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공이 좋아! 도넛문고 12
이민항 지음 / 다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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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의 모든 공이 좋아!/ 이민항 소설/ 다른출판




성장 스포츠 소설 [너의 모든 공이 좋아!]는 중학생, 여, 야구선수인 오희수가 '야구'를 계속하기 위한 분투기를 담고 있다. 세상의 시선으로 핸디캡이라 판단하는 조건도 많고, 부상까지 당해 1여 년의 기간 동안 재활에 힘쓰고 돌아왔지만 야구부가 해체되었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오로지 야구만을 위해 전학을 간 희수는 과연 야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








스포츠 소설의 강점은 무엇보다 피와 땀이 녹아든 지독한 훈련과 연습 그리고 끈끈한 동료애로 뜨거운 열기와 팔팔한 생기가 아닌가 싶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단 한자리인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넘어져도 다시금 일어나 도전하는 젊음이 읽는 이의 심장까지 펌프질한다. 








[너의 모든 공이 좋아!]의 주인공 희수 또한 의욕과 투지가 넘치는 선수이다. 장애물을 딛고 더 높이 더 멀리 내다보며 미래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2학기인 지금 당장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130km를 향한 희수의 집념은 기이하다 할 정도의 루틴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고개 들면 보이는 것은 확신과 환희보다는 불안과 초조가 컸다.








너무나 좋은, 삶을 가득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로 희수, 태진, 대윤, 태홍 등등 아이들이 빛나 보였다. 고등학생 둘을 둔 부모로서 진로에 대한 확신과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희수와 친구들의 모습은 뭉클한 감정 덩어리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야구를 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걸 좋아했던 마음은 아직 간직하고 있으니까.

잘 받아라 모든 게 섞인 내 마지막 공을."





잘하고 싶어서 자신과 주변을 힘들게 한 시간 속에서 삶의 전부인 '야구'를 포기하려 하는 희수가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는 대윤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서로 다른 이유지만 야구의 끝을 떠올리던 두 아이가 '보조배터리'로 짝지어져 '서로 모자란 것을 보태어 돕는' 관계가 되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야구'에 대한 마음을 알기에 더 잘 이해하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동지로서의 투수와 타자의 끈끈한 유대가 부러울 정도였다. 개인이 아닌 '팀'이 이룬 값진 승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간의 수고와 노력이 가슴이 찡하게 하였다. 역시 야구선수는 야구로 증명하는 거다. 



"이래서 야구가 좋아. 전혀 예측할 수 없으니까."




묵은 오해와 갈등이 씻겨내려간 이후, 원년 배터리, 겨레중 영혼의 배터리 '희수와 태진'은 정규 코스는 아니지만 야구와 함께 할 수 있는 또 다른 초대장을 받았다. 하나의 길만 있다고 믿고 닫힌 문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우리에게 소중한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지만, 

피아노 연주가 음표로만 이뤄진 건 아니듯

야구도 숫자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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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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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장편소설/ 한겨레




범유진 작가의 [호랑골동품점]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으로는 답할 수 없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기담을 좋아해 미야베 미유키 님과 오윤희 님 작품을 즐겨있는지라 하니포터10기 4월 활동 도서로 주저 없이 선택한 도서가 바로 [호랑골동품점]이었다. 








산의 주인 백호를 도와 영생을 얻은 '호미'가 주인인 '호랑골동품점'은 늦은 밤에서야 문을 여는 가게이다. 들어오는 것은 막지 않으나 밖으로 나가려는 것은 막아야 하는 존재들이 있는 곳이다. 바로 가게에서 '청소'라 불리는 정화를 받아야 하는 물건들이다. 


일상 속 물건들에는 기억이 스며든다. 가까운 이나 주인의 기억이 스며든 물건들은 복을 주기도, 화를 부르기도 한다. 한이 서린 물건들은 풀어줄 만한 인간을 끌어당긴다. 밖으로 나가 사고를 치려는 물건과 이에 휘말린 인간이 벌이는 엎치락뒤치락 한바탕 난리가 펼쳐진다. 







