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트리플 26
단요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단요/ 트리플시리즈26/ 자음과모음




단요 작가와의 세 번째 만남,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다이브'와 '수능 해킹'에 이어 접한 단요 작가의 또 다른 세계는 기묘하고도 경탄스러웠다. 현실을 마주하고 그 책임을 통감하고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길을 만들고 다지는 여정들이 이토록 다채로운 빛깔을 띨 수 있을까!

단요 작가가 이번 이야기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트리플 시리즈답게 파격적이고 난해하다. 활자와 문맥 사이에 깃든 작가의 진심 어린 뜻을 짚어나가는 길 위에 재미와 사유가 함께 한다.


트리플 시리즈는 3가지 이야기와 작가 에세이로 구성된다. 소설 1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소설 2 [제발!], 소설 3 [Called or Uncalled], 에세이 [토끼-오리가 있는 테마파크]로, 소설 세 작품 모두 SF와 판타지 그리고 제도권 문학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기묘함을 자아내는 장르인 '슬립스트림'로 구분된다.








표제작인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은 뇌 상태로 존재하는 제약회사 건록 그리고 그와 몸을 공유하는 목향, 건록의 대리인 서장경이 등장한다.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미워서도 아니고, 그냥, 그냥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판단할 능력이 부족해서, 재미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인 건록이 벌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흥미롭다. 정신을, 뇌 데이터를 업데이트한다는 설정은 익숙하지만, 머리만 존재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접속하여 삶을 영위한다는 발상은 독특하다. 재미로 자신을 '하느님'으로 속이고 목향에게 말을 거는 건록과 그의 존재를 어느 정도 눈치챘으나 괘념치 않는 아이 목향, 건록에 의해 죽을 뻔했으나 그의 곁에 남은 서장경의 관계가 복잡 미묘하다.


"슬슬 재밌어지려는데 벌써 포기하는 거야?"


소설 [제발!]은 구원과 죄 그리고 종교와 과학을 소재로 현실의 인류를 미래의 어디 시대에서 그려내고 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죄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제발……"



가족을 떠나 '별의 안내자'라는 종교에 심취한 누나가 보내온 수표와 편지를 태워버리던 '나'는 어느 날 편지를 뜯어보게 된다. 누나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유산은 그를 연방을 떠나 별의 안내자 본부가 있는 브루클린으로 향하게 한다. '나'가 누나를, 아버지를, 어머니를 이해하고자 떠나간 여정의 끝에서 현실이 마술과 같다는 걸 깨닫는다. 속임수를 알아내려고 애쓰지 않으리라.


소설 [Called or Uncalled], 이 작품이 제일 난해했다.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실인지 환상인지 경계가 모호했다. 검은 머리 소녀, 누나, 검은 꽃들의 이미지가 교차하면서 도시를 바라보는 '나'가 떠오른다.
'재건을 위해서는 파괴가 필요하지만 최소한의 형체는 남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기꺼이 끝까지 밀어붙이고자 마음먹었다. 망가진 세계를 어디까지 재건할 수 있을지는 어려움을 부단히 마주하려는 이들에게 달렸으리라.


단요적 슬립스트림이 보여주는 세계는 파괴적이면서도 내일을 바라보고, 거짓말 같으면서도 고통을 수반한다. 모두 떠나고 어둠에 잠긴 방에서 한 개의 머리는 그늘을 연습한다. 세상의 위기를 바라보는, 마주하는 더 나아가 오늘을 넘은 내일을 희망하는 단요의 문제적 이야기는 힘차게 퍼져나갈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조형근 지음/ 한겨레출판




19세기 말 ~ 20세기 중반 근대사를 관통하는 통찰력 넘치는 시선으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이야기, 바로 조형근 저자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다.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를 역사 속으로 이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우리의 선조가 지나온 시간처럼 역사임을 그 지속성을, 연결성을, 책임을 일깨워 준다. 







시사주간지 <시사IN>에서 연재되었던 <조형근의 역사의 뒤페이지>를 책으로 엮었다. 총 18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동양의 작은 나라 한반도가 연루된,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의 인물을, 사건을, 역사를 풀어놓는다.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시작된 독서는 조형근 저자의 예리하고 명징한 서술로 역사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사고할 수 있었다. 에피소드 마무리에 그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남겨진 과제이자 살아가는 자세가 되어줄 묵직한 울림을 건네는 책이다. 


