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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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이경혜/ 바람의아이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20주년을 기념하는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년이면 사람도 태어나 성년이 되는 길다면 긴 세월이다. 그 시간 내내 사랑받는 책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제 열여섯! 

너무 짧은 시간을 살다간 소년 황재준의 죽음의 의미를 알기 위해 절친 진유미가 읽기 시작한다, 그의 파란 일기장을. 마치 자신이 죽을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첫 장에 쓴 문장에 마음이 무너지고 온몸이 떨린다. 






솔직히 이 문장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리고 쓰라렸는지 모른다. 혹시나? 싶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게 두려웠다. 쉽사리 일기장을 펼쳐 읽지 못하는 유미가 이해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그 죽음에 자신은 미처 몰랐던 비밀이 있을까 봐 두려웠으리라. 재준이 날아올라 추락해 부서졌던 그 시간에 자기가 보냈던 문자처럼 살피지 못한 아픔을 마주할까 봐 무서웠으리라.




밤이 깊어도 죽음은 오지 않네

흐르는 강물에 청춘을 내던져라

오늘 그대는 살았는가

내일 그대는 살았는가


아침이 와도 죽음은 가지 않네

눈 쌓인 산 위에서 청춘을 포획하라

오늘 그대는 살았는가

내일 그대는 살았는가





할말은 하는 유미와 수줍음 많은 재준이가 친구가 되어가는 시간에서부터 불의의 사고로 사라진 재준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까지 이경혜 작가는 한결같은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공통분모를 쉽게 찾을 수 없는 두 아이를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모두 가깝게 배치하여 묶어주었다. 같은 반이자 서로의 집이 가까워 같은 길로 등하교를 하면서 애타는 짝사랑을 하는 아이들.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꿈을 응원하면서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과 어른의 시선보다 본인을 위한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갑자기 찾아온 재준의 죽음은 유미와 주변을 흔들어놓았다. 죽음을 걱정할 나이가 아니기에 유미도, 재준도 그렇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을 것이다. 재준의 일기장에는 평소 즐겨한 '죽은 영혼의 놀이'에 관한 내용들이 자주 등장한다. 엄격한 아버지와 아프고 연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학업에 대한 압박으로 시들어가는 그 아이의 영혼이 안타까웠다. 죽음을 놀이화하면서 현실의 소중함을 자신에게 각인시키는 듯 해서 가슴이 저리고 시렸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눈에 밟히는 이야기였다. 엄하고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약하고 잘 다쳐서 도리어 눈치를 살피게 하거나, 자유롭게 풀어주어 결정권을 주지만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을 안겨주거나, 무엇이든 간섭하고 아이들을 차별하고 편견이 심하다. 하지만 '어른이 해서 나쁜 짓이 아니라면 아이가 해서도 나쁜 짓이 아니고, 아이가 해서 나쁜 짓이라면 그건 어른이 해도 나쁜 짓'이라 생각하는, 무심한 듯 싶으면서도 마음으로 아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어른들도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들을 한결같은 눈으로 바라봐주고 지지해주는 그들이 있어 아이들은 꿈을 꾸고 사랑을 키우며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들어간 제목의 소설책 표지가 아련하고 싱그럽다. 바람결을 타고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이 도드라지는 질감에 손끝이 머문다. 파란 일기장을 든 유미와 디지털카메라를 든 재준이가 떨어져 있어 눈으로 그 거리를 가늠한다. 부디 갑작스러운 죽음 끝에 찾아온 허망함의 구멍이 차차 메워지기를 바라며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지켜보았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재준이의 죽음은 서글픈 아픔이지만,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오늘을 충만하게 찬란하게 느끼며 살기를 말해준다. 사랑을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변하고자 한걸음 나아간 열정적인 소년 재준이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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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걸작선 을유세계문학전집 137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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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러브크래프트 

에드가 앨런 포와 더불어 현대 공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러브크래프트의 대표 걸작 모음집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러브크래프트 걸작선/ H.P. 러브크래프트/ 을유문화사




옮긴이 이동신 교수는 '러브크래프트의 세계를 움직이는 힘에 관한 다섯 작품'으로 칭하고 있다. '러브크래프티안'라 불리는 추종자를 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모음집으로 엮을만한 작품들을 선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들어는 봤지만,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하는 입문자로서 다섯 편 모두 독특하고 기이한 세계관을 지닌 작품들이었다. 


