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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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거대한 곰이 버티고 있을 때, 

그걸 뒤집어 문이 되면 열고 나가보자."




언니네 미술관/ 이진민 지음/ 한겨레출판사



이진민 작가의 [언니네 미술관]을 덮고는 긴 숨을 내쉬었다. 이 언니, 참 멋있다.(얼굴도 모르는이지만, 언니라 친근하게 부르고 싶어졌다).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 이분법과 강한 확신과 관념들로 딱딱해진 세상을 조몰락조몰락 매만져 유연하고 다정하게 변화시키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달라지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세상을, 타인을 들여다보는 글인가 보고 있노라면 결국 나를 마주하는 글이었다. 나 안에 굳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들을 탈탈 털어내고 다시금 채울 수 있었다. 

대단한 누군가가 아니라더라도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일의 나를 기대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 내가 딛고 서있는 배경 속에서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온 수많은 감정들, 존재들, 생각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찬란한 순간 대신 평온한 일상이 우리 삶을 쌓아 올린 토양이자 자양분이었음을 깨달았다. 




'말씀'이 아니라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그저 보드라운 '숨소리'만으로도 

좋다고 믿는다. 

나의 하찮음을 깨닫고 편안해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수한 작은 목소리와 숨소리들도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218 (part02. 크게 바라볼 것들 3장. 사소함, 익숙함, 하찮음 * 결코 사소하고 하찮지 않은 것)





이진민 작가는 다시 바라볼 것들 - 근육, 마녀, 거울, 크게 바라볼 것들 - 슬픔, 서투름, 사소함 ㆍ 익숙함 ㆍ 하찮음, 함께 바라볼 것들 - 직선과 곡선, 앞과 뒤, 너와 나, 이렇게 3가지 큰 영역으로 나눈 9가지의 단어 목록으로 세상의 존재들에게 말을 건다.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그 이야기가 스며들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꿈꾼다. 그렇게 우리들의 공간에 의자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저자는 구분 짓고 나누는 세상의 관념과 잣대들을 자신의 다정한 무기로 허물고 부수어 이어가고자 애쓰고 있다. 철학 이야기지만 미술과 문학을 매개로 한 [언니네 미술관]은 섬세하고 다정하다. 언어의 한계를 염려하는  세심한 배려 또한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테마인 <다시 바라볼 것들>은 외부의 시선들과 연관이 있다. 세상의 억압과 통제에 휘둘리지 않게 플라톤의 동굴에서 걸어 나와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아름답게 보이는 몸, 명사가 아니라 기능하는 몸, 동사로 살아가는, 마녀 안에 담긴 의미를 꿰뚫어 보는, 크로노스적 시간 위에서 꽃 피는 카이로스적 시간을 감사히 여길 줄 아는 나를 만들고 싶어졌다. 아장스망을 간직한 이가 되고 싶어졌다. 





두 번째 테마인 <크게 바라볼 것들>은 이진민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책의 중앙에 넣었다고 한다. 슬픔, 서투름, 사소함 ㆍ 익숙함 ㆍ 하찮음. 이들의 힘을 세상 모든 이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았다고 한다. 일상에서 누구나 느끼는 부정적이고 소소한 영역을 다룬 문학 작품과 미술 작품을 이진민 작가의 목소리로 들으니 그가 간절히 전하고자 하는 힘에 가슴 한편이 저릿하였다. 

감명 깊게 읽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가 소개되어 반갑기도 하면서 읽었을 당시의 먹먹했던 감응이 되살아났다. '이 세상을 보다 살만한 곳으로, 보다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는 건 기본적으로 슬픔'이라는 문장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결국 불사는 죽음이고 전능은 무력이다. 

반면 아무리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서투름은 변화의 친구이고 성장의 어머니가 된다. 

이를 깨닫는 자들에게 이 아이러니는 

서투르고 짧은 생의 위안이 될 것이다. 

서투름은 결국 인간을 빛나게 한다.

p.175 (part02. 크게 바라볼 것들 2장. 서투름 *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







세 번째 테마인 <함께 바라볼 것들>은 '함께'라는 의미에 포커스를 두었다. '직선과 곡선'을 이야기하지만 이내 곡선 안의 직선 구간을 살피고 있다.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보게 하고 이는 새로운 앞으로 이어지고 있다. 

'너와 나'를 설명하고자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키스>와 르네 마그리트의 <키스>를 소환하였다. 하나의 돌을 최소한으로 조각하여 떨어질 수 없는 연인의 친밀감을 충만하게 표현한 작품과 천을 뒤집어쓴 채 키스를 나누는, 가까우면서도 먼 연인이지만 타인과의 관계가 지닌  한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선명한 대비를 이루지만 왠지 두 작품 모두 와닿았다. 현실과 환상 혹은 상상처럼.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곁에 있어주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너와 나', 바로 우리를 정성 들여 그려내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머무르기를 권하는 다정한 속삭임에 고개가 절로 끄떡여 졌다. 




