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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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라곰





삶의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면?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풋풋한 19세 대학생 넬이 자신이 죽을 날짜를 예언가에게 듣고 난 이후의 삶을 담고 있다. 

38세가 되면 죽는다는 예언은 넬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사실 이런 말을 들으면 믿든, 안 믿든 누구나 신경 쓰게 될 것이다. 특히 예언을 들은 다른 친구 소피가 그 날짜에 죽었기에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게 된다. 작가 샬럿 버터필드는 지정된 날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유예기간 동안 다양한 경험과 관계를 쌓는 넬의 자유로움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역설적으로 예언 날짜까지 안전은 보장되기에 넬은 '버킷리스트'를 해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죽음 디데이 이후에 주 포커스를 두고 있지만, 이점 역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넬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신나지만 위험한 모험을 즐긴다. 하지만, 죽음 디데이 이후에도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언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넬과 친구 헤일리의 보여준 반응을 보면 넬의 성향, 기질이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닐까. 모험과 스릴을 즐기고, 호기심이 크며, 잘 웃고,  잘 다가서는 유연한 넬은 매 순간을 바쁘게 살았다. 















"떠나는 것이 머무는 것보다 훨씬 쉬워. 

넌 가방을 메고 미지의 세계로 가는 네가

더 용감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모든 걸

해결하려면 다른 유형의 강인함이 필요해."





작가 샬럿 버터필드는 넬에게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우연한 만남이 교차하면서 삶의 궤적에 들어온 새로운 인물들과 엮이게 되면서 관계의 진정한 의미와 무게를 깨닫게 된다. 깊어져가는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느껴지는 온갖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한층 더 성숙해져가는 넬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었다. 
밀어내기에 급급했던, 도망치기에 바빴던 넬이 사랑하는 이들 곁에 둥지를 틀고 자리 잡아가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흐뭇해졌다. 상처받기 싫은 어린 새였던 넬은 마침내 곁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든든한 존재들이 있어 상처받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용한다. 




"넌 지금 네가 가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인생을 마주하고 있어.

네가 항상 혼자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



샬럿 작가는 개연성 있으면서도 특색 넘치는 글로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이 흡입력은 넬이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순간들에서 강력해진다. 톰, 주노, 안드레아 등 매력 넘치는 인물들과 처음 만나는 순간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글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을 스케치하듯 묘사한다. 그래서 그 인물을 이미지화하기 편하다. 소설을 눈으로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영상이 펼쳐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였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늘 인사를 건네겠다고 약속해.

그리고 뭐든 최고를 위해 아껴두지 마.

그럼 늘 제일 좋은 수정 물을 마실 수 있을 거야."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저어하던 넬이 '혼자인 삶' 대신 '함께 하는 삶'을 꾸려나가는 여정을 유머와 풍자, 유희로 채워나가는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소설이다. 특히 다양한 인간 군상의 출현에도 어수선하지 않고 각각의 개성을 잘 살려 읽는 재미와 맛이 크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 위태위태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다. 이 소설은 그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를 달콤하게 그려냈다.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서 있는 우리에게 든든한 응원과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넬다움을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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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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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구희 글·그림/ 한겨레출판




어느덧 굳이 나이를 세지 않는 연배가 되었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세월이 참 빠르구나' 생각하면서도 늙어간다, 나이 들어간다 인식하지 못한 채 지냈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계속되다 아이의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를 받은 날, 눈가의 주름이 유독 눈에 띄는 날, 남편 얼굴보다 휑한 정수리와 새치가 먼저 보이는 날, 문득 실체를 지닌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된다. 이번 하니포터10기 활동 도서인 구희 작가의 만화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자립할 나이가 되어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청년을 일컬어 '캥거루족'이라 한다. 배쪽 주머니 속에 새끼를 넣고 다니며 키우는 캥거루 모습이 연상된다. 캥거루족이 늘어나고 있는 오늘날,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만화의 형식으로 그들의 입장과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공감툰이다. 저자인 구희 작가보다 부모님 입장에서 받아들이며 읽게 되었다. 이제 곧 성인이 되는 큰 아이가 구희 작가에 오버랩되면서 피식 웃는 경우가 잦았다.