조형근 저자는 "거칠고 자의적인 표현은 가급적 삼가려 한다"면서도 1장에서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밝히고 있다. 공명하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좀 더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리에 걸맞은 언행과 책임의식 그리고 사명감을 절절히 바라게 되는 요즘, 숨이 트이는 문장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희생자들과 연결되는 방식은 비극이 남긴 과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데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얽히고설켜 되새김질하듯 인물이나 사건들이 등장하여 환기시킨다. 이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역사의 뒤페이지답게 소설, 영화, 노래, 스포츠 등 친숙한 소재로 이끌어내는 역사적 사실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참담한 비극 앞에 이토록 작은 호의가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게도 된다. 다만 어쿼트는 이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됐다. 희망은 어쩌면 여기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당대에 미국 작가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인 잭 런던은 한국인을 혐오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끔찍했다. 겁 많고 나약하며 게으르고 도둑질 잘 하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가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죽이고 싶은 욕구를 느낄 정도로 한국인에 대한 강한 혐오를 피력한 잭 런던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서구에 의한 세계 지배를 당위로 받아들이는 사회진화론자였다. 약육강식이 세상의 진리라 믿는 사회진화론자들이 조선에도 있었다. 유길준, 윤치호. 조형근 저자는 이런 사상이 얼마나 무서우면서도 무지한지 잘 짚어준다. 약소민족, 피지배자인 조선인이 이런 자학적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빤한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폄하한 3.1운동의 의의가 잘 말해주고 있다. 




<상하이 릴>, <상하이에서 돌아온 리루>, <에레나>, <나비 부인>, <미스 사이공>. 동양 여성을 향한 서구의 환상을 다루면서 한국 현대사에서 망각되는 이야기를 들추어낸다.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위안부에서 비롯된 양공주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다. 조형근 저자의 균형 잡힌 시선이 인상적이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보듬아야 할 것인가. 




타자에게 입힌 상처를 기억할 때만, 우리가 입은 상처도 보듬을 수 있다. 그 균형을 잡기 전까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너의 이름은>, <콰이강의 다리>, <바베트의 만찬>,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유명한 영화들이 역사적 사건과 비극과 연결되어 확장되어간다. 단순히 향유하고 감동받는 데 그쳤던 감상이 비평을 넘어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유하는, 의식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신일선, 나혜석, 박인덕, 이덕요, 이애리수, 이순탁, 이미륵 등 시대를 넘어 자신이 믿는 신념대로 열정적으로 살아간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양철북>, <만세전>, <무정> 등 문학작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동정을 넘어 해결로, 연민을 넘어 연대로 가는 길이 아직 먼 이유다. 그래도 그 길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짐하는 말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동지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해야 하는 고통, 참으로 무섭다. 일제가 심은 의혹의 씨앗, 밀정. 혁명가들은 사방이 캄캄한데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토록 연결되어 있었던가. 새삼 무심히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무지가 결코 면죄부가 아님을 무겁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연결된 이 세계를 외면하지 말고 들여다보며 연대하는 걸음을 익히도록 이끌어주는 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다. 




한겨레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 도시로 숨 쉬던 모던걸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기까지
김명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한겨레출판



'신여성'에 대한 선망 그리고 <신여성> 잡지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는 예상을 초월하는 매운맛을 선사했다.



대중 여성잡지의 시원, <신여성> 발간 100주년을 맞이해 2005년에 출간되었던 [신여성 -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를 개정하여 재출간하였다. 개정판은 100년 전 신여성을 통해 동시대 여성에게 말을 걸고자 무거운 학술지 분위기를 덜어내고 친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20년 전 그대로 오늘도 같은 고민을 한다.




"편재한 남성적 시선 속에서 분투한 

100년 전 신여성의 통증을 지금의 일상 안에서 

어떻게 승화시켜야 하는지 말이다."





근대잡지 <신여성>를 강독하기 위해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모여 연구한 필자들은 거리(밖)로 나온 신여성의 등장에서부터 집(안)으로 들어간 증발까지 쫓는다. 









모던걸의 등장 - 신여성 수난사 - 여학생의 탄생 - 대중문화의 첨병 - 은밀한, 그리고 폭로된 성 - 과학적 어머니 - 슈퍼우먼의 탄생 순으로 신여성의 등장과 활보 그리고 퇴장까지 살펴보았다. 그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 이해를 근대잡지 <신여성>을 통해 둘러보았다. 