보통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느끼고 나누는 찰나를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큰일이 아니더라도 서투르더라도 달라지고 변할 수 있다는 성장의 기회를 감사히 여길 수 있기를,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빛나는 존재들이 곁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삶에 카이로스적 순간을 하나 더 쌓았다.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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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 눈사람 펑펑 1
나은 지음, 보람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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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 눈사람 펑펑 1/ 나은 동화/ 창비




『팥빙수 눈사람 펑펑』은 나은 작가가 처음으로 출간하는 책이다. 사랑스러운 펑펑과 안경점 손님이 전하는 이야기에 보람 그림작가의 귀여운 그림이 더해져 감동이 넘쳐흐르는 어여쁜 동화책이다.








나은 작가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눈사람과의 우정이 눈사람 마을과 눈사람 펑펑을 탄생시켰다. 눈사람 마을의 눈사람 안경점의 주인인 눈사람 '펑펑'은 빙수를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빙수에 얹을 재료를 받고 손님들에게 특별한 안경을 만들어 주는데…….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는 풍경이 있다. 

얼었던 물줄기가 서서히 녹아 살얼음이 낀 채 물이 졸졸졸 흐르는 초봄의 순간이나, 높이 자란 자작나무들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보이는 파아란 하늘이나, 씽씽 고속도로를 달리다 옆을 보면 고개 숙인 황금색 벼들로 가득 찬 논 등이 그렇다. 그리고 또 밤새 내린 눈으로 뒤덮인 새하얀 세상이 마음에 쿵~ 닿는 풍경이 그렇다. 

코가 빨개져도, 귀가 땡땡 얼어도 그저 발바닥에 닿는 뽀득뽀득 눈이 마냥 좋은 기억 속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이야기, 바로 『팥빙수 눈사람 펑펑』이다. 책을 펼치면 시원하고 행복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다. 그렇게 눈사람 펑펑과 만났다. 




펑펑은 하얀 눈을 뭉쳐서 안경테를, 

투명한 얼음을 깎아서 렌즈를 만들어. 

안경 모양을 갖춘 뒤에 마지막으로 호 불어주면 

안경은 더 단단하게 얼어붙어. 

펑펑의 손길이 닿은 눈 안경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안경을 쓰면 보고 싶은 장면을 볼 수 있지.




눈이 어렸을 때부터 나빠서 수많은 안경을 써본 터라, 펑펑의 신비한 눈 안경에 더욱더 혹했다. 과거든, 미래든, 사람의 마음 속이든 무엇이든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나만 그런 게 아닌 듯 펑펑의 안경점에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소풍날 날씨가 궁금한 귀여운 아이, 친구의 슬픈 마음이 궁금한 강아지, 짝꿍이 누가 될까 궁금한 아이까지. 각자 보고 싶은 장면을 보고 펑펑과 고민을 나누는 사이에 답을 찾아간다. 진심 어린 공감과 격려 덕분에 우리 친구들이 한 걸음 나아갔다.





"꿈꾸는 건 누구에게나 자유란다. 

상상하면 돼. 그럼 무엇이든 가능하지."


"은이는 이제야 알 것 같았어. 마음을 주고받는 게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말이야."


"작은 추억이 모이면 행복한 기억이 되기도 해. 

작고 가벼운 눈을 뭉치면 

커다란 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펑펑은 손님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헤아려 보고픈 장면을 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안경을 제작한다. 경청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그 시간 속에서 가슴 훈훈하고 다정한 순간순간들이 쌓여갔다. 펑펑도, 손님도 소중한 것을 깨닫는 게 되는 만남이라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신비한 경험을 지켜볼 수 있는 나도 덩달아 설레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손님들 이야기들 사이에 펑펑에게 찾아온 인연은 달콤하고 시원하고 올려진 재료 따라 맛이 달라지는 놀라움 가득한 그것, 딱 빙수 같다.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이 살포시 들은 소원을 살짝궁 이루어주는 기적 같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소원을 이루어가는 데에는 아주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눈사람 안경점'이다. 그 사이 또 어떤 사연을 지닌 손님이 찾아올지 기대된다. 



"보고 싶은 장면이 있나요? 

그렇다면 팥빙수산 봉우리 눈사람 마을 안쪽에 자리 잡은 '눈사람 안경점'으로 놀러 오세요."


똑똑. 

어서 오세요. 펑펑과 스피노입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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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망할 소행성 다산어린이문학
세라 에버렛 지음, 이민희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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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후, 소행성 충돌로 지구가 멸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일상을 보내고자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충만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대화를 나누면서 소소한 일상을 나눌 테다.