단란한 4인 구씨 가족의 장녀인 구희 작가가 30대가 되면서 '독립'에 대한 생각이 깊어져가는 이야기다. 독립 고민기이자 분투기인 이 만화는 MZ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구희 작가와 동생 '구죠'의 일상이 다른 어느 때보다 살기 퍽퍽한 고물가, 고스펙 경쟁 과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청년들의 '오늘'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현실적인 장벽과 삶의 가치관 변화로 출현한 '캥거루족'. 사회의 잣대로 비난받기도 하지만 그들 또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구희 작가는 특유의 유쾌한 그림체와 현실적인 에피소드로 풀어내고 있다. 이는 사회적 공감대로 이어진다. 


다정한 집에서 든든한 아군이자 수호천사인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여 평온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입시와 취업 준비를 거치면서 독립, 홀로 서는 것이 두려운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구희 개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고 싶으면서도 아늑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집과 가족들과 떨어져 자신의 섬을 꾸리는 일을 결심하는 게 쉽지 않다. 








구희 작가는 부모님 세대에 대한 존경과 경의, 가정 노동의 가치 환기와 감사, 사회적 퀘스트에 대한 부담, 독립과 자립,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 등등 평범한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생각하고 고민하며 고마워하는 지점에 대한 적절한 표현과 마음들을 이 한 권에 담아주었다. 사회가 정한 나이별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나의 길'을 찾고자 나아가는 구희 작가를, 청년을 가슴 깊이 응원한다.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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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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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진공 붕괴/ 해도연 소설집/ 한겨레출판



좋아하는 김초엽 작가의 책을 읽고 큰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과 전공자가 이렇게 글까지 잘 써도 되나요? 문과생들은 어떡하라고요." 본인 또한 문과형 이과 지망생이면서 말이다. '글', '이야기'를 창조하는 능력 혹은 욕구를 인간의 본능이라 한다면, 누구나 가히 작가가 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은연중에 '작가'는 문과 카테고리에 넣고는 설레발치는 모양새다. 아이가 말할 때는 웃어넘겼지만,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보다. 나의 보편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찬란한 시간을 보냈다. 바로 해도연 작가의 [진공 붕괴] 덕분이다. 우주 전문가가 탄탄한 전문 지식과 경이로운 상상력 그리고 체험이 녹아든 이야기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SF 장르의 신세계를 선사했다.






세 번째 작품집인 [진공 붕괴]가 해도연 작가와의 첫 만남이다. 단편으로 그려진 여섯 가지의 세계가 탄탄한 과학적 토양 위에서 줄기차게 확장되어나가는 호흡이 놀랍다. 어느 이야기 하나 단조롭지 않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한순간의 이완도 허용하지 않는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구조는 긴장감과 재미를 놓치지 않도록 독자를 이끈다. 여섯 편의 이야기 제각각 특색 있고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그중 <텅 빈 거품>, <마리 멜리에스>, <콜러스 신드롬>이 긴 여운을 남겼다.





과학이 토대가 되지만 인간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감정과 욕구가 녹아있는 이야기들이라 음미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소중한 존재에게 진실을 숨기면서 얻는 행복과 안녕이 진정한 것일까? 소멸 앞에서 '본인'와 '타인'의 경계가 유의미한 걸까? 진실을 '알지 못한' 이와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이 그리고 '알았으면서도 망각한' 이 중 선택해야 한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되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

해도연 작가는 하나의 글 안에서 한 가지 선택이 아닌 개개인의 성향과 입장들을 드러내는 여러 시선들을 담아내면서 독자들 스스로 고민하고 사유하도록 이끈다. 지구를 넘어서는 광활한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의 지능과 본능을 초월한 외계 생명체나 인조인간 혹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자 등등 범상치 않은 세계관의 터널을 건너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부딪치고 넘어지고 놀라고 전율하며 즐길 것이다. 등장인물이 되어보기도, 상대역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행간 사이를 탐색해 나갈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기술의 발달로도 모든 게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한계가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지킬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같은 생각이 아닐지라도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아파하고 슬퍼하는 그들이 아름다웠다.


