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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현재가 고통스럽고, 어렵거나 힘든 일에 부닥치게 되면 곧잘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또는 ‘모든 건 지나갈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막연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냐고 묻는다면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일 년 후 종전과 함께 독일의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석방된 이력을 가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소설 <운명>의 진술 속에서 그러한 시간에 대한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운명>은 열다섯 살의 유대인 소년 죄르지가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짜이츠란 수용소에서 겪은 모든 체험을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내용이다.
소년에게 수용소의 첫 인상은 '지루한 곳'이다. 늘 가까이 있는 죽음과 만성적인 굶주림, 죄수들의 일상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소년은 그런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심신이 쇠약해져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노인 같은 피부, 텅비어가는 머릿속. 소년은 그저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것에 모든 주의를 집중한다. 죽음에 직면한 순간, 수용소의 익숙한 풍경은 '그리움과 은밀한 동경'을 불러낸다. 심지어는 '이 아름다운 강제 수용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마음까지 품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소년에게, 사람들은 '그 끔찍한 일들을 잊어야 한다고. 그래야 네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말하지만 소년은 그러한 망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지난 시간, 그 끔찍한 과거는 우리의 외부에서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그곳으로 향한 것이라는 인식. 평범한 개인들 역시 역사의 흐름에 동참해왔으며, '과거에 뿌리를 두고 거기서부터 새롭게 다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소년은 체험을 통해 얻는다.
‘매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계적으로 천천히 깨달아 나간다. 하나의 단계가 끝나고, 그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다음 단계가 바로 다가온다. 그런 식으로 해서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그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일을 처리하고, 살아가고, 움직이고, 활동을 하고, 매번 새로운 단계마다 요구되는 새로운 과제들을 수행해 나간다. 그런데 만일 시간 속에 이러한 순서가 존재하지 않아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게 된다면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도저히 그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p.276)
‘다른 한편, 시간을 어떻게든 보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니, 어쩌면 손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 4년, 6년, 혹은 12년을 보낸 사람들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까지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12년을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의 경우는 12×365일을 거기서 보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12×365×24시간을, 분으로 따지자면 거기다 또 곱하기 60을, 초로 따지자면 다시 곱하기 60의 시간을 거기서 보낸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A에서 Z까지의 알파벳순서처럼 단계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만일 12×365×24×60분×60초의 모든 시간이 한순간에 그들에게 닥쳤다면, 그들은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p.277)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여기서 내게 와 닿은 말은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이다. 그러니까,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의 파도를 타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말로 나름대로 이해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강’을 생각했다. 우리가 타고난 운명의 시간에 대한 비유로써의 강을 말이다. 가령, 우리가 거친 강물에서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면, 가는 내내 수많은 위험과 장애에 부딪쳐야 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절대 그 끝에 이르지 못하고 전복되고 말 것이다. 방법은 하나다. 우리는 운명의 강에서 결코 자유로이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의 ‘운명’의 강에서 흐르는 ‘시간’의 강물을 따라 함께 흘러가며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와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아 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사실을, ‘매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계적으로 천천히 깨달아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대신 걸어가 줄 수 없는 나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이 곧 운명’이므로.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이 말은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p.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