나의 망할 소행성/ 세라 에버렛 지음/ 다산 어린이





세라 에버렛 작가의 『나의 망할 소행성』은 갑자기 경로가 바뀐 소행성 앰플러스-68이 지구를 향해 돌진한다는 엄청난 뉴스로 시작한다. 이제 4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11살 케미 카터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의 종말을 준비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다들 깊은 슬픔에 빠진 현재에 대한 퍼즐 조각을 찾아나간다. 아마도 소행성이 모든 것을 파괴해서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케미는 아빠, 엄마, 로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Z를 가족으로 둔 소녀이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좋아하는 과학적 접근으로 충격을, 슬픔을 줄이고자 애쓴다. 




우리는 슬퍼서 죽은 최초의 사람들이 될 거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싸우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




케미의 시선을 따라 주변 상황을 살펴나가다 보니 조금씩 어긋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다가 1부 마지막에 가서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앞의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왜 케미의 부모님은 소행성 충돌 뉴스를 보고는 유일한(친절하게 대해주는) 이웃인 소런슨 부인에게 케미와 로를 맡기고 밖에 나갔을까? 왜 이모가 소런슨 부인 집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왔을까? 왜 이모 집에 머무르게 된 걸까? 왜 유독 케미가 살던 파인뷰 동네에서 종말과 관련해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것도 케미 집 근처에서? 






2부에 모든 사실이 담겨 있다. 절대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이 아직도 태연하게 세상에서 일어난다. 케미네 가족이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단지 아내 직장과 더 가깝고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고 딸들에게 용기를 내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백인 동네로 이사했다는 이유로 벌어진 참극이었다. 차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11살 케미는 소행성 충돌로 종말 하는 세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드디어 진실을 마주하고 선 케미, 아빠에게 '그릿'이라 불리던 케미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였다. 별과 소행성 그리고 삶과 죽음 그리고 이별을 말이다.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세상의 종말 같은 이별을 한 후에도, 소행성과 충돌한 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그다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케미의 이야기는 가슴 깊은 곳을 뒤흔든다. 

옳지 않은 일로 벌어지는 끔찍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을 파괴한 적은 없었고, 없을 거라는 진실은 우리에게 희망과 투지를 북돋아 준다. 케미와 가족들이 향하는 그곳에서 변화를 일으키고자 목소리를 함께 내기를, 좀 더 나은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바라는, 힘 있는 이야기 『나의 망할 소행성』을 추천한다. 





"다시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은 못 하겠구나. 

누구도 삶을 예측할 수는 없어. 

넌 그저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야 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야. 

두렵더라도 계속 살아가야 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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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 어쩌다 킬러 시리즈
엘 코시마노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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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 엘 코시마노 장편소설/ 인플루엔셜 출판사




어쩌다 킬러 시리즈 3번째 이야기가 우리를 찾아왔다. 

『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

이번 작품 역시 핀레이가 핀레이했다!


첫 번째 이야기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에서 핀레이 도너번은 어쩌다 킬러로 오해받고 어쩌다 살인 의뢰가 해결되어 죽여주는 킬러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로맨스 소설을 집필하여 인기 작가가 된다. 이어 두 번째 이야기 『이번 한 번은 살려드립니다』에서 이혼한 전 남편을 노리는 프로 킬러 싹쓸이의 등장으로 다시 어둠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그러다 무시무시한 마피아 보스 펠릭스 지로프와 거래까지 하게 된다.



어쩌다 킬러 '핀레이 도너번' 이야기는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액션도, 사랑도 강력해지고 있다. 더 어둡고 아찔한 줄타기가 핀레이의 숨통을 조여올수록 그녀의 연애 지수는 상승하는 듯하다. 

지난 이야기에서 핀레이를 뒤흔들었던 두 남자 닉과 줄리언 그리고 전남편 스티브까지 등장하지만, 역시 그녀의 맥박을 빠르게 뛰게 만드는 이는 현실에서도, 그녀가 집필하는 소설에서도 경찰이다. 가까워졌다가도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밀어냈는데 이번에는 과연 닉과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는지……



『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비밀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래서 '경찰 아카데미'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지루할 틈 없이 사건, 사고들이 휘몰아친다. 좁은 공간에서 비밀과 비밀이 만나 일으키는 스파크에 몸을 사려야 할 정도다.




"거짓말은 누구나 하는 법이니. 

숨기는 데 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





전작에 출연한 프로 킬러 싹쓸이를 찾아라! 미션이 이번 이야기의 큰 줄기다. 싹쓸이가 노련한 경찰 같다는 추리를 바탕으로 언니 조지아와 그의 동료들이 이끄는 경찰 아카데미에 핀레이와 베로 콤비가 잠입한다. 적과의 동침같이 아슬아슬 불안하면서도 닉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짜릿한 순간들이 우리 독자들을 쥐락펴락 요리한다. 긴장과 흥분이 교차하는 어쩌다 킬러 시리즈의 시그니처 매력이 흘러넘친다. 




