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들이 떨어진 거리는 쓸쓸하다.
아무 이유 없어도 울컥 눈물이 목을 타고 넘어오는 날이다.
무심하려고 손닿는 대로 뽑아든 책,
무작정 펼펴든 페이지 한구석에서 오롯이 쳐다보는 문장 하나,
“사랑해라”
이것을 기다렸던 것일까.
다시 책장을 덮고 표제를 본다.
«끌림»
TRAVEL NOTES
‘이병률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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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동전을 듬뿍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너무 아끼는 책을 보며 넘기다가,
그만 책장이 찢어져 난감한 상황이 찾아와도 그건 당신의 사랑이다.
누군가 발로 찬 축구공에 맑은 하늘이 쨍 하고 깨져버린다 해도,
새로 산 옷에서 상표를 떼어내다가 옷 한 귀퉁이가 찢어져버린다 해도
그럴 리 없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다 휩쓸려 잃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내 것이라는데, 내가 가질 수 있는 거라는데
다 걸지 않은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 때문에 난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고 생각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누구나, 언제나 하는 흔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사랑조차도 못하는가,
하고 자신을 못마땅해 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한 것도 의무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사랑해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