리는 서로 비긴 셈이다.

빌어먹을, 문학은 우리 모두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 에밀 아자르 -


그래, ‘빌어먹을’! 문학은 우리 모두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시시때때로 소설 속으로 도망쳐버리는 게으른 영혼이 있다. 어둠이 가시고, 새벽이 오고, 어수선한 낮이 지나면 어스름한 평온이 찾아든다. 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며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이다. 보이지 않는 틈, 층과 층 사이에 위치한 세상.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 그러나 엄연한 세상. 나는 그 세상으로 도망치지만, 겨우 한 발만을 들여놓는다. 한 발만! 비겁하고 소심하게! 언제라도 빠져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그토록 원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먼 바다로 떠나지 못한다. 나의 선생은 말했다. 무조건 떠나라고. 배는 항해를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뭍에 매여 하염없이 출렁거리기만 할 거면 이미 ‘배’이기를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고. 맙소사! 내가 배였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그저 저 바다를 바라보면서 거침없이 떠나는 자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던 게 전부였던 내가?

나는 내 영혼이 단지 타인의 상상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다 마침내 먼지가 되고, 기어이 그마저 증발해버릴까 봐 두렵다. 달궈진 철판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처럼. 치지직! 그리고 끝나고 마는 것. 끝!

나는 미치거나 취해야만 숨 쉴 수 있는 ‘황당’한 세상을 꿈꾼다.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세상. 시간도 삼켜버린 세상. 차라리 백지인 세상을.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그 한 세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면, 영혼마저 집어삼킬 듯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지칠 줄 모르고 위협하는 지옥의 그림자라도 전혀 두렵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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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그저 내키는 대로 향하는 여행길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같았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단 한 시간의 기억이 나를 놔주지 않고 있다. 그 한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때의 일 분 일 초가 내가 살아온 모든 날들보다 더 큰 것만 같아서… 나는 시간이 없는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 '피사로 가는 길' 중에서 ―
 


누군가 무심히 해버린 한 마디,

다른 '주제'의 들러리로 잠깐 스쳐갔을 뿐인, 

말 한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말이, 

그 말이 왜 그 순간에 내 뇌리에 박혀 버렸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주 사소한 그 한 마디가 어떻게? 

 

이 후로 한 동안(지금까지) 그 말은 내 안에서 나를 휘젓고 있다. 

혼란스럽고 우울하고 힘들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없을 것 같다.

그 말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은…  

나도 시간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  

 

디네센의 글을 다시 읽는다.

그런데

그 속에 답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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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문학은, 도저히 열 수 없는 ‘납 상자’일지도 모르나 끝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달콤하고 고통스런 유혹이다. 꿈의 선물상자이다. 또한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내게 문학은 그와 같다. 물론, 아직까지 ‘아무리 먹어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우습게도 그래서 아직은 그만큼의 희망이 남아있다 여기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실비 제르맹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말들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언어의 숨소리를 듣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공간 속으로 끝없이 탐험해 들어가는 일이다. 글을 뚫고 이미지를 심는 것,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어떤 일을 추구해 나가는 것, 앞으로 나아가지만 지평선을 향해 걸어갈 때처럼 항상 미완성 상태일 뿐이라서 가면 갈수록 지평선이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그리고 샘 새비지의 「소설 쓰는 쥐 퍼민」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내 삶의 이야기를 늘 이렇게 상상해왔었다. 만일 내가 그 이야기를 쓸 때가 온다면…’ 이어서 또, ‘만일 그때가 온다면!’(은) 가망이 없다는 것. 지워 없애자.

이 얼마나 뼈에 와 닿는 말인지! 

가망이 ‘있다’와 ‘없다’ 사이에서 갈등하며 '만일 그때가 온다면…' 이라는 희망에 붙들려 있는 것이 얼마나 슬픈 고통인지 겪어본 사람만이 알 터이다. 끊임없이 반복하면서도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검증되지 못하는 투쟁만큼 고독한 싸움은 없다.  

 

소설의 주인공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어제는 까마득히 멀어지고, 내일은 순식간에 다가와 있다. 내 일상에서의 시간과 공간 개념은 완전히 삭제되고 그들의 삶과 인생을 함께 살게 되는 까닭이다. 그들과 함께 숨 쉬고, 함께 마음 졸이고, 함께 고통 받고, 함께 울고 웃으며… 또 한편으로는 작가들의 재능과 창작세계를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그러면서 희망을 품고, 호기롭게 몇 문장을 써보다가 지독하게 형편없음에 금세 좌절하고… ‘작가의 DNA’는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환경의 영향인가, 라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이유를 찾아 헤매면서… 그러기를 수없이 되풀이한다.  

한마디로 고통이다.

오, 그 지독한 고통이라니! 복통이 요동치는 창자들을 훑고 지나가는 동안 몸속으로 파고들어 쥐어틀며 점점 더 세차지는 그 긴 경련. 지금도 나는 그 거듭된 고통이 내게서 종이 씹는 버릇을 영영 버리게 하지 못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나는 고통이 자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다시 씹기 시작했고, 때로는 그만큼도 기다릴 수 없었다. -<소설 쓰는 쥐 퍼민 중에서> 

 

이보다 더 지독한 짝사랑은 없다. 정확한 실체를 가늠할 수 없기에 더욱 슬픈 사랑이다. 혼자 상상하고 혼자 기뻐하고 혼자 아파하고, 또 괴로워하면서도 결코 단념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것이 나의 문학이다.

퍼민은 ‘책들의 멋진 한 가지 맛은, 커피 냄새가 나는 맛이다!’라고 했다. 근사한 표현다.

그러한 책들의 향기 속에서 오늘도 나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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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는 

출간 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해당 도서가 '품절'이 된다는 사실이다. 

대체, 초판 인쇄로 몇 부를 찍어내는지도 궁금하며,  

어떻게 단 시일 내에 그렇게 다 소진 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것도 마케팅의 일부인지?  

어쩌다 미처 눈에 띄지 않아 놓치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필요해서 검색해 보면 품절이나 절판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내일은 시내 서점에라도 가서 뒤져볼 일이다. 

'붐 그리고 포스트 붐'과 '마이더스의 노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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