"좋은 사람은 항상 구린 데가 있죠."





누가 좋은 사람인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도 핀레이와 베로는 여러 인물들을 용의자로 두고 소거한다. 인물들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대부분 유쾌하다. 킬러 시리즈지만 로맨스와 육아가 주를 이루는 싱글맘과 베이비시터 콤비라 유머와 성적 긴장감이 밝은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핀레이가 엄마로서, 작가로서 살아가고자 애쓰지만 여자로서 주변 인물과 감정을 나누는 점이 마음에 든다. 닉, 스티브, 줄리언, 웨이드까지 그녀에게는 다리에 매달리는 아이들뿐만 있는 게 아니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기존 인물들과의 인연으로 확장되고 탄탄해진 작품관으로 세 번째 시리즈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어쩌다 킬러 시리즈.


닉의 파트너 조이는 왜 나를 의심하는 걸까? 싹쓸이일까? 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재크의 배변 훈련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저 좋은 엄마이자 인기 로맨스 작가가 되고 싶을 뿐인 핀레이는 해리스 미클러, 칼 웨스터버 과거의 유령들이 다시 등장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에서 경찰인 닉에게 끌리는 마음까지 추슬러야 하는 큰 어려움에 처하고 만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싹쓸이를 찾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더 강렬해진 액션과 더 아찔해진 로맨스에 빠져들 시간이다. 



엘 코시마노 작가는 핀레이와 닉의 험난한 가시밭길 로맨스에 마음이 아리는 독자들을 위해 여러 사랑 이야기를 더해주는 섬세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매번 헷갈리게 만드는 패들로 추리를 완성 지어 나가는 핀레이와 베로 간의 유대를 다져주는 전개로 빛나는 워맨스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로맨스, 액션, 범죄, 거짓말, 비밀. 넘치는 관전 포인트에 순식간에 이야기가 끝나버려 오히려 아쉬운 『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였다. 또 끝까지 긴장을 풀어서는 안된다는 공식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었다. 설마? 가 사람 잡는다더니 이번 시리즈에서도 뒤통수 여러 번 맞았더니 얼얼하다. 



이번 이야기에서 베로의 과거가 거의 밝혀진다. 베로의 소꿉친구 하비가 사촌 라몬 대신 계속 엮이는 상황이 펼쳐지더니 결국 네 번째 시리즈 예고에 등장하였다.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초반 캐릭터가 붕괴되어 아리송한 인물이었던 베로. 그녀의 진짜 모습을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네 번째 이야기 출간이 기다려진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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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앙드레 풀랭 지음, 소피 카슨 그림, 라미파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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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불의를 모른 척한 이의 최후는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마르틴 니묄러가 지은 《그들이 처음 왔을 때…》 시가 적절할 듯하다.






이 시를 바탕으로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도서출판 한울림의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이다.

앙드레 풀랭 작가의 글과 소피 카슨 작가의 그림으로 세상에 묵직한 울림을 주는 질문과 답을 전하고 있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앙드레 풀랭 글·소피 카슨 그림/ 한울림어린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불러온 무관심과 침묵이 세상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를 담고 있다. 글의 화자로 등장하는 강아지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진실을 마주할 독자를 향해 우려 섞인 말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할아버지가 하지 않았던 일들로 벌어진 비극을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한다. 성별, 국적, 나이, 인종, 문화, 종교, 기호, 취향 등이 다른 존재들이 제각기 자신이 바라는 삶을 꿈꾸며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정답인 양 쭉 뻗은 길이 아닌 여러 방향으로 뻗은 길을 원할 때 원하는 만큼 걸어갈 자유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림책 속 '그들'처럼 통제하고 억압하는 집단, 세력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움직임에 방관하거나 침묵하거나 외면하면 어떤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는지 그림책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은 적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는 무심히 지켜보던 할아버지였다. 잡혀가는 존재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겁이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도 잡혀갔다. 마치 줄지어 가던 사람들이 뒤에서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지는 것처럼 조여오는 공포가 심장을 오그라들게 했다. 


그림책은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을 노래한다. 우리는 손에 손을 붙잡아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옳지 않은 일에 용기를 내어 당당히 맞설 수 있다. 



"우리 서로 굳게 잡은 손, 그게 바로 희망이야."





그림책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은 인종차별, 식민주의, 종교 박해, 동성애 혐오, 약탈 등 옳지 않은 일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더 먹먹한 울림을 선사한다. 어린이 도서로 출간되었지만, 누구나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진정성 가득한 이야기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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