작품을 즐기고 이해하려면 러브크래프트에 관한 배경지식을 갖춘 다음에 읽기 시작하면 좋을 듯싶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성장 배경을 알면 그가 그려낸, 초자연적인 공포를 품은 작품 세계를 더 밀도 있게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걸작선에 수록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외부자(1921년작)

벽 속의 쥐들(19235년작)

크툴루의 부름(1926년작)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1930년작)

우주로부터의 색(1927년작)




러브크래프트 하면 '크툴루 신화'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크툴루의 부름>을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호러/위어드 픽션의 대가답게 '크툴루'라는 고대 신을 등장시켜 깊은 바닷물 속에 가라앉은 석조 도시를 다시 떠오르게 했다. 거대한 힘을 지닌 신적인 존재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과 두려움 그리고 광기를 그만의 문체로 풀어나가고 있다. 


'기이한 이야기' 시리즈나 '에일리언' 등의 호러/위어드 픽션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항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거대한 힘 앞에서 특별한 능력이 없는 범인들의 정신과 육신은 온전하기가 힘들었다. 


대부분 화자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조사나 인터뷰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공포보다 암흑 속에서 조여오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이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펴 소름이 돋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기조차 무섭게 만드는 감각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벽 속의 쥐들>과 <우주로부터의 색>이 더 찌릿하고 오싹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벽 속의 쥐들>은 개인적으로 '쥐'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운 동물이라 감정이입이 더 잘 되었던 것 같다. 러브크래프트가 선사하는, 몇 세기가 지나도 피를 타고 흐르는 광기(?)를 다룬 서늘한 공포가 입맛을 씁쓸하게 하였다. 활자를 읽는 데도 소리로 전환되어 소름이 돋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우주로부터의 색>은 활자를 시각적인 공포로 전환한 작품이었다. 아미의 시선을 쫓다 보니 어느새 그를 무너뜨린 공포에 압도되었다. 상상력 부족하지만, 친절하고 선량한 그가 이웃 네이엄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감당해나갔던 그 짧은 시간으로 그의 인생은 무너져 내렸다. 운석 하나로 우주에 대한 공포를 퍼트린 러브크래프트의 상상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광활하고 무한한 공간에 무엇이든 존재할 수 있으니까.



서브 컬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러브크래프트를 이렇게 만나보았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공포를 선사한  그의 독특한 세계관에 이제 입문했다. 아직도 조여든 채로 펴지지 않는 심장이 열심히 뛰고 있다. 이 아찔한 공포가 옅어지는 날에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다시 펼쳐볼 것이다. 공포는 이런 것이다. 공포의 맛을 제대로 선사한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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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 새소설 17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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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 장은진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부끄러움' 밑으로 가지를 뻗고 있는 많은 감정들을 공감 어린 서사로 풀어내고 있는 장은진 작가의 [부끄러움의 시대]


전반적인 분위기는 잔잔하고 고요한 데, 일어나는 사건들은 해일처럼 주변을 다 휩쓸어버리는, 모순적인 작품이다. 세상을 멈춘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한해네 가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고 버티는 삶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많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인 폭력과 멸시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의 진실한 삶의 자세가 먹먹함을 안겨주었다.  



부끄러움 때문에 '유령'으로 살아가고 싶은 아버지 '강정식' 씨와 불의를 참지 못하고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어머니 '문희숙' 씨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결혼 3년 차에 이혼하고 돌아온 딸 '강노라' 씨와 우산 공예가로 이솔우산 주인인 아들 '강한해' 씨. 

이 가족이 견뎌낸 '부끄러움의 시대'는 우리 사회가 되풀이표처럼 반복하고 있는 시간들이라 더 암담하고 절망적이다. 하지만 한해네 가족처럼, 이봐요 씨처럼 견뎌내고 버텨내면서 힘을 키워 부끄러워야 함이 마땅한, 사과해야 함이 마땅한, 책임져야 함이 마땅한 이를 무찌르는 또 다른 누군가가 많아지리라. 


희망을 품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차가워진 바람으로 답하고, 겨울을 부르는 가을의 손짓에 언제나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상실 후 내 안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바깥의 시간은 흐르기에, 조금만 눈을 들어 주변의 시간을, 계절을 교감할 수 있다면 견디고 버티는 시간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리쬐는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수제 우산'과 '호텔 청소' 

친근한 소재가 아니라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일터에서 '유령'으로 존재해야 하는 '청소부'의 현실을 한 번 더 비틀어 자기 스스로 '유령'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아버지의 삶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골격이 되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 유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 호텔 청소부가 되어 오히려 귀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대를 이어 엮어지면서 또다시 삶은 계속되었다. 