해도연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 터전에서 인간의 보편적 감정(사랑, 기쁨, 행복, 환희, 부성애, 모성애…)과 가치(생명, 자유, 신뢰, 정직…)가 어떤 모습으로 피어나는지 지켜보면서 매료되었다. 우리의 지금이, 내일이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 바로 이 순간 나를 감싸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생경하면서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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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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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희정 지음/ 한겨레출판


[죽은 다음]은 기록 노동자 '희정'이 전하는 죽음과 장례 이야기 그리고 돌고 돌아 사는 이야기였다.








'죽음'으로 시작해서 '장례'로 시선이 옮겨간 [죽은 다음]은 인터뷰를 위해 직접 '장례지도사 직업훈련'을 받은 저자가 담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다. 전통 상장례의 순서를 따라 구성된 장례 절차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이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시신 염습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저자는 '죽는 일보다 늙는 일에 대해 먼저 배웠다'고 했다. 아는 이의 죽음이 아니라면 시신을 보고 드는 느낌이 먼저일 것이다. '늙음' 그리고 '죽음'에 이른 존재에 대한 친애와 경의를 담은 숙연함이 두 손을 모아 쥐게 했을 테다. 


수의에 관한 이야기도 가슴 한편에 쌓였다. 너무 어릴 적에 유족이었기에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빠 장례에 입었던 삼베옷의 까끌까끌 거림과 하얀 끈 머리핀은 설핏 기억난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터라 부고 받는 횟수가 늘었다. 주변 지인들의 경험담에도 마음이 아리고 걱정이 앞선다. '죽음'은 이렇게 남은 이들에게 더 깊고 더 진하게 배어드는 듯하다. 무엇 하나 쉽지 않게 다가오는 장례라, 어느 수의 제작자분의 "마음이 쉽지가 않지."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에 하나 가져가는데, 그 옷을 정성스럽게 만들어드려야" 된다는 그 마음의 온기가 묵직하게 전해져 왔다. 




아마 그가 인생의 끝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관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일 거다.

가족이 생기고, 동료가 생기고,

친구라 부를 이들이 생겼다.

- 54쪽





요즘 장례는 장례식장에서 치러지는 게 대다수다. 그리고 상조회사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실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와 애도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장례식은 흔치 않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장례지도사 전문가를 직접적으로 접하지 않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생전 장례식'에 대한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한국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 세연을 위해 남편 진봉이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 마지막 잔치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회포를 푸는 세연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또, '작은 장례 추모식'도 의미 있는 마무리 같다. 고인을 배웅하는 진심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들끼리의 자리라 더 뜻깊으리라. 








우리의 삶은 평등하지 않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도 평등하지 않다. '가난한 자의 수의, 매듭' 등등 장례 문화가 장례업으로 외주화되면서 '돈'은 삶의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또 '관계'또한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연고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사회의 '가족제도'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시대의 변화에 대한 반응과 대응이 느린 사회체제와 법규로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가족'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관계들이 외면당하고 있었다. 




출산, 양육, 부양, 연명, 의료 그리고 장례까지.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일이

오직 가족 단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둔 사회는, (정상) 가족을 벗어나

구성원이 맺는 다양한 유대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무연고자가 증가한다.

274쪽




[죽은 다음] 책을 읽고, 장례 복지 시스템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무상 의료'처럼 '무상 장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를 기다려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의 슬로건을 떠올려보면 죽음과 장례를 국가가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지원하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나눔과나눔 박진옥 활동가의 '공영 장례'에 대한 환기와 고민이 크게 와닿았다. 