'모던걸'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몇 명 있다. 윤심덕, 나혜석, 최승희. 당대 남성 지식인들처럼 교육을 받고 새로운 사상을 접한 여성 지식인들인 그들에게 세상은 한없이 좁고 답답했다. 친숙한 이들뿐 아니라 1920~1930년대 경성을 매료시킨 신여성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생각보다 세상의 잣대는 편협하고 치졸했다. 읽는 내내 답답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100년 전 시대에 한한 영역이 아니어서 더 그랬다. 여성이 사회적ㆍ경제적 주체가 된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난관을 넘어서야 하는 일인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래서 10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현재에도 여성들이 분투를 멈추지 못하는 것일 테다. 









근대잡지 <신여성>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요지경이다. 우선 필진들의 구성부터 충격적이다. 당연히 신여성의 목소리가 다수일 거라 생각한 우를 무참히 부숴버렸다. 다수의 남성으로 구성된 주요 필진은 <신여성>의 성격이 여성 '주체'의 잡지가 아닌 여성 '대상'의 계몽 잡지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성 중심의 <신여성> 잡지에서 신여성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남성이 경멸하고 질시하는 신여성을 대상으로 계몽하고자 쓴 글이 도리어 신여성의 욕망, 어법, 삶의 양식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 읽기를 통해 저자들은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자 밖으로 뛰쳐나온 '신여성'을 오늘날 우리 곁으로 소환하였다. 덧붙이는 글을 통해 100년 전 신여성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신여성을 두려워해 <신여성> 잡지를 통해 계몽하고자 했던, 동등한 사회의 일군으로,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던 남성들의 기득권과 모순을 열거하였다. 통탄스러운 시간들이 펼쳐졌지만,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답을 찾고자 끊임없이 분투하는 이들의 걸음과 목소리에 반응하듯 새로운 발걸음과 목소리가 힘을 보탤 거라 믿는다.



한겨레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향신료 전쟁/ 최광용 저/ 한겨레출판


색다른 요리를 한 번씩 하는지라 향신료에 관심이 많다. 카시아, 시나몬, 통후추, 팔각, 강황가루, 페퍼론치노, 바질, 오레가노, 파슬리 등 여러 재료들을 구비해놓고 사용하고 있다. 제각각 맛과 향으로 풍미를 더해주는 향신료는 음식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높여준다. 하지만 향신료를 둘러싸고 벌어진 대항해 시대의 이권 다툼은 엄청난 충격이자 커다란 아픔으로 다가온다.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건 기나긴 항해를 떠날 뿐만 아니라, 방해되는 다른 이들을 가차 없이 해하는 모험과 탐욕이 뒤범벅된 이 역사는 세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한겨레 출판사에서 이번에 출판된 『향신료 전쟁』의 저자는 독립 연구자 최광용 씨다. 

직업상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던 그는 특히 유럽,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서 지낼 때 현지인들과 교류하면서 그곳의 역사와 문화, 미식과 향신료에 큰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독학을 하면서 흠뻑 빠진 향신료의 역사와 매력을 공유하고자 집필하였다고 한다.

서적과 자료에 그치지 않고, 현지에서 현지인들과의 교류하며 직접 보고 들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녹여낸 글이라 가독성이 높다. 











친숙해진 식재료인 향신료에 얽힌 인간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향신료를 선점하기 위한, 유럽 열강들의 미지 세계를 향한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끝이 없는 탐욕과 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이 잔인하고 부끄러운 민낯은 동남아시아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배를 타고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들은 처음에는 앞다투어 향신료를 원했고, 서로 다투더니 나중에는 무참히 살육과 약탈을 저질렀다. 그 참혹함에 우리 한반도에서 발생한 러ㆍ일 전쟁이 떠올랐다. 제국주의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이름 없는 존재들의 무게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후추 ·정향 ·육두구를 향한 유럽의 열망은 큰 변화를 일으켰다. 광활한 바다를 탐험하게 만들고,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만들었다. 그 자본과 기술과 경험이 쌓여 세계가 연결되게 되었다. 맛을 향한 욕망이, 부를 탐하는 야욕이 세계를 하나로 만든 것이다.








향신료의 매력에 빠진 일반인이 독학하여 대항해 시대 제국주의 국가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사를 이토록 예리하게 서술한 점이 흥미롭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패권이 이동하는 소용돌이를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잔혹 무도는 활자를 뛰어넘어 온몸에 소름 돋게 만들었다. 