무언가를 귀히 여기고 시간과 마음을 쏟아붓고 아름다움을 찾고 유지하려는 마음이 소설 곳곳에서 묻어나서 좋았다. 호텔 청소부로서의, 수제 우산 공예가로서의 자긍심이 넘쳐흘러서 대단하면서도 부러웠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세가 삶 전반에 녹아 스며들어있었다. 부모님, 스승님 세대를 이어가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유연한 한해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짓는다. 분명 그를 잇는 다음 세대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든다. 






그게 꼭 손 같았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손. 

그때는 그것도 힘이 됐어. 그래서 난 우산 손잡이가 좋아. 

우산을 만든다기보다 누군가 잡을 손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해보고 싶어졌어.






시대의 부끄러움은 다양한 낯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하나같이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상대방에게, 세상에게 책임을 돌리는 파렴치다. 사과가 없는, 책임이 없는 세상의 모든 폭력과 멸시와 인재들은 소설 속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생은 견디고 버티는 것'이라는 말 끝에 '정의'가, '사과'가 함께 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다. 하긴 그렇게 쉬웠으면 '부끄러움의 시대'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해도, 노라도, 이봐요 씨도 떠나간 이들이 남겨준 추억들을 아픈 조각까지 잊지 않고 곁에 둔다. 그리고 우산을 씌워준다. 서서히 변하리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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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드림 창비청소년문학 130
강은지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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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현대인의 질병이라 불릴 만큼 만연해지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수면 장애, 불면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은 마음속 무의식이 표출되는' 것이다. 물론 왜곡되고 변형되어 나타나기는 하지만 의식에서 억압되었던 무의식을 꿈을 통해 경험하게 되면서 일부 해소되거나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루시드 드림/ 강은지 장편소설/ 창비


제5회 창비 x 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대상 수상작인 강은지 작가의 [루시드 드림]은 '우울증과 꿈'을 연결시켜 놀라운 세계관을 선보이고 있다. 암담한 절망 속에서 갈팡질팡하다 무게중심을 찾아가는 청소년들 그리고 사람들의 연대를 과장 없는 서술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사람으로서 명치께가 아릿해졌다. 



세상에 '꿈 바이러스'가 퍼져 어른들이 잠들어 버렸다. 금방 깨어날 줄 알았던 남겨진 사람들은, 아이들은 점차 생존을 위해 연대하기 시작하였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수면자들을 돌보고 자신의 내일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은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어른이 잠들고 멈춰버린 세상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만 했다. 





가끔, 다 꿈같아. 

엄마 아빠가 꿈속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아……





가까운 미래 2029년, 바이러스에 잠식당한 세계에서 해길고등학생 2학년 강희·강석·홍주·윤서·찬미·준영·동혁·동준 등 아이들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치열한 분투가 그려진다. 부드러운 리더십을 지닌 강석을 중심으로 수면자들을 위한 생명 유지 장치 배터리와 수액 그리고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위험과 고난을 함께 헤쳐나가는 여정은 먹먹함을 불러왔다. 


다들 난생처음 맞닥뜨린 참담한 현실에 혼란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 아이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뛰어들어 온몸으로 부딪쳐 나아가야 했다. 이 가여운 아이들의 절망과 불안 그리고 배신감을 어떻게 감싸 안아줄 수 있을까. 그들이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순간, 눈물이 터져버렸다. 







어른은 왜 잠들었을까?에서 시작된 질문은 왜 깨어나지 않을까? 우리는 버려졌나?로 이어지면서 세상의 혼란과 무질서는 심해지고, 아이들의 심리와 행동 또한 달라지기 시작한다. 




엄마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조부모와 조손 등 다양한 가족의 관계와 상황이 묘사된다. 

고전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처럼 제각기 다른 형태를 띤 현실의 가정을 만날 수 있다. 그 안에서 사랑받고 행복하거나, 상처받고 아파하고 절망한 아이들이 열악하고 두려운 환경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수면 상태의 부모를 꿋꿋이 지켜내고자 하였다. 어른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는 데에 대한 배신감을 뒤로 한 채 아이인 자신들이 어른을 끝까지 믿고 지켜냈다. 