기억이 깃든 물건들의 사연과 인간의 사정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질러 고통과 분노와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과 사랑과 연민 등 수많은 감정들을 관통한다. 물건을 정화하는 청소 작업은 평범한 우리 인간사의 곪은 상처를 터트려 진물을 짜내 낫게 하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표지 속 물건 다섯 가지에 얽힌 이야기들은 동서양의 물리적 공간과 과거 현재의 시간적 공간을 뛰어넘는, 기이하고도 슬프고 애틋한 이야기였다.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어. 

그 아이가 매일 나를 불러. 춥다고."





[호랑골동품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물건을 훔치거나 산 이들은 죄책감, 자괴감, 외로움에 빠져있다. 물건들은 그 그늘진 마음을 엿보고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사람의 속을 헤집고 파헤쳐 기어이 밑바닥까지 보고야 마는 이 집요한 추적을 지켜보는 내내 지릿지릿 말초신경까지 반응하였다. 자기 기만, 자기 합리화 혹은 미처 깨닫지 못한 심연의 자아를 마주하게 만드는 기이한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하지만 작은 베풂이, 작은 손길이 끔찍한 비극의 칼날을 비껴가게 만드는 찰나 서걱거리던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호랑골동품점]은 기담의 기저에 깔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민을 잘 살린, 맛있는 책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을 주면,

그것만으로 세상이 참 아름답더라.

네가 나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유일한 사람이었어."










특별한 존재인 호미 이유요와 동이가 미숙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생명에게 느끼는 미련이 새삼 고맙다. 부질없다지만 사랑스러운 그 감정은 세상의 한곳을 따스하게 보듬어주고 있다. 이유요와 동이와 소하연 그리고 화까지 남은 페이지가 많은 책을 서둘러 덮는 기분이다. 물건에 깃든 기억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도 다시 들을 수 있기를 기다려본다. 

"달이 그림자에 가려졌다고, 사라진 게 아니구나."



한겨레 하니포터 10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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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프 3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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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홀랜프 3.신성한 종의 수호자/ 사이먼 케이/ 샘터



홀랜프 시리즈 3권이 출간되었다. <1. 거룩한 땅의 수호자>, <2. 메시아의 수호자>에 이어 <3. 신성한 종의 수호자>다. 1,2권이 나온 지 6개월 만에 더 복잡하고 다중적인 세계관으로 확장된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왔다. 


이번 <신성한 종의 수호자>를 읽으면서 1,2권 내용으로 파악하고 체계화된 홀랜프 세계관이 무너져 내렸다. 외계 생명체 '홀랜프'에 대항하여 지구를 지키는 '최 박사가 키운 벙커의 아이들'의 분투기와 성장기가 이 시리즈의 줄기라고 생각했다. 하늘의 도시와 82본부 또한 최 박사의 문서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판단하여 인류를 위한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보았다. 벙커의 아이들은 홀랜프에 대항하여 맹렬히 싸웠고, 리브와 선우필의 아들인 '선우희'가 메시아가 되어 끝끝내 홀랜프 여왕과  그 종을 무력화시켰다. 그리하여 민간인들 사이에 '벙커의 아이들'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는 '벙커의 아이들'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으로 시작했다. 그들을 지켜주는 마일스 전사들은 탐탁지 않게 바라본다. 이런 시선의 변화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페카터모리와 홀랜프를 향한 마일스 전사의 증오와 분노가 초반부터 강하게 그려져서 '하늘의 도시'와의 갈등과 분열을 예상할 수 있었다. 예상과는 다른 전개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홀랜프 세 번째 이야기 <신성한 종의 수호자>였다. 








사이먼 케이 작가는 '본질의 인간성'을 작품 속에서 계속 탐구한다. 인류가 전쟁에서 이긴 후 더 이상 홀랜프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래서 페카터모리를 인간으로 되돌리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와중에 변화가 생긴다. 페카터모리는 

변형을 하고, 홀랜프의 어빌리스가 약해져 그 존재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늘의 도시에서 만들고자 하는 '완전한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지난 이야기에서는 구원자였던 선우희가 최 박사의 외경에 적힌 것처럼 육체·정신·영혼, 세 존재로 분리된 채 꼬마 홀랜프로 벙커의 아이들 앞에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대단원의 서막을 연다. 








