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O.S.T - 정재일의 작곡, 최우식의 노래 그리고 봉준호의 작사
최우식 노래, 정재일 작곡, 봉준호 작사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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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개봉하자마자 영화를 보러가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 대단한 감독에, 그 엄청난 수상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예측불가의 예고편을 본 이후로 나는 이 영화가 너무도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릴 것만 같아서 아주 오랜만에 글을 남기고 싶었다.
책을 남기지 않은지도 오래지만 일단은 영화부터 다시 출발해보기로 한다.

두 가족,의 이야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아니, 어디서 어디까지 얘기해볼까.
스포일러없이 공개된 그 짧은 예고만으로 이 영화를 전부 설명하기엔 너무나 턱없이 부족하다.

채도가 낮은 색채들과 모든 상징을 담고 있는 소품들.
어둡긴 해도 거칠지 않은 눅진한 분위기.
선명하진 않지만 아주 뚜렷하게 보이는 이미지들이 시종일관 눈에 박혔다.
탁해질지언정 쨍쨍한 무언가들.
색깔은 당연하게도 상징적이다.
아니, 그 무엇도 상징적이지 않은 게 없다.

시종일관 우연과 계획을 섞어 이야기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만든다.
여기서 한번 튀고 저기서 한번 구르면서 주저없이 보는 사람을 끌고 간다.
분명히 여기선 이런 장면 하나쯤 나올 거 같지만 절대 나오지 않고, 이렇게 되겠지 했던 것들이 죄다 다른 방향을 향해버린다.
보는 내내 넋을 놓으면서도 한편으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그들이 심히 걱정스러워 진다.
흔하게 흘러갈 법한 부분에서마저 결국 색다른 길로 빠지는 그 수가 대단히 놀랍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과 부자이지만 불행한 가정, 혹은 가난해서 삭막한 가정과 부자여서 풍족한 가정, 빈부를 두고 봤을 때 우리가 떠올릴 만한 대립구도가 성립될 듯 말 듯 하면서 미묘하게 비껴간다.
그러나 지극히도 현실적인 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예상 가능한 지점에서 마치 사냥을 시작하듯 서서히 그 이빨을 드러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극도로 영리하게 극은 차차 소강에 접어들지만 길다면 길다 할 러닝타임 안에 숨은 이야기란 없다.
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을 만큼 영화에 빠져들었고, 그조차 이 영화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끝까지 독특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경탄만을 남기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게 만든다.
그리하여 끝에 이르면 이 영화가 상을 받은 이유와, 왜 이러한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고, 이야기가 어떻게 이렇게 흘러왔는지, 그 모든 걸 알게 된 듯한 기분에 일순간 사로잡힌다.
하지만 결국 내가 알고 본 것은 표면적인 것들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깊이에 잠식되는 것 같다.
아주 사실적이고 직관적으로 모든 걸 내놓았음에도 가랑비에 옷 젖듯 깊은 여운에 빠져들게 만드는 영화였다.

스포일러를 포함해 여러 해석과 주관들을 찾아보고 다니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장면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마치 살아있는 이야기를 머리에 심어놓은 것처럼 그 소름끼쳤던 생동감이 지워지지 않아서 자꾸만 생각에 잠기게 된다.
찝찝한 영화가 싫다는 지인에게 그렇지 않다고 선뜻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내용보다도 이렇게 엉겨붙은 무언가가 너무 쉽게 끌려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이 섞여드는 건 콕 찝어 내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려준 덕분에.

엊그제 저녁 영화를 보고 어제 아침엔 비를 만났다.
오늘,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한동안은 날씨마다 생각 끝에 이 영화가 끌려올 것 같다.
그 자체로 온전해서 이야기의 전후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영화.
딱 하나의 이야기.
또 한 번 보고싶은데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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