우리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이냐 아이냐 구분하는 기준이 단순히 연령에 있을까? 성년과 미성년의 구분이라면 모를까 어른과 아이의 구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통상 사회에서 '어른'이라 '부모'라 칭하는 '나'라는 사람도 '진정 내가 어른인가?' 자신이 없다. 그냥 노력할 뿐이다.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과 행동이 더 나은 내일로, 결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믿으며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루시드 드림]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선택과 과정 그리고 믿음은 존경스럽다. 규칙이 사라진 세상에서 소중한 이들을 지키면서 어려움에 처한 낯선 이들에게, 미처 살피지 못한 같은 학교 친구에게 달려가 손을 내밀고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은 성장했다. 단단해졌다. 





다들 무사히 깨어났으면 좋겠어.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





우리의 삶은 대부분 소소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옆에서 재잘거리는 아이들 혹은 투닥거리는 아이들, 먹을거리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냉장고를 여시는 부모님…… 반복되는 일상에 무던해지고 하찮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 일상에 자그마한 균열이라도 생기기 시작하면 우리는 쉽게 무너져버리기 십상이다. 


수면자는 달콤한 목소리를 따라 꿈의 세계에 들어가 행복한 가짜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평온한 미소를 띤 그들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배신감을 느끼기도, 깨어나기를 바라기도,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어떤 게 정답일까? 아무래도 나도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언젠가는 깨어날 거라고, 돌아올 거라고 믿으며 기다리고 싶다. 



루시드 드림, 자각몽은 '꿈의 세계'가 가짜라는 걸 안다. 

루시드 드리머의 존재가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자기가 겪은 고통과 상실이 이 세상에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이들이니까. 






[루시드 드림], 행복하기만 한 꿈의 세계에서 깨어나 현실의 세계에서 두 발로 땅을 디디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아파하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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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공익 - 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류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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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나는 왜 그들의 '사익'을 변호하는가



불온한 공익/ 류하경 지음/ 한겨레출판사




[불온한 공익]은 허용된 공익의 틀밖에 존재하는 '위험한 사익'을 변호하는 변호사 '류하경'이 들려주는 '공익'과 '공정' 그리고 '정의'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류하경 변호사의 말처럼 인류의 투쟁은 '공익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투쟁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투쟁하는 자들은 생존을 걸고 나아가는 이들이기에 더더욱 장렬하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서는 이들의 이야기는 내 주변에 한정된 삶의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고개를 들어 더 넓게 더 깊게 살피기를 깨우쳐준다. 자기의 작은 슬픔과 불편에 민감한 하루보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불의에 맞서는 하루를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류하경 변호사는 '공익'의 의미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란 '사회적 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이라고. 그리고 '공익'이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사익' 투쟁들의 이면을 들려준다. 



이 책은

국가는 국민의 공익을 보호하는가,

무엇이 공익인가,

변호사로서의 사익 투쟁기

이렇게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도리어 그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거나 가해자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통탄할 현실을  현장의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공권력 남용에 관한 내용들은 우리네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스쿨 미투에 대한 무책임하고 기만적인 교육청들의 대처와 태도에 국민으로서, 학부모로서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비례 위성정당'을 조명한 글은 정치권에 만연한 패권주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잘못이라 인정하지 않은 정당과 잘못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정당, 과연 어느 정당의 낯이 더 두꺼운 것인가. 


반려견 로마와 얽힌 동물 등록기와 코로나19로 셧다운 된 상황에서 집회·시위권 침해에 관한 입장과 투쟁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너무 쉽게, 너무 안일하게, 너무 단순하게 현상들을 바라보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내린 판단은 참으로 위험하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었다. 






류하경 변호사가 경험한 불온한 사익 투쟁들의 속 이야기는 두루 읽었으면 한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목적인 이들이 지난한 시간을 걸쳐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는 지는, 불합리한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어서 감사했다. 여러 노동조합 이야기에 많은 질문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변호사를 변호하는, 나의 사익 투쟁기도 왠지 먹먹하고 친근하다. 변호사인데도 우리네 현실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점에서 고민한다. 물론, 사회적 약자 편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헌신적인 자세는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최고의 판결보다 최악의 화해가 낫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 판결보다는 화해가 나을 수 있겠지만, 그런 세상이 오려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관들이 아직은 넘치는 세상인 것 같다. 그렇기에 사회적 약자의 사익을 위해 오늘도 거리로 향하는 이들의 노고에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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