'완벽'이 아닌 '완전'을 유난히 강조하는 이야기는 모든 비밀을 풀어놓지 않은 채 어느 정도 밝혀진 비밀과 예측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의해 내린 결정을 새로운 인물들과 기존 인물들과의 대립, 갈등, 공조 속에서 독자들이 유추해나가도록 이끌고 있다. SF물 틀안에서 인간의 본성과 가치, 종교와 사회의 역할과 의미 등을 고찰하고 있다. 민간인, 전사, 알파 부대, 벙커의 아이들, 페카터모리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목소리를 빌어 인간의 존엄성, 인권에 대한 고민을 잘 녹여내고 있다. 가상의 이야기 속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 이야기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나도 지금 많이 헷갈려서 그래.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가 안 돼. 

왜 다 끝난 전쟁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여기서는 이게 옳다 그러고

저기서는 저게 옳다 그러고…….

이제 새로운 해답이 제시되는 것 같고…….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다만 지금 이렇게 하는 행동이 맞는 건지."

- 박 사령관







반전에 반전으로 다다른 결말은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지게 한다. '벙커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성장의 끝이 어디일지 무척 기대된다. 매 이야기마다 평면적이고 수동적인 영웅이 아닌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수호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넘치는 그들을 아직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홀랜프 시리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언지,  '완전한 세상'은 어떤 곳인지 열심히 지켜볼 것이다. 




"우리는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 

너희가 뭔데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거야?

우리에게는 판단해 주는 홀랜프가 있었어!

잘 살도록 필요한 건 무엇이든 다 제공하고

해결해 주었다고! 

…… 

그런데 너희 인간들이 뭐라고

그런 완전한 사회를 막는 거야?

인간을 통치하는 건 홀랜프여야 해!

오직 홀랜프가 지배해야

세상은 평화로워지는 거야!"

- 페카터모리





홀랜프 시리즈의 영상화를 강력 추천한다. 흥미로운 소재와 볼거리 가득한 외형적 요소와 철학적 메시지까지 복합예술로 우리를 놀라게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완전한 세상 좋아하네. 

완전한 사람이 존재할 수가 없는데

뭘 근거로 완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건지……."

- 김 중령






"만일 최 박사의 최종 계획이

홀랜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면?"

- 아라



끝까지 긴장감이 가득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을 품은 채 독자를 사로잡는 홀랜프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신성한 종의 수호자>로 인류의 미래를 점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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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게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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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별에게/ 안녕달 글ㆍ그림/ 창비



안녕달 작가가 그림책을 선보인 지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맛난 상상력이 한껏 담긴 [수박 수영장]을 시작으로, 우리를 웃고 울고 행복하게 해주었던 안녕달 작가였죠. [눈아이]는 제 머릿속 한자리에 세 들어 살고 있답니다. 


창작 10주년을 맞이하여 그림책 [별에게]가 출간되었어요. 안녕달 작가 특유의 다정한 감성과 촉촉한 위로를 실은 또 하나의 선물이 도착했네요. 







[별에게]는 아이가 학교 앞에서 사 온 '별'을 가족과 돌보며 같이 성장하는 시간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병아리'를 샀던 기억이 나더군요. 그 병아리에게 쌀을 먹이면서 키웠던 것처럼 아이도 별을 키웁니다. 달빛 좋은 날에 산책을 하면 그 달빛을 자양분 삼아 자라는 별의 모습, 곁에서 크고 또 나이 들어가는 아이 가족의 모습이 조각 이불처럼 마음을 데워줍니다. 








아이 손바닥에 쏙 들어오던 별이 점점 자라서 아이보다 엄마보다 더 커지는 시간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추억들을 잔잔하게 그려낸 안녕달 작가의 글과 그림이 참 따뜻합니다. 색연필로 쓰윽 쓱 색칠한 질감의 그림들은 제주의 소박하고 정감 어린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주요한 부분 외에는 생략한 그림은 곧장 주제로, 중심으로 독자를 인도합니다. 별과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별이 달처럼 마치 보름달처럼 커졌네요. 어느 날 찾아와 어느 날 떠나간 별은 하늘 높은 곳에서 반짝이며 말을 겁니다. 