또, 여러 나라들의 장례 문화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다. 문화와 자연환경, 종교 등에 따라 죽음과 영혼, 장례에 대한 인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죽음과 장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시간 속에 무엇보다 '고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애도하는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글 중간중간에 추가된 인터뷰들이 '장례'현장에서 마음을 다해 고인의 마지막을 다듬고 보살펴주고, 사별자들의 감정을 세심히 들여봐주는 전문가들의 참모습을 전하고 있다. 

생명을 지닌 존재들은 모두 죽는다. 절대불변의 진리 앞에서 우리는 같은 위치이면서도 다른 듯하여 안타깝고 성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작정 고인의 명복을 빌었던 그때와 달리, 이제 사람에게 기대어 누군가의 평온을 빈다'라는 문장처럼 같은 곳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 곳곳에 발 딛고 서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연대를 믿는다. 더디더라도 더 나은 내일을 품고 하루에 하루를 더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안녕을 묻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요?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우리 사회의 존엄과 온기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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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거지를 찾습니다
홍선주 지음 / 한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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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거지를 찾습니다/ 홍선주 소설/ 한끼출판




[꽃거지를 찾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제목이라 눈이 가는 소설책이었다. 신림역 꽃거지를 찾는다고? 건장한 청년 두 남녀가 어떤 연유로 찾는 걸까? 호기심 가득히 안고 침을 꼴깍 삼켜가며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기시감 같은 것을 살짝 느꼈다. 불운한 성장기, 어른 없이 자라나야만 했기에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해서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게 두려운 어른 아이, 공감과 배려를 받아본 적 없어 그저 문제를 해결하고자 답을 찾고 나누고자 하는 인간관계… 언젠가 비슷한 주인공을 만난 적이 있는데 싶었다. 그래서 작가 소개를 살펴보니 역시나 <심심포차 심심 사건>의 홍선주 작가였다. 집중해서 읽어 기억하는, 여운이 깊게 남은 소설이라 이번 소설의 기대치가 한층 높아졌다. 






[꽃거지를 찾습니다] 소설에서 의연과 건우는 꽃거지를 찾는다는 목적 하나로 엮인 인연이다. 그가 예전에 자주 출몰했던 신림역 인근을 수색하지만, 매번 허탕이다. 이들은 왜 꽃거지를 찾아 헤매는지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차차 밝혀지게 된다. 또 둘의 공조가 길어지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 모르는 타인들이 오늘을, 어제를, 내일을 공유하면서 알아가는 여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렇게 한눈이 팔린 사이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홍선주 작가의 저력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소름이 쫘악 돋았다. 







방임과 상실로 가슴에 구멍이 크게 난 어른 아이 '의연'이 섬세하고 감응 능력이 뛰어난 미대생 '건우'를 만나 위로받고 치유받는 이야기를 예상했던 나의 짧은 식견을 꾸짖는 발군의 스토리는 가슴을 뒤흔들었다. 건우가 항상 끼고 있던 이어폰, 영화 식스센스 등 작가가 곳곳에 심어둔 단서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우리가 서 있는 현실 세계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저지르는 폭력, 슬픔, 고통을 또 다른 누군가가 기꺼이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위로, 배려, 지지가 그려지는 소설 세계가 묵직한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영매 탐정' 건우가 마음을 다해 배웅하는 그 길 끝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의연이 너무 눈부셨다. 






'혼자', '홀로' 살아왔다고 생각들만큼 외롭고 쓸쓸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막상 삶의 매 순간을 돌아보니, 맺었던 인연들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자책하며 특히 그리워하는 따뜻한 마음들이 보이고 들렸다. 








'하지만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네.' 미국의 나바호족에 전해내려오는 노래 구절처럼 우리는 한 명 한 명 모두 다 소중한 존재들이며, 또 다 연결된 존재들이라는 당연하지만 놓치게 되는 메시지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당장 성과가 안 보이거나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어느 시점, 어떤 방식으로든 제 삶을 온전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테니까 감사히 여기고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삶을 받쳐줄 든든한 쿠션이 되어주리라. 우리는 서로의 흘러내리는 마음을 붙들어줄 수 있다. 주변에서 보내는 신호에 반응할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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