여러 모험가들이 나왔지만, 역사의 평가 앞에 고개를 떳떳이 들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영국의 너새니얼 코트호프와 네덜란드의 얀 쿤이 기억에 크게 남는다. 동일한 목적의 두 이방인이 이토록 선명하게 극과 극을 이룰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제는 여러 곳에서 향신료들이 재배되고 있다. 열강들이 독점하던 시절보다 교역·문화·음식 교류들이 활발해진 오늘날, 향신료의 매력과 역사를 한데 엮은 『향신료 전쟁』을 통해 맛을 음미하는 데 그치지 않게 되었다. 잔혹한 학살로 원주민 대부분이 사라지고 이주민들이 자리 잡은 그 옛날 향신료의 땅을 기억할 것이다. 



한겨레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홀리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Holly/ 스티븐 킹 지음/ 황금가지




스티븐 킹이 보여주는 상상 초월의 악. 그 악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 누구나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우리가 판단을 내리는데 영향을 끼치는 외부 조건이 얼마나 큰 오류를 일으킬 수 있는지 절실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이들이 범인이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을 벗어난 '악'은 소설 초반부터 존재를 드러낸다. 스티븐 킹 작가의 과감한 이 설정은 범인 자체보다 범행의 원인이 이 소설의 큰 줄기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미 범인을 알고 사건을 쫓는 독자들조차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스토리텔링. 그 강렬한 흡인력에 홀려 홀리 기브니의 각개전투를 지켜보게 된다. 스티븐 킹의 매력 넘치는 캐릭터 빌 호지스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 파인더스 키퍼스 탐정 사무소 책임자가 된 '홀리 기브니'는 이번 사건에서는 주변 여러 사정으로 홀로 고군분투한다. 홀리가 지닌 매력과 능력이 단연 돋보였다.

소설 속 현재 2021년 7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사회·인종·정치 갈등을 고조시켜 이야기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록다운이 시행될 정도의 팬데믹에 제각각 반응하고 대처하는 이들의 모습은 아득한 과거 같으면서도 다시 급등하고 있는 코로나 발생률을 떠올리게 해 착잡했다.

코로나에 대한 극명한 이견 속에서 홀리의 파트너 피터 헌틀리는 입원하고, 어머니 샬럿 기브니는 죽었다.

코로나에게 가까운 이들을 잠식당한 홀리에게 사라진 딸 보니 레이 달을 찾아달라는 어머니의 의뢰가 들어온다. 상중이었으나 의뢰를 받아들인 홀리는 의뢰인 퍼넬러피 달에게서 평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어머니 샬럿 기브니를 보았다.

홀리는 이 사건 수사를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과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한 샬럿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되짚어보았다. 사랑과 집착 그리고 소유욕이 뒤섞인 샬럿의 거짓말은 홀리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앨런이 그 사람들에게는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였으니까요."



보니의 실종사건 수사는 또 다른 실종자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뚜렷한 연결점들은 없지만 연쇄살인이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홀리는 일반적인 연쇄살인의 규칙성이 보이지 않는 이 실종사건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윽고 80대 노부부에게로 다다르게 된다. 벨 대학의 명예교수인 로드니 해리스와 에밀리 해리스. 이들은 과연 레드뱅크의 살인마와 무슨 관계일까?


가끔 세상이 동아줄을 던져 줄 때도 있다.





소설은 기존 사건이 등장인물들에게 남긴 트라우마, 상처들을 보여준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을 경험한 이들이 감내하고 있는 고통과 공포를 마주하게 했다. 마치 이보다 더 끔찍한 악은 없을 거라는 듯이.

하지만 <Holly>의 악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극강의 공포를 선사한다. 범인부터 범행 수법 그리고 범행 이유까지 예상치 못한 전개로 스티븐 킹만의 저력을 뽐낸다. 평범하면서도 기이한, 순수한 악을 노련하게 그려내어 인간의 뒤틀린 내면으로 궁극의 경악으로 우리를 몰아붙였다.





"포유류는 모두 자기 종족을 잡아먹어.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만 그걸 한심하게 터부시하지.

널리 알려진 온갖 의학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니 달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제롬과 바버라 남매의 이야기는 내일을 향한 희망을 꿈꾸게 한다. 그리고 실종자들을 찾으려 하고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사건을 풀 수 있었다.

세상에는 이런 끔찍한 악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끝이 없는 악에 맞서 싸우는 홀리가 있다. 이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다시금 뛰게 만든다.




"여보세요, 홀리 기브니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Holly>가 선사한 공포와 흥분, 모순되는 두 감정으로 심장이 요동치고 있건만, 홀리 기브니의 또 다른 활약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