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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평점 :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윤서 지음/
한겨레출판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먹먹했다. 모른 채 살아온 세상의 문을 열어 보여준 윤서 작가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지하기에 더 두려워하고 더 피하게 되는 정신질환 '조현병'을 앓는 아이와 보내온 18년의 시간을 담담한 어조로 기록한 그 마음이 파랗게 전해졌다. 고백하기까지 지난한 마음의 줄다리기가 얼마나 이어졌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나무와 그 가족들이 들려준 내밀한 이야기는 '조현병'을 앓는 다른 환자와 가족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지금'을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소중한 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저마다의 세계를 살고 있고, 그 세계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세계를 이해하려 상상하고, 함께하는 지금을 잘 보내려고 한다. 주체적인 삶과 사랑 덕분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더디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에서 경제적 자립은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요건이다. 그렇기에 '조현병'을 앓는 당사자가 삶의 주체가 되어 사회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또 보내기 위한 여러 시도들은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발병부터 현재까지 나무네 가족이 걸어온 길은 고통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소아 조현병 진단을 받고 완치가 아닌 완화를 목표로 입원과 약물, 전기경련치료 등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면서도 나무의 자존감과 가족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재활을 위해 학업을 이어갔다. 이런 선택과 도전이 쌓이고 쌓여 나무는 서른 살 청년이 되었고, 네 가족은 무너지지 않고 더 견고한 관계를 다지게 되었다. 당사자와 가족 모두 고통과 슬픔에 침잠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와 사랑을 품은 결과였다.

흔히 이럴 것이다. 제삼자가 너무 쉽게 일반화한 생각과 오해에 당사자가 상처받고 힘들어하는지 안다 여겼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이 또한 오만이었다는 걸 알았다. 지레짐작으로 무심히 던진 말이 한 사람의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 경각심을 키워주었다.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두드린 나무와 가족들 덕분에 '조현병'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단순히 조현병 환자가 아닌 병을 앓고 있지만 호기심이 많고 좋아하는 일이 있는 상냥한 청년으로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고픈 이웃인 나무를 만났다.
건강하게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다가 갑자기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게 된 나무. 그 아이를 위해 여러 치료법을 시도해 보고,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돌봄에 적당한 환경을 찾고자 분투한 가족. 이렇게 당사자를 돌보면서도 자신을 돌보는 것을 등한시 않았기에 기나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담담한 이야기에 깔린 버팀의 시간에 박수를 보낸다.

'조현병'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치료법, 특수교육, 돌봄, 장애인 지원, 장애인 등록, 장애인 자립 등으로 확장되어간다. 사회 시스템의 미비와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아쉽고, 사회적 인식은 부족하다. 일본의 '베델의 집'과 서울 서대문구의 '태화샘솟는집' 같이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존중받는 동료와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무조건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할 게 아니라 정신질환자들 또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이 글을 통해 '조현병'이 심리적인 병이 아니라 뇌 신경계의 문제로 뇌의 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0명당 1명꼴이라는 조현병, 흔한 질병이면서도 환자마다 증상이 다르기에 스펙트럼이다. 제대로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18년이라는 시간을 '조현병'과 함께 살아온 나무와 가족들의 기록은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가득하다. 앞서 걸어간 그 길에서 몸으로 부딪쳐 얻은 팁이 잘 정리되어 있다.
"엄마 때리는 사람 없어요? 괴롭히는 사람 없어요?" 망상과 환청에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는 질문 대신
"엄마, 나는 엄마하고 데이트하는 날이 좋아요. 우리 다음 달에는 뭐 먹을까요?
나는 햄버거, 햄버거로 정했어요." 즐거움을 마음껏 표현하는 질문을 하는 나무가 있다. '조현병' 필터를 끼고 세상을 보지만, 누구 못지않게 자신을 사랑하고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꿈꾸는 청년 나무가 있다. 이런 나무가 일하고 사랑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나무들이 있다. 그들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 나무가 밝고 다정하게 성장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오래도록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켜줄 수 있는 나무가 되어주는 희망을 품어본다.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