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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조형근 지음/ 한겨레출판
19세기 말 ~ 20세기 중반 근대사를 관통하는 통찰력 넘치는 시선으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이야기, 바로 조형근 저자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다.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를 역사 속으로 이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우리의 선조가 지나온 시간처럼 역사임을 그 지속성을, 연결성을, 책임을 일깨워 준다.
시사주간지 <시사IN>에서 연재되었던 <조형근의 역사의 뒤페이지>를 책으로 엮었다. 총 18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동양의 작은 나라 한반도가 연루된,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의 인물을, 사건을, 역사를 풀어놓는다.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시작된 독서는 조형근 저자의 예리하고 명징한 서술로 역사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사고할 수 있었다. 에피소드 마무리에 그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남겨진 과제이자 살아가는 자세가 되어줄 묵직한 울림을 건네는 책이다.
조형근 저자는 "거칠고 자의적인 표현은 가급적 삼가려 한다"면서도 1장에서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밝히고 있다. 공명하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좀 더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리에 걸맞은 언행과 책임의식 그리고 사명감을 절절히 바라게 되는 요즘, 숨이 트이는 문장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희생자들과 연결되는 방식은 비극이 남긴 과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데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얽히고설켜 되새김질하듯 인물이나 사건들이 등장하여 환기시킨다. 이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역사의 뒤페이지답게 소설, 영화, 노래, 스포츠 등 친숙한 소재로 이끌어내는 역사적 사실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참담한 비극 앞에 이토록 작은 호의가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게도 된다. 다만 어쿼트는 이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됐다. 희망은 어쩌면 여기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당대에 미국 작가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인 잭 런던은 한국인을 혐오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끔찍했다. 겁 많고 나약하며 게으르고 도둑질 잘 하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가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죽이고 싶은 욕구를 느낄 정도로 한국인에 대한 강한 혐오를 피력한 잭 런던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서구에 의한 세계 지배를 당위로 받아들이는 사회진화론자였다. 약육강식이 세상의 진리라 믿는 사회진화론자들이 조선에도 있었다. 유길준, 윤치호. 조형근 저자는 이런 사상이 얼마나 무서우면서도 무지한지 잘 짚어준다. 약소민족, 피지배자인 조선인이 이런 자학적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빤한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폄하한 3.1운동의 의의가 잘 말해주고 있다.
<상하이 릴>, <상하이에서 돌아온 리루>, <에레나>, <나비 부인>, <미스 사이공>. 동양 여성을 향한 서구의 환상을 다루면서 한국 현대사에서 망각되는 이야기를 들추어낸다.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위안부에서 비롯된 양공주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다. 조형근 저자의 균형 잡힌 시선이 인상적이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보듬아야 할 것인가.
타자에게 입힌 상처를 기억할 때만, 우리가 입은 상처도 보듬을 수 있다. 그 균형을 잡기 전까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너의 이름은>, <콰이강의 다리>, <바베트의 만찬>,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유명한 영화들이 역사적 사건과 비극과 연결되어 확장되어간다. 단순히 향유하고 감동받는 데 그쳤던 감상이 비평을 넘어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유하는, 의식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신일선, 나혜석, 박인덕, 이덕요, 이애리수, 이순탁, 이미륵 등 시대를 넘어 자신이 믿는 신념대로 열정적으로 살아간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양철북>, <만세전>, <무정> 등 문학작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동정을 넘어 해결로, 연민을 넘어 연대로 가는 길이 아직 먼 이유다. 그래도 그 길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짐하는 말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동지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해야 하는 고통, 참으로 무섭다. 일제가 심은 의혹의 씨앗, 밀정. 혁명가들은 사방이 캄캄한데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토록 연결되어 있었던가. 새삼 무심히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무지가 결코 면죄부가 아님을 무겁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연결된 이 세계를 외면하지 말고 들여다보며 연대하는 걸음을 익히도록 이끌어주는 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다.
한겨레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