곁에 있을 때도 누구보다 환하고, 높이 떠 있을 때도 누구보다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누나와 엄마처럼 [별에게]는 읽는 이 모두에게 충만한 기쁨과 아련한 그리움을 선사합니다. 내 곁을 환히 밝혀준 '별'에게 고마움 듬뿍 담은 인사를 전하게 해주는, 안녕달 작가의 [별에게]를 추천합니다.









우리 모두 환하게 빛나는 별을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 별이 하늘 높이 떠오르는 그날,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지금 더 많이 사랑하고 좋아하고 함께 해야겠어요. 



"네가 와서 집이 참 환해졌지.

우리한테 와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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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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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신혜우 지음/ 한겨레출판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는 신혜우 학자가 다른 나라 낯선 자연의 품 안에서 만난 식물들로 한가득 채워진 1년 12달의 시간이 담긴 에세이다. 새로운 공간, 사람, 자연과 익숙해져가는 시간 속에 그가 관찰한 식물뿐 아니라 삶을 통찰하는 사유가 담겨 있다. 식물을 긴 시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학자적 자세에서 다른 나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고독과 설렘, 기쁨과 슬픔을 마주하고 들여다보는 인간적 고뇌까지 진솔하고 담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잔잔한 사색의 자취를 따라가니 어느새 삶의 소중한 가치를 마주하게 된다.




자연의 모든 건 조화롭게 연결되어 순환한다.




식물들이 열매 맺고 번식하는 일련의 과정을 관찰하면 미생물, 곰팡이, 작은 곤충들 등 눈에 보이지 않거나 중요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실제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이 좋다 나쁘다, 대단하다 하찮다 하는 판단과 구분은 인간 본위의 얕은 결론일 뿐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하면서 조화롭게 연결되어 순환하고 있다. 저자 신혜우 학자는 12달 자연에서 만난 경이로운 순간들을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들려준다.







자기반성과 깨달음, 온갖 감정이 기록된 다정한 숲속 일기는 좁은 시야로 입맛대로 선택하여 바라봤던 한정된 세상을 넓혀주었다. 피지 않는 꽃도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니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눈으로 뒤덮인 대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도 대단하다. 내려오는 동안 질소를 부착하고 토양을 덮어 질소와 수분을 보호하고, 봄에 완전히 녹아내릴 땐 한꺼번에 풍부한 물과 질소로 변해 씨앗이 새싹을 틔울 수 있도록 돕는다. 신혜우 학자 말처럼 갈수록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 많아지는 듯하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들은 결국 시간이 흘러야 해결된다. 조급하면 할수록 더 꼬일 수 있다. 눈 내린 풍경이 전하는 위로를 읽은 저자가 우리에게 다시 그 위로를 전한다.


"그냥 계속해.

그러다 보면 막막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해."




실험실 안에서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이야기를 상상했던 나에게 신혜우 작가는 놀라운 시야를 선사해 주었다. 실험실에서 벗어나 숲속을 거닐거나 옥수수밭에서 푸른빛을 발견하여 도깨비 불인가 싶었는데 반딧불이였다거나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식물들과 뜨거운 사랑에 빠지거나 농장에서 다양한 작물들을 농사지어 기부하는 등 다채로운 식물연구원의 삶을 들려주었다.







전공 식물분류학이 아닌 식물생태학으로 논문을 쓸 상황이 아니었을 때 메릴랜드의 자생 난초 그리는 것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다운 행보가 아닌가. 1년 동안 생애 주기를 관찰하고 그리는데도 1달여의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라고 하니, 새삼 책 속 삽화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얼마나 지극한 마음과 지난한 시간이 담긴 그림인지 알고 보니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물맛 나는 과육을 씹으면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맛비를 먹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

햇빛이 부족하면 식물이 충분한 당분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물맛은 나와 계절이 하나 되는

묘한 충만감을 준다. (p.106)




하나의 시선으로 찾은 답이 세상 모든 일에 '정답'이 될 수 없다. 수많은 시간을 식물 연구로 보낸 저자조차 낯선 식물들이 많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싶지만, 신혜우 학자는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유연하고 긍정적인 사고로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답을 찾아간다. 숲속을 거닐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 식물학자 신혜우가 들려주는 낯설지만 친근한 식물 